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언어 - 공감을 무기로 소리 없이 이기는 비즈니스 심리 전략
유달내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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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해도 상대는 설득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바쁘다.

오히려 더 완강해지는 순간들을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유달내 작가의 『설득의 언어』는 이러한 복잡한 설득의 세계를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바탕으로 분석한다. ‘왜 사람은 쉽게 설득되지 않는가’에서부터 ‘어떻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까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가장 먼저 저자는 설득이 잘 통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대표적인 것이 ‘심리적 반발 이론’이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권이 제한되거나 강요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본능적으로 저항하려는 심리가 발동한다. 이른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처럼, 주변의 반대가 거셀수록 오히려 더 고집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걸 꼭 해야 해요”라고 강하게 주장할수록, 상대는 ‘지금 내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고 느끼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또 하나의 장벽은 ‘인지부조화’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신념이나 태도, 행동이 서로 충돌할 때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인지적으로 왜곡된 판단을 하곤 한다. 레온 페스팅거는 종말론을 믿던 시카고의 광신도 집단을 연구하며 이 이론을 입증했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자 이들은 오히려 “우리의 기도가 닿아 신이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이라며 신념을 강화했다. 이처럼 설득은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신념이 강할수록 반발도 강해진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설득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설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설득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상대를 밀어붙이지 말고, 상대가 스스로 ‘납득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라는 뜻이다.

납득은 타인의 말이나 행동, 상황을 이해하고 긍정하는 능동적인 상태다.

설득이 ‘되는 것’이라면, 납득은 ‘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가 자신의 판단으로 선택했다고 느끼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이런 납득의 설계를 위해 필요한 전략 중 하나가 ‘선택지 구조화’다.

선택지는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원칙에 따라 겹치지 않으며 누락 없이 구성돼야 한다. 또한 유인효과와 타협효과를 활용해 결정의 흐름을 유도할 수 있다.

예컨대, 덜 매력적인 옵션을 하나 추가하면 주 옵션이 더 좋아 보이는 유인효과,

극단적 옵션 사이의 중간 지점을 사람들이 선호하는 타협효과 같은 것이다.

설득에는 ‘시간’도 관건이다.

마감 기한이라는 압박은 결정을 이끌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과도하면 반발을 부른다.

허브 코헨이 강조하듯, 협상에서 시간은 정보와 힘만큼 중요한 요소다.

다만 마감 시한을 제시할 때는 상대가 내용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정보의 복잡성을 조절하고, 보고 시점을 조율해야 한다. 설득의 목표는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결정권자 스스로 판단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감이 지나친 상대를 설득하는 경우도 까다롭다.


과신 편향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믿는 심리로, 리더나 상사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이때는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 핵심 메시지를 두괄식으로 전달하고, 큰 그림 위주로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 입장을 가진 상대라면 오히려 미괄식으로 논거를 쌓아가며 결론을 뒤에 제시하는 방식이 설득력을 높인다.

동조효과’ 역시 설득의 중요한 요소다. 주변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쪽으로 기울게 된다. 설득하고자 하는 상대가 누구의 영향을 받는지를 미리 파악하고, 그들의 지지를 확보해두는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다.


설득은 또한 감정, 즉 욕구와도 연결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인 에토스(신뢰), 파토스(감성), 로고스(이성) 중 파토스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서 특히 중요하다. IT 시스템 도입을 예로 들면 “이 시스템은 비용을 절감합니다”보다는 “가장 싫었던 업무를 덜 수 있습니다”라는 방식이 더 강력하게 다가온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논리가 아니라, 욕구와 의미다.

상대가 어려운 과제나 도전에 대해 망설일 때는, ‘문간에 발 들여놓기(FITD)’ 전략이 유용하다.

먼저 작은 요청을 수락하게 만든 뒤, 점차 더 큰 요청을 이어가며 설득력을 높인다.

이는 사람들이 ‘나는 이런 사람이지’라는 자기 인식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심리를 활용한 기법이다.

이 책은 또한, ‘같은 그림을 상상하게 하는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상대와 공감하는 능력, 특히 페르소나 설정이나 고객 여정 지도 등을 통해 상대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설득 구조를 짜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비유와 사례는 구체적 상상을 돕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마지막으로, 설득은 결국 ‘프레임의 싸움’이다.

정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진다.

동일한 사실도 ‘이익의 프레임’으로 제시할지, ‘손실의 프레임’으로 제시할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예컨대, “1000만 원을 벌 수 있습니다”보다는 “1000만 원을 날릴 수 있습니다”라는 표현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손실회피 편향 때문이다. 하지만 손실 프레임을 사용할 때는 구체적 해결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만 증폭되고 설득은 실패로 끝날 수 있다.

