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의 말 - 광기와 지성의 SF 대가, 불온한 목소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필립 K. 딕 지음, 데이비드 스트레이트펠드 엮음, 김상훈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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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의 팬으로서 필립 딕 K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확신한다. SF영화의 고전이자 사이버 펑크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한 <블래이드 러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시작으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 최근에 아마존 프라임에서 방영 중인 <높은 성의 사나이>의 원작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할리우드의 제작사에 사랑받는 작가이지만, 필립 딕 K가 가진 생전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필립 딕 K가 글을 그리 깔끔하게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많으면 1년에 3권의 장편 소설을 출간했는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소설 한 편당 들어가는 시간이 적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퇴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으로 이어진다. 필립 딕 K의 글은 아이디어는 훌륭하지만, 글로서는 중언부언하는 감이 있으며 문장의 완성도도 낮다고 생각한다. 이는 필립 딕 K가 당대의 일명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야 필립 딕 K는 여러 굵직한 SF고전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루는 내용도 심오하기 짝이 없다. 일견 싸구려 소설처럼 보이지만 각 작품이 다루는 내용은 깊은 철학을 반영한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인간과 인간의 창조물의 대립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화판인 <블래이드 러너>와 소재는 같지만 다루는 깊이는 전혀 다르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다루는 것은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인간의 탈을 쓴 무언가이다. 오히려 <블래이드 러너>가 원작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은 필립 딕 K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인터뷰집인데 읽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필립 딕 K는 생활이 엉망진창인 작가였다. 약물을 먹었고, 술에 취했으며, 자신이 항상 감시받는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나중에는 자신이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중 하나라는 이야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과 소설관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명료하며 확실한 어조로 이야기하지만, 어쩔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으로 빠지기도 한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자신의 편집증적 태도도 알뜰하게 소설에 써먹는다는 것이다. 감시받는 것 같은 감각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마약을 한 경험을 소설에 반영하기도 한다.

 

필립 딕 K는 평생토록 인정받지 못한 작가였다. 물론 <높은 성의 사나이>SF계의 노밸상인 휴고상을 수상하기도 하지만, 대게는 돈을 벌기 위해서 급하게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하기 직전의 인터뷰다 거기에서 작가는 솔직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기대를 풀어놓는다. 하지만 필립 딕 K는 영화의 개봉을 지켜보지 못하고 죽는다.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한 수많은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 책을 읽어 본바 필립 딕 K는 편집증적이며 때때로 이상한 망상에 시달렸지만, 그런 경험마저도 소설에 써먹는 뛰어난 지성을 가진 타고는 작가였다. 왜인지 모르게 그의 작품이 읽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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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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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웬만하면 매번 사서 읽어보려고 하는 시리즈이다. 첫 책이었던 셰익스피어가 2018년에 나왔으니 거의 5년 동안 읽어온 시리즈다. 그중에는 만족스러운 독서도 있었고, 불만족스러운 독서도 있었다. 알고 있던 이름도 있었고, 몰랐던 이름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책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아예 몰랐던 인물에 관심이 생기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말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말러의 인생 역정을 설명하면서도 그의 인생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당대 사회의 특징과 그의 음악이 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설명해준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영광 아래에서 유대인이라는 부외자로 차별받으면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당대 유럽의 최고의 음악 지휘자로 인정받지만, 동시에 머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음악을 작곡하던 창작자로서의 말러의 모습이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이 부분이기도 했다. 말러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 지휘자였지만 창작자로서는 무시를 당한다. 방금까지 지휘자로서 명령에 복종하던 음악 연주자들이 막상 말러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려고 하면 악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구절은 참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지휘자로서의 권위는 인정하지만, 작곡은 꿈에도 꾸지 말라는 것인가? 권위에는 순종하지만, 그 권위의 대상이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바로 무시하는 모습은 음악가로서 말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인정받는 고전만을 연주하는 당대의 예술관과 겉으로는 포용하면서도 차별하는 20세기 초의 오스트리아 제국의 사회적 모습.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말러를 그려나간다. 역사, 사회, 당대의 문화, 말러의 인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훌륭한 전기이다. 이전에 같은 시리즈로 출간된 고흐의 전기를 아쉽다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 바로 다음에 읽은 이 책은 내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다음은 또 어떤 사람이 다루어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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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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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백수린이랄까. 고풍스러운 표지에 그에 어울리는 아니, 그보다 더한 소설들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를 보고 우아한 문체를 구사한다고 찬사를 보내지만 그러한 문체뿐만 아니라 작가가 구상하는 인물 간의 섬세한 관계가 문체와 시너지를 일으켜 백수린 다움을 완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인물 관계를 섬세하게 그린 건 <여름의 빌라>, <폭설>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두 소설이 아닌 <고요한 사건>을 선택한 건 초반에 의문스러웠던 도입부가 소설 결말 부분에서 수습되고 전체적인 서사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달동네에 이사 온 소녀, 그곳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상황이라는 설정은 우다영 작가의 <얼굴 없는 딸들>과도 비슷한 설정이지만 우다영 작가가 당시에 여성을 향해 자행하던 은밀한 폭력에 초점을 맞췄다면 백수린 작가는 자신의 장기인 지나간 시절에 관한 애상 당시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감정.’이라는 그만의 특징을 그린다. 거의 유일한 친구인 해지와 나중에는 이성적인 감정을 가지는 남자애인 무호, 그리고 고양이 아저씨. 그들과 함께한 과거는 재개발되는 동네와 함께 그저 흐릿한 기억이 되고 만다. 다른 삶의 궤적이 잠시나마 겹쳤던 순간 백수린은 그런 순간을 너무나도 잘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고양이 아저씨와 고양이를 묻어주는 결말을 상상했지만 그런 상상마저도 배신하고 결말은 눈을 쳐다보는 것으로 끝난다. 이 결말의 진수는 마지막 장을 읽은 뒤 첫 장을 다시 펴봐야 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압축적인 수미상관이라니... 멋지다.

