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이와사키 나쓰미 지음, 권일영 옮김 / 동아일보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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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내용은 그야말로 이 책의 제목 그대로다.
고교 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을 때 생길 수 있는 일,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을 그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일본에서 열풍을 일어켰다고 한다. 2010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제치고
판매부수 1위를 차지했다면 이 책에 쏟아진 관심과 애정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 졌고, 영화로도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목을 줄여서 '모시 도라'라고 발음이 귀여운 애칭으로 불리우는데,
도라는 드러커의 일본식 발음의 일부라고...

이 책을 읽게 된 건...1Q84를 꺾었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라며
강도 낮은 충격이 밀려왔고 다음 순간 그 자리에 호기심이 자리잡았다. 궁금하다. 궁금해...!
아, 내 취향은 아닐 게 분명하다는 감이 짜르르하고 왔지만 호기심은 그런 감에게서
새침하게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뭔가에 홀렸던 것일까? 정신을 차리고보니 주문완료창이 떠있더라. 헉...!

그렇게 읽은 책이었다. 문장이 수려하다거나 감동이 밀려온다거나하는 책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발상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드었고, 그런 부분들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야구부 매니저를 맡게 된 학생이 매니저의 역할에 대한 약간의 오해를 하게 되면서,

서점에서 매니지먼트에 대한 책을 찾게 된다.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고,
그때 구입한 그 책 한 권이 그 학생과 그 학생이 매니지먼트하게 될 야구부를 바꿔놓는다.
피터 드러커의 책을 너덜너덜하게 될 때까지 읽으면서 거기에서 배운 원칙을
성실하고 철저하게 야구부에 적용한다. 약체 야구부는 과연 피터 드러커의 조언에

어떤 식으로 변모하게 될까? 그게 이 책의 포인트이자 매력의 정점이 아닐까 한다.

왠지 작가는 피터 드러커의 책을 책장이 떨어져나갈만큼 많이 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이런 독특한 아이디어만으로 한 권의 책이 출판되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았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지금 나는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의 매니저가 선택한 책을 읽고 싶어서 열심히 찾아봤었는데, 같은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지는
않았다. 미래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것 같다.

아직 조금밖에 읽지 못했지만, 페이지를 휙휙 넘기다가 소설 책에서 나왔던 부분이
탁하고 등장할 때마다 싱긋 웃게 된다. 이 부분을 그 매니저는 야구부에 이런 식으로 적용했었구나를
떠올리며...

이 소설을 읽어서일거다.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게 된 건...
그리고 피터 드러커의 책이 그다지 많이 어렵지 않다고 느끼는 건 말이다.
예전에 몸을 꽈배기처럼 꼬면서 피터 드러커를 억지로 읽으려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 절반도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동기도 흥미도 그리고 관심도 없는 독서는 피곤한 법이다.
성과도 없고...!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다 읽어낼 수 있을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리고 그건 순전히 이 책의 덕분이다.

'만약 고교야구 여자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피터 드러커는 어쩌면 영원히 읽지 못할 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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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1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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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선택할 때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마음이 바스랄질 것만 같은
잔인한 장면을 보게 될까봐.

가끔 그런 생각할 때가 없는가?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제멋대고, 때로는 편협하다 못해 
징그럽게도 못돼먹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착하다고 믿으며 살고 있지만,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계기로 그 믿음의 기반이

몹시 약해지기도 한다. 차별에 대한 문제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소개글을 읽으며 잠시 멈칫했었다. 주요 소재가 인종차별이었고, 그 차별이 정점에
이르렀던 1960년대가 시대적 배경이었으니까. 이 책을 계기로 인간의 못된 본성을 실감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손 끝에 닿으려는 책에서 한 걸음 물러서야 할까 고민했었다.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인종차별을 둘러싸고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던 그 때에

강도높은 물리적 폭력이 동반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폭발이나 피습사건같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폭력이 존재하는 책은 언제나 읽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드는 데
한참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기 전에 조금 걱정을 했다. 이 책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게
슬픔이나 고통 같은 것일까봐. 많이 망설였지만, 끝내 이 책을 지나쳐버릴 수는 없었다.

