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지음, 황국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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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작곡가인 류이치 사카모토 씨가 오랜 암 투병 생활 끝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내에도 팬이 많았기에 뉴스에서도 비중 있게 보도되었으며 많은 이가 추모의 말을 남겼다. 내게도 류이치 사카모토는 익숙한 작곡가였다. 밤에 혼자 작업하거나 고독이 필요할 때 그의 음악은 내 곁에 머물며 그 길고 외로운 밤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구매하는 데에는 별 고민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저 작곡가로만 접한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기대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암에 걸려 투병하고, 완치하다가 끝내 병이 재발하여 죽기까지를 그린 에세이이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음악을 창작하는 예술가의 미학 같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았다. 사실 그것보다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자신의 예술 활동과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록에 가깝다. 물론 과거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으며 토막토막의 정보를 통해서 그의 과거를 그려나갈 뿐이다. 예를 들자면 자신이 젊었을 때에는 짐승처럼 살았다...’라고 말한다든가. 사생활이나 이런 부분은 본인이 자세히 풀어나가지 않으며 사실 에세이스트도 아닌데 솔직해질 의무도 없다. 무엇보다도 그는 음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해나간 사람이니깐 그럴 욕구도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나도 솔직하게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뜨악한 부분은 그가 생각보다 성깔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자면 그가 모교에 초빙되어 명예 교수가 되어서 첫 수업을 들었는데 가르치는 학생들의 취향이 너무 평범해서(지브리가 어때서...) 실망했다는 묘사가 있었다. 자기 자신이 재능있는 예술가이며 평소에 교류하는 이들도 천재 내지는 재능있는 이들일 테니 생각하는 점이 다르겠지만 내게는 그가 일반 사람들의 평범함을 견디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가 같이 작업한 수많은 예술가의 목록도 그런 인상을 강화시키는 기색이었다. 이런 지점이 내가 생각하는 그의 이미지와는 달라서 그의 과거 인생을 찾아보니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기는 했다. 본인 말마따나 젊은 시절에는 짐승처럼 살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나이도 들고 그러니 많이 유해진 것이지만 가끔 성격이 나오는 모습을 보인다. 보통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숨기거나 포장하려고 하겠지만 사카모토 류이치는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그런 모습마저도 친숙하게 느껴졌고, 그가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은 것이다. 그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오늘 밤에도 그의 음악을 들으며 밤을 통과하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그의 예술은 불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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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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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딘 메인에 이 책이 떴을 때 사실은 그다지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매해 비슷비슷한 책이 출판되는 흔한 작법서 중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인스타그램에 팔로우 한 작가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었고 그 때문에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작에 이 책을 살걸 하고 후회했었다.


저자인 조지 손더슨은 작년에 발매된 <패스토럴리아>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소설을 읽고 난 뒤에 든 생각은 참 호불호가 갈리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사실 표제작인 <패스톨럴이아>를 제외하면 다른 소설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 생각까지 든다. 무언가 난삽하고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패스토럴리아>의 작가와 같은 사람이라는 건 아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러시아의 고전 소설들에 대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답은 나와 있었다. 조지 손더슨은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자신의 글쓰기에 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한마디로 자기도 그렇게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다.’라는 것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마주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소설이라는 고유의 창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여하튼 소설가인 조지 손더슨과는 잘 안 맞는 편이라는 걸 확인하고 이 책을 읽었다. 문학을 가르치는 조지 손더슨과는 잘 맞을까? 답은 그렇다.’였다. 너무 잘 맞아서 탈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에서 교육하는 커리큘럼을 책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러시아 고전 작품을 해부하면서 그 소설에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어떤 식의 미학이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는데 보통 옛 명작을 소개하는 책이 모두가 아는 좋은 말, 교훈에 이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책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좋은 말, 교훈 등등. 하지만 그 과정이 굉장히 아름답다. 명작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이렇게 재밌고 좋을 수가 있다니. 마치 나와 동류인 문학 오타구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는데, 본인의 가치관 인생 등도 깊게 녹여내서 매 페이지가 흥미롭다. 거의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는데 매 페이지를 음미하며 읽었기에 이 책을 읽는데 다소 시간이 소요되었다.


단순히 창작 작법서라고 말한다면 부족한 설명일 것이다. 본인의 이야기나 철학도 담겨 있으며 무엇보다도 문학을 읽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너무나도 잘 느끼게 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소개하는 모든 단편을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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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 「임철우」 - 사평역, 눈이 오면, 붉은 방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20
임철우 지음, 권일경 엮음 / 사피엔스21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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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사평역>을 읽고

 

이따금 몇몇 문장들은 한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고는 한다. 그 충격은 기억에 새겨져 누군가의 감정을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때로는 새로운 예술의 원료가 되고는 한다. 그렇게 새로 탄생한 예술은 때로는 티가 날 때고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적어도 임철우의 <사평역>이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사평역에서>의 첫 문장이자 이 소설의 첫 문장이기도한 이 문장은 이 소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철저하게 시의 장면과 감정의 재현을 목적으로 한 이 소설의 문장은 먼저 쓰여 진 시의 분위기를 충실히 산문화시키고 있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열차는 몇 시간째 연착하고 있다. 간이역의 역사에는 톱밥난로가 불타고 눈발을 해치고 간이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지친기색으로 난로의 온기에 몸을 데운다. 병든 노부와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는 농부, 가족의 기대를 등에 없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정학을 당한 대학생과 서울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중녀부인, 서울에서 물장사를 하면서 대학생들을 부러워하는 젊은 여인 등의 사람들이 차례로 간이역에 들어온다.


