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역사 - 과거의 세계가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조민호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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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산불·폭염 같은 이상 기후 뉴스가 매년 반복되고, 전쟁과 난민, 부의 양극화, 혐오와 가짜뉴스, 인공지능 규제 논쟁까지 이어지는 세상이다. 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세계, 앞으로 50년·100년 뒤에는 어떻게 돼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큰 문제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우리가 실제로 쓰는 시간의 범위는 너무 짧다.

선거는 4~5년, 기업은 분기 실적, 우리 일상은 오늘·이번 달·올해 계획 정도에 머문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 즉 미래 세대는 말로만 언급될 뿐, 실제 정책이나 결정의 기준 안에 거의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로먼 크르즈나릭의 『내일을 위한 역사』는 지금 이 시점에 꼭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은 “과거를 잘 아는 사람이 미래를 더 잘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역사를 통해 지금의 위기를 다른 눈으로 보고, 내일을 위한 선택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책이 다루는 내용은 매우 넓다. 노예제 폐지 운동, 중세 이슬람 왕국의 공존 실험, 에도 시대 일본의 자원 순환, 시민들이 만들어 낸 정치 제도, 소셜미디어와 여론의 흐름까지, 지난 1,000년 동안의 다양한 사례를 오늘의 문제들과 나란히 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과거에서 무엇을 배워, 폭주하는 현재의 속도를 바꿀 수 있을까?”

저자는 먼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당장 눈앞의 일만 중요하게 여기고, 미래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한다. 정치인은 오늘 헤드라인과 여론조사에 매달리고,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시선을 지금 이 순간에만 가둔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탄소 포집·합성생물학·AI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 와중에 역사는 시험 과목이나 교양 정도로 밀려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사람이 역사 다큐·팟캐스트·전기를 즐겨 보고, 여행 가면 유적지를 찾고, 조상 찾기 서비스까지 이용한다.

저자는 묻는다. “그 관심과 에너지를, 앞으로 수십 년·수백 년을 준비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어떨까?”

여기서 끌어오는 개념이 ‘응용역사’다. 투키디데스, 이븐 할둔, 홉스가 강조해 온 것처럼, 과거를 연구하는 일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을 넓히는 공부라는 주장이다. 역사는 과거의 위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심각해졌는지 알려주고, 한때 존재했지만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여러 사회의 방식들(공유지, 협동조합, 직접 민주주의 등)을 다시 살펴보게 해준다. 오늘의 불평등과 권력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드러내며,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 힌트를 준다. 괴테가 “3,000년의 세월을 활용할 줄 모르면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 뿐”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뜻에 가깝다.

이 응용역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케네디와 쿠바 미사일 위기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핵전쟁 직전이던 1962년, 케네디는 바버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을 읽으며 1차 세계대전이 조금씩 잘못된 판단이 쌓여 폭발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그래서 강경파의 압박 속에서도 즉각적인 군사 공격 대신 외교적 해법을 선택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옛날 얘기가 아니라 지금 내리는 결정의 결과를 더 멀리 보게 만드는 참고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영국 노예제 유지 로비 조직 ‘웨스트 인디아 인터레스트’와 오늘날 화석연료 기업 셸의 논리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 노예제 옹호론자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갑자기 없애면 경제가 무너지고 모두가 피해를 본다. 교육이 부족한 노예들에게는 아직 이르다며 수십 년에 걸친 점진적 변화만을 주장한다. 200년 뒤 셸 CEO는 화석연료에서 언젠가는 벗어나겠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생산을 빠르게 줄이면 회사가 흔들리고 에너지 수요도 너무 많다며 2050년까지의 느린 전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두 사례를 겹쳐 보며, 기득권이 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쓰는 논리가 시대를 넘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보여 준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변화를 실제로 밀어붙인 힘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점이다. 저자는 자메이카 노예 봉기와 영국 농촌의 ‘캡틴 스윙’ 반란을 통해, 온건한 개혁 세력과 급진적 저항 세력이 동시에 존재할 때 정치의 흐름이 크게 바뀐다는 점을 짚는다. 점진주의만으로는 기후위기처럼 시간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폭력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이 긴장 속에서 이른바 급진적 측면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중세 이슬람 왕국 알안달루스를 다루며, 무슬림·유대인·기독교인이 한 도시에서 함께 살며 지식과 예술을 주고받던 모습을 보여 준다. 알안달루스가 완벽한 이상향은 아니었지만, 법과 관습, 도시 설계, 언어와 교육 정책 속에 함께 살기 위한 장치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혐오와 차별이 일상처럼 된 오늘의 현실을 떠올리면, 서로 다른 집단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또 다른 부분에서는 소비주의를 다룬다. 산업화 이전 일본, 특히 에도 시대의 생활 방식을 ‘에도노믹스’라는 이름으로 분석하면서, 제한된 자원을 반복해서 써야 했던 사회의 수리·재사용·대물림 문화를 보여 준다. 끝없이 새것을 사들이고 버리는 지금의 소비 문화와 대비시키며, 단순히 검소하게 살자가 아니라 경제 구조 자체를 재생과 순환 중심으로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책의 중/후반부에서는 물·공유지·민주주의·정보 독점·AI·문명 붕괴 같은 주제를 이어 간다. 발렌시아의 전통적인 물 관리 제도와 여러 지역의 공유지 운영 방식을 통해 공동의 자원을 경쟁과 약탈이 아니라 협력과 규칙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고, 인도 지방자치와 시민의회, 스위스 사례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살아 있는 참여의 장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한다.

