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42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지혁 작가의 이름은 SF를 읽다 보면 자주 접하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작가의 SF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으며 그의 작품인 <초급 한국어>로 처음 접하게 된 편이었다. <초급 한국어>는 미국 대학원에 유학하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는 과정을 기록한 소설이다. 소재나 소설의 내용은 금방 알 수가 있다. <중급 한국어>는 그 <초급 한국어>의 속편으로 젊은 대학원생에서 한 아이를 자녀로 둔 중년이 된 지혁의 이야기다.

 

인생의 흐름이 그러하듯이 전작이 있다고 해서 이번 작과 서사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것은 없다. 전작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기억하기로는 전작에서 장기 연애를 하면서 헤어질 뻔한 지혜와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감스럽게도 전작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급 한국어>는 비정규직 강사이자 비등단 소설가인 지혁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강의를 하기 위해서 서울에서 동해 바다가 보이는 대학교까지 출강을 가서 글쓰기 강의를 하지만 그래도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전작에서 가능성으로 짚어지던 글쓰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이어져서 지혁은 미등단 작가가 되었다.

이 소설은 그러한 생활의 장면, 장면을 파편적으로 이어지지만, 일관성을 이어나간다. 내 얘기라고 하면 술자리에서의 구질구질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상하게 재미가 있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아버지가 된 지혁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인 부분은 바로 지혁의 가족들이 하나, 둘 코로나에 걸린 시기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소설은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킬러의 표적이 되었다든가 미칠듯한 불륜을 저지른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코로나가 등장하자 소설에 긴장감이 부여된다. 코로나에 혼란스러운 우리 일상의 모습만으로 서사가 만들어진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읽는 사람은 재미있지만 겪은 사람은 괴로웠을 것이다. 코로나에 걸린 한 사람으로서 코로나를 겪으며 재난 영화나, 매디컬 드라마를 찍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소설의 작가는 그 경험마저도 알뜰하게 써먹는다.

 

<초급 한국어>가 어느 정도 호응이 있었던지 문지혁 작가의 최근 작품은 자전적인 성향이 강하다. <중급 한국어>는 그런 흐름의 큰 지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소설의 말미에 후속작을 암시하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그 후속작에는 부디 큰 위기가 없기만을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장면이 도발적이다. 여자의 시체는 간신히 끌려나가 산속에 버려진다. 스릴러 혹은 공포 영화의 도입부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첫 장면이다. 범죄 물의 도입부라면 냉혹한 킬러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머저리들이 나오겠지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반응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조롭다. 사이코패스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의 반응은 굉장히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뒤에 나오는 소설의 줄거리를 통해서 이 소설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돌연사가 휭휭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살을 꿈꾸며 그룹을 이룬다. 첫 장면의 강렬함은 이러한 세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천희란 작가는 이러한 종말의 상황을 잘 풀어낸다. 이유 없는 죽음의 시작으로 세계는 초토화되고 만성적인 우울함에 시달린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우울함은 취향이 아니다. 문장과 문단은 묵독해야만 하고 소설 속 등장인물 중 누군가는 반드시 가까운 누군가를 잃은 상실의 상태에 있다. 구병모 작가와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가였다. 둘의 차이점은 구병모 작가가 SF와 같은 장르 문학에 한 발짝 다가선다면 천희란 작가는 세계관이 줄 수 있는 절망, 우울감을 표상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자살자들이 그룹을 만들어 외딴 산장에서 죽는다는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이며 흔히 다뤄지는 서사다. 이 소설이 특유의 분위기를 획득할 수 있는 이유는 삶과 죽음 중에서 삶을 완전히 차단하는 세계관의 존재다. 삶이 완전히 의미를 잃는 세계 속에서 절망은 더 깊은 절망의 층위에 도달하고 어떠한 대안도 희망도 읽을 수 없는 서사는 완성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성의 없이 다루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소설 속 인물에게 많은 분량을 할애에 그들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그 이야기에 어떠한 인간적인 면모도 없는 이유는 삶 혹은 희망에 대한 모든 요소를 차단하는 세계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취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면 찬사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천선란 외 지음 / 허블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블에서 출가한 엔솔로지 소설집인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는 주로 한국과학상 문학상 출신의 작가들이 참여했고 페미니즘 SF 소설작가인 박문영 작가도 참여해 총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 소설집의 특징은 주제에 맞추어 각각 다섯 명의 작가들이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라는 대 주제를 바탕으로 각자의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쓰는 작가가 다르니 내용도, 설정도 달랐지만 같은 소재에서 출발한 만큼 유사한 점이 많았다.

