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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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작가는 이전의 소설집인 <빛을 걷으면 빛>에서 먼저 만나본 적이 있는 작가이다. 사실 그때는 그 소설집을 안 좋게 읽었던지라. 이번에 나온 <두고 온 여름>을 읽으며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참이었다. 하지만 요즘 출판 시장의 트랜드에 맞춰서 나온 얇은 책은 내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었다.

 

<두고 온 여름>은 양부모의 재혼으로 짧은 시간 동안 형제가 된 기하와 재하의 이야기다. 기하와 재하의 시점에서 번갈아 이야기가 서술된다. 제일 먼저 서술된 건 기하의 이야기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재혼하고 데려온 아들 재하와 그의 어머니를 그려나간다. 아토피가 심한 재하는 잘못된 처방으로 피부가 더욱 악화되어서 그의 친아버지에게 괴물새끼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새로 가정을 이룬 재하의 어머니는 어떻게든 기하의 마음을 열어보려고 애쓰지만 기하는 그런 시도가 모두 성가시게 느껴질 뿐이다.

이 두 가족의 일시적인 가족되기는 마치 한 계절의 여름처럼 짧게 지나간다. 앞에서 재하의 친아버지가 재하에게 괴물 새끼라는 말을 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은 당연히 인간 말종일 뿐이다. 두 가족의 결합은 재하의 친아버지가 기하의 아버지의 가게에서 난동을 피운 사건을 계기로 깨지게 된다.

 

이 소설은 총 4장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하와 재해의 시점이 반복된다. 소설 분량이 짧으므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그리고 그 말하지 않은 것이 내 마음을 울린다. 장을 넘어갈 때마다 서로의 시점과 인생의 궤적에 대해서 말해준다. 자기 인생을 망친 재하의 친아버지를 연민하는 재하의 어머니. 그렇게 깨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숨긴 기하의 아버지. 30대 중반 이후로 줄곳 내리막이었던 기하와 재하의 인생.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이 어떤 의미인지를 작가는 독자에게 도통 설명해주지 않는다. 결국 독자는 그 여백을 스스로의 상상으로 채워나가며 자신만의 이야기와 감정을 기하와 재하의 이름으로 써내간다. 나는 거기에 흠뻑 빠져가며 이 소설을 읽었고 크게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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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3 소설 보다
강보라.김나현.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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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내 서재에 꽂혀 있을 책을 나중에 읽게 되는 건 모든 독서가의 습관이 아닐까 한다. 매해 계절마다 세 편의 단편을 모아서 출간되는 소설보다시리즈는 지난 2018년에 출간되기 시작한 후 매해 모으는 소설 시리즈이다. 그렇다 보니 비교적 짧은 분량의 소설집임에도 책 제목에 어울리지 않은 계절에 소설을 읽게 되는 때도 있다. 이번 봄의 경우에는 가을에 읽게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세 편의 소설과 그 작가들의 인터뷰가 실린 소설집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재미있었다.

 

첫 번째 소설인 강보라 작가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꽤 문화적 식견 있는 거로 여겨지는 가 발리로 여행을 떠나며 머물게 되는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만남에 대한 소설이다. 문화적 식견이나 취향으로 인간의 우열을 구분하는 의 시선과 그러한 구별짓기를 막상 당하면 반발하는 의 이중적인 태도가 흥미로웠다. 전반적으로 장면의 변화가 자주 있는 편인데 그런 변화를 잘 묘사하는 게 관건인데 단편의 포맷임에도 꽤 긴 시간과 다양한 인물을 다뤘다는 점이 좋았던 소설이었다. 마지막의 인터뷰를 보고서야 이 소설이 스테레오 타입에 관한 이야기임을 이해했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이라 답안지를 들여다 보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생각을 준 작품이었다.

 

김나현 작가는 <휴먼의 근사치>라는 SF소설을 통해서 만나본 작가다. 이번 소설은 다양한 인물과 일상적이지만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그런 소설을 선보였다. 답답한 줄거리일 수도 있지만, 작가가 위트있는 대사를 보여준 덕에 꽤 재미있던 소설이었다. 캐릭터가 다양한 데 꼰대이지만 어떨 때는 또 어른인 그런 아저씨 캐릭터가 나오는 게 꽤 재미있었다.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은 인간의 아이러니한 모습과 꼬이고 꼬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성혜와 수, 순정 고모 같은 인물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그렇다고 단순하지도 않은 그 인물들이 엉키고 엉켜서 만들어낸 관계의 망이 흥미로웠던 소설이었다.

 

가을에 봄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소설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써나간다. 읽은 계절 때문인지 문장 속의 세계가 모두 가을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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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으로 있어줘
고니시 마사테루 지음, 김은모 옮김 / 망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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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유독 미스터리 소설 장르가 발달한 국가다. 전국에는 새로운 미스테리 장르의 작가를 선발하는 공모전이 열리며 그 공모전을 통해서 새 작가가 등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는 이제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하다 못해서 일본 추리 소설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작가일 것이다. 그 외에도 미스터리 분야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 한국에서 베스트 샐러가 되기도 한다. 나오키 상 같은 경우는 한국에도 잘 알려지고 매해 수상하는 작품이 꾸준히 번역되어 한국에도 출판된다. 이 소설 <명탐정으로 있어줘>는 나오키상은 아니지만 그만큼 유망한 미스터리 장르 문학상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했다. 미스터리 강국인 일본에서 꽤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미스터리 장르가 발달한 덕에 그 미스터리 장르 안에서도 다양한 분파를 보유하고 있다. 밀실 살인과 같은 추리 트릭을 소재로 삼는 본격 추리 소설이나 사회적인 사건을 다루는 사회파 추리 소설 같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장르가 있는 반면에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 사건을 다루는 일상 추리 소설도 있다. <명탐정으로 있어줘>는 이 중에 일상 추리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가에데에게는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가 있다. 양친과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은 가족이라고는 전 초등학교 교장 선생이자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뿐이다. 젊은 시절의 총명함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가에데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를 위해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스터리를 찾아서 할아버지에게 들려주며 일종의 두뇌게임을 한다. 이 소설은 그런 여러 두뇌게임을 그려나가는 소설이다. 경찰도 명탐정도 아닌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와 그 손녀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그 추적을 이야기로 상상한다는 줄거리다.

