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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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었으나 보통 못 만들어서 암 걸려 뒤질 뻔한 그런 말이 아니다. 이번 경우에는 너무 잘 써서 암 걸려서 죽을 뻔한 그런 이야기다. 이번에 읽은 이언 매큐언의 <견딜 수 없는 사랑>은 정말 이언 매큐언 다운 책이었다. 이전에 그의 작품인 <속죄><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을 때 정말 암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영화관에서 못 만든 영화를 봤을 때나 혹은 어떤 스토리에서 갈등이나 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등장인물의 행동을 억지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먼 매큐언은 정말 순수하게 글을 잘 써서 읽는 이로 하여금 암에 걸리게 한다. 인물을 너무 잘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가 합리적이거나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과정을 너무나도 잘 그려나간다고 할까? <속죄>의 브라이오니와는 또 결이 다르지만, 이번 소설인 <견딜 수 없는 사랑>도 등장인물을 너무나도 잘 그려나가서 소설을 읽다가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소설의 첫 시작은 사고로 인해서 잘 못 날아오른 기구와 한 죽음으로 인해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조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과학 저술가로 그 사고와 의도치 않은 한 만남으로 일상이 흔들리는 결말을 받는다.

마케팅이나 홍보 문고를 봤을 때는 열기구에 의한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가 주 내용일 것 같지만 사실은 스토킹이 중요한 소재로 다뤄진다. 이게 중요한 스포일러려나...? 이상하게 출판사의 홍보는 이점을 철저하게 가린다. 마치 중요한 반전인 거 마냥 꼭꼭 감추지만 내게는 그것이 이상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제목에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가. 이건 스토킹에 대한 소설일 수밖에 없다.

 

등장인물들의 올드한 생각과 반응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암 걸리는 원인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은 2008년에 <그런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한번 출판되었다가 절판되었다. 영어로 출판된 건 그보다 더 이전일 테니 등장인물들의 올드하고 나이브한 마인드가 이해되는 면도 있었다. 현재에 이런 상황이면, 역시 잘 해결되지는 못하려나? 적어도 내가 암 걸리게 한 반응은 덜 나오지 않을까? 요즘에 이 소설이 쓰였다면 적어도 제목에 사랑이라는 말은 들어가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이언 매큐언의 숨은 명작이라는 평가에는 동의한다. 먼저 쓰인 리뷰나 평을 보면 굉장히 괴로운 독서였다고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 괴롭다는 반응이 너무 잘 쓰여서 그렇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출판사의 홍보 문구만 봤을 때는 내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별 하나를 깎아서 리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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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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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배명훈 작가는 내게 최고의 작가였다. 배명훈의 <타워>를 읽고 나서였다.

그리고 실망하기도 한 적도 많았다. 배명훈의 장편 소설을 읽고 나서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작가에게 양가 적인 감정을 가진다. 한 작가에게 빠지면 그 작가의 책은 모두 사 모으던 시절이 있었지만, 배명훈 작가의 경우에는 어떤 건 미친 듯이 좋고 어떤 건 그에 못 미쳐서 실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단편은 좋고 장편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단편의 번뜩이는 사유가 장편에서 필요한 서사를 잡아먹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미래과거시제>는 작가가 몇 년 만에 낸 단편집이다. 안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예상은 했지만, 추천사를 써준 작가의 면면이 화려하다. 한국 SF 소설가 올스타라고 할까? 가히 무수한 악수 요청이라고 표현할만하달까?

 

소설집의 많은 단편은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서 미리 읽어본 소설이 많았다.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 좋았다. 다시 읽은 기간 사이에 내 SF에 대한 이해나 문해력이 상승한 것 같았다. <수요곡선의 수호자>는 정말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단편답지 않은 깔끔한 결말이 좋았다. <차카타파의 열망>은 작가의 관심사인 언어가 표현되어서 정말 집요할 정도의 구성과 기획이 재미있었다. <미래과거시제>는 역시 언어가 소재인데 언어를 매개로 과거의 연인이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는 이야기다. 로맨스가 가미되어서 그런가 뭔가 애달프고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로맨스가 주는 특유의 애틋함이 있는데 그 느낌이 여운을 주었다.

