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표지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은 이 책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담겨있다. 어떤 책의 경우에는 제목과 작가 이름마저 작품의 일부로서 작동하기도 한다. 책표지의 그림에는 작품의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독자들이 이 책을 사고 싶게 만들어야 할 편집자의 고뇌가 담겨있다.

 

작가 이름 옆에 쓰인 소설’, ‘장편소설같은 짧은 단어에도 어느 정도의 정보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단편집은 지음혹은 소설장편소설은 장편소설이라는 말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장편소설인줄 알고 골라든 책이 알고 보니 단편집인가 했을 경우, 왠지 모르게 방해 받는다는 기분도 느낀다. 일반적인 방식 말고도 역사소설이나 가상소설’ ‘실화소설같은 말이 붙어있으면, 왜 이런 잡스러운 말을 붙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그 책들을 조용히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최근에 이석원 씨의 책인 보통의 존재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었다. 보통의 존재의 경우 평범하게 이석원 산문이라는 말이 써있지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는 이야기산문이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야기 산문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소설까지는 아니고 소설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는 하지만, 소설까지는 아닌 그런 책이라는 말인가. 대충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은 그대로 맞았다.

 

보통의 존재는 마흔 살이 다 되가는 음악인 이석원 씨가 과거와 현재에 일어난 사건에 자신의 생각을 묻혀서 쓴, 일기장에 나와 있을 만한 글들을 모아놓은 산문집이다. 길지 않은 결혼생활에 대한 감정들, 자신이 과거에 어떤 연애를 했고, 얼마나 돼먹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지 같은 것들, 한 권의 책까지 낸 사람이 평소에 책을 한권도 책을 읽지 않고, 읽지도 않으면서 서점에 가면 책을 한바구니 가득 산다는 부러운 말도 한다. 이 책은 이석원이라는 사람을 내밀하게 기록한 글들을 모아놓았기에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석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된다. 본인은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여기는 듯하지만, 이 책을 읽은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내린 평가는 이석원이라는 개인 혹은 그의 삶은 꽤나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앞에서 말했듯이 이야기 산문이라는 말에 충실한 책이다. 내용은 이석원이라는 이름의 화자와 매력적인 정신과 여의사의 만남과 연애를 다룬 책이다. 작가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기에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작가가 잘 꾸며낸 구라인지 헷갈린다. 소설과 연애 썰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하는데 묘하게 재미있다. 때때로 소설을 읽는 독자는 소설속의 화자가 작가 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겉으로는 사십대 작가와 삼십대 여의사의 연애 스토리 정도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앞의 책인 보통의 존재의 변주로서 비슷한 목소리와 생각을 공유한다. 관계에 대한 고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 보통의 존재는 2009년에 출판되었고 6년 후,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출판되었다. 6년이라는 시간은 한사람의 고민이나 걱정을 해결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나 보다. 아니 어쩌면 더 골치 아팠을 수도 있다. 보통의 존재의 말미에서 글쓰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작가는 기뻐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글쓰기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진득하게 경험한다. 희망이 있다고 인생이 쉬워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P.S 처음 보통의 존재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그 뜻이 연인이 헤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감정이 서서히 무뎌지고 마침내는 매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일반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그런 의미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책에서 나오는 의미보다 내가 멋대로 상상한 의미가 더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P.S 2 이 책들을 읽고 연달아서 허지웅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의도한건 아닌데 두 작가의 나이는 엇비슷하고 둘 다 이혼을 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두 작가의 글에는 인간은 홀로 살아간다는 고독감과 관계의 끝을 경험한 시니컬함이 묻어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기 도미노 오늘의 젊은 작가 15
