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영: 소년병과 아인슈타인
여현덕 지음 / 드러커마인드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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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덕의 『AI 경영: 소년병과 아인슈타인』은 “AI가 세상을 바꾼다” 같은 추상적인 감탄사가 아니라, 우리가 AI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묻는 책이다. 단순한 기술 해설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저자가 반복해서 끌어오는 비유 ― 지뢰밭에 투입된 소년병, 전혀 다른 시야를 여는 아인슈타인, 그리고 감정 없이 끝없이 일하는 AI ― 는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로 보지 말고 인간과 조직의 문제까지 함께 생각하라고 요구한다.


책의 출발점은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튜링은 “기계가 사람처럼 대답해 사람과 구별되지 않으면 그건 지능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거기에 의문을 단다. 그게 정말 인간적인 의미의 지능인가, 아니면 훈련된 흉내인가? 이 질문은 지금의 생성형 AI에 그대로 적용된다. 답변은 점점 사람 같아지지만, 그게 정말 ‘이해’인지 아니면 ‘모사’인지 우리는 여전히 구분하지 못한다.


마빈 민스키의 관점도 인용된다. 민스키는 지능을 하나의 거대한 의식으로 보지 않고, 많은 작은 기능(에이전트)의 조직적 결합으로 봤다. 오늘날 AI 역시 이 조합과 누적의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즉 AI는 이미 복잡하고 강력한 수준까지 왔고,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니다.


여기서 책은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다. 생성형 AI 시대에 중요한 건 ‘협업지능(CQ, Collaborative Intelligence)’, 즉 인간과 AI가 함께 만드는 지능이다. 인간은 맥락, 감정, 책임, 윤리를 제공하고 AI는 지치지 않는 분석과 반복 실행을 제공한다. 결국 앞으로의 단위는 ‘나 혼자’가 아니라 ‘나+AI’ 팀이다. 이는 단순한 생산성 얘기가 아니다. “AI가 다 하게 두고 인간은 빠지면 된다”가 아니라, “AI가 낸 결과를 사람이 이해하고, 방향을 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걸 사람과 AI의 ‘공진화’라고 부른다. 인간을 없애는 AI가 아니라 인간을 확장시키는 AI. 그는 이것이 ‘신이 된 인간(호모 데우스)’을 만드는 방향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더 윤리적인 목표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갈림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사이보그의 길, 즉 AI를 효율 극대화 수단으로만 쓰면서 더 빠르게, 더 싸게, 더 많이 돌리는 길. 다른 하나는 케이론의 길, 즉 AI가 인간의 가치와 목적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길이다. “AI로 얼마나 더 벌 수 있나?”에서 멈추지 않고 “AI로 어떤 사회를 만들 건가?”까지 묻는 길이다. 저자는 이 선택이 앞으로 기업 문화, 교육 방식, 노동의 존엄을 결정할 거라고 본다.


흥미로운 건 이 거대한 얘기가 결국 현실적인 질문으로 내려온다는 점이다. 즉 “AI로 도대체 뭘 도울 건데?”라는 문제정의다. 책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를 예로 든다. 언덕 위 집을 바라보지만 그 언덕을 오를 수 없는 한 여성. AI는 그녀의 다리를 마법처럼 고쳐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율주행 휠체어, 보조 외골격 슈트 같은 현실적인 해결책을 설계할 수는 있다. 결국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있다. 이걸 저자는 ‘AI Thinking’이라고 부른다. AI를 쓰는 능력보다, AI를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묻는 능력이 인간 쪽 역할이라는 거다.


저자는 또 한 가지 경고를 한다. 우리가 AI가 준 답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인간은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 알고리즘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맞겠지” 하고 넘기는 순간, 우리는 검증도, 책임도, 창의성도 내려놓는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점점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협업지능은 그냥 “사람+AI=시너지!”라는 낙관적인 구호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스스로 쓸모를 잃는다”는 현실적인 경고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지점은 감정의 문제다. 우리는 보통 AI를 ‘차갑고 완벽하게 이성적인 존재’라고 상상한다. 그런데 책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끌어온다. 인간은 감정이 없으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보여준 것처럼, 감정이 망가지면 오히려 이성적인 판단 능력까지 무너진다. 즉 감정은 방해물이 아니라 방향 감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LLM은 반쪽짜리다. 수많은 데이터를 먹고, 그럴듯한 답을 내지만, 맥락적 배려나 윤리적 책임은 없다. 그래서 거짓을 자신 있게 말하는 할루시네이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책은 다음 단계를 “감성 인공지능”, 즉 인간의 정서 상태를 읽고 반응하는 AI에서 찾는다. 단순히 말을 잘하는 AI를 넘어서, 운전자의 피로를 감지해 사고를 막고, 자폐 스펙트럼 아동의 의사소통을 돕고, 돌봄과 안전 영역까지 개입하는 기술 말이다. 저자는 이것을 “2AI”라 부르며, 결국 AI가 인간의 마음과 연결되지 않으면 끝내 신뢰받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책의 마지막은 산업의 현재로 내려온다. 빅테크와 스타트업들은 엄청난 자본과 인프라를 계속 투입하고 있고, AI는 식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깊이 들어오는 중이다. 저자는 지금을 “AI의 겨울”이 아니라 “AI의 가을”이라고 부른다. 이미 싹은 텄고, 이제 수확과 재편의 단계라는 뜻이다. 이건 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일에 직접 영향을 주는 현재형 이슈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AI를 두려워할 이유도, 맹신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AI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AI를 어떤 기준과 책임으로 사용할 것인가다. 저자는 말한다. AI는 불과 같다. 불은 방을 따뜻하게도 만들고 집을 태워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불이 아니라, 불을 쥔 사람이다. 이 책은 그 불을 쥐고 있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생성AI 시대가 열리면서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이 멋지게 만나는 협업지능(CQ:Collaborative Intelligence/Quotient)이 탄생한다면 인류 역사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까? 두 지능이 자유자재로 통합되어 ‘인간의 창조지능,감성지능‘과 ’AI의 무심한 지능’이 합쳐져 지능이 증강된다면 장차 무슨 지능이 탄생할까? 신을 닮은 호모데우스의 지능이 탄생할까? 초거대 증강지능이 탄생할까?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인간이 AI의 힘을 빌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호모데우스(Homo Deus)가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예견했다. 호모데우스는 라틴어로 Homo(인간)와 데우스(Deus=God)를 결합한 조어로 ‘신이 된 인간’을 뜻한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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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0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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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0권은 거대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며 자신을 지켜내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보여준다. 이 권에서 중요한 건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다. 오히려 무너지는 시대 속에서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표정과 마음이다. 그 마음들이 얽힐 때, 이 소설은 더 이상 “역사소설”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닿는 이야기로 바뀐다.