<접히는 신들>은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외계인의 조우로 이어지는 것이 흥미로웠고, <인류의 대변자>는 지금은 약간 옅어진 배명훈식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줬다. 사족으로 잠실을 배경으로 한 SF가 늘어난 건 잠실 롯데 타워가 서울의 상징이 된 랜드마크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임시 조종사>는 세상에 판소리 SF였는데 나도 읽기 힘들었는데 작가도 쓰는데 엄청 힘들었다고 한다. 그 문학적 야망을 봐서 이건 어느 쪽이든 상을 받아서라도 그 노고를 치하해야 한다. 판소리 SF라니 끝끝내 쓴 작가의 노력이 대단하다.

 

다루지 않은 소설들도 다 좋았다. 간만에 만족스러운 SF소설집을 읽어서 너무 행복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화성과 나>도 연작 소설집이라는데 기대된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책도 구매하고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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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2주년 기념 리커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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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는 2021년에 단행본을 다섯 권을 발매했다. 솔직히 좀 무서웠었다. 전에 써놓은 작품이 많다지만 1년에 다섯권이라니.

 

워낙 활발히 활동한 작가라서 이 소설집에서 읽은 단편들은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읽었다. 이상한 것은 그때 먼저 읽었던 때에는 그다지 좋다고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새로 읽으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좋아졌다.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원고들을 수정한 건지, 아니면 내 컨디션이 좋아서 소설이 잘 읽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설들이 훨씬 좋게 느껴졌다.

 

이번 소설집은 전에 읽었던 소설집인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보다 더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이전의 소설이 기존의 SF적 클리셰와 여성, 페미니즘을 전면에 낸 소설이었다면 이번 소설집은 장애인과, 소수자 성을 SF적으로 잘 녹여냈다는 점에서 더욱 좋은 인상을 받았다. 작가가 평소에 관심있던 주제를 본인 작품에 잘 녹여냈다는 점은 정말 흥미롭다.

만약 같은 주제를 SF가 아닌 다른 식으로 변형했다면 느껴졌을 그런 답답한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소재가 좀 괴로워도 SF니깐 하는 느낌이다.

 

<최후의 라이오니>2번 읽는 소설인데 이번이 더 좋았던 건 대략적인 줄거리를 아니 작가가 앞에 뿌려놓은 떡밥을 잘 확인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주인공의 결론이 갑작스럽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또 결말의 장면이 좋았었는데 주인공의 감정을 서투르게 문자화 하기 보다는 이런식으로 장면화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걸 느꼈다. 단순히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가 그 장면에서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 지를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작가 김초엽이 단순히 잘 팔려서 주목받는 작가가 아닌 스스로 성장하는 작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발표된 장편과 단편집을 연달아 읽은 이들이 단편집에 압도적으로 후한 평가를 내고는 했는데 그 이유를 엿볼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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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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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보미 작가의 오랜 팬이다. 학생 시절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의 단편을 소재로 과제를 제출할 정도였다. 작가의 소설집인 <그들에게 린디합을>도 가지고 있던 책이 색이 바래서 새 책을 구매했다.

 

이번 단편집 <사랑의 꿈>은 소녀와 할머니 엄마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는 소설의 모음집으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연작 소설집이다. 그 최초의 흔적을 목격한 건 내가 기억하기론 <나의 할머니에게>라는 소설집에 수록된 <위대한 유산>이라는 소설이다. <나의 할머니에게>를 본 게 몇 년 전이니 이번 소설집은 그 세계관이 확장된 결과일 것이다.