최영건 지음 / 민음사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번 안했던 일을 다시 하려니 이리저리 핑계만 대다가 읽은 지 한참 되는 오늘에서야 글을 쓴다. 문예지를 구독하지 않는 한 젊은 작가를 접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작가도 전체 소설가에 비하면 아주 한정된 숫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민음사에서 나오는 젊은 작가전이라는 이름의 소설 시리즈의 취지는 좋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에도 이 시리즈를 접하면서 전에는 모르던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리즈의 모든 작품을 좋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괜찮은 소설도 있었고, 내 생각을 바꾼 소설도 있었으며, 읽고 내가 뭘 읽은 거지 하고 의문스러운 소설도 있었다. 이번에 읽은 <공기 도미노>의 경우에는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은 앞의 감상 중 세 번째의 것이었다. 책을 읽는 중에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뒷부분을 다시 읽기도 해서 짧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읽는 시간이 꽤나 많이 들여야 했다. 아니 사실은 읽기가 싫었다. 분량이 짧았기에 다 읽을 수 있었을 뿐. 분량이 이것보다 많았다면, 읽는 것을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책의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적혀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연작 소설에 가깝다. 여섯 장으로 나눠진 소설은 각 장에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고, 소설의 시점 또한 그들의 시점으로 바뀐다. ‘연주라는 등장인물과 멀거나 혹은 가깝게 관련 되어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각장의 스토리는 서로가 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1장은 연주가 할머니의 애인을 데리러 갔다가 애인의 가족의 불행한 가정사를 목격하는 내용이고 2장에서는 뜬금없이 연주가 운영하는 카페의 알바생이 카페에서 밀회를 하다 카페를 탈출하는 내용이다. 3장에서는 불륜을 하는 요가 강사를 욕하러 고향의 친구 엄마가 찾아가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작위적인 내용이다. 4장은 연주의 할머니가 5장에서는 4장에 나온 연주의 남자친구의 아는 형이다. 6장에서는 1장에서 등장하는 부잣집 사모님이 다시 등장한다. 연주라는 인물의 가정사에 가깝거나 멀게나마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각각의 장이 미완된 단편 소설이라고 할 정도로 내용들이 상이하고, 소설로서의 유기성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또 각장이 시작될 때. 몇 문단 정도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한 문단 안에 너무 많은 문장이 들어가 있어서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기 보다는 문장의 어색함이 느껴졌다. 특히 3장의 첫 번째 문단이 그렇다. 그중에서 가장 어색한 것은 소설의 관찰자적 시점이 보여주는 전능함이다. 단순히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넘어서 그들의 삶을 평가하고, ‘이들은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을 적시하는 몇몇 부분은 미숙하게 느껴졌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소설 안에 열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독자가 그 인물이 누구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작가는 문장을 통해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모두 적시한다. 이런 부분이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인지하고 작가가 취한 조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부분 때문인지 나는 이 소설이 무슨 말을 하고 그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거나 평가 할 수 없었다. 새로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이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 소설을 읽고 나서는 뒤에 실려 있고는 하는 비평가의 글을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 소설 같은 경우에는 소설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읽어보았다. 그제 서야 이 소설이 무엇을 썼는지 조금 감이 잡혔다. 하지만 비평가의 글을 읽고 서야 이해된다니. 어떤 소설의 비평을 하는 일을 필요는 하지만, 책을 읽는 데는 중요하지 않는 요소로 여기는 나로서는 이 책의 뒤편에 실린 비평이 이 소설의 설명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전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설명서를 읽는 것처럼. 비평이 하나의 의견이 아닌 소설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소설. 이런 소설을 나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어떤 소설이든 그 소설 안에는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담겨있다. 그 말은 대놓고 보이기도 하고 배배꼬아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말은 무엇일까. 한 가족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간군상? 그러나 이 소설에서 연주의 비극은 그렇게 비극적이지도 않고. 주변의 인간들은 작위적인 설정과 상황들로 채워져 있어.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히스테릭한 등장인물과 그에 휘둘리는 등장인물들이 보일 뿐이다. 차라리 이 소설이 미완의 작품이라면 나는 더 나은 평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완성되었고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 이 소설에서 하는 말을 듣기위해서 13000원이라는 돈과 책을 읽는 몇 시간의 시간을 들어야 하는가? 이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 나는 아니라고 말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SUSALON 2017-11-15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더 재밌는 리뷰였습니다.
 
