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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자의 문제
하워드 제이콥슨 지음, 윤정숙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그랬단다. ‘하워드 제이콥슨은 현존하는 작가들 중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라고. 작가가 유머러스하다고 했지 이 소설이 유머러스하다는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말에 맨부커상 43년 역사상 처음으로
유머러스한 소설이 수상되었다는 책소개글이 겹쳐지면서 난 이 책이 바닥을 대굴대굴
구를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했었다. 내가 유머를 읽어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었고,
의식적으로 유머 포인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안쓰러운 짓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치
산삼이라도 캔 듯이 ‘찾았다! 이 부분이 유머러스한 포인트였어!’라고 기뻐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 뒤로 바로 따라붙은 자괴감으로 또 풀이 죽었다. 어쨌든 유머가 내가 생각했던
유머와는 한참이나 다른 모습이어서 조금 당황했었지만, 읽다보면 계속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적응이 된다. 그리고 그 세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너의 정체성을 발견하는데나 신경쓰라는 핀잔을 들어도 할 말은 없지만...
이 책에는 세 명의 남자가 어쨌든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들의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들 주위에 등장하고 사라졌던 인물들도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 세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어쩐지 몹시 우울해진다.
기운이 없어진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그건 어쩌면 그들 역시 우울하고 기운없이 책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다. 그리고 정체성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세월이 지난다고해서 저절로 확립되는 건 아니구나 싶기도 했었다.
그들을 반면교사 삼았다고 해야하나. ‘저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이렇게 살면 안 돼’
라는 생각을 참으로 오랜만에 해보았다. 너무 피곤해 보여서 저들과 같은 모습의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다.
살만 루시디, 이완 맥큐언을 단숨에 꺽어버리고 상을 거머쥐었다기에 그만큼 기대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을 받아 마땅한 부분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 부분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약간 의기소침해졌었고
그런 감정 상태가 이 책의 독서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서 읽으면, 조금만 더 여유로운 때에 읽었다면 이 책의 장점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고나서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에는 조금 바쁜 일이
많았고 그러다보니까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기지도 못했던 것 같다. 빨리 읽고 싶은
욕심에 서둘러서 페이지를 읽어내렸었는데, 그런 욕심쟁이 독서에는 이 책이 어울리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다시 읽어볼까 한다.
처음 독서에서는 씁쓸한 웃음과 간간이 재치를 발견했을 뿐이지만,
두 번째에는 또 다른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누가 알겠는가! 그 독서에서는
유머를 발견할 수 있을는지. 유머코드 업그레이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던 책으로
‘영국 남자의 문제’를 기억하리...!
왜 이 책 제목이 영국 남자의 문제일까 궁금했었는데, 읽다보면 왜 이렇게 지었는지 알 것
같기도 싶어진다. 이 책만큼은 역자 후기가 간절했었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가 확인받고 싶었으니까...그런데 없었다. 좋은 길잡이가 되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