거대 플랫폼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독점하는 오늘의 상황은, 과거 토지·자본 독점의 역사와 겹쳐 보며 AI 시대의 권력 집중이 어떤 위험을 낳을지를 경고한다. 문명의 붕괴를 다룬 부분에서는 과거 여러 번의 붕괴와 재건의 역사를 되짚으며, 종말을 상상하는 능력 자체가 붕괴를 막는 데 필요한 힘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지금의 길이 원래 정해진 운명은 아니며, 인류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다른 선택을 해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사례들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오늘 다른 방향으로 꺾을 용기를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내일을 위한 역사』는 중·고등학생에게도 좋은 책이다. 역사가 더 이상 외워야 할 연도와 인물이 아니라, 기후위기·SNS·AI·민주주의 같은 막막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내일의 세계를 어떻게 바꿔 갈지 생각하게 해 주는 도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인용되는 마오리족의 말은 이 책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처럼 남는다.

“과거에 눈을 둔 채 미래를 향해 거꾸로 걸어라.”

과거에만 머무르라는 뜻이 아니라,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내일을 위한 역사』는 바로 그 눈을 길러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오늘 당장의 편리함과 이익만 바라보던 좁은 시야가 조금 더 멀리 뻗어나가고, 나만이 아니라 앞으로 세상에 태어날 사람들까지 함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미래를 바꾸는 힘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첨단 기술이 아니라, 과거를 깊이 이해하고 지금 여기에서 다른 선택을 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연대에 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느끼게 된다.

'더퀘스트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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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그런데 그 모든 것에는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역사는 손쉽게 남용되고 악용될 수 있기에 과거에서 본보기를 구하는 일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과제다.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과 마오쩌둥을 비롯한 수많은 독재자는 역사책에서 자신들의 잔혹 행사를 지우는 데 능숙했다. 1990년대 발칸전쟁 때 세르비아 지도자들은 과거를 조작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가 고대 세르비아 제국의 일부였으므로 당연히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했고, 이에 크로아티아도 비슷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지금도 포퓰리즘에 추한 정치인들은 이민자들을 문 앞에 묶어두려고 국가적 순수성을 운운하며 가공의 역사를 퍼뜨린다. 이처럼 정치권력을 대중의 없던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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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옥에서 브랜딩을 찾다
박현구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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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옥에서 브랜딩을 찾다』 책 내용을 짧게 표현하자면,

북촌의 한옥 호텔을 어떻게 브랜딩했는가를 넘어,

브랜드를 고르고 키우고 확장하는 사고 시스템 전체를 보여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먼저 우리는 하루에 평균 150번의 선택을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16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6분 24초마다 뭔가를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어떤 옷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퇴근 후 운동을 할지 쇼츠를 볼지 등…

이렇게 선택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 있고,

인생은 정말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저자는 브랜딩도 결국 수많은 선택의 누적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신의 쓸모를 찾지 못하면 불안이 병이 되기 쉽지만,

성실하게 움직이고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촉을 세우고 있다면,

그 쓸모를 발견할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고 덧붙인다.

이때 브랜딩은 나만이 가진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세상엔 좋은 아이디어와 멋진 콘셉트를 가진 브랜드가 넘쳐 나지만, 오래 기억되는 브랜드는 상대적 희소성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적 희소성을 가진 곳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희소한데 내용까지 건전하면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동시에 붙잡고, 여기에 진정성이 더해지면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브랜드가 된다. 북촌이라는 장소 자체가 이미 그런 희소한 원천이라는 지점에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공간으로 이어진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은 조선 건국 이후 600여 년 동안 지식인들의 중심지였다.

과거에 급제한 신진 사대부가 살던 곳이었고, 북학파·개화파 같은 진보적 지식인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시간을 “지역이 가진 사라지지 않는 인장”이라고 부르며, 어원적으로 브랜드가 자기만의 안장을 만드는 일이라면, 북촌은 이미 뛰어난 브랜드였다고 말한다. 다만 그 브랜드로서의 가치가 아직 제대로 발굴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 잠재력을 실제 브랜드로 옮기는 과정이 1장 ‘싱킹’에 나오는 여섯 개의 키워드, 형식–지관–원천–감수–역전–전진이다. 형식은 브랜드를 하나의 인격으로 보는 단계다. 이름, 로고, 서비스, 조직 문화까지 모두 합쳐 이 브랜드는 어떤 사람처럼 느껴져야 하는가를 정하는 것, 사랑받는지 외면받는지는 결국 이 사고 시스템에서 갈린다고 말한다. 지관(止觀)은 멈추어 보는 태도다. 저자는 넓게 보기·높게 보기·깊게 보기라는 세 축으로 지관을 풀어낸다. 시장과 경쟁사, 라이프스타일과 데이터를 가로지르는 넓은 시야, 지금 내가 서 있는 관점이 적절한지 되묻는 높은 시야, “왜, 무엇을 위해, 어떤 의미인가”를 끝까지 묻는 깊은 시야. 북촌 한옥마을이 주거·관광·상업이 뒤섞인 공간으로 바뀌는 가운데, 무계획적 개발이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과 오버투어리즘을 피할 수 있는 체계적 기획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이 지관에서 나왔다. 원천은 한 번의 히트 아이템이 아니라 오래 퍼 올릴 수 있는 금맥을 찾는 단계이고, 감수는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를 위해 단기적 편리와 수익을 감내하는 결단이다. 역전은 한옥의 불편함 같은 약점을 프라이버시와 고유성이라는 강점으로 바꾸는 관점이고, 전진은 이 모든 것을 고객이 먼저 찾아오는 구조로 연결하는 마지막 단계다.