아몬드 (양장)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은 조금 실망한 정도가 아니라 많이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처음부터 별로인 소설이었다면, 책장을 덮으면 그만이었을 탠데, 이 소설의 첫 장은 내가 읽었던 어떤 소설보다도 강렬했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는 하루의 볼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소설의 도입부는 하루 종일 쌓아올린 피곤함이 날아갈 정도로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첫인상에도 뒷장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점점 실망스러워져갔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이 청소년 소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한 것. 두 번째는 작가가 등장인물에 너무 많은 연민을 느낀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 점은 또 다른 청소년 소설인 위저드 베이커리와도 다른 점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뇌의 이상이 있어서 알렉시타미아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증후군의 증상은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 쉽게 말해서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사랑도, 슬픔도, 느끼지 않는다. 감정이 없기에 아무리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도 아무 느낌도 느낄 수 없다. 사이코패스와 같은 말로도 들리지만,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남을 해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윤재의 경우에는 무엇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마저 없으니 사이코패스와는 다른 유형의 인간이다. 적어도 괴물은 아니다.


윤재의 부모 중 아버지는 예전에 사고로 죽었고, 엄마와 할머니의 손으로 자란다. 윤재가 정상적인 아이는 아니기에 그에 맞춰서 두 사람은 유별나게 윤재를 훈련시킨다. 사소한 문제는 계속 생겼지만, 그럼에도 세 사람은 나름 잘 살아나간다. 엄마와 할머니는 사랑을 윤재에게 주고, 가르친다물론 윤재에게 그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가만히 그가 어른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들 가족에게 여지없이 시련이 찾아온다. 윤재는 그 모든 시련을 아무런 느낌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일본소설인 편의점 인간과 비슷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도 비슷하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인 후루쿠라도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간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경우에는 편의점에 소속됨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온전한 인간은 아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한 형태다.


윤재가 소설 속의 사건을 겪지 않고 자라난다면, 그녀와 비슷한 모습일까. 그러나 윤재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를 따뜻하게 지켜주고 자라나게 도와준다. 파국으로 끝난 <편의점 인간>과는 다른 결말이 기다린다.


그리고 보니 소설의 구조도 비슷하다. 초반 50페이지 정도는 주요캐릭터의 토대를 쌓은 뒤, 그 뒤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몬드>의 경우에는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해 초반까지는 <편의점 인간>보다 더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후반부는 글쎄


작가는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거의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지는 작가의 마음이다. 그 힘을 적절히 사용함에 따라서 그 소설이 희극이 되기도 하고 비극이 되기도 한다. 좋은 소설에서는 이러한 힘의 사용이 티나지 않는다. 마치 등장인물들의 운명에 따라 움직이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생각한다.(이것을 잘하는 작가가 스티븐 킹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어색하고 도대체 왜 이들이 이런 일을 겪을까. 이상하게 생각된다.


이 소설의 경우에는 작가가 과도하게 힘을 휘둘러 소설의 완성도를 해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가족을 상실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시련 앞에 놓인 경우가 많다. 작가가 그들에게 연민을 느껴서 좋은 결말을 만들어 주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마냥 느닷없이 일어나는 건 안 될 일이다. 그 덕분에 책장을 덮고 나서 할 말을 잃었다. 아침 7시쯤 방송하는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스티븐 킹의 작법서인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자기는 재능이 하나도 없고 그저 상황 속에 인물들을 내버려 놓는 다는 말을 써놨을 때. 천재의 재수 없는 겸손함 정도로 생각했는데, 작가가 상황에 자주 개입하는 소설을 보니 그 말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소설의 문장, 문체, 이야기가 얼마나 짜임새 있고 그 안에서 이야기가 어떤 메시지를 만드는 가 그런 것들을 본다. 이 소설은 작가가 등장인물들에게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한 덕에 그런 것들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앞부분의 장점들도 뒷부분의 뻔한 결말이 모두 망친 케이스다. 역시 결말이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처럼 책을 리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연을 리뷰하는 글입니다. 북플에도 공연을 리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으므로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 이 글은 3월에 공연을 보고 4월에 쓴 글입니다.


