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엽서
안느 브레스트 지음, 이수진 옮김 / 사유와공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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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안느 브레스트는 유대인으로 자신의 가족이 겪은 홀로코스트 역사를 소설로 녹여냈다.

 

어느 날 익명으로 온 엽서 한 장에는 에브라임, 엠마, 노에미, 자크 네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들은 의 엄마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의 이름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 1842년에 생을 마감한 이들의 이름을 누가 엽서에 적어 보낸 걸까? 이 궁금증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엽서 속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차마 읽어내기 어려운 아우슈비츠에 당도한다. 참혹함과 먹먹함이 더해진다. 그럼 에도 이들은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이름의 주인공들을 찾는 여정 속에서 나의 유대인이라는 뿌리와 나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고 이기적이게 만드는지, 또한 생존자에게는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 책은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들을 잊어서는 안 돼. 그럼 그들이 존재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거야.”(p.591) 책 속에 이 문장은 내게 큰 울림을 준다. 많은 사람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며 그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까.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특별법거부로 이어진 것이 안타깝고 화가 난다. 책에서 선량한 시민이었던 이들은 시장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 노역을 하고 결국 가스실에서 죽는다.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책 속에 있는 절박한 이들의 울음이, 가족과 헤어져서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느라 자식도 내버려 두는 그 심정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는 어떻게 정부를, 나라를 믿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하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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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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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대표,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등을 썼고, 돌봄으로 연결된 동료들과 돌봄의 새 파란을 일으킬 궁리로 여러 실천을 이어가는 조기현과 방문진료 전문병원 건강의 집 의원을 열어 아픈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처방전 없음> 등을 펴낸 홍종원의 돌봄이 순환하는 세계를 생각해보는 대화를 엮은 책이다.

 

오랜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신 엄마를 돌봤던 건 우리 삼 남매이다. 당시에도 돌봄 도우미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주 돌봄은 가족의 몫이었다. 사회적 돌봄이 아닌 가족 독박의 돌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므로 책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나 역시도 부모 돌봄과 나의 노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조기현의 <아빠의 아빠가 됐다> 또한 책 모임으로 토론하고 저자와의 만남도 한 터라 반가움도 컸다.

 

책은 돌봄의 올바른 의미와 지금 우리 사회의 돌봄이 어디까지 왔는지 대화를 통해 알아본다. 저평가되어 있는 돌봄이 여성의 노동으로 전락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외주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아이 양육과 어르신 돌봄이 돌봄 영역의 다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돌봄이라고 말한다.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돌봄, 사람, 연대 속에 있어야 함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고 부를 때 이것이 선순환되어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꼭 나눠야 할 돌봄을 화두로 던지는 책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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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 - 불확실한 시간을 통과하는 마음
조소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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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돌봄 노동을 했기에 워킹맘의 그 힘듦의 깊이를 충분히 알지는 못했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어려움을 글을 통해서 보고 그것이 누군가 또 다른 여성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에 깊이 공감이 갔다.

 

일하는 여성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서 30~40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들이다. 남녀의 차별적 시선, 사회적으로 바라는 여성의 외양, 생리, 산부인과 병원, 고정적인 성역활, 각방 라이프, 가면 증후군, 새치 염색-여성의 외모, 번 아웃 등

발을 디딘 그곳이 어디이든 불안한 우리는 여성으로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또 목소리 내야 하는지 책은 말한다. 또한,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을 통해 연대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40대가 되어서 내가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미래세대인 아이들의 자립과 현재 우리의 건강, 그리고 안온한 노후이다. 그것들을 준비하려다 보니 미래가 너무 암울하게 느껴져 오히려 지금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찰나의 작은 행복, 소소한 즐거움, 나이듦을 슬퍼하기보다 책을 더 읽을 수 있는 건강을 만드는 것을 서로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있다.

저자가 말한 대로 ‘40대에게 친구는 노후 대책이다.’ (p.199) 함께 나이 들어가며 읽는 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있어 지금이 외롭지 않다. 우리의 불안이 안온으로 점점 물들어 가기를 독려하는 연대의 글들이 담긴 <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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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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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을 배경으로 정보라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첫 SF연작소설이다.

외계 바다 생물인 <문어>,<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라는 소제목으로 만나본다.