이러한 줄거리를 통해서 알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의 줄거리는 사실 그렇게 자극적이지는 않다. 요즘 드라마나 장르 소설을 표방하는 책들을 읽어보면 앞부분에 자극적인 사건을 제시하고는 한다. 살인이나 폭력 혹은 섹스 같은 사건을 나열하여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도 그런 수법을 뻔히 알지만 사로잡히는 독자이기도 하다. 자극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초반 부분에 약간 몰입감이 적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캐릭터들이다.

 

이 소설의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살아있고 개성적이며 재미있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가에데는 비교적 평범한 배경 탓에 뭍히는 감이 있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섬세한 애정을 읽힐 때마다 내 마음마저 흐뭇해진다. 할아버지인 히몬야는 그런 캐릭터 구축의 절정에 다 달은 인물이다. 치매 노인이 추리를 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게 할까 하는 데, 작가는 그 치매마저도 일종의 특수한 능력으로 탈바꿈시킨다. 작중에 히몬야는 환시를 보는 치매를 앓는데 추리를 하는 과정에서 그 환시를 일종의 강력한 추리 도구로 사용한다. 사건 과정을 환시로 떠올리면서 사건의 진실에 도달하게 한다. 한 독자로서 상당히 감탄한 캐릭터 조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연이라고 할 만한 여러 인물도 개성이 풍부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소설에서 인물이 여럿 모인 장면은 어색해질 때도 있는데 이 소설의 경우에는 여러 인물이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연민 어린 시선이다. 최근에 등장인물을 추리 트럭의 희생물로 삼는 추리 소설을 읽었어서 이러한 점이 더욱 눈에 띠인 것 같았다. 가에데가 치매 환자인 히몬야를 돌보는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함으로써 돌봄이라는 화두에 관해서도 설명해나간다. 이는 한국 문학에서도 관심 있게 다루는 문제인지라 이러한 돌봄을 다루는 것이 내게는 신선하고 의미 있게 느껴졌다. 사회적 약자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들이 매력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히 추리 소설 이상의 소설이다. 더 많은 독자가 이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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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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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인터내셔널에 최종 노미네이터된 정보라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전작인 <저주토끼>를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SF소설 작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공포 소설이나 기담집 같은 느낌도 들던 책이었다. 이번 소설인 <고통에 관하여>는 명확한 시대나 배경을 그리지 않는다. 작품 속의 세계를 보면 현재 같기도 하며, 무언가 예스러운 분위기도 보이며, 동시에 현시대의 의학기술보다 발달한 진통제의 등장하는 등. SF적인 분위기도 풍긴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SF 스릴러라고 불릴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스토리는 이렇다. 가까운 미래에 현재 의학기술보다 발달한 기술로 효과적인 진통제가 만들어진다. 기존 진통제보다 효과가 좋은데 동시에 부작용도 없다. 의료계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겠지만, 이 소설의 세계에서는 이 진통제가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사회에 고통이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진다. 하지만 그와 반대급부로 그러한 고통을 숭배하는 종교 집단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러한 종교 집단은 고통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자 영혼에 다다를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이라고 믿는다. 이 두 가지 개념. 고통은 불필요한 것이라는 주장과 고통은 인간의 본원적인 능력이라는 개념이 계속 충돌한다.

진통제를 개발한 회사와 그에 반대하는 종교 집단이 얽히고 얽히며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이 소설의 인물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는 좀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등장인물의 이름이 한 글자였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인물 구분이 굉장히 안 되었다. 등장인물이 누구이지? 하고 계속 혼란스러워하며 읽게 된다. 소설이 막 등장한 인물의 시점에서 그들이 겪은 일들을 보여준다. 이런 시도는 좋게 보면 등장인물들을 작가가 공평하게 다루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생각보다 짧다. 형사들이 앞서 언급한 종교단체에 소속된 간부들이 연속적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12년 전에 진통제를 개발한 회사에 테러를 가한 범인인 를 교도소에서 꺼내와 과거 종교재단이 있었던 곳으로 데려간다. 그 이후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며사건의 흑막이 밝혀진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각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서술이 진행되는데 이게 좀 소설을 산만하게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보여주는 고통이란 무엇인가란 사유는 꽤 흥미롭다. 현실 세계의 미국에서 마약류 진통제의 남용으로 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고통진통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꽤 흥미롭다. 그 사유를 위해서 조사한 자료도 충분하다. 단순히 정보의 나열을 넘어서 효과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결코, 쉬운 소설이 아니고 쉽게 읽히지도 않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현시대와 공명하는 사유를 지녔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요즘 독자들이 한 번쯤은 읽을 만한 소설이다. 고통이 삶의 증거라는 생각이나 사유는 흔하지만, 이 소설 정도로 그 사유를 확장한 소설은 몇 없었어서 소설이 흥미롭게 읽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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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2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22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홈 스위트 홈 문학과지성 시인선 582
이소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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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읽기 쉬운 시집은 아닌데. 이상하게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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