친구가 어쩌다가 낭독회 표를 얻었다며한번 같이 가보자고 말했다낭독회에 처음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키지는 않았지만실망하더라도 내 돈이 드는 것도 아는데 경험삼아서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공연은 일곱 시 반에 시작했지만따로 볼일이 있었기에 일찍 혜화역으로 갔다날씨는 더럽게 좋아서 멀리 북악산의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였다평일임에도 제법 많은 인파가 혜화역 인근에 모여 있었다알고 보니 서울대 의과대학 학위 수여식이 있는 날이었다미래의 의사들이 학사모를 입고 서울대 병원의 담장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친구는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를 늦었다미리 와있기는 했어도 볼일을 보느라 친구와 비슷한 시간에 약속장소에 도착했기에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공연장은 골목 사이에 있었는데혜화역 인근은 골목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조금 길을 해매서 도착했다골목 사이의 공연장이 그러하듯일반적인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공연장은 낯설지만아늑했다거실이었던 부분을 개조해서 한쪽에는 무대를 만들고 그 반대편에는 관객들이 앉을 의자를 새워놓았다명단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와 친구는 자리에 앉아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공연은 몇몇 관객이 우리처럼 길을 잃었기에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시작했다. 30개 남짓한 관객석은 꽉 찼고 자리가 모자라서 의자를 몇 개더 가져다 놓아야만 했다.


도화선의 스토리는 정석적이었다은행에서 근무하는 존재감 없는 남자가 예전에 성적으로 동경했던 여자 동창과 재회하고불륜에 빠지다가 서서히 자신의 몸이 희미해져 결국에는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이야기다이야기 자체는 뻔하고정석적이다사용한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지도 못하고소재 때문이라도 해석할 수 있는 방향은 정해진 듯 훤하게 뚫려있다그러나 그런 뻔한 스토리도 배우들의 연기에 곁들여서 펼쳐지니 색다르고 즐거웠다.


공연에는 네 사람의 배우가 등장한다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 각각 한명과 소설의 지문을 낭독하는 한명주인공들을 제외한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이렇게 네 사람이 등장한다네 배우는 각각의 대사와 지문을 상황의 톤에 맞추어 역동적이기도 하고 정적이기도 하면서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해준다특히 가장 빛났던 배우는 엑스트라를 연기한 남자 배우다음식에 조미료를 치듯이 튀어나와서 연기를 하는데절망적인 스토리를 우스광스럽 게 포장하는 역할을 해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준다.

 

무엇보다도 이극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공연이다불륜이라는 소재를 쓰기 때문에 성애장면도 아주 제대로 묘사한다그저 따라서 읽는 수준이아니라 진짜 하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여성연기자 분은 민망했을 탠데도 열심히 연기를 해주어서 민망하기 보다는 재미있었다그런 성애장면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이 극은 군데군데감초처럼 섞여있는 코믹스러운 연기 덕분에 즐겁게 공연을 볼 수 있었다결말은 비극적으로 끝이난다초반부터 예상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비극은 일어났고 공연은 끝이 났다관객들의 박수소리는 작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 배우연출자 사이의 질의 응답시간이 바로 이어졌다연출자로 보이는 남자 한분이 앞으로 나와서 간단한 소감을 말했다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에 감동한 듯연출자 분은 살짝 흥분된 몸짓으로 자신의 소회를 말했다공연이 만족스러웠기에 이 대담은 좋은 분위기에서 이어졌다몇 가지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해서 연출자와 배우 분들은 적극적으로 대답했다대충 기억나는 질문은 이렇다.

 

 

1.김영하의 작품 중 도화선이라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연극이라는 특성상 관객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면이 있어야만 했다도화선 같은 경우에는 불륜이라는 소재와 성애장면이 관객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


2. 이 소설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 했는가?

연출자는 남자가 서서히 투명해지는 상황은 불륜이라는 세상의 도덕을 위배한 행위에 대해서세상이 가하는 재제의 은유라고 해석했다소설 제목인 도화선은 남자가 불륜을 하는 것을 세상의 규범을 넘는다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어떤 부분에서는 이 해석이 맞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우선 투명인간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말해보자투명인간이 최초로 문학사에 등장한 이래 투명인간이란 사회 속에서 점점 실종되는 개인이라는 의미로서 사용되었다최초의 투명인간 이후로 문학에서 투명인간이 등장한다면거의 다 이와 비슷한 비유로서 사용되어 왔다도화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소설의 초반부에 남자에 대한 묘사를 보면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남자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요구받지도 않는 를 상실한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묘사된다그가 걱정하는 것은 임원감축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은행에서 하루라도 버티는 것이다놀랍게도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면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은행에서 해고당하는 것과 그로인해서 내지 못하게 될 수많은 공과금이다눈앞에 일을 걱정하지 자신의 인생을 걱정하지는 않는다나는 이 부분에서 이 남자는 이미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그가 투명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의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가 투명해지는 도화선이 하필이면 과거에 동경했던 여자와의 재회 그리고 불륜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사랑이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온전한 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남자가 투명해지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불륜녀의 거실이었다장소도 시점도 어색하게 느껴진다아이러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 어색함을 없애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진다작가도 그것을 느꼈는지 소설의 첫머리에는 어떤 사람이 남자에게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사라지게 된다는 식으로 경고를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물론 그 장면도 납득 되지는 않았다.