이 책에 대한 아마존 평점과 서평에 홀려버렸으니까.
꽤 많은 사람들이 별점을 매겼는데, 어떻게 저 별점이 나올 수 있을까 무척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찬사에 가까운 서평들이 눈에 띈다. 오~! 고전의 탄생이란다. 올해 읽은 최고의 책이었단다.

그런 서평글을 읽었는데 어떻게 쿨하게 이 책에서 등을 돌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다보니 입소문만으로 500만부가 팔렸다는데 정보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 소설만의 특별한 뭔가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조바심이 생겨버렸다.
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뒷걸음질 쳤다가 나중에서야 읽고 진작에 읽을 걸 그랬다며
아쉬움에 한숨을 쉬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냥 읽어보기로 했다. 아마존 평점을 믿고, 서평들을 믿고 말이다.

두 권의 책이었는데 순식간에 읽었다. 물론 요즘 책들은 왜 다 두 권으로 나오나 몰라
툴툴대기도 했지만...그런 불평을 하면서도 1권이 100페이지 정도 남았을 때 허둥지둥 책을 주문했고,
마침내 2권까지 내 손에 들어왔을 때에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다음 내용을 궁금한데 책은 아직 배송중인 상태가 아닐테니까 안도했달까.
이제 이어서 읽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읽는 사람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수집한 정보들을 가지고 인물들의 상황에 간섭하기 시작하게 만든다.
'이봐요, 그건 그런 게 아니라구요!'라며 등장인물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특정 인물에게 그러다가 큰 코 다치는 일이 있을거라고 충고의 중얼거림을 던지기도 한다.

그럴 정도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 친근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달까.
이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 특정한 1인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꽤 풍부한 상황이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고 소설의 흐름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페이지 밖에서 단순히 소설을 읽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페이지 속으로 한 걸음 정도 걸어들어 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소설과의 거리가
가까워 졌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단축된 거리만큼 이 소설의 등장인물과 상황에 대한 공감은 깊어졌다. 그러다보면 이야기 속에 더 매료되어 가게 된다. 

걱정했던 물리적 폭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빈도로 등장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심리적 폭력이
자리를 잡았고, 물리적 폭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그래도 걱정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심리적 폭력은 난폭했다. 결코 놓아주지 않는 집요함으로 무장한 심리적 폭력은 
이 소설 속에서 무섭게 그려지고 있다.  

미시시피의 작은 마을이 이 책에서 주어진 공간이다. 그 곳에서 1960년대에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상황이 2권의 책으로 성실하게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작은 마을 바깥으로 시민권 운동은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변화의 물결은

유색인이 아닌 그 마을 사람에게는 반발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정해진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상해를 입을만큼 린치를 당했지만
범인마저 잡지 못하고, 도둑으로 거짓 누명을 쓰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마음고생하는

가정부도 등장한다. 일상에서 모멸적인 언사에 노출되고 있으며, 인간으로서 대해지는 게 아니라
부리는 누군가로 취급당할 뿐이었다. 그들에게서 도움을 받으면서도 법정된 임금은 지불하지 않았고,
그들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말을 가리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그럴 권리가 있는 냥 행동한다.