무엇보다 먼저 드러나는 건 세대의 교체다. 이전 세대가 겪었던 고통과 책임이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게 넘어가는 순간이 아주 선명하게 그려진다. 서희와 길상의 아들인 환국은 서울 K학교에 들어가며 조선 지식인 계층으로 들어갈 기회를 얻는다. 겉으로만 보면 가능성의 세대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학교 안에서도 그는 여전히 “조선인”으로 취급되고, “누구의 아들이냐”로 판단받는다. 같은 학생에게 “아버지가 종놈 아니냐”라는 모욕을 듣고 참지 못해 싸움이 벌어진다. 그 일 앞에서 서희는 분명하게 말한다. 환국의 아버지는 종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사람이라고. 이 장면은 단순히 아이들끼리의 다툼이 아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사람의 가치는 여전히 집안과 출신으로 평가되고, 독립운동을 한 삶조차 떳떳하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환국의 세대는 공부만 잘하면 올라갈 수 있는 세대가 아니다. 존재 자체를 의심받고,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는 곳에서 출발한다. 이전 세대가 “집안과 땅을 지켜라”라는 요구 속에 살았다면, 이 세대는 “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해라”라는 요구를 받고 시작한다.


이 지점은 서희와 길상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의지했고 가정을 꾸렸지만 결국 다른 길을 택한다. 서희는 무너진 최참판댁의 땅과 이름을 되찾으며 집안의 명예와 삶의 기반을 다시 세우려 한다. 길상은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독립운동의 길을 간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지만, “함께 있는 것”보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택한다. 이별은 냉정함이 아니라 선택이다. 우리는 서로를 믿지만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어른들의 사랑이다. 사랑을 감정으로 붙잡아두는 대신 책임으로 바꾸어 버티는 방식이다. 이별이 곧 단절이 아니라 역할의 분리라는 감각이 여기서 생긴다. 이 감각은 곧 세대의 감각이기도 하다. 이전 세대가 한 가문을, 한 터전을 붙들고 버텼다면 다음 세대는 자기 존엄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낼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시대에 던져진다.


이 권에서 사랑 이야기는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그것은 달달하거나 안정된 결말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삶의 방향을 드러내는 장치다. 명희는 대표적이다. 그녀는 ‘신여성’이라 불리며 교육을 받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상현을 향한 마음을 고백하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결국 안정적인 집안과 조건을 가진 쪽으로 현실적인 결혼을 택한다. 그러나 그 결혼은 곧 자기 자신이 점점 비어가는 과정이 된다. 그녀는 말한다. “다 버리고 나니까 편하다.” 이것은 진짜 평안이라기보다 모든 기대와 부끄러움까지 다 잘라낸 후의 무감각에 가깝다. 명희는 그 무감각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한 나,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나는 지금 누구인가. 그녀는 체면을 위해 순응하는 여자가 아니라, 순응하고 있는 자신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여자다. 그래서 명희는 단순히 누군가의 연인이나 누군가의 신부로 소비되지 않는다. 시대 앞에서 흔들리는 ‘한 사람’으로 선다.


홍이와 보연, 장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홍이는 그저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한다. 부산에서 운전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보연과 결혼하고, 아이도 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완전히 현재에만 머물지 못한다. 과거의 인연인 장이가 다시 찾아오면서 관계가 흔들리고, 그 일은 곧바로 개인적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비난, 도덕적 낙인, 집안의 갈등으로 번진다. 보연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홍이를 버리지 않고 붙든다. 사랑은 서로에게 피난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 그 자체이기도 하다. 결혼식 날 비바람이 몰아치고 초례청에서 닭이 이유 없이 죽는 장면 같은 징조는, 이 사랑이 쉽게 안정될 수 없음을 미리 알려준다. 이 서사는 “사랑하면 된다”는 위로를 거부한다. 이들은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현실 속에 살고 있다.