 

이런 의문이 생겼지만질의 응답시간에 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수줍음이 많기도 했고이 질문을 할 대상은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만약 김영하 작가를 만난다면 묻고 싶다왜 도화선이 불륜이냐고이 소설을 썼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느냐고.


처음으로 찾은 낭독회는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끝났다. ‘도화선공연은 3월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4월에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공연한다고 한다솔직히 놀랐다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거의 읽어본 편이었는데그것을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으로 묘사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생각한다이런 우려에도 일단 공연이 재미있었으니 배우들과 연출자가 알아서 재미있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다음에는 돈을 주고 볼 생각이다.


지금은 5월이고 4월의 낭독회는 일이 생겨서 보지 못 했습니다. 표값이 5000원 이었다는데서 더 아쉬웠습니다. 이 번 달에는 갈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점에서 호기심에 집어 들고 앞부분의 몇 페이지를 읽고,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다행이 그때는 수중에 돈이 없었다. 찾아보니 동네 도서관에 소장되고 있었기에 바로 책을 빌려 읽었다.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5년 만의 신혼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그전에 장강명이 HJ라고 호칭하는 아내와 만나고 연애해서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내용이 재밌고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HJ가 호주로 이민을 가려고 했다는 것. 여기서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가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이라고 고백한다. 아무튼 본인의 문학적 고백과 함께 기자로 일하다가 기자 생활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기자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서 생활을 시작했는지 전업 작가의 생활이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나름 자족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을 소개한다.


남의 연애 얘기도 꽤 재밌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하려고 여러 번 선을 봤지만, 마음이 차지 않아 번번이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사랑이 호주에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고, 결국에는 호주에 있는 HJ에게 전화를 걸어서 몇 년 정도는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 사랑은 결실을 맺어서 두 사람은 결혼식은 하지 않았지만, 혼인신고를 했고, 작가는 정관수술을 받았고, 30평 정도의 전세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꾸렸으며, 결혼 5년 만에 작가가 문학상을 받은 덕분에 신혼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자전적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행을 떠나니 정확히는 여행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읽은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를 통해서 여행 에세이를 극혐하게 된 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재밌었다. 그 여행하는 과정이 재밌었다기 보다는 (여행자체는 동남아를 여행하는 평범한 신혼여행에 지나지 않다) 그 과정에서 자투리처럼 끼어있는 작가의 사고가 마음에 들었다.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 작가 덕분에 비판적이고 삐뚜름한 사고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알랭드보통과 베르나르 베르베르 두 작가를 비평한 부분은 박수를 치면서 동감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작가의 사고는 작가가 여행 동안 읽은 <동물들의 침묵>이라는 책에 많은 부분을 빚졌다. 예를 들자면, 일명 진보주의자라고 일컫는 무리들의 대표적인 문구라고 할 수 있는 억압을 파괴하라같은 말은 오히려 새로운 억압으로서 작동한다는 말이 등장한다. 이 말은 요즈음 일명 진보단체들과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일반인들의 충돌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궁금증이 생겼기에 나중에 <동물들의 침묵>을 읽어봐야겠다.


작가와 HJ 두 사람의 신혼여행은 집으로 돌아와 신도림 테크노마트 푸드 코트에서 밥을 먹는 이야기로 끝난다. 작가는 밥을 먹고 30평짜리 전세 아파트에서 이 에세이를 썼을 것이다. 40대 부부가 여유가 안 돼서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난 이야기는 사실 너무 평범하다.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꾸며서 타인에게 팔 수 있는 상품으로 꾸미는 것도 작가의 일일 것이다. 아무래도 전업 작가다 보니까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1년 전에 샀지만, 아직 읽지 않은 <한국이 싫어서>는 나중에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