이 사고 구조 위에서 저자는 노스텔지어의 브랜드 에센스를 “600년 북촌의 역사성과 현대적 호스피탈리티가 만나는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정의하고, Curated–Conscious–Crafted라는 세 단어로 압축한다. 공간 하나하나에 의미와 이야기를 담아 큐레이션된 호스피탈리티(Curated), 북촌의 진보적 전통과 창조적 에너지를 이어받는 의식 있는 공간(Conscious),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해 한국 미학의 깊이와 섬세함을 보여 주는 공예적 완성도(Crafted). 이 3C가 이후 모든 확장과 의사결정의 기준이 된다.

2장 ‘빌딩’은 이 에센스가 실제 한옥에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 준다. 청기와를 두른 블루재는 그중 특히 상징적인 공간이다. 청와대 기와 장인이 만든 푸른 기와 아래, 저자는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끝없이 질문한다. 한옥의 오래됨과 불편함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보다, 그 질감과 결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적 편의와 동선을 섬세하게 더해 “시간이 머무는 방”이라는 경험을 설계한다. 이 집을 비롯한 여러 한옥이 호텔이 아니라 문화 플랫폼이자 세계관의 무대로 설계되었다는 점이, 많은 온라인 리뷰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으로 언급된다.


3장 ‘디깅’은 이 세계관을 북촌 바깥으로 어떻게 파고들어 확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실제 노스텔지어 고객들이 “이 공간의 감각을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고 요청하면서, 북촌막걸리와 북촌소주가 탄생한다. 북촌막걸리는 외국인 VVIP와 호텔 게스트를 위한 만찬주이자 웰컴 드링크로 기획되었고, 500년 발효 비법 전통주를 현대적 미학과 지속 가능한 패키지 디자인으로 재탄생시켜, 기존 막걸리와는 다른 품격의 아이콘으로 포지셔닝한다. 북촌소주는 북촌막걸리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세계관 안에서 파생된 로컬 소주 브랜드로 이어진다.

이 술들은 많이 팔기 위한 상품이기 이전에, 북촌이라는 장소와 노스텔지어의 에센스를 한 병에 응축한 “마실 수 있는 브랜드 경험”에 가깝다.


기념품숍 카트카트(K-Art Cart)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북촌 한옥마을에 외국인 관광객이 마음 놓고 살 만한 품격 있는 기념품이 거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워, “한국 아티스트의 작품을 일상 제품으로 만드는 라이프 크래프트 브랜드”를 만들자는 결심에서 탄생한 곳이다. 작가의 원화를 그대로 인쇄한 굿즈가 아니라, 작가의 세계를 생활 속 물건으로 번역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스스로 그림을 좋아하고 수집하는 마니아라고 말하며, 객실에서 전시를 열 때 작가를 고르는 기준 네 가지를 이야기해 준다. 해당 기준을 바탕으로 열린 전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 고가구전이고, 이런 시도가 쌓이면서 노스텔지어에 묵으러 갔다가 전시를 보고, 작가의 굿즈를 사서 나오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디깅의 시선은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저자는 가회동을 두고 “포르투처럼 될 수 있을까?”를 자문하며, 도시 브랜딩과 로컬 브랜딩의 차이를 짚는다. 로컬 브랜딩이 특정 장소나 가게, 제품에 초점을 맞춰 깊이를 만드는 일이라면, 도시 브랜딩은 개별 로컬들이 서로 이어지고, 도시의 역사·문화·일상이 하나의 서사로 흐를 수 있도록 전체 구조와 방향을 설계하는 작업에 가깝다. 북촌1777 같은 도시 캠페인이 바로 그런 시도의 대표적 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브랜드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려면 어디까지 생각하고, 어디까지 파고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한 편의 긴 이야기를 들은 듯한 느낌이 든다. 저자가 말하는 지관–형식–원천–감수–역전–전진으로 이어지는 여섯 단계는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멈춰 보고(止觀), 넓고 높고 깊게 바라본 뒤, 나만의 원천을 찾고, 감수할 것을 감수하며, 약점을 뒤집어 레버리지로 만들고, 끝내는 ‘그냥 잘 팔리는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 사랑하게 되는 브랜드’로 전진시키는 일이다. 『도심 한옥에서 브랜딩을 찾다』는 북촌이라는 오래된 무대를 빌려 그 여정을 아주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흑상어쌤 서평단'을 통해,