『토지』 10권에서 특히 강하게 다가오는 건 여성 인물들의 존재감이다. 이 소설은 여성들을 주변 인물로 두지 않는다. 선혜는 명동에서 찻집을 운영하며 자기 공간을 스스로 만든다. 여옥은 전도사업을 하면서 신앙과 애국을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하고, 그것을 실제 사명으로 삼는다. 그녀에게 복음은 단순히 “참아라”라고 말하는 위로가 아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굶주리는 현실을 바꿀 힘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미국 선교사에게까지 직접 말한다. 기화(봉순)는 기생 출신이라는 낙인을 안고도 사랑했던 상현의 아이를 혼자 낳아 키우며 자신의 책임을 혼자 떠안는다. 그리고 임이네 같은 인물은 불편할 만큼 집요하고 주변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소설은 그조차 쉽게 치워버리지 않는다. 그녀의 존재는 관계를 집어삼키는 집착이 결국 어떤 파열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이 여성들은 누구의 그림자나 장식이 아니라, 자기 신념과 자기 한계를 가지고 스스로의 자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당시 시대를 생각하면 이건 매우 과감한 시선이다. 여성은 단순히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시대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주체로 나온다.


이 권은 또한 식민지 현실을 배경이 아니라 현재형의 위협으로 가져온다. 일본 헌병이 평사리에 들이닥쳐 마을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협박하고 끌고 가는 장면은 이전과 다르다. 이전까지 폭력은 “누가 잡혀갔다더라” 하고 전해 듣는 이야기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독자가 그 폭력의 한가운데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공포는 소문이 아니라 현장이다.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거짓 소문과 그에 따른 조선인 학살 장면은 더 노골적이다. 국가가 불안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을 통해, 혐오가 어떻게 제도화되는지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일본의 폭력만 말하지 않는다. 1920년대 조선 내부에서 벌어지는 물산장려운동, 형평사 운동 같은 흐름도 비춘다. ‘국산품을 쓰자’,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자’는 구호는 자부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서민에게 새로운 부담을 안기거나 조선 사회 안의 오래된 차별 구조를 건드리며 갈등을 만든다. 적은 바깥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는 것을, 소설은 외면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버팅기는가. 『토지』 10권은 그 답을 거창하게 쓰지 않는다. 버틴다는 건 전투에 나서는 거대한 영웅의 행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버틴다는 건 깨지지 않는 척 억지로 웃는 것도 아니다. 버틴다는 건 가족이라는 복잡하고 상처투성이의 관계를 쉽게 끊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자기 마음을 조금이라도 지켜내려는 일이다. 홍이는 아버지 용이를 보며 존경과 미안함을 함께 느낀다. 동시에 어머니 임이네에겐 애증, 부담, 죄책감이 한꺼번에 겹친다. 사랑하기 어렵지만 완전히 끊어낼 수도 없는 관계. 그 모순이 그를 붙잡아 준다. 또 다른 방식의 버팀은 스스로 마지막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상현에게 그 자리는 글이다. 그는 술을 끊고, 의지하던 관계를 일부러 멀리하고, 소설 쓰기에 매달린다. 글쓰기는 그에게 취미가 아니라 “적어도 이 말만은 내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길상과 홍이가 참새 어미를 보며 나누는 짧은 순간처럼,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조용히 마음을 건네는 장면 또한 버팀의 방식으로 나온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나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구나”라는 감각 하나를 붙잡기 위해 산다. 그 작은 온기가 그들을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한다.


결국 『토지』 10권은 거대한 역사가 어떻게 개인의 삶 속으로 직접 내려앉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잃지 않으려 했는지를 따라간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거대한 사건 이름보다 얼굴들이 먼저 떠오른다. 서울에서 맞서야 했던 환국의 눈빛, 체념과 자존심 사이에 매달린 명희의 침묵, 비바람 속에서 위태롭게 시작된 홍이의 혼인, 끝까지 남편 곁을 지키려는 보연의 단단함, 참새를 보며 마음 깊은 곳이 흔들리는 길상의 순간, 그리고 평사리로 들이닥친 헌병의 발소리.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무너지는 시대 속에서 이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지키려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지키며 버티고 있는가.


#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chae_seongmo

@dasanbooks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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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씹어먹는 기술 - 공부보다 재밌는 독서법, 여기 다 있음
김수영 지음 / 포춘쿠키출판국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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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살고 있다. 짧은 영상, 빠르게 소비되는 요약, 타인의 생각을 짧게 편집한 클립들. 그래서일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면 굳이 책까지 읽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수영 책임 프로듀서의 『책을 씹어먹는 기술』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자”가 아니라 “왜 지금도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읽었다면 어떻게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다. 저자는 독서를 ‘행위’로 끝내지 않고 ‘기술’로 끌어올린다. 읽기 전 준비, 읽는 중의 집중과 사유, 읽은 후의 확장까지 전 과정을 설계 가능한 루틴으로 보여주면서 독서를 삶의 인프라로 만드는 방법을 안내한다.

책은 먼저 독서의 가치를 아주 기본에서부터 다시 짚는다. 저자는 말한다. 인터넷 검색이나 짧은 영상이 ‘점’이라면, 책은 ‘선’이자 ‘면’이라고. 어떤 주제든 한 문장짜리 사실 조각만 모으면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체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한 권의 책은 저자가 오랜 시간 생각하고 다듬은 논리, 맥락, 역사, 배경, 반론까지 품고 있어서 지식의 뼈대와 살을 한꺼번에 제공한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에 관해 검색하면 “지구가 뜨거워진다”라는 단편 정보는 금방 얻을 수 있지만, 그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어떤 사회적・경제적 영향을 낳는지, 앞으로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는 전문가가 구성한 책을 통해서만 ‘연결된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서는 이처럼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춰 주는 과정이다. 한 챕터, 한 문단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아하’ 하고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그냥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바로 그 순간들 덕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해력 또한 한 겹이 아니다. 표면에 적힌 내용만 받아들이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말하지 않은 함의를 읽어내고, 타당성을 점검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생각을 만들게 된다. 저자는 이를 표면적 이해, 함축적 이해, 비판적 이해, 창조적 이해의 네 층으로 설명한다. 이 네 층이 단지 시험 성적이나 지식 자랑에만 쓰이는 건 아니다. 실제로 복잡한 상황에서 감정과 사실을 구분하거나, 상대의 의도를 읽고, 판단해야 하는 순간마다 우리가 꺼내 쓰는 건 이 여러 층의 이해력이다. 즉 독서는 단순히 “아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할 줄 아는 사람”으로 우리를 설계해 준다.