 

대학의 시간 강사인 화자와 노조 위원장이 투쟁 중 문어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위원장은 그 문어를 삶아 먹어 버린다.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찾아와 차에 태워져 이동해서 취조를 당하게 된다. 과연 문어는 어디서 나타났을까.

 

우리는 항복하지 않는다. 나와 위원장님은 데모하다 만났고 나는 데모하면서 위원장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함께 데모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교육 공공성 확보와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 해방과 지구의 평화를 위해 계속 함께 싸울 것이다. 투쟁. (p.46)

 

말을 하는 대게 예브게니를 만난 화자는 대게가 러시아 정부에 고용되어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가스관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또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브게니에게 그들은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는데...

 

북극해도 발트해도 동해도 모두 오염되고 깨지고 부서졌다. 도망칠 곳은 없다. 인간도 대게도, 어디에도 갈 수 없다. (p.66)

 

비인간 생물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인간이 망쳐버려 살 수 없게 된 바다, 부서진 해저, 죽은 땅과 도망칠 곳 없이 좁아져버린 지구가 한없이 미안했다. (p.84)

 

화자는 남편의 암 재발로 입원한 병원에서 옆자리 환자에게 기적의 치료제를 판매한다는 명함을 받는다.

결국 죽도시장에 있는 치료제 회사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상어, 조개, 대게 등이 수조에 갖혀 있다.

여기서 또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이야기들이 마침표 없는 긴 문장이 숨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만큼 절박한 비정규직의 처지가 느껴졌다.

갑이 부리는 횡포는 변하지 않고 노동자의 노동력착취에 너무나도 화가 나는 현실이다.

 

외계 해양 생물들의 등장과 검은 정장의 사람들의 계속된 출현도 웃음 포인트.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이 있어서 더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재미뿐 아니라 노동, 장애, 기후, 생태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져 있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이대로 간다면 곧 재난으로 다가올 것을 경고하는 듯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바다는 우리의 것. 우리가 지킨다. 투쟁!!!

 

이제 대게는 예브게니 생각나서 못 먹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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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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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동대문구였다가 중랑구가 된 상봉동이다. 집 장사가 마음먹고 똑같이 지어놓은 단층 양옥이 쪼르르 골목에 줄지어 있던 그곳을 1년 전쯤 찾아가 봤다. 그때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을까 싶어 향수를 느끼고 싶었던 거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갔으니 그곳이 내 고향이다. 우리 집에는 이모와 이종사촌 언니 2명도 함께 살았다. 언니들이 빌려온 만화책을 옆에서 같이 보고 떡볶이 해먹을 떡볶이 떡, 어묵, 또 언니들의 스타킹 심부름 등은 항상 내 일거리였다.

 

한동안 내가 빠져 있었던 것은 자전거타기 였는데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어서 혼자 매일 자전거를 타며 익혔다. 그 당시 화장품 방문판매원이었던 이모가 퇴근하면 그 자전거를 끌고 큰 도로로 나가서 도로의 연석에 한 쪽 발을 올려놓고 높은 안장의 어른 자전거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자전거를 혼자 타게 되었을 때의 그 자유로움이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땀을 식혀주는 그 시원함, 이른 저녁의 어스름함 속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더 내 어릴 적 그 동네에 대한 향수가 진한 걸까.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이모를 떠올리게 하는 것. 내 어린 날의 이모의 자전거이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박완서 작가님의 타계 13년 주기를 맞아 기존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 미발표 원고를 더하여 리커버되어 출간되었다. 한 편을 읽고 나면 옛 기억에 잠기곤 해서 잠시 헤매이다가 다시 다음 편을 펼치게 된다. 보통의 것들, 우리가 지나쳤던 삶의 작은 조각들을 다시 돌아보고 또 나의 예전의 그 감각을 깨워주는 시간이다.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던 나, 슬펐던 나, 너무나 자유로웠던 나 그리고 그런 나와 함께 했던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 아련함이 오래 남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읽었는데도 한결같은 다정함으로 나의 마음을 잔잔히 일렁이게 하는 이 책을 20241월에 다시 만나 행복하다. 미발표 된 작품도 수록되어 꼭 읽어야 할 이유가 확실하니 모두 읽어보시길. 따스함을 함께 나누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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