'디자인하우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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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과정 3단계
1단계 : 정체성 확립
‘우리는 누구인가?’를 명확히 하는 과정입니다.
이 단계에서 기업의 핵심 가치, 존재 이유, 추구하는 바가 구체화됩니다.
2단계 : 외적 표현 개발
내적 정체성을 시각적, 언어적으로 구현하며
디자인, 네임, 메시지, 톤 앤드 매너 등을 일관성 있게 연결합니다.
3단계 : 관계 구축과 유지의 단계
고객과의 모든 만남에서 브랜드 약속을 실천하며
신뢰와 애정과 존경의 감정을 쌓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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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
신현철 지음 / 소명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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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한 번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났다”는 말이 나오는 나라,

한 재벌 기업 임원이 수백억 원대 퇴직금을 받았다는 뉴스가 뜨면 월급 통장을 보며 허탈해지는 나라,

특목고–스카이–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에 모두가 몰려 서로를 팔꿈치로 밀어내야만 할 것 같은 이 나라가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ㅡ 이 책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은 이런 현실을 “그냥 요즘 세상이 원래 그렇지!”라며 넘기지 않는다.

개화기 때 만들어진 일본식 번역어부터, 사회진화론이 들어오며 <경쟁, 생존경쟁, 적자생존> 같은 말이 어떻게 왜곡되어 퍼졌는지, 또 그 말들이 어떻게 한국 사회의 무한경쟁·승자독식 분위기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믿어 온 ‘경쟁’과 ‘진화’의 언어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게 만들고, “정말 다윈이 이런 세상을 원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적자생존”, “무한 경쟁”, “진화론적으로 그렇다” 같은 말을 너무 흔하게 쓴다. 이런 말들 뒤에는 늘 다윈의 이름이 따라붙고, 우리는 그 표현들을 깊이 따져보지도 않은 채 “과학이 증명한 진실이겠지”라고 믿어 왔다. 그런데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을 읽고 나면, 그 믿음의 바닥에 번역의 역사, 애매한 이해, 그리고 일본을 거치며 생긴 왜곡이 겹겹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그 불편함을 피하지 말고,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단어와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따라가 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먼저 개화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우리가 쓰는 서양 사상 관련 한자어들, 이를테면 “자유, 경쟁, 진화” 같은 말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만든 번역어를 일제강점기를 거쳐 그대로 들여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때 우리에겐 서양 사상을 자기 말로 소화할 여유도, 학문적 기반도 없었고,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들은 모양만 보면 익숙한 글자라 거부감도 덜했기 때문에 그냥 가져와 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단어들이 이미 “일본식으로 해석된 서양 사상”을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유’만 해도, 조선의 전통적 감각에서는 “윗사람 간섭 없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일본 개화기에는 생명·신체·재산·사상·종교·결사에 대한 권리, 즉 근대 시민권의 언어로 바뀌어 있었다. 표기는 같지만, 단어 하나에 담긴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이런 번역어들은 서양 사상의 깊이까지 충분히 품지 못한 채, 다소 피상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일본 내부에서도 서양 개념을 자기 언어로 깊게 녹여낼 토대가 부족했고, 그 결과 껍데기만 남은 번역어들이 양산되었다. 한국은 그런 단어들을 다시 가져와 사용하면서, “원래부터 우리 말이었던 것처럼” 쓰게 된다. 저자는 다윈의 “natural selection”이 “자연선택” 혹은 “자연도태”로 옮겨지는 과정도 이 흐름 안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선택’이라는 말은 흔히 “자연이 직접 골라 준다”는 뜻처럼 들리지만, 다윈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환경이 변하는 동안 그 환경에 잘 맞는 특징들이 조금씩 쌓여 가는 과정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 말을 자꾸 “자연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누가 더 나은지 따져서 뽑는 것”처럼 이해한다. 마치 자연이 심사위원이 되어 머리를 쓰며 합격·불합격을 정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다윈이 그린 모습은 전혀 다르다. 책에서 인용된 설명을 빌리면, 자연선택은 “도움이 되는 변이는 보존되고, 해로운 변이는 사라지는 것”이다. 눈 덮인 곳의 흰 새, 히더가 널린 들판의 자주빛 새, 나무껍질과 비슷한 색의 곤충은 환경 덕분에 더 잘 숨을 수 있고, 그만큼 살아남을 확률도 높다. “자연이 흰 새를 골랐다”고 말하고 싶어지지만, 실제로는 환경에 어울리는 특징이 살아남아 다음 세대로 이어진 결과일 뿐이다. 저자는 이런 예를 길게 풀어 설명하며, 자연선택의 ‘자연’은 의지를 가진 주체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어 가는 상태”, ‘선택’은 의식적인 눈과 손이 아니라 “결과로 드러난 차이”를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고 정리한다.

여기서 책은 ‘경쟁’이라는 단어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우리 고전 문헌에서 ‘경쟁(競爭)’이라는 한자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끔 나오는 용례도 시 구절 속 “다투다” 정도의 의미일 뿐, 오늘날처럼 “너 죽고 나 살자”는 느낌은 아니다. 중국 고전에서도 비슷하다. 공자가 활쏘기를 예로 든 “군자의 다툼”은, 서로 예를 갖추고 양보한 뒤 겨루고, 끝나면 함께 술을 나누는 장면이다. 결과보다 과정의 예를 중시하는 다툼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세 사람, 유길준, 후쿠자와 유키치, 가토 히로유키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

이 부분이 책의 백미 중 하나다.