이 지점에서 책은 사고력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강조한다. 책 읽기는 눈으로 따라가는 수동적 활동이 아니라 저자와의 일대일 토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말은 사실일까?”, “왜 이런 결론으로 갔지?”, “나는 동의하지 않는데?” 같은 내적 질문을 던지며 읽는 순간, 우리는 이미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이 뇌 과학적으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전전두엽을 비롯해 논리적・종합적 사고를 담당하는 여러 영역이 책을 읽을 때 동시에 활성화되며 뇌의 연결망이 강화된다는 설명은, 독서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지능의 기초 체력 훈련’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텍스트를 읽으며 구조를 분석하고(분석적 사고), 정보들을 엮어 전체 맥락을 잡고(종합적 사고), 그 주장에 설득력이 있는지 따져보는 과정(평가적 사고)은 결국 비판적 사고의 근육을 만드는 루틴이다. 이 능력은 지금처럼 가짜 뉴스와 과장된 주장, 자기 확신만 큰 목소리가 넘쳐나는 시대에야말로 필수적인 생존 장비다. 무엇을 믿을지 고르는 힘, 무엇을 거를지 알아보는 힘, 무엇이 나에게 유리하게 왜곡된 정보인지 냄새 맡는 힘. 저자는 이 힘이 독서로 길러진다고 말한다.

독서는 사고만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넓히는 일이라는 점도 강조된다. 특히 소설이나 전기, 서사 중심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누군가의 상처, 선택, 망설임, 죄책감, 기쁨을 따라가다 보면 ‘저 사람 입장에서 세상을 보면 저건 이해가 되네’라는 감각이 생긴다. 심리학 연구에서는 이런 몰입 독서를 통해 뇌의 거울 뉴런이 활성화되고, 실제로 타인의 감정을 더 잘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 높아진다고 본다. 공감은 단순히 “너 힘들겠다” 하고 말하는 감정적 동조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그런 상황이 생겼는지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 그 감정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정서적 공감, 그리고 실제로 돕는 행동적 공감으로까지 이어진다. 난민의 기록을 읽고 나면 ‘안타깝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 사람이 떠밀린 조건 자체를 생각하게 되고, 어떤 시대의 정치적 탄압을 다룬 전기를 읽고 나면 그 선택이 ‘나 같으면 왜 못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이렇게 공감 능력은 타인에 대한 관용, 다양성에 대한 존중, 쉽게 단정하지 않는 태도로 확장된다. 즉 독서는 나라는 좁은 세계를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던 태도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언어 능력과 표현력 역시 독서의 큰 축으로 다룬다. 저자는 어휘력은 단순히 말을 많이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을 정확하게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기쁘다 한 단어로 끝나는 날과, 들뜬 마음인지 뿌듯함인지 안도인지 설렘인지까지 구분해서 말할 수 있는 날은 다르다. 단어의 수는 곧 사고의 해상도다. 다양한 표현을 알고 쓸 수 있을수록, 나 자신을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고 타인과도 더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다. 독서는 먼저 듣고 이해하는 ‘수용 어휘’를 폭발적으로 늘려주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내가 실제로 구사하는 ‘표현 어휘’로 옮겨 붙는다. 단어만이 아니다. 문장 구성, 수사법, 문체도 달라진다. 긴 호흡으로 논리를 쌓는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전달할 때에도 기승전결이 생기고, 설득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기며,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표현의 온도 조절이 가능해진다. 이건 발표 자리에서든, 친구와의 갈등 조율에서든, SNS 캡션 한 줄을 쓸 때든 전부 영향을 준다. 결국 말과 글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읽은 만큼 정교해진다는 점을 이 책은 아주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간접 경험과 상상력에 대한 부분은 이 책이 특히 쉽게 설득하는 대목이다. 책은 안전한 ‘시뮬레이션 공간’이다. 우리는 책 속에서 우주비행사가 되었다가, 전쟁터의 간호병이 되었다가, 어느 절벽 끝에서 인생을 걸어야 하는 누군가의 순간을 통과한다. 실제로 가지 못할 장소, 실제로 겪기 두려운 장면, 실제로는 너무 위험한 선택을 정신적으로는 체험해본다. 뇌는 상상된 경험과 실제 경험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이런 간접 경험은 단순한 상상놀이를 넘어서 실제 대응력, 문제해결력, 선택지의 폭까지 키워준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른 결말은 가능했을까?” 같은 가정 질문을 던지는 버릇은 결국 창의력의 근육이 된다. 저자는 상상력은 예술가에게만 필요한 재능이 아니라, 문제를 새 방향으로 풀고자 할 때 누구에게나 필요한 기본 역량이라고 설명한다. 독서는 이 상상력 발전소를 꾸준히 돌리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비용 없는 방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독서가 주는 즐거움 그 자체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독서를 때때로 너무 ‘유익’의 언어로만 이야기한다. 공부에 좋다, 사고력에 좋다, 진로에 좋다. 하지만 이 책은 독서가 주는 순수한 쾌감 자체를 한 축으로 세운다. 서사에 빨려 들어가며 시간 개념이 사라지는 몰입감, 궁금했던 질문이 풀릴 때 오는 “아하!”의 짜릿함, 누군가의 문장을 만났을 때 마음이 툭 치이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이 천천히 나를 안정시키며 하루의 긴장을 풀어주는 경험들. 이건 빠르고 강한 자극을 주는 디지털 콘텐츠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충만함이다. 저자는 이를 “느린 즐거움”이라 부른다. 이 느린 즐거움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정신의 회복이라고까지 설명된다. 실제로 독서는 스트레스를 유의미하게 낮추고, 수면의 질을 돕고, 감정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반복적으로 소개된다. 즉 독서는 ‘멍 때리기’가 아니라, 뇌는 움직이지만 마음은 쉬는 적극적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독서를 그 자체로 끝내지 않고, 독서를 내 삶에 편입시키는 방법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이다. 그냥 “읽어라”가 아니라 “읽을 책을 어떻게 고를 것인가”, “언제 읽을 것인가”, “어디에서 읽을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하나하나 짚는다. 먼저 책 선택에 관해서 저자는 호기심을 출발점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요즘 내가 계속 생각하게 되는 주제가 뭐지?’, ‘요즘 왜 이 감정이 자꾸 반복되지?’ 같은 질문이 결국 독서의 방향을 잡아준다. 흥미롭게도 이는 단순 취향 문제가 아니라, 나의 현재 상태를 점검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지식이 필요해서 읽는 책, 위로가 필요해서 읽는 책, 다른 시각을 만나고 싶어서 읽는 책 등 독서의 목적을 명확히 하면, 수많은 제목들 앞에서 길을 잃지 않게 된다. 이건 결국 ‘나한테 맞는 책’을 고르는 감각을 키우는 훈련이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저자는 독서 편식을 경계한다. 우리가 익숙한 장르만 계속 읽다 보면 생각은 편안해지지만, 시야는 좁아진다. 비슷한 주장만 반복해서 만나는 동안 우리는 점점 확신만 커지고 균형감각은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책은 새로운 분야로의 가벼운 확장을 꾸준히 권한다. 예를 들면 소설을 좋아한다면 과학자의 에세이로 건너가 보고, 인문학을 읽는 사람이라면 사회과학의 입문서를 더해보고, 논픽션을 주로 읽는 사람이라면 실화 기반 소설로 감정을 흔들어보라는 식이다. 이런 횡단 독서는 내가 모르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하게 해주고, 다른 분야의 언어로 내 분야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며, 결과적으로는 창의적 사고의 원천이 된다.

