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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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433>로 황산벌 문학상을 수상한 이서수 작가가 새로운 장편 소설로 돌아왔다. 황산벌 문학상 수상 이후 작가는 문단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나는 작가의 소설들을 다른 소설집에서 먼저 보고는 했다. 예를 들자면 <소설보다>시리즈 같은 모음집들. 그때 단편들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이 작가는 여성에 대해서 거기에 더해서 여성의 삶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어 하는 구나 싶었다. <헬프 미 시스터>도 길게 보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결로 느껴지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 수경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가족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설명하는 첫 문장에서부터 뭔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 15평 빌라에 여섯 가족. 무능한 아버지, 남편과 일하는 엄마와 수경. 가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 요즘 한국 문학의 트랜드에 따르면 이 도움 안 되는 남자들에게서 수경과 엄마가 독립한다든가 2대에 걸친 어떤 굴레를 벗어난다든가 하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다행히 소설은 그런 내 예상을 벗어났다. 이서수 작가는 수경 가족의 불행을 담담한 어조와 명료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지금의 불행이 어떤 의도나 악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잘 못 될지 모르고 선택한 여러 선택지 때문에 완성된 것이라는 결론이 좋았다. 적어도 불행을 한, 두 명의 잘못으로 완성된 것이라는 결론보다는 훨씬 성숙하고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작중 수경은 불행한 사건으로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묘사된다. 수경의 남편은 자신이 주식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둔다. 그 선택과 불행들이 현재의 불행을 만들지만, 그 불행에 잠식당하지 않고 가족들은 담담하게 삶을 재건해나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요즘 주로 언급되는 플랫폼 노동의 과정이 그려진다. 소설의 제목인 <헬프 미 시스터>는 여성들끼리 필요한 일을 의뢰하고 해결해나가는 일거리를 주선하는 어플이다. 이 어플은 일종의 여성 간의 연대로 그려지기는 하는데, 그 과정 때문에 수경은 처음보는 여성의 언니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순간들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순수한 연대를 말하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읽기 괴로운 소설이다. 세상에는 사이다 물이 넘쳐나는 세상에 고구마를 백 개씩 연달아 먹는 것 같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읽어 나갈 수 있는 소설이기도 했다. 작가 이서수의 발전의 결과물이자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해주는 소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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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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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중국 문학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모옌이나 위화같은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본적이 없다. 대신에 감명 깊게 읽은 것은 김용의 신조협려같은 무협소설이나 류츠신의 삼체라는 SF소설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너무 유명하니 따로 할 말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거의 불모지인 중국의 SF소설을 읽는 것은 꽤나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SF시장은 꽤나 커서 다수의 팬이 존재하며 그들을 위해서 소설을 쓰는 작가도 많다. 삼체도 그러한 소설 중 하나로 중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단위로 인정받는 소설이기도 하다. SF소설이 수상할 수 있는 상중 가장 명망 높은 상인 휴고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읽은 기억나지 않음 형사도 중국에서 건너온 추리소설이다. 중국 SF에 이어서 중국 추리 소설이라니 특이했다. 국내에 소개된 외국 추리 소설이라면 일본의 추리 소설이 대표적이고 나도 일본 소설을 읽어왔다. 일본 추리소설 속에서 중국 추리소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기에 이 책을 산 걸지도 모르겠다. 휴일의 여유로운 일정 덕에 하루 만에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전날에 적게 잠을 자서 피곤했음에도 한번 책에 몰입하자 쉴 틈 없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쉬유이는 홍콩의 형사로 둥청아파트에서 일어난 잔인한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가 불연 듯 차안에서 깨어난다. 머리에 심한 두통을 겪는 와중에도 쉬유이는 경찰서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다.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 6년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시간을 뛰어 넘은 것은 아니다. 쉬유이 자신이 지난 6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다. 당장 병원에 달려가야 될 상황에도 불구하고 쉬유이는 자신의 시점으로 지난주에 일어난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이렇게 줄거리를 써가면서 다시 이 소설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도 든다. 자세히 얘기하자면 치명적인 스포를 하는 것이니 말할 수는 없지만, 범인의 동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과연 그러한 이유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의 완성도가 높다 보니 이정도 흠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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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인공에겐 없다 -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
듀나 지음 / 제우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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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이야기의 유형이 존재한다. 한국으로 한정하면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막장 드라마라던가. 로코드라마라던가. 기업물, 재벌물, 검사물 등등. 웹소설이나 SF처럼 일정한 독자군을 지닌 장르에서는 반드시라고 할까. 클리셰가 등장하게 된다. 듀나 작가는 SF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의 오랜 광적인 팬으로서 영화 평론 활동도 이어나가고는 했다. 이 책은 영화 클리셰를 모아 놓은 책인데, 첫 번째 책인 <여자 주인공은 모른다>를 몇 년 전에 읽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접하니 참 반갑게 느껴졌다. 클리셰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농담에 대해서 농담하는 것 같다.