후쿠자와 유키치 : 영국식 자유주의와 정치경제학을 받아들이며 ‘competition’을 번역했다. 그에게 경쟁은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 각자가 능력을 발휘해 발전을 도모하는 힘”에 가깝다. 더 잘하려고 애쓰는 과정이지만, 상대를 짓밟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익이 커지는 방향의 경쟁이다.

유길준 : 일본 유학 시절 후쿠자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경쟁론’과 『서유견문』에서 경쟁을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경쟁도 “문명과 부강함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각자가 분발하는 힘”에 가깝다. 공자의 활쏘기 비유를 인용하며, 예를 잃지 않는 경쟁, 서로를 자극하지만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경쟁을 강조한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이 “유길준이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정작 그가 말한 경쟁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약육강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한다.

반면, 가토 히로유키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그는 영어 struggle을 “경쟁”으로 번역하면서, 동식물 세계의 생존투쟁을 그대로 인간 사회에 가져온다. 그의 글에서 경쟁은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를 압도하고, 결국 열등한 존재는 자손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는 과정”이다. 여기서 “우승열패”,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힘을 얻는다. 경쟁은 더 나아지기 위한 자극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제거하는 자연법칙처럼 묘사된다.

저자는 이 세 사람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경쟁”이라는 같은 단어가 어떻게 자유주의적 자기계발, 그리고 사회진화론적 약육강식, 두 갈래로 찢어져 간 역사를 설명한다. 후쿠자와–유길준의 경쟁은 함께 나아가기 위한 경주에 가깝지만, 가토의 경쟁은 이기지 못하면 사라지는 싸움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 더 강하게 남은 것은 후자의 그림이다.

책의 1부와 2부는 이렇게 언어와 개념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우리가 너무 쉽게 쓰는 “경쟁, 생존경쟁, 적자생존, 진화” 같은 단어의 숨은 역사와 오해를 하나씩 드러낸다. 3부에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인간의 친연관계)』에서 실제로 말하고자 했던 바를 정리한다. 다윈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환경이 변함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이런 변이를 동반한 계승이 오랜 시간 누적되면서 한 종이 다른 종으로, 혹은 한 종이 여러 종으로 갈라져 나간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의 핵심에는 “종, 적응, 환경, 변이, 진화, 변형”이라는 개념들이 놓여 있는데, 저자는 우리가 이 단어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진화론을 다 안다고 착각해 온 것은 아닌지, 조용히 되묻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시선은 더 직접적으로 오늘의 한국 사회를 겨냥한다. 우리 사회는 “팔꿈치 사회”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서로를 밀어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교육은 시민을 기르는 장이라기보다, “경쟁 국가의 병정”을 만드는 체계가 되었고, 특목고–명문대–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는 공감과 연대보다는 “우리는 다르다”는 경계를 굳히는 역할을 한다. 경쟁은 사람들의 내면을 소모시키고, 끝없는 비교 속에서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키우며, 결국 자신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게 만든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다윈에게 질문을 돌린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경쟁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동시에 “생명체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더 중요한 것으로 꼽았다. 한 종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주변 생명들과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망이다. 오늘날 생태학에서 말하는 공생, 상호작용, 생태적 지위의 개념과 이어지는 지점이다. 붉은토끼풀–진홍토끼풀–꿀벌–뒤영벌의 관계처럼, 각 생물은 자신만의 자리를 찾고 서로의 틈을 메우며 공존한다. 다윈이 그려낸 세계는 “누가 누구를 이겼는가”로만 설명되는 세계가 아니라, 서로 기대고 얽힌 관계의 그물망이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결국 이것 같다. “인생과 사회를 오직 경쟁으로만 설명하는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관계와 상호연결의 언어로 다시 생각해 보라.” 다윈이 관찰한 것은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법칙이 아니라, 저마다의 자리에서 환경에 맞춰 살아남으려 애쓰는 다양한 생명의 모습이었다. 그 시선을 우리 삶에 옮겨 보이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살아가기 위해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에게 『다윈을 오해한 대한민국』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믿어 온 “경쟁의 상식”을 한 번쯤 의심해도 좋다는 허락을 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의심에서 출발할 때, 비로소 나와 타자를 모두 조금 덜 상처 주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했다.


'소명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후쿠자와는 개인의 자립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기초로 하는 영국 사상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한 반면, 가토는 국가의 개인에 대한 우월성을 지향하는 독일 사상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했다. 그래서 후쿠자와는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지향점으로 삼은 반면, 가토는 훗날 일본 제국주의 헌법 체제에서 볼 수 있는 독일식 입헌정치를 지향점으로 삼았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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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 - 삶의 인사이트가 넘치는 어른 사용법
이지행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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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는 얼핏 보면 그냥 귀엽고 가벼운 힐링 에세이 같지만, 몇 장만 넘기다 보면 슬쩍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나… 너무 오래 ‘어른 역할’만 하느라, 나로 사는 법을 까먹은 건 아닐까?”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회사, 집, 책임, 성실함으로 빽빽하게 채운 하루 뒤에 남는 게 묘한 허무뿐인 사람에게, 저자가 슬쩍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이제는, 조금쯤 잘 놀아도 되지 않겠냐고.”

