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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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고봉준 외 23명


P.7

혼란과 모험은 문학이 누려야 할, 끝날 수 없는 불안한 축복이다. 김수영의 문학을 읽고 평가하는 일도 예외일 수 없다.


P.179

김수영의 시는 비루하고 창피해서, 무섭고 겁이 나서, 제대로 보지 못하던 것들을 바로 보는 정시의 경험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김수영은 김수영을 바로 보고자 했는데, 김수영의 거울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기 그림자를 본다. 


P.182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며 시를 쓰고자 했기에 냉전과 독재가 만들어낸 정치적인 금기어가 불편하고 신경 쓰였고, 그래서 금기의 38선을 넘으려고 김수영은 꿈속에서도 땀을 흘렸다.


P.246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를 믿는 김수영에게 사랑은 ‘시=힘’의 원천이었다. 사랑의 본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역설이 포함되어 있다. 사랑은 유한한 인간이 지는 무한의 에너지이자 능력이다. 사랑하는 자는 불완전하고 취약하지만, 그가 행하는 사랑은 영역과 한계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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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한겨레》에서 평론 26편이 기획·연재되었다. 시인, 평론가 등 24명의 전문가가 가족, 일본/일본어, 한국전쟁, 전통, 돈, 비속어, 번역, 여혐, 니체, 온몸, 죽음, 사랑 등 26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김수영의 생애사와 작품론에 대해 평론을 작성했다.


제목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제목은 책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수영은 한국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나 역시 시인을 교과서에서 배웠고 여전히 시 <풀>을 기억한다. 그동안 내가 봤던 김수영의 작품은 현실의 이면을 들춰내며, 그 시대를 고스란히 담으려고 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자신의 신념을 작품에 담기 위해 글을 썼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점은 김수영을 한국 문학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시대, 이면, 신념 등은 김수영에게 긍정이 아닌 부정적인 평가를 주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김수영의 작품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독자가 늘어났다. 그의 작품에서 잘 못된 여성관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세대, 이면,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려고 했던 김수영이기에 비판과 실망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올바른 여성관이 형성되는 사회에 살고 싶고 노력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기에 당시 김수영 시인에게 실망감을 가졌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하니포터 자격으로 책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를 읽게 되면서 다시 한번 ‘김수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제야 김수영에 대한 비판이 나타난 걸까?”


당시 50~60년대 발표되었던 작품은 현 세대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생겼다. 세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상한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다수가 불편함을 느낀다. 김수영이 반영하고자 했던, 한계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지금에서야 사람들 눈에 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영은 김수영을 바로 보고자 했는데, 김수영의 거울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기 그림자를 본다.”


179쪽에 나와 있는 글처럼 김수영의 여성관을 통해 우리는 과거부터 이어진 사회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김수영의 작품 속 잘 못된 여성관은 옹호할 수 없지만 우리는 과거부터 있었던 잘 못된 여성관이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수한 반동을 통해 우리는 더 큰 반동을 만들어 내며 그 반동은 과거에서 이어져온 그림자를 끊어내고 새로운 명을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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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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