 

지구 밖의 행성 혹은 공간을 지구의 대안공간으로 삼는다는 설정이 많았지만, 그에 더 나아가서 지구를 버리고 외부 세계로 탈출한다는 설정에 반기를 들고 오히려 외부 세계를 보전하거나, 지구를 파멸한 원죄를 인류에게 물어 탈출 그 자체를 회의하는 소설도 있었다.

 

천선란 작가의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의 경우 수수께끼의 외계 생물체와의 전쟁을 다루지만, 전투씬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이미 모든 전쟁이 끝난 뒤, 군인의 회고하는 구성의 성격이다. 이 소설은 클리셰를 절묘하게 비틀면서 파괴되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쉽고 뻔한 냉소를 선택하는 게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가는 것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다른 소설들에 비해서 더 즐겁게 읽었다. 물론 인간 내면 풍경을 묘사한 작품의 특징 때문에 한 페이지에 문장이 가득 차 읽기가 좀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박해울 작가의 <요람 행성>은 행성을 테라 포밍 한다는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었다. 고립된 공간과 통제된 정보라는 클리셰는 영화 <>이나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오블리비언>에서도 사용된 소재다. 이 소설의 미덕이라면 제시된 소재에서 상상할 수 있는 지구 탈출이라는 소재에서는 벗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정의 디테일을 살펴볼수록 의문이 든다? 1만 대의 기계를 점검하는 일을 노동자 개인이 처리한다? 혹은 지구가 멸망해간다는 정보를 너무나도 파편적으로 던져준다던가 혹은 지구가 절박한 상황임에도 주인공읊 파견한 회사에서는 주인공을 거의 버려둔다는 의문이다. 설정의 구멍 같은 여러 의문들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조금 아쉬운 소설이었다.

 

오정연 작가의 <남십자 자리>의 경우에는 행성 단위의 양로원이 만들어지고 노인들이 거기에 살게 된다는 설정이다. 노인을 부양하는 건 고도화된 휴머노이드들이고 그들은 노인의 곁에서 노인을 돌보며 살아있는 인간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휴머노이드들에게 알 수 없는 오류들이 생겨난다. 이쯤 되면 로봇 반란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고 양로원 행성에 있는 할머니인 해리와 손녀인 미아의 시점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난 이 소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휴머노이드의 오작동이란 소재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해리와 미아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문제는 그 둘의 이야기가 신변잡기적인 과거사 이야기만이 표피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등장인물의 이야기는 서사를 하나의 물줄기로 모여드는 것이 아닌 실개천의 형태로 바다로 빠져나간다. 남십자성에 행성에 양로원을 차린 이유는 무엇이며, 휴머노이드들은 왜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읽을수록 어떤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으며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꽤 힘들어했나? 고민하며 읽어나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엔딩 보게 해주세요 - 하이퍼리얼리즘 게임소설 단편선
김보영 외 지음 / 요다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엔딩 보게 해주세요>는 게임 개발을 테마로 한 테마 소설집이다. 게임 개발자 출신 작가들의 소설이 모여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서사의 중심에 게임 개발의 과정이 깊숙하게 녹아 있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흥미롭게 읽은 소설은 김보영 작가의 소설인 <저예산 프로젝트>였다. 분명히 재능있는 개발자였지만 천재는 아니어서 세간의 관심도 받지 못하다가 죽은 개발자 이세연의 유고작을 플레이하는 내용이다. 역시 김보역 작가라고 할까. 다른 이들은 게임에 관한 추억이나 신념, 개발의 희로애락을 주로 풀어냈다면 근미래에 구현될 가상현실 게임의 구체적인 형태와 그로 인한 사회의 변화를 선명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즐겁게 읽혔다. 돈이 없어서 한 배우로만 돌려 쓴다던가 공공장소에 게임의 스폿이 있다던가 가상현실에 접속함으로써 현실의 풍경이 순식간에 달라진다던가 이러한 장면 묘사는 게임의 즐거움과 의미에 관한 소설의 메시지와 얽힌 세계관을 독자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소설에 몰입하게 해준다.