그렇다고 “퇴사하고 세계 여행을 떠나라”, “비싼 취미 하나쯤 가져라” 같은 뻔한 해답을 내미는 책은 아니다. 거창한 성공 공식을 알려주거나, 현실을 통째로 박차고 나가자고 부추리기보다, 진짜 어른이 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 ‘놀아야 버틸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아주 현실적인 톤으로 들려준다.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도 좀 재미있게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조용히 스며든다.

무엇보다 저자 이지행의 이력 자체가 이 이야기에 힘을 실어 준다. 연봉 1천만 원 받으며 영화사에서 컵라면으로 버티던 시절부터, 더 배고픈 공연판, 하루 종일 게임만 해도 되는 것 같던 게임회사, 그리고 늘 ‘남들 쉴 때 일하는’ 광고회사까지, 그는 오랫동안 성실과 과로의 세계 한가운데에 서 있던 사람이다. 수천 번의 프레젠테이션과 주말 야근 끝에, 단테가 말한 것처럼 인생의 한가운데 어두운 숲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저 언덕 너머에는 편안한 어른의 삶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어른이 되어 보니 개미처럼 일만 하다 개미지옥 속에 빠져 있는 느낌.

“내가 이러려고 어른이 된 건가?”라는 자조 끝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어차피 못 놀아도 후회, 놀아도 후회라면 차라리 놀고 후회하자는 것. 그래서 평생의 짝꿍과 옥탑방 하나를 얻어,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한 번 놀아 보기 위해서’ 출근하는 삶을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부터 이 책이 말하는 ‘놀기’가 흔한 탈출 판타지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나답게 버티고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는 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책은 연극처럼 4막으로 구성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실수투성이 어른의 삶을 어떻게든 나다운 놀이로 바꿔 보려는 마음”이다. 첫 번째 막 ‘어른은 나도 처음이라’에서는 “이러려고 열심히 어른이 된 건가?”, “어차피 인생은 실수투성이다”, 끝없이 비교에 시달리는 마음이 구체적인 장면과 함께 펼쳐진다. 위대한 개츠비처럼 평생 쫓아온 환상이 사실은 허무한 동경에 불과할 수 있다는 깨달음, ‘이 산이 아닙니다’라는 푯말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느낌이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그렇다고 냉소로만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 속 고길동과 지니를 불쌍한 캐릭터로 랭킹하는 장난스러운 리스트 끝에, 소설 『향수』 속 ‘존재의 냄새를 잃어버린 남자’를 소환해 감정과 눈물을 잃어버린 삶의 위험을 짚는다. 어른이란 만남보다 이별이 많은 나이이기에, 슬퍼할 권리와 함께 울어 줄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에서, 이 책이 말하는 “잘 논다”는 것이 결국 더 깊이 느끼고 공감하는 법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후 막에서는 옥탑방 아지트 ‘놀고 있네’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강남 빌딩 숲 사이 작은 옥탑방에 부부가 출근하듯 오르내리며 기타를 치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중요한 건 이곳이 무책임한 도피처가 아니라는 점이다. 회사가 망해 가는 현실, 줄어든 수입, 주변의 시선과 내일에 대한 불안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저자는 더 이상 ‘언젠가의 안온한 삶’을 위해 오늘을 끊임없이 유예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여기서 떠오른 인용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다.

조르바는 오늘만 사는 인간이다. 그는 젊은 고용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목, 나는 말요… 금방 죽을 것처럼 삽니다. 산다는 게 이런 것 아닙니까? 죽기 전에 즐겨야죠! 서둘러야죠! 나는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합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야심 차게 준비하던 탄광 사업이 망한 뒤에도, 그는 좌절하는 대신 마지막으로 질펀하게 춤을 추며 말한다.

“보스, 이게 인생 아뇨! 이럴 땐 춤을 춰야 해요.”

실패하면 좀 어떤가, 잃어버리면 또 어떤가, 주어진 오늘 이 순간을 즐기면 그만이라는 이 태도가, 옥탑방에서 “오늘을 잘 놀아 두자”고 결심하는 이 부부의 마음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모두가 따라 부르는 교향곡 같은 정답의 템포 대신, 각자 자기 리듬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비유가 더 선명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흔을 “두 번째 사춘기”라고 부르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의 부모, 회사의 팀장,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면서 어느 순간 내 이름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저자는 사전에 적힌 ‘어른’의 정의를 되짚으며 어른이란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사람”에 더 가깝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내일은 누구에게나 여전히 한 번도 살아 본 적 없는 첫날일 뿐이라는 말과 함께, 거대한 도약 대신 오늘 삼겹살 한 끼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 완벽한 부모 대신 ‘오늘도 겨우 통과한 어설픈 어른’임을 인정하는 일, 1등이 아니어도 내 리듬으로 당당히 넘버투로 살아보겠다는 작은 결심들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고 말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의 “틀린 음도 괜찮다. 그걸 네 식대로 이어가면 그게 재즈”라는 말을 빌려, 엇박과 실수까지도 나만의 리듬으로 이어갈 때 그것이 곧 ‘나다움’이자 ‘아름다움’이 된다고 정리하는 대목에서는, ‘아름답다’의 ‘아름’이 ‘나’를 뜻한다는 설명과 함께 나답게 살아낸 하루의 가치가 또렷해진다.