실제로 책을 고를 때 도움이 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다룬다. 서평을 읽을 때는 “재밌어요” 같은 감상보다, 왜 좋았는지/어디서 막혔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서평을 참고하라고 제안한다.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쓴 솔직한 서평은 의외로 큰 힌트가 된다. 추천 알고리즘, 지인의 추천, 서점이나 도서관이 선정한 ‘이 달의 책’ 같은 큐레이션도 잘만 쓰면 고르는 시간을 줄여준다. 또 한 가지 실용적인 팁은 목차 분석이다. 목차를 한 번 훑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 흐름으로 전개되는지, 주장과 사례의 비중이 어떤지, 내가 지금 원하는 정보가 실제로 들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목차는 말 그대로 책의 지도다. 지도를 보고 길을 떠나는 것과, 감으로 떠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책은 “나에게 맞는 난이도”를 고르는 문제도 중요하게 다룬다. 독서에는 ‘근접 발달 영역’이 있다고 설명한다. 너무 쉬우면 지루해서 금방 흥미를 잃고, 너무 어려우면 좌절해서 금방 포기한다. 가장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 “약간 어렵다”라고 느껴지는 책이다. 한 페이지를 읽었을 때 모르는 단어가 서너 개 정도 나오지만 맥락은 따라갈 수 있고, 80~90%는 이해되지만 나머지 10~20%는 생각을 요구하는 정도. 이것이 뇌를 자극하면서도 꺾지 않는 난이도다. 이 감각을 익히면 독서는 더 이상 의지력 싸움이 아니라 재미있는 훈련이 된다. 초급 단계에서는 가독성이 좋은 입문서를 통해 완독 경험을 쌓고, 중급에서는 다양한 장르와 비판적 읽기를 연습하며, 고급으로 갈수록 전문서나 고전을 통해 한 주제를 깊이 판다. 즉, 독서는 ‘읽었다/안 읽었다’가 아니라 ‘어디까지 올라갔나’를 보는 계단식 성장 과정이다.

책은 읽기 전 준비, 읽는 환경까지도 깊게 파고든다. 머리말(프롤로그)과 맺음말(에필로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라는 조언이 특히 흥미롭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 머리말에서 저자가 던지는 문제의식과 질문을 먼저 잡아두면, 읽는 동안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건가?”라는 식으로 독서의 초점이 생긴다. 다 읽은 뒤엔 맺음말로 돌아가 결론과 메시지를 다시 수집하면서 전체 구조를 재정리할 수 있다. 심지어 다시 읽을 땐 맺음말부터 먼저 보고 시작해도 새로운 각도로 책이 열린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팁 같지만, 사실은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잊어버리는 독서’와 ‘내 사고 체계 속으로 설치되는 독서’를 가르는 차이이기도 하다.