 

이번 소설집의 특징은 욕망에 대한 시선일 것이다. 가부장제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욕망은 터부로 취급되었지만 백수린은 그것에 대해서 다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예전에도 한 번 읽어 보았던 책일 터인데 몇 년 만에 다시 읽으니 이런 지점에 더 눈에 보인다. <폭설>은 불륜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편 직장의 외국인 동료와 사랑에 빠져서 어쩌구하는 내용인데. 일단 나는 불륜에 대해서 다루면 어떻게 쓰이든 간에 통속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족속은 폭력, 살인, 성행위 이야기에 환장하는 종족들이다. 인터넷 뉴스 페이지만 봐서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성적인 것은 좀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상에 뉴스로는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올라오는 불륜 썰의 무시무시한 인기를 봤을 때 인간은 불륜썰을 너무 좋아한다.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무튼, 통속적이라면 통속적이지만,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이 소설집의 또다른 표제작이라고 할만하다. 다른 소설들도 여성의 욕망을 그려내지만, 욕망의 체화라고 할만큼 솔직한 이야기도 없었다. 엄마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이 변화하는 점도 특이하다. 십대 때는 상황에 불행해하다가 징그러워하고 마지막에는 이해 비슷한 것을 하는 것도 그렇다. 주머니에서 아름다운 구슬을 꺼내놓는 것 같은 백수린 작가 특유의 결말도 참 좋았다. 아기를 낳는 주인공은 이제 과거와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되는 순간에 남편에게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다. 이처럼 좋은 결말이라... 한 수 배우게 된달까.

 

이러한 작품의 특징은 가히 조용한 혁명이라고 칭해도 좋을 것이다. 백수린의 아름답고 단정한 문장에 집중하던 과거의 나는, 몇 년 사이에 백수린이 그려낸 인물들의 욕망에 집중하게 된다. 시간은 독자의 관점마저 변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의 변화가 참 기껍게 느껴진다. 독서의 무궁무진함을 증명하는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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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믿어요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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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60페이지까지 층간소음 얘기를 하면 어쩌라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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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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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담배 연기와 바에서 온더 록스로 제공하는 한잔의 위스키. 우중충한 하늘과 탐정. 현재 많은 탐정, 미스터리 소설에 영향을 준 이미지는 1900년대 초 한 소설가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필립 말로라는 한 인물의 유형을 창조한 챈들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원한 우상 같은 작가다. 한국에선 챈들러의 작품은 일부 미스터리 애독자 외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창조한 인물, 이미지, 풍경 등 하드보일드라고 일컫는 장르의 이미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빅슬립>은 챈들러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첫 장편 소설로 모든 작가들의 꿈인 첫 작품에서 성공을 달성하게 해준 작품이다. 소설은 주인공 필립 말로가 사위의 실종을 조사해달라는 대부호의 의뢰를 받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미스터리 소설의 줄거리는 많이 쓸수록 좋지 않으므로 이만 줄이겠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과 그를 갈무리하는 마지막 장면은 충격적이다. 그것 하나만은 보장한다.

 

분위기에 한 대 얻어맞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수 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비결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그의 작품을 읽었을 때는 이 시리즈가 도대체 왜 유명한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번역이 별로였던 것 같았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게 좀 망설여 졌다. 하지만 문학동네는 훌륭한 역자를 구한 것인지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번역의 위대함이여. 참 즐거운 일이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생전에는 싸구려 취급을 받던 탐정 소설로 수 많은 작가의 인정을 받는 명작가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당연히 감안하고 읽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런 소설이 나오지 않으니 이 소설 특유의 분위기는 그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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