읽는 동안 가장 좋았던 건, 이 책이 현실을 통째로 부정하거나 모두에게 퇴사를 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밥벌이와 꿈, 책임과 놀이 사이를 부딪히며 조율해 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어른답게보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오래된 욕구, 그리고 지금 자리에서 조금 덜 죄책감 가지고 쉬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당장 옥탑방까지는 아니어도, 집 한 켠의 작은 공간이나 잠깐의 산책 시간, 혹은 부담 없이 끄적일 수 있는 노트 한 권 같은 ‘나만의 쉬는 자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는,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문득 “이러려고 어른이 된 건가?”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오는 사람에게, 퇴사와 이직, N잡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사람에게, 부모와 직장인, 배우자라는 역할 속에서 ‘나’라는 이름이 흐릿해진 사람에게 특히 건네고 싶다. 정답이 없는 인생이라면, 언젠가 한 번쯤 “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 책은 그 결심 위에 작은 불씨 하나를 더 올려놓는, 유쾌하면서도 은근히 진지한 어른을 위한 삶의 태도 안내서였다.

본 포스팅은 푸른향기 서포터즈 13기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로 직접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80세 노인으로 태어난 어느 아이의 이야기다. 사실 F.스콧 피츠제럴드가 1922년에 발표한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이라는 단편소설이 그 원작이다. 소설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남자, 즉 늙은이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한 남자의 삶을 다룬다. 벤자민 버튼은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와 맞담배를 피고, 세상사에 대해 논쟁하다가 나이가 들어 걷지도 못하는 기저귀 찬 갓난아이로 생을 마감한다. 보통의 인생과 반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늙어가면서 삶의 경험을 쌓고 성숙해진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고 소설은 말한다. 어른으로 태어났다고 한들,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로 태어났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는 거다. 원래 인생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이니까 말이다. 세상을 살아보았다 한들, 내일은 또다시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첫날일 뿐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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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툰 2 - 경제 고전툰 2
강일우.김경윤.송원석 지음 / 펜타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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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재미와 정보를 주는 영상들을 떠올리며 책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엔 이타적인 콘텐츠 같지만,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더 많은 구독자와 광고 수익, 인지도를 얻기 위해 영상을 만든다. 자기 이익을 좇아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웃음과 지식을 나눠 준다는 점에서, 이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하는 좋은 비유다. 사람들은 각자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만, 경쟁과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는 그 이기심이 전체의 부와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스미스의 핵심 주장이다.

이 책은 이 추상적인 개념을, 스미스의 삶을 따라가며 구체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자란 소년 스미스는 책을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동시에 항구에서 석탄을 나르고 흥정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왜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할까,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를 궁금해했다. 글래스고 대학에서 계몽주의 철학자 허치슨에게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도덕적 존재”라는 사상을 배우며, 인간이 과연 이기적인가 도덕적인가라는 평생의 질문을 품게 된다. 옥스퍼드에서 경쟁 없는 교육 현장을 보며 경쟁이 사라지면 사람은 게을러진다는 통찰도 얻는다.

교수가 된 뒤 급격히 변하는 글래스고의 무역과 산업 현장을 직접 목격한 스미스는, 인간 노동과 생산, 무역이 만들어 내는 부의 메커니즘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도덕감정론’으로 공감 능력을 가진 인간을 그려낸 그는, 이후 유럽 여행에서 계몽주의자와 중농주의자들을 만나 “부는 농업만이 아니라 모든 생산적인 노동에서 나온다”는 확신을 굳힌다. 새벽 다섯 시 산책과 집필을 반복한 끝에 완성한 『국부론』에서 그는 국가의 부가 금과 은이 아니라 노동 생산성에서 나오며,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질 때 무역은 상호 이익이 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행동이 시장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조정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국방·사법·도로·항만 같은 공공재는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보며, 시장을 만능으로 신격화하지도 않는다.