독서 공간에 대한 부분도 현실적이다. 독서 공간은 그냥 의자와 책상이 아니라, “여기 앉으면 읽는 모드로 전환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반복적으로 같은 자리에서 읽으면 그 장소 자체가 “이제 집중할 시간”이라는 신호가 된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맥락 의존 학습이라고 불리는 부분인데, 결국 장소와 행동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집중 에너지를 아끼는 전략이다. 완벽한 고요만이 답도 아니다. 일정한 배경 소음(자연음처럼 안정적인 40~50dB 정도)은 오히려 집중을 돕고, 갑작스러운 말소리나 알림처럼 주의를 끊어먹는 요소만 제거해 주면 된다. 빛 역시 중요하다. 너무 어둡지도, 너무 눈부시지도 않은 중간 밝기에서 책 전체가 고르게 보이도록 조명 환경을 만드는 게 눈의 피로를 줄이고 오래 버티게 해준다. 특히 한 번 집중이 깨지면 다시 몰입 상태로 돌아오는 데 평균 20분 이상 걸린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방해 요소(소음, 화면 알림, 마음속 걱정)를 줄이는 건 사소한 게 아니라 독서 효율성 그 자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읽기 전 짧은 호흡이나 메모를 통해 머릿속 잡념을 덜어내라고 조언한다. “읽어야 하는데…”라는 죄책감 상태로 억지 독서하지 말고, 읽을 수 있는 마음 상태로 스위치를 옮겨놓으라는 것이다.

시간 관리에 대한 조언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사람은 “언젠가 한가해지면 책 좀 읽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한가한 때’는 오지 않는다. 저자는 이것을 인간이 미래의 여유를 과대평가하고 당장의 급한 일에 끌리는 심리적 편향(계획 착오, 즉시만족 편향)이라고 설명한다.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거창하게 주말 3시간을 비워놓는 게 아니라, 아침 15분, 점심시간 10분, 자기 전 20분 같은 작고 반복 가능한 시간을 먼저 확보하라는 것이다. 이 작은 시간을 하루의 블록으로 미리 예약해두면, 독서는 ‘남는 시간에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생활 리듬’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리듬이 결국 습관이 된다. 연구에서 평균 66일 정도면 새로운 습관이 몸에 붙는다고 알려져 있듯, 독서는 의지로 벼락치기하는 활동이 아니라 일과에 포함시켜 길게 가는 활동이라는 관점이 중요하다. 자신이 아침형인지 밤형인지(크로노타입)를 고려해 가장 머리가 맑거나 가장 방해가 적은 시간을 고르는 것도 전략이다. 출퇴근 지하철, 점심 후 10분, 잠들기 직전처럼 이미 존재하는 ‘틈’을 독서 시간으로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꾸준함은 확률이 확 올라간다.

이런 준비와 읽기 과정을 바탕으로, 책은 독서 이후의 단계까지 확장한다. 즉, 읽고 덮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반드시 ‘내 언어로 남겨라’고 강조한다. 독서 노트를 쓰는 방법, 기억에 남은 문장을 옮겨 적고 왜 좋았는지 적어두는 방법, 내 삶과 연결되는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방법 등이 소개된다. 이 과정은 내가 읽은 책을 한 번 더 내 안에서 씹는 과정이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씹어먹는”이 다시 의미를 얻는다. 단순히 필사나 요약을 넘어서, “이 문장이 나한테 왜 중요하지?”, “이 상황을 내 일에 적용하면 뭐가 달라지지?” 같은 질문을 붙이면, 그 책은 더 이상 남의 책이 아니라 내 책이 된다. 더 나아가 책은 독서 내용을 말로 꺼내 보는 것을 권한다. 주변 사람과 토론하거나, 짧은 서평을 쓰거나, SNS에 핵심 인사이트를 정리해 올리는 것 또한 사고를 외부로 내보내면서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질문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사각지대를 드러내주고, 그 순간 생각은 한 번 더 확장된다.

한편 책은 독서가 항상 순조롭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 누구에게나 독서 슬럼프는 온다. 바쁘고, 지치고, 한 권을 붙들 힘이 없을 때가 있다. 저자는 이런 순간을 실패로 규정하지 말고 시스템으로 돌보라고 제안한다. 난이도를 잠깐 낮추거나(편안하게 읽히는 책으로 전환), 전자책으로 가볍게 훑어보거나, 아예 기존에 읽던 책의 맺음말만 다시 보는 식으로 독서의 끈만 유지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서를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는 감각, 즉 ‘나는 읽는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독서는 열심히 할 때만 하는 기획 프로젝트가 아니라, 컨디션에 맞게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이라는 메시지다.

결국 『책을 씹어먹는 기술』은 책 읽는 법을 가르치는 책을 넘어서, “독서를 통해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묻는 책이다. 지식을 구조화해 이해하는 힘, 비판적으로 골라내는 힘, 타인을 깊이 감각하는 힘, 정교하게 말할 수 있는 힘, 상상력으로 미래를 시험해보는 힘,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나를 회복시키는 힘까지. 저자는 이 힘들을 어느 날 갑자기 얻는 게 아니라, 하루 단위의 읽기, 나에게 맞는 책 고르기, 공간과 시간 설계, 기록과 나눔 같은 반복 가능한 기술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이 제안하는 독서는 어느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다. ‘지금의 나’에서 출발해 ‘조금 더 생각하는 나’로 가기 위한,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동 설계다. “언젠가 책을 제대로 읽어봐야지” 하고 미뤄두던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 막연한 다짐을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한 번의 읽기’로 바꿔 준다. 그리고 그 작은 한 번의 읽기가 계속 이어지면, 결국 당신의 하루와 생각, 그리고 삶 전체를 바꾸는 힘이 된다고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말해준다.