 

<즉위식>은 한때 즐겁게 읽었던 <SKT><드래곤 레이디>를 쓴 김철곤 씨의 게임 개발자 단편으로 다 망해가는 게임사에 애정을 가진 직원이 외딴 왕국의 의뢰로 온라인 즉위식을 완성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소설이다. 왕국의 공항에서 왕자와 함께 코끼리를 타고 궁전으로 가더니 나중에는 진짜 온라인 즉위식을 연다. 뭔가 웃긴 캐릭터들 어처구니없는 동기와 사건들은 웹 소설식의 경쾌한 쓰기와 얽혀서 재미있게 읽혔다. 이국의 왕자가 게임으로 즉위식을 한다는 이 황당한 소재는 잘 버무려진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왕자가 게임으로 즉위식을 한다는 게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게임에 의미를 고찰해보게 하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 고찰이 독자에게 의미를 주는 부여하는 지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인공이 이 프로젝트에 전력을 다하는 계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라색 사과의 마음 - 테마소설 멜랑콜리 다산책방 테마소설
최민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멜랑콜리테마의 소설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가 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멜랑콜리는 우울비애를 나타내는 용어다. 실제로 테마가 테마이기도 했기에 이 소설은 인간의 우울을 소재로 한 소설이 주를 이뤘다. 구성된 작가의 경우에도 임현 작가를 제외하면 아직 단행본을 출간해 본 적이 없는 작가들이었기에 이름들도 다 낯설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터디가 아니었다면 이 소설을 읽을 일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우울을 다룬 소설이기에 소설집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스토리가 주를 이뤘다. 가까운 가족이 죽거나 상실하고 <보라색 사과의 마음>, <그 다음에 잃게 되는 것들> 본인이 우울증에 걸려 자살 충동에 시달리거나 <알폰시나와 바다>, 우울증의 증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 <> 등등. 다들 우울증에 대한 소설을 썼지만, 소재나 스토리는 다들 달랐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아주 비슷했고 그것 때문에 좀 피곤하기는 했다. 좀 다른 식의 이야기를 읽고 싶다고 할까.

 

김남숙 작가의 <>는 다분히 분위기적인 면에서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할까. 예전에 정용준 작가의 <가나>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소설집의 분위기와 흡사한 분위기였고 <가나>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 소설을 읽는 게 조금은 버거웠다. ‘여관에서 일하는 예지그리고 여관주인의 도식적인 상관관계는 결국엔 우리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여성들에 대한 메타포로도 읽힌다. ‘예지’ ‘여관주인모두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고 사회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들의 모습을 비웃는다. 예지는 나를 비웃고 나는 돼지처럼 먹는다고 여관주인을 비웃는다. 그러나 결말 부분에서 이 세 사람의 관계는 결국 시간이 지나고 젊음을 잃게 되는 저소득층 여성들이 결국엔 여관주인처럼 비웃음 당하고 멸시받는 존재로 변한다는 지독한 우울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참 우울한 세계관이다.

 

이 소설집의 아쉬운 점은 우울이라는 정신적인 상태가 누군가의 상실로 유발된다는 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점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 심지어 아이, 직장 동료를 잃는 경험은 인간에게 강력한 트라우마로 작동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울이라는 감정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흔한 감정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 사회>에서 자본주의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은 끝없는 자기 착취의 결과로 우울증 아니면 번아웃에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우리 자본주의 사회의 주민들에게 우울증은 만성적인 병이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학생 시절에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 학생들이었나 그래도 그 시간은 지났고 자라난 아이들은 그 시간을 견디고 지난 시간을 추억한다. 결국에 우울이란 인간이 자연스럽게 견디고 껴안는 감정인 것이다. 이런 점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이 소설집의 소설들이 결과적으론 불행 변주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불행과 우울 그럼에도 살아가는 인간을 다룬 한강 작가의 <회복하는 인간>이라는 단편이 생각나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