책의 다음 장면에서는 ‘지혜의 광장’이라는 가상의 북토크가 펼쳐진다. 진행자 아고라가 애덤 스미스, 케인스, 리카도를 불러 “시장은 정말 만능인가?”를 두고 토론을 연다. 스미스는 자신이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무조건적인 해결사가 아니며, 공정한 경쟁과 충분한 정보, 올바른 제도가 있을 때에야 시장이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역할 역시 국방과 사법, 공공사업 등에서 분명히 인정했음을 환기한다. 케인스는 대공황과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시장의 자율 조정만 기다리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파국을 맞게 된다고 반박하며, 정부의 적극적 재정 지출과 공공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리카도는 장기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에 기반한 경쟁이 전체 부를 극대화한다며, 과도한 보호와 보조금이 오히려 비효율을 낳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 사람의 대화를 통해 독자는 ‘시장 vs 정부’라는 흑백 구도가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과 균형을 생각하게 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스미스의 낙관을 뚫고 나온 다른 목소리들도 차례로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돈이 돈을 낳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가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파헤치며, 자본주의의 축적 메커니즘과 착취 구조를 비판한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 소유의 불평등과 불로소득이 진보 속에서 오히려 빈곤을 심화시키는 핵심 원인이라고 보고, 토지에서 생기는 이익을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명품과 SNS 과시, 유행 쫓기를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으로 분석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비이성적 욕망이 어떻게 계급과 모방을 통해 재생산되는지 보여준다. 조선의 박제가는 절약만을 미덕으로 삼는 풍조를 비판하며, 합리적 소비와 활발한 교류가 생산을 일으키고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책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출발해, 케인스와 리카도, 마르크스·헨리 조지·베블런·박제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사상을 교차시킨다. 그 과정에서 시장과 국가, 노동과 자본, 소비와 욕망, 토지와 불평등 같은 문제들이 한 권의 ‘경제 고전툰’ 안에서 입체적으로 엮인다. 결국 독자에게 남는 질문은 단순히 시장에 맡길 것인가, 국가가 개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누구를 위한 경제를 만들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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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재미와 정보를 주는 영상들을 떠올리며 책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엔 이타적인 콘텐츠 같지만,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더 많은 구독자와 광고 수익, 인지도를 얻기 위해 영상을 만든다. 자기 이익을 좇아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웃음과 지식을 나눠 준다는 점에서, 이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하는 좋은 비유다. 사람들은 각자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만, 경쟁과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는 그 이기심이 전체의 부와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스미스의 핵심 주장이다.

이 책은 이 추상적인 개념을, 스미스의 삶을 따라가며 구체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자란 소년 스미스는 책을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동시에 항구에서 석탄을 나르고 흥정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왜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할까,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를 궁금해했다. 글래스고 대학에서 계몽주의 철학자 허치슨에게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도덕적 존재”라는 사상을 배우며, 인간이 과연 이기적인가 도덕적인가라는 평생의 질문을 품게 된다. 옥스퍼드에서 경쟁 없는 교육 현장을 보며 경쟁이 사라지면 사람은 게을러진다는 통찰도 얻는다.

교수가 된 뒤 급격히 변하는 글래스고의 무역과 산업 현장을 직접 목격한 스미스는, 인간 노동과 생산, 무역이 만들어 내는 부의 메커니즘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도덕감정론’으로 공감 능력을 가진 인간을 그려낸 그는, 이후 유럽 여행에서 계몽주의자와 중농주의자들을 만나 “부는 농업만이 아니라 모든 생산적인 노동에서 나온다”는 확신을 굳힌다. 새벽 다섯 시 산책과 집필을 반복한 끝에 완성한 『국부론』에서 그는 국가의 부가 금과 은이 아니라 노동 생산성에서 나오며,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질 때 무역은 상호 이익이 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행동이 시장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조정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국방·사법·도로·항만 같은 공공재는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보며, 시장을 만능으로 신격화하지도 않는다.

책의 다음 장면에서는 ‘지혜의 광장’이라는 가상의 북토크가 펼쳐진다. 진행자 아고라가 애덤 스미스, 케인스, 리카도를 불러 “시장은 정말 만능인가?”를 두고 토론을 연다. 스미스는 자신이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무조건적인 해결사가 아니며, 공정한 경쟁과 충분한 정보, 올바른 제도가 있을 때에야 시장이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역할 역시 국방과 사법, 공공사업 등에서 분명히 인정했음을 환기한다. 케인스는 대공황과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시장의 자율 조정만 기다리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파국을 맞게 된다고 반박하며, 정부의 적극적 재정 지출과 공공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리카도는 장기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에 기반한 경쟁이 전체 부를 극대화한다며, 과도한 보호와 보조금이 오히려 비효율을 낳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 사람의 대화를 통해 독자는 ‘시장 vs 정부’라는 흑백 구도가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과 균형을 생각하게 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스미스의 낙관을 뚫고 나온 다른 목소리들도 차례로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돈이 돈을 낳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가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파헤치며, 자본주의의 축적 메커니즘과 착취 구조를 비판한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 소유의 불평등과 불로소득이 진보 속에서 오히려 빈곤을 심화시키는 핵심 원인이라고 보고, 토지에서 생기는 이익을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명품과 SNS 과시, 유행 쫓기를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으로 분석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비이성적 욕망이 어떻게 계급과 모방을 통해 재생산되는지 보여준다. 조선의 박제가는 절약만을 미덕으로 삼는 풍조를 비판하며, 합리적 소비와 활발한 교류가 생산을 일으키고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책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출발해, 케인스와 리카도, 마르크스·헨리 조지·베블런·박제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사상을 교차시킨다. 그 과정에서 시장과 국가, 노동과 자본, 소비와 욕망, 토지와 불평등 같은 문제들이 한 권의 ‘경제 고전툰’ 안에서 입체적으로 엮인다. 결국 독자에게 남는 질문은 단순히 시장에 맡길 것인가, 국가가 개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누구를 위한 경제를 만들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다.




바로 이것이 애덤 스미스의 핵심 주장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좇지만, 경쟁과 교환이 이뤄지는 시장에서는 그 행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이런 자율적 조정의 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체계적으로 펼친 ’국부론’은 한 괴짜 교수의 날카로운 관찰력 18세기 스코틀랜드의 급격한 경제 변화, 그리고 유럽 전역을 훱쓴 계몽주의 사상이 뒤섞여 빚어낸 산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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