'포춘쿠키출판국'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독서를 통한 지식 습득은 단순한 정보 수집과 다릅니다. 인터넷 검색이나 짧은 영상이 ‘점‘ 형태의 정보를 제공한다면, 독서는 ‘선’이나 ‘면’ 형태의 체계적 지식 구조를 제공합니다. 책은 저자가 오랜 연구와 사색으로 구축한 완성된 지식 체계를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인터넷 기사들보다 전문가의 책을 통해 역사적 배경, 과학적 원리, 사회적 영향, 미래 전망까지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체계적 지식은 우리 사고를 더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듭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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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오이
남대희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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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오이』는 큰 사건보다 우리 주변의 작은 장면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집이다. 화려한 표현을 많이 쓰지 않고, 꼭 필요한 말만 남긴다. 그래서 읽다 보면 페이지를 빨리 넘기기보다 잠깐 멈추어 생각하게 된다. 시의 주인공은 낙엽, 가로등, 붕어빵, 흰 꽃, 비 온 뒤 신호등 같은 일상의 것들이다.

이런 평범한 풍경을 통해 시간, 기억, 이별, 사랑 같은 주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은행잎〉에서는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낙엽이 먼저 지나간다고 말한다. 시인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햇빛과 바람이 만든 문장이라고 본다. 거창한 사건이 없어도, 가을은 낙엽이 떨어지는 일로 매일 새롭게 써진다는 뜻이다. 즉, 계절은 거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작은 변화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이팝꽃이 피었다〉는 피었다는 말은 곧 진다는 말이라고 말한다. 꽃은 피는 순간부터 이미 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흰색을 “고요하고, 환하고, 말없이 어둡다”고 설명하는데,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흰색은 밝지만, 너무 밝아서 오히려 조용하고 깊다. 그래서 꽃이 피면 바람이 불어오듯, 시작 속에 끝이 함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시인은 결국 “꽃은 피면서도 이미 떠나고 있다”고 정리한다. 우리는 보통 피면 기쁘고 지면 슬프지만, 이 시는 두 감정이 동시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삼거리 붕어빵〉은 겨울 거리의 따뜻함을 잘 잡아낸다. 오래된 이층집 아래 작은 화덕이 불을 품고, 금빛 붕어빵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세상이 잠깐 따뜻해진다. 가로등 아래 쪼그려 앉은 아이의 눈에는 겨울이 구워지는 냄새가 밴다. 이 시는 설명을 길게 하지 않는다. 대신 냄새, 온기, 빛 같은 감각으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가로등 불의 시간〉과 〈가로등 풍경〉은 저녁의 분위기를 차분히 담는다. 가로등이 켜지면 도시가 천천히 저문다. 잊힌 말들이 눈처럼 쌓이고, 멀어진 얼굴들이 불빛 아래 스친다. 가로등은 단순히 길을 비추는 기계가 아니라, 하루 동안 지나간 발자국과 마음을 조용히 기억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불빛 아래 멈춘 그림자들이 말 대신 서로의 체온을 비춘다는 구절도 인상적이다. 말이 없어도 서로의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뜻이다.

〈가을날 은행나무 아래서〉는 아주 개인적인 감정으로 들어간다. “죽으면 나비가 될까?”라는 짧은 질문 뒤, 바람이 휙 불고 은행잎이 와르르 날아간다. 그중 한 잎이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 “엄마 냄새가 난다.” 냄새는 기억을 바로 불러낸다. 이 시는 긴 설명 없이도 독자가 자기만의 ‘엄마 냄새’를 떠올리게 만든다.

〈도시의 네거리〉는 현실의 무게를 보여준다. 비 오는 신호등 아래 우산들이 모여 멈춰 있고, 길모퉁이 붕어빵은 속을 익히는 중이다. 하지만 벤치 위에는 검은 장갑 한 짝이 놓여 있고, 주머니 속 구겨진 영수증을 만지다 보면 내일이 청구서처럼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따뜻함과 걱정이 한 장면 안에 담겨 있다.

도시의 하루가 가진 다양한 느낌을 보여준다.

〈죽은 것들이 만든 풍경 4〉는 상실을 다루지만 지나치게 슬프게만 보지 않는다. 갈대는 알 수 없는 일을 잊지 못해 고개를 흔들고, 보이지 않는 노루의 흔적처럼 땅속 뼈마디에서 김이 오른다. 시는 “가을은 멈추지 않고 / 죽음 곁에도 / 풍경은 그대로 물들 뿐”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떠나도 계절은 계속 흐른다. 이 말은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삶이 계속된다는 위로이기도 하다.

〈해바라기〉는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헬로 하면 옐로로 대답하지” 같은 장난스러운 말로, 해바라기와 태양의 색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친 하루를 끝내 일으키는 건 복잡한 설명이 아니라, 눈앞을 환하게 밝히는 색과 빛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정리하자면, 『고이오이』는 사라지기 쉬운 작은 순간들을 조용히 붙잡는 시집이다. 낙엽 한 줄, 가로등 불빛, 붕어빵의 김, 흰 꽃의 떨림 같은 장면을 통해, 우리는 시간과 기억, 만남과 이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문장은 짧고 여백이 많다. 그래서 독자는 스스로 생각을 채우게 된다. 한 번에 많이 읽기보다, 하루에 한두 편씩 천천히 읽으면 더 좋다. 그러면 평범한 길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신호등 아래의 숨결, 저녁 불빛의 온기,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의 소리 같은 것이 더 또렷해진다. 『고이오이』는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시집이다. 소음 많은 날, 마음을 잠깐 쉬게 하고 싶을 때 특히 빛난다.