간이역에 들어오는 인물들은 각각에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겪은 사연은 열차를 타고 온 세계. 즉 농촌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정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간이역은 그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갈무리하는 공간이다. 끝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기차는 한없이 연착하고 따뜻한 온기는 간이역의 승객들을 보듬어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 장면은 곽재구 시인의 시구를 그대로 재현하는 장면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인생이 그러하듯이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사연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학생의 삶이다. 농촌의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서 공부를 잘해 집안의 희망이 된, 그 시대에 전형적인 학생의 모습이기도한 그는 자신의 양심을 따르다가 결국에는 학교에서 제적당하게 된다. 그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양심을 따랐을 뿐임에도 그는 인생의 어두운 시기를 보내야한다. 차마 집에는 제적당했다는 말을 하지 못했기에 간이역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돌아갈 곳마저도 없다. 그가 갈 곳은 어디인가. 그곳이 죽음의 세상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곽재구의 시 속에 녹아있는 고즈넉하고, 잔잔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낸다. 운문의 시를 산문화 하는 것은 언뜻 쉬어보이지만, 시에서 만들어진 몇 문장의 분위기를 몇 배로 늘리는 것은 소양이 낮은 나로서도 힘들게 느껴진다. 그러나 임철우 작가는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무엇보다도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에서 명확한 결말을 지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들은 간이역에서 자신의 삶을 잠시 뒤척일 뿐이다. 마치 열차가 서지 않고 지나가는 간이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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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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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현재 한국 소설계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소설을 쓰는 작가지 싶다. 매번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찌 이렇게 소재도 다양하고 인물들도 다양할까 싶다. 장르도 다양하다. 마법 소녀 물, SF소설, 좀비 물 등등. 예전에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인 <, 나 마들렌>도 장르적 장치를 카프카스럽게 사용했다고 얘기했지만, 소설집 <, 나 마들렌>을 읽어보니 이 사람은 그냥 소설을 엄청 잘 쓰는 편이구나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인물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보통 아무리 숙련된 작가라도 여러 소설을 연달아 읽으면 비슷한 인물이나, 비슷한 내용의 소설을 마주치기 마련인데 (특히 다들 사는 게 비슷한 한국에서는 더욱 심하다) 박서련 작가의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소설이 새로웠고 박서련같았다.

 

좋았던 소설을 빠르게 훑어보자면 첫 작품인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좀비물이다. 설정이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여성이라는 약자의 입장에서 써내려가는 K 좀비물 중에 가장 현실적이고 생생하고 쫄깃하기까지 했다. <젤로의 변성기>는 퀴어 단편집에서 본 소설인데, 주인공이 나이든 원로 성우라는 설정이었다. 짝사랑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나이 차가 좀 많이 났었다. 그래도 거의 평생을 소년을 연기했으니 어찌보면 다르기는 하다. <김수진의 경우>는 트랜스 젠더가 인공자궁을 달고 아이를 출산하는 이야기다. 분명 상상일 텐데 너무 디테일이고 주인공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출산하는 고비마다 일종의 갈등이 생겨나서 출산이 참 쉬운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표제작인 <, 나 마들렌>도 다시 읽으니 좋았다. 언급하지 않은 작품들이 별로라는 것이 아니다. 다 재미있고 다 좋았었다. 이렇게 고르게 소설이 좋은 소설집도 흔하지는 않은데 박서련이라는 작가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구나 깨닫게 해주는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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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치광이 이웃 위픽
이소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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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집을 꾸준히 읽는 편인데, 그런 거 치고는 시를 제대로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좋아하는 시인은 몇 있는데 나랑 나이대가 비슷한 시인의 시는 그래도 좋아하는 편이다. 이소호 시인의 경우도 그런 경우로 시인의 첫 시집인 <캣콜링>을 우연히 접하고 그 뒤로 시인의 팬이 되었다. 시집도 사고, 산문집도 사고 그러던 와중에 위즈덤 하우스에서 나온 새 단편 시리즈에 이소호 시인의 신작이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에 구매하게 되었다. 제목은 <나의 미치광이 이웃> 제목만 보면 시인이 이전에 써온 시들과 결이 비슷해 보이지만, 알고 보니깐 SF 소설이었다. 심지어 꽤 잘 썼다! 세상에나.

 

엄밀하게 말하면 일반적인 SF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기는 하다. 현재의 연장된 미래가 배경이기는 한데. 사실 기후변화는 확정적이고 그에 따른 혼란마저도 확정적인 시대이기에 그 변화가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미 많이 접해보기도 했고. 이 소설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거기에 예술의 종말이라는 키워드를 하나 더 끼얹는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모두 필요 없다는 이유로 파괴된 이후의 세계에서 살게 된 예술가의 삶을 그려나간다.

 

소설의 서사는 주인공이 독일 베를린에서 미술 공부를 위해서 유학하던 시절에 만난 미아라는 천재 아티스트를 그려나간다.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진 섬나라의 난민이자 천재 아티스트의 재능을, 심지어는 그녀가 난민이라는 것까지도 질투한다. 자기가 난민이었다면 그것을 소재로 작업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내 취미 중 하나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현대 미술관을 방문해 수 많은 작가의 작업물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곳에는 멋모르고 들어온 중년의 여성들. 그냥 데이트하러 들어왔다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두고 킥킥 웃는 커플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 나는 시를 읽는 것처럼 작품을 감상한다. 그러니깐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서사가 메시지가 숨어 있지만 결국 작가가 설명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독해할 수 없다. 이 소설은 그것을 만드는 작가의 이야기이며, 예술이 사라졌기에 그만큼 더 강렬해진 예술가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사실 이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고 저것은 실용적이지 않으니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는 그가 그런 생각을 토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예술이 죽은 시대란 곧 모두가 질식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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