 

듀나 작가는 이 책에서 영화에 대한 여러 법칙을 정리해 놓았다. 그중에 기억나는 건 만화 캐릭터가 작품이 연재되는 수십 년 동안, 나이를 먹지 않는 만화 주인공들. 예시로는 <심슨 가족들>을 들었지만, 짱구라든가 명탐정 코난이라든가. 그런 얘는 참 많다. 나보다 형이었고, 동갑이었다가. 이내 동생이 되어버린 내 친구 짱구는 이제 스스로 자기가 왜 영원히 다섯 살인지를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죽기까지 해서 그 작품은 영원히 완결되지 못하기도 한다. 드라마는 아역 배우가 나이를 먹기 때문에 매 시즌마다 아역 배우를 바꾸지 않은 한에는 결국에는 그 이야기를 끝마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화는 그러지 못하므로 짱구는 영원히 다섯 살로 남게 된다. 짱구의 친구였던 우리는 나이를 먹고 짱구만한 아이를 기르기도 하며, 짱구가 새겨진 굿즈를 사며 그 추억을 되새긴다. 참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간다.

 

이 책은 주로 할리우드 영화를 다룬 것 같은데, 이제 자체적인 컨텐츠를 넘치게 생산하는 우리나라 현실에 발맞추어서 드라마 클리셰 사전이 출시되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그것도 꽤 재미있는 책이 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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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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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의 작가 김지연 작가는 이전에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자로 이전에 여러 번 접해본 익숙한 작가다. 문학동네 신인상 출신 작가로 작가의 등단, 데뷔 경로가 다양해지는 요즘 추세로 보면 가장 정통적인 방식으로 또, 기존의 문단 문학 내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작가로 보인다. 현재 김지연 작가가 나아가는 방향에서 성공적인 작가로는 바로 최근으로는 박상영 작가나 장류진 작가 정도가 있을 것 같다. 이 작가의 작품 중 내가 이전에 접한 작품은 꽤 있었는데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수상작인 <사랑하는 일> 혹은 <공원에서>정도다.

 

작가의 작품 중 키워드를 뽑자면, 퀴어 관계의 엇갈림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문단 문학에서 퀴어가 대세인 건 박상영, 김봉곤 이후로 쭉 이어지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퀴어라고 불리는 소수자가 보는 세상은 일반적인 독자가 보는 세상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단 문학은 SF나 판타지와는 다르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간이 주인공이므로 그려나가는 사건이나 풍경은 우리의 일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소수자가 그려나가는 세상은 다수자의 세상과 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차이가 그려나가는 색채는 분명 새롭고 또 재밌다. 단순히 PC하기 때문에 환영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특징이 문단 문학에서 퀴어 문학이 환영받는 이유이지 않을까 한다.

 

수록작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두 작품으로 앞에서 언급한 <사랑하는 일><작정기>. <사랑하는 일>은 한 레즈비언 커플이 일종의 상견레를 하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아버지를 까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져서 좋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냥 웃기거나 유머러스한 소설을 좋아하는데, 뭔가 그러한 유머러스함을 소설가들이 잘 그리지 않아서 아쉽게 느껴진다. <작정기>는 작가의 등단작인데 문학동네 신인 문학상 심사 당시에 심사위원 전원이 찬성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과연 그랬다. 소설을 작정하고 쓰면 이런 소설이 나오는가 싶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완벽한 소설이었다. 이 작가가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고 할까. 또 그렇게 소설을 쓰고도 다른 소설들은 조금씩 특징이 다르다.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작은 뭔가 잘 조각된 조각을 보는 느낌이 드는데 이 소설은 그 조각이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무서울 정도였다. 이런 충격은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것이기도 했다. 등단작부터 이렇게 무서운 작가는 또 금방 성장하기 마련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오래, 깊게 책을 읽었다. 그건 참 내가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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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아이, 봇 허블어린이 1
윤해연 지음, 이로우 그림 / 허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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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메인 페이지에 들어가면 가끔, 클릭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인 <빨간 아이, >이 그랬다. 무려 SF동화였다. 출판사는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으로 유명한 허블. SF전문 출판사 중에서는 그래도 감각 있다고 본 곳이어서 과연 특이한 시도를 하는구나 싶었다. 그렇기에 기회가 되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책을 구매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인간이 멸망한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로봇만이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인간이 만든 지 오래된 로봇들은 스스로 살아가지만, 부품을 만들 공장이 없어졌기에 하나 둘 망가지면서 간신히 삶을 이어나간다. 식물은 멸종한 지 오래고, 세상은 척박하기에 황무지가 된 지구를 돌아다니는 건 오직 고장나거나 고장 날 로봇들이다. 황무지에서 살아가는 로봇들은 근근이 살아가며 자신들이 정지될 날만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로봇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인간 아이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아이를 찾기 위한 로봇들의 모험을 다루는 일종의 로드무비 같은 이야기였다.

 

동화는 SF독자로서 익숙한 소재를 다루고 이야기의 전개나 인물도 기존 작품을 반복한 느낌이었지만, 어린이가 읽는 동화를 SF소설과 동일선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화로서 이 책은 SF적인 소재와 주제를 어린이가 이해하기 좋게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가족이란 것이 반드시 혈육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는 내용 같은 것. 이 책을 읽을 나이였을 때의 나는 이런 이야기나 주제로 얘기할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가족은 당연히 혈육으로 이루어져 있고, 엄마나 혹은 아빠가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는 보통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불의의 사고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가족이란 당연히 정상 가족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존재해왔다. SF는 배경 때문인지 당연하게 우리 세계가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세계가 존재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규칙이 뒤집어지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참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이런 책이 없었는데, 그게 좀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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