'메이킹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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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불의 시간

가로등 켜지면
도시는 천천히 저문다

잊힌 말들 눈처럼 쌓이고
멀어진 얼굴들 불빛 아래 스친다

오늘도 한 자락 어둠을
조용히 데우는 중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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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획은 2형식이다 -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기획책
남충식 지음 / 휴먼큐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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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획은 2형식이다』를 읽고 나면, 기획을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가치’에서 출발하는 생각 습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은 시작부터 기획의 기본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획의 목적·주체·객체·내용·원리를 전부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점검하라는 요구다.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아날로그적 습작”이라는 정의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곧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이어서 “기획은 가치다”라고 말한다. 기획은 반짝이는 재주가 아니라 없으면 바로 곤란해지는 물과 공기 같은 것이다. 기업은 본래 ‘기획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오늘의 일터는 모두가 기획을 해야 굴러가는 3.0의 환경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그래서 좋은 기획은 좋은 세상을 만들고, 동시에 일하는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이 개정증보판이 다시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판 이후 오랫동안 회자된 문제-해결, 심플함, ‘플래닝코드’ 같은 핵심을 지금의 언어로 갈아 끼워,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실전적으로 닿게 하려는 의도다. 이 책은 누구나 읽어도 이해가 쉬운 기획 책으로, 기획 스테디셀러의 최신 개정증보판 버전으로 나왔다.


이 책이 내 손을 가장 세게 이끄는 대목은 ‘단순함’에 대한 집요함이다. 저자는 고수의 기획을 “심플하고 명쾌하며 군더더기가 없고, 재미와 울림이 있다”고 요약한다. 잡스는 “단순할수록 더 좋다”, 셰익스피어는 “짧을수록 더 지혜롭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 두 말을 현실에서 바로 쓰라고 권한다. 핵심은 생각을 “A는 B다”처럼 한 문장으로 먼저 붙잡는 습관이다. 그렇게 핵심을 못 박아 두면 다음 결정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반대로 어려운 말, 숫자, 유행 정보를 끝없이 끌어와 문서를 두껍게 만들면 목적이 흐려지고 도구가 일을 끌고 간다. 그 순간부터는 내가 정보를 다루는 게 아니라, 정보가 나를 끌고 다니는 셈이 된다. 결국 좋은 기획은 말을 더 붙이는 일이 아니라, 한 줄로 본질을 드러내고 나머지를 과감히 덜어내는 데서 시작한다.


단순해지려면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그에 대한 처방은 놀랄 만큼 간단했다. “처음으로 돌아가라.” 원점에서 대상을 다시 보고, 본질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라는 것이다. 무지의 하라 켄야가 말한 ‘엑스포메이션(아는 것을 비워내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과 정확히 맞물린다. 그때 필요한 역량이 ‘통찰’이다. 통찰은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게 하는 능력이다.


책의 설계는 결국 ‘문제-해결’이라는 두 단어로 수렴한다. 저자는 ‘기획(企劃)’과 ‘계획(計劃)’의 한자에서 차이를 끌어낸다. ‘기(企)’에는 사람이 있고, ‘계(計)’에는 없다. 그래서 기획의 질문은 “왜/무엇”이고, 계획은 “어떻게”다. 이 구분을 일에 적용해 보니 많은 회의가 사실 ‘어떻게’만 오가고 있었다. 버튼 색·배너 위치·리포트 항목 같은 이야기들. 하지만 ‘왜 이걸 하나’와 ‘무엇을 바꾸려 하나’가 합의되지 않으니 목록은 길고 성과는 흐렸다. 기획은 ‘복잡한 프로세스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심플한 2형식으로’ 생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문서를 두 문장으로 시작한다. “문제는 ___이다. 우리는 ___을 해결한다. ” 생각이 이렇게 단순해지면 말과 글도 단순해지고, 회의도 그 문장을 중심으로 정렬된다. 플래닝코드를 사고·회의·문서·PT 전 과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코드(그리고 코드가 모여 화음을 만드는 ‘코드/Chord’)로 쓰라는 조언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이 책은 고수와 중수를 가르는 마지막 분기점을 ‘시간 배분’에서 찾는다. 고수는 해결(S)보다 문제 규정(P)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쓴다. 모든 해결의 실마리는 이미 문제 안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여덟 시간이면 여섯 시간은 도끼날을 간다”는 링컨의 비유를 가져와, 비율까지 제시한다—P 75% / S 25%.


개정판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책에 나오는 표현과 사례들이 실제 일하는 상황과 바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말만 멋진 이론이 아니라, 바로 현장에서 써볼 수 있는 언어와 사고 방식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광고·브랜딩의 최전선에서 오랫동안 플래닝을 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기획 바이블’, ‘문제 해결의 원조 문법’, ‘초심자도 토끼와 거북 이야기만 알면 따라갈 수 있는 책’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판형과 제본 같은 물리적 완성도 역시 눈에 띈다.


정리하면, 『다시, 기획은 2형식이다』가 말하는 기획의 본질은 아주 단순하다. 기획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일’, 그리고 그 과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기획은 화려한 기법이나 방대한 정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인간 고유의 사고 과정이다. 그래서 좋은 기획은 결국 가치를 만들고 삶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어진다. 문제를 정확히 보고, 해결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 전체를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그가 바로 기획자다. 이 책은 우리가 기획을 다시 사람과 본질로 되돌려 바라보도록, 그리고 모든 생각과 말과 문장을 ‘문제 → 해결’이라는 단 하나의 중심축 위에 놓도록 안내한다. 기획은 복잡함 속에서 헤매는 일이 아니라, 본질을 발견하고 더 나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매일의 해안'님을 통해,

'휴먼큐브 출판사'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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