 

이 소설집의 소설들은 연작 소설집이라는 형태로 묶여있지만 비슷한 분위기 혹은 인물 관계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는 어린 소녀이고 부유한 아버지와 그 집안의 위엄있는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에게 돈을 받아서 생활을 이어나가는 어머니의 관계가 반복된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지만 읽기 편한 소설은 아니었다. 문장도 수사가 많은 복문이며, 작가가 등장 당시 많은 지적을 받은 문체(번역 투 같다고 욕먹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걸 개성으로 밀고 나갔고 이제 번역 투 같다고 시비 거는 사람은 없는 거로 안다.)는 더욱 숙성해서 어지러운 수준이다. 그래도 너무 쉽고 단순한 이야기만을 만나다가 마치 미로를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을 안겨준 소설에 즐거운 혼란을 느꼈다. 나는 텍스트를 읽을 때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라 그런 혼란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기억에 남는 소설은 작가에게 이상 문학상 수상을 안겨 준 <불장난><해변의 피크닉> 특히 혼외자가 등장하는 <해변의 피크닉>80년대 통속극을 보는 것 같았다. 요즘은 사는 게 비슷비슷하지만, 이 소설집 특유의 고딕적인 분위기는 두 세계(엄마의 세계와 할머니의 세계)를 넘나드는 의 시선에 더욱 강화되어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해변의 피크닉>은 그런 막장 적인 소재를 사용하는데, 평소에 자극적인 사건으로 시선을 끄는 소설을 별로라고 말하면서도 이 소설집에서 이 소설이 가장 재미있는 걸 보면 나란 사람도 어쩔수 없는 독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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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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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을 읽고 굉장한 충격을 받을 때의 기분을 좋아한다. 사실 지금은 잘 느끼지 못하는 감각이기는 하다. 많은 책을 읽어왔고 그런 만큼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마다 심드렁해지는 모습은 성장이기도 하지만, 독서의 즐거움이 감퇴되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다.

 

백온유 작가는 이전 작품인 <유원>이나 <페퍼민트>를 읽어왔기에 기억에 남았다. 둘 다 좋은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임에도 꽤 무거운 주제를 다뤄서 특히 기억에 남았다. <페퍼민트>는 청소년이 병든 부모를 간병하는 정말 무거운 소재를 선택해서 어려운 이야기를 선택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랑 나는 동갑인데 이런 작품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었다.

 

그런 이전의 경험이 있기에 작가의 신작인<경우 없는 세계>도 별 고민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믿고 읽는 작가라는 말이 진부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 말이 틀린 경험도 많이 해봤기에 그 말 자체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그 말이 맞았다. 이 소설은 백온유 작가의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의 무거운 현실을 그려나간다. 이번에는 가출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뉴스만 보면 청소년들의 무시무시한 범죄가 보도되는 시대에 이 소설은 그 뉴스 이면에 감춰진 가출 청소년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깐 그들이 왜 도둑질을 하며, 범죄를 저지르며 살게 되었는지 말이다.

 

주인공 인수는 성인이 되어서도 괴로운 10대의 기억에 괴로워한다. 인수의 10대는 지옥이었다. 부모는 인수와 불화했다. 특히 아버지는 남들보다 생각이 느린 인수를 자신의 수치로 여겼고 답답해했다.

 

흔히 가출 청소년들이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가출을 하냐는 물음을 할 때가 있다. 그 답은 간단한데 그건 집이 지옥이기 때문이다. 인수가 가출하고 보니 가출하는 아이들은 정말 가출할 이유밖에 없었다. 가출한 인수는 화장실에서 자기도 하고 돈이 있을 때는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며 노숙자들 옆에서 밥을 얻어먹는다.

 

작중 인수는 상식과 동떨어진 결정을 하고 남들에게서 멍청하다는 평가를 자주 듣는다. 책을 읽기 전에 경계선 지능 장애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기에 인수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넘어서 너무나도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적인 행동과 결정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는 그들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인수는 매일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그를 도와주고 그나마 이해 비슷하게 해주는 건 어른들이 아니라 같은 가출한 아이들이다.

 

백온유 작가는 이전에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려졌는데 이번 < 경우 없는 세계>는 가출 청소년의 세계, 범죄와 악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왜 청소년 소설로 나오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 소설을 탄생할 수 있었다.

 

요즘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그들의 작품을 읽고 이번 소설을 읽어보니 백온유 작가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찬사를 보내는 게 민망하지만, 주인공인 인수가 성인이 되어서 도달하게 된 모습과 이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의 묵직한 감동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까탈스러운 독자가 당신은 최고라는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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