화장실을 따로 쓰고 싶어해서 집 안에 유색인을 위한 화장실을 무리해서 짓고,
식사도 따로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어째서 자신들의 공간에서 일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건지
무척 의아했지만...그때는 그랬었나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도 그런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한 여성이 있다.
유색인 가정부 손에서 자랐고, 그녀를 길러주었던 가정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의 친구들이 자신의 가정부들에 대해서 가혹하게 구는 것을 견디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언제까지 친구들의 행동에 맞장구치며 스스로를 속여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그런 자기기만을 그만두기로 한다. 
이제 그녀는 가정부들의 목소리를 모으려고 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런 마음을 먹었다고 가정부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의향에 찬사를 보내고
기꺼이 도움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어이없어하고, 의아한 시선을 보내며 한 걸음
물러서는 게 당연지사가 아닐까. 그녀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녀는 그들의 편이 아닐 것인데, 그들을 하대하는 대상들의 편에 선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우선 그녀는 가정부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들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다. 그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자못 감동스럽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차별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소설 속에서 가정부를 고용하고 있는 부인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듯이 차별적인 대우를 자행하고있는데, 스스로는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잘못은 커녕 가정부인 그들이, 유색인인 그들이 나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을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동일한 라인에 서 있는 인간으로서의 대우같은 건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현재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 그런 식으로
자행되는 차별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겼다. 그리고 아니라고 냉큼 대답할 수 없어서
씁쓸함은 느꼈고 답답해졌다.

차별은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차별이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 건 가능해도,
차별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쩔수없이 차별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차별이라는 대상과 맞딱드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그 차별이 동조할 것인가, 그 차별에 침묵할 것인가, 그건 차별이라고 말할 것인가,
차별이므로 이건 안되는거라는 목소리에 힘을 실기 위해 무언가를 할 것인가...
각자의 선택일 것이고, 선택에 따라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건 너무나도 쉽지만, 쉬운 게 옳은 건 아니고 정당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그 순간을 목격한다면 소설 속의 그녀들처럼 용기를
내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변화를 만들어 내는 건 용기가 아닐까 한다. 용기로 무장한 행동만이 세상을,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조금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씩씩하고 용감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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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사카 코타로의 번역된 소설을 거의 다 읽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팬이라고 자청하고 있는 작가의 소설도 전부 읽지 못한 게 대부분인데,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니...이사카 코타로의 어마어마한 팬이었나보다, 나는...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건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 원작이 된 영화도 모두 보았다는거다.  

거기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 만화가 된 것도 읽었더라구.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난 엄청난 팬이었나보다.

이사카 코타로의 신간 소설이 나오면 챙겨 읽었고, 영화는 이사카 코타로의 원작이라고  

보았다기 보다는 캐스팅도 괜찮았고 원래 영화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서  

어쩌다보니 보게 된 것 같다. 만화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거다. 어쩌다보니 만화도 읽게된거다.  

솔직히 만화는 원작보다 별로 재미가 없더라. 영화는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치고는

꽤 잘 만든 게 많던데 말이다.

그런 사실들을 나열하다보니 어쩐지 무척 열성적인 팬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것인 것 같다.  

기발한 아이디어, 독특한 착상을 드러내는 톡톡 튀는 대사들... 

거기에서 매력을 느끼기에 꾸준히 그의 책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이 사람 참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있네, 라고 느끼고 나서부터 꾸준히 읽고 있는 것 같다.  

때때로 그 기발함의 정도가 약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발함은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끔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의 신간 소설을 외면할 수가  

없는 게 아닐까 한다.

'바이 바이 블랙버드'를 읽으며 역시 이사카 코타로로군...싶었다. 이사카 코타로 답다 싶었달까.

이 소설은 독특한 기획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른바 우편소설!  

원고를 소수의 혜택받은 독자에서 우편으로 보내주는거다.

5화까지 독자에게 발송되었고, 6화는 보내주지 않고 책으로 묶여 나왔다고 한다.  

책이 출간되기까지 그 독자들 참 고문이었겠구만 싶기도 했지만... 

그런 독특한 방식으로 책이 나올 수도 있다니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저런 방식으로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우편함을 들여다보며  

소설을 기다린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너무나 궁금해졌다고 해야하나.  

기다리는 사이에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고, 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굿바이'를 읽어보기도 하면서 초조하게 하지만 기대에 가득차서 행복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굿바이'의 속편에 해당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다자이 오사무의 열혈 팬이었다는 이유로 다자이의 작품을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을 지켜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획이 마음에 들어서

그 오랜 결심일지 변명일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를 읽지 않겠다는 결심이라던지, 계기가 있다면 그 결심을 가볍게 버려버리는  

자세라던지, 우편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에 과감하게 도전한 것이라던지... 

그걸 보면서 왠지 그의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러면서 역시 이사카 코타로 답군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다자이 오사무의 '굿바이'를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바이 바이 블랙버드'를 읽으며 '굿바이'의 내용이 대략적이지만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분명 다섯 명의 여인이 등장할 것이고, 남자는 다섯 다리를 걸치고 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 다섯 명의 여인에게 이별을 고할 것이다.  

그리고 이별 절차를 거치는 남자 옆에는 어떤 여인이 있을 것이고.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데, 확인 차원에서 조만간 '굿바이'를 읽어봐야 겠다.

형식만큼 독특한 내용이었다. 다섯 명의 여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남자.  

그것도 동시에 다섯 명을 사귀고 있었으면서 해맑게 슬픈 표정을 각각의 여인을 향해  

지을 수 있는 남자. 하는 짓은 어처구니 없지만 이상하게 밉지 않은 건 왜일까

미스터리하다면 미스터리하다고 할 수도 있겠고, 이것이 이 작가의 능력에 포함되는 거지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 남자의 이별과정에서 이사카 코타로만의  

색채가 담겨져 있다. 따뜻하면서 기발한 뭔가가 있다고 해야하나.  

오랜만에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아사카 코타로만의 장점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반가웠고,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또 무슨 노래가 나오나 궁금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이바이 블랙버드'가 노래였다.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지면 딱 재미있을 것 같다. 남자주인공은 카세 료로 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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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속 성경과 신화 읽기
파트릭 데 링크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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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한 글자만이 있는 책도 싫어하진 않지만 그림이나 사진이 있는 책도 참 좋아한다.

만화책도 좋고, 사진집도 즐겨보고 있다. 그리고 그림이나 미술사에 대한 책을  

가끔 들여다 보곤 한다. 교양이나 상식적인 지식을 쌓는다는 목적이라기 보다는  

그저 그림이 있는 책이라는 이유로 때때로 푹 빠져들어서 보곤 하는데,  

그러다보니 공부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은 공부를 했어야 한다고는 느끼고 있었지만, 그런 목적으로 보는 게 아니니까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던 마음도 한 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식의 부재는 답답함을 키워나갔다. 저 그림이 정확하게  

어떤 내용을 품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지면서 더욱 폐쇄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제부터 조금씩이라도 상식 범위의 지식을 습득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랬다. 그런 생각을 들게 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성경과 신화에 대한 것이었다.

특정 종교를 믿고 있지 않아서 성경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다.  

아주 기초적인 부분은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거기에서 딱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면 멍해지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성경과 관련된 그림과 맞딱들이게 되면,

게다가 그 성경 내용이 낯설기라도 할 때면 얕은 성경 지식을 최대한 동원해서  

조각 그림 맞추기를 하곤 했었다. 그래서도 해결이 안되면 조만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금새 잊어버리곤 했다. 그게 반복되다보니

모르는 부분은 계속 모르는 부분으로 남아있었고,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은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 의심하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지만, 언제고 성경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지만 그건 좀처럼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신화도 다르지 않았다. 신화에 대한 그림이 그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그 역시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 수준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신화를 읽으려는 시도는 꽤 여러 차례 했었고, 

일부분은 실제로 읽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신화의 방대한 양에 어느 순간부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 잊어버린 내용도  

꽤 많았다는 걸 얼마전에 알게 되어서 조금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 상태이다보니 그림을 보기 위한 성경과 신화 읽기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절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양이 기를 죽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세계 명화 속 성경과 신화 읽기'라는 책을 보고 무척 반가웠던 건 말이다.

이 책 한 권으로 명화 속에 등장하는 성경과 신화의 대략적인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니,  

지난 몇 년 동안 수차례 도전과 포기를 반복했던 성경과 신화 읽기의 도전에  

터닝 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떤 그림들이 이 책에 있을까, 이 책은 성경과 신화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들려줄까  

궁금해하면서 서둘러 페이지를 넘겼다. 이 책의 페이지는 그야말로 착착 잘 넘어간다.  

그러니까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거다.

우선 유명한 명화들이 등장하고 있고, 거기에 덧붙여 성경과 신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설명을 읽다보면 이전에 무시하다못해 인지하지도 못했던  

그림의 일부분이 새롭게 보였고 그로인해 그림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더욱 흥미롭게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어진다.

성경이나 신화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화가들이 선택했던  

그 결정적인 순간들에 대해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책 한 권을 읽으며  

명화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성경과 신화 지식을 쌓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필요한 배경 지식을 갖추고나서 그림을 보면 그 속에서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그림에 대한 흥미와 기대를 고조시키는  

기능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이번에는 제대로 성경과 신화 읽기를 해봐야 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에서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나서도 이전보다 훨씬 만족스럽게 그림에 대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성경과 신화를 읽고 난 다음에는 그 그림이 더욱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싶었고, 이 책에 페이지 수의 제한으로 어쩔 수 없이 생략할 수 밖에  

없었던 내용들도 있을테니까 그 부분을 보강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우선 책장에서 신화에 대한 책을 찾아서 한 공간에 조르륵 꽂아두었다.  

매일 조금씩 읽으려고 한다. 욕심 부리지 말고, 매일 50페이지 정도씩만 꾸준히...

그러다보면 어느 날 다 읽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나서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렸다는 그 책도 읽어봐야 겠다.

'세계 명화 속 성경과 신화 읽기'는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고,  

펼치자마자 단숨에 읽었던 책이었다.

명화를 보면서 성경과 신화 내용이 알쏭달쏭하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이 책에 끌리는 마음에 망설임없이 응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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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랑한 파리 - 어느 낭만주의 지식인의 파리 문화 산책
이중수 지음 / 샘터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그녀가 사랑한 파리...제목만 보고 궁금한 게 참 많았다.  

그녀란 누구인지, 도시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모습일지...

이 책은 여행 에세이려나, 아니면 파리 체류기려나...그리고 페이지를 펼쳐서 읽어나갔다.

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고 불러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작가가 파리에 대해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매력적인 도시이기에, 그 도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아직 파리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 사람에게 그 도시만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모든 것에 이야기가 숨어 있었고, 그것을 찾아낸 사람은  

누구에게고 발견한 그 이야기를 말해주고 그 순간의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도시나 그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파리는 유달리 다채로운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도시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실감한다. 길을 걷다 마주치게 되는 많은 것들에게서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구나 싶었고, 그런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리를 매일 걷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파리는 언제부터인지 왠지 살아보고 싶은 도시다. 생활해보고 싶다고 해야할까.  

6개월이나 1년 정도...뭔가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침을 먹고, 느릿 느릿 산책을 하고,  

장을 보고, 별 생각없이 거리를 바라보고. 그런 일상을 누려보고 싶은 도시였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이 책을 통해서 그 도시에 스며들어 있는 여러가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 것이 아닌 도시의 기억이지만, 페이지를 넘기면서 언젠가 내 것이 될 도시의 기억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이 어서 왔으면 바라본다.

내가 사랑하게 될 파리는 어떤 모습이 될까, 파리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오게 될까...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부지런히 파리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리고 그 이야기를 읽을수록 파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책소개글에서 20년 차 한국인 파리지엥의 파리 예찬 산문집이라는 표현을 발견했었다.  

파리 예찬 산문집이라고? 약간의 과장이 섞인 게 아닐까 싶었었는데,  

그게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건 페이지를 넘긴지 얼마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파리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글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파리를 사랑한다는 건, 어느 한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리고 언제까지고 사랑하는 도시 하나 마음 속에 품지 못한다면 무척 섭섭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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