종합적으로 유달내 저자의 『설득의 언어』는 단순한 말의 기술이 아닌, 인간 심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순간, 결국 그 사람의 입장과 욕구, 감정, 사고방식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말보다 마음이 설득의 핵심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인플루엔셜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설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설득하지 않는 것’이다.
설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설득하지 말라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말 그대로 설득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상대방이 설득당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설득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납득(納得)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서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형편 따위를 잘 알아서 긍정하고 이해함"이라고 정의한다. 설득은 ‘되는’ 것이고 납득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납득할 수 있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은 설득의 대상이 주도적으로 정보를 취합해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느끼게’ 배려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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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심리학 - 부자가 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돈의 속성
김경일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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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부의 심리학』은 단순히 돈에 관한 심리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불안, 분노, 스트레스, 비교심리, 자율성과 통제감 같은 감정들을 ‘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치 내 삶의 패턴을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엔 ‘돈’이라는 주제를 꺼내는 것조차 피하고 싶었다.

많으면 걱정, 없으면 문제, 쓰면 죄책감, 안 쓰면 답답한 애매한 존재.

돈에 얽힌 감정 소모가 너무 커서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됐다.

피하고만 싶었던 ‘불편한 진실’들과 조용히 마주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정말 내가 원하는 건 돈 자체였을까, 아니면 그걸 통해 얻고 싶은 안정감이었을까?”

“나는 돈을 잘 모른 채, 그냥 열심히만 살면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프롤로그에서 김경일 교수는 돈을 ‘소시오패스’에 비유한다.

조금은 과격한 표현이라 생각했지만 곧 이해가 됐다.

돈이란 존재는 다정한 척 다가와 어느 순간 삶을 조종하고,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수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저자 마사 스타우트의 말을 인용해, 이런 존재를 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웃스마트’—즉, 그보다 똑똑해지는 것이라 말한다. 결국 돈을 잘 알아야 비로소 덜 휘둘릴 수 있다는 뜻이다.

책은 돈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겪는 심리적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준다.


가장 먼저 와닿았던 건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였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다짐들. 왜 우리는 늘 계획을 세우고도 실패할까?

김 교수는 그 원인을 ‘목표를 계획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오늘 중에 끝내야지” 같은 막연한 목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과 단계로 나눠 ‘언패킹’하는 게 핵심이다. 일을 작게 쪼개고 명확한 데드라인을 설정할수록 성취감은 커지고 실패 가능성은 줄어든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불안은 사실을, 분노는 진실을 원한다”는 문장이었다.

불안한 사람에게는 위로나 격려보다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분노한 사람에겐 감추지 않은 진심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일상에서 감정적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이 문장이 생각날 것 같다.

코로나 이후 변화된 업무 환경과 관련해 언급된 ‘인지적 유연성’이라는 개념도 흥미로웠다.

재택근무로 물리적 거리가 생기자 오히려 위계에서 벗어나 타 부서와 더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사고의 전환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같은 일도 다르게 해보려는 유연성이 결국 조직의 힘이라는 설명이 지금의 일하는 방식에도 큰 힌트를 준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은, 성실하고 에너지 넘치던 사람이 오히려 비윤리적인 행동에 빠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였다.

테스토스테론(에너지 호르몬)과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이 동시에 높을 때, 사람이 가장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환경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과 여유 사이의 균형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만든 대목이었다.

‘부러움’과 ‘열등감’을 구분한 장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부러움은 누군가처럼 되고 싶은 바람이고, 열등감은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감정이다.

두 감정 모두 비교에서 출발하지만, 방향이 다르다.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부러움은 쉽게 열등감으로 바뀌기 때문에, 부러움을 인정하되 비교는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이 진심으로 와닿았다.


책 1부 말미에 등장한 ‘고립 불안’도 인상 깊었다.

타인을 따돌리고 편을 가르는 행동은 단순히 성격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소외될까 봐 먼저 배제하려는 불안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선 관계에서의 일정한 소속감, 적절한 통제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율이 과할 때 불안은 더 커질 수 있다는 말이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부의 심리학』은 단순한 돈의 심리를 넘어,

돈이라는 렌즈를 통해 나의 감정과 삶의 방식, 인간관계, 사회 구조를 함께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책을 덮고 나니, 나는 돈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정작 돈을 제대로 마주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돈을 아는 것은 곧 나를 아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돈보다 중요한 건 돈을 대하는 ‘나의 태도’니까.

삶이 자꾸 흔들릴 때, 이 책이 좋은 기준점이 되어줄 것 같다.


'포레스트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중국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원숭이를 기르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많아지면서 먹이가 부족해지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고 말했죠. 그러나 원숭이들이 먹이가 너무 적다고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침에 네 개, 저녁에 3개씩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좋아하며 모두 엎드려 절하고 기뻐했죠.
이 이야기는 근시안적 태도다 그 근시안을 이용해 잔꾀로 남을 속이는 것을 비유하는 조삼모사의 유래입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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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6 - 박경리 대하소설, 2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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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6권을 읽어 보니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책이었다.

토지 6권은 ‘간도’라는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옛 이야기지만 마치 우리가 겪은 가족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던 책이다. 이 권은 특히 사랑과 이별, 신분과 자존심, 그리고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의 민족의식까지 한꺼번에 짊어진 인물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더 깊이 와 닿는다.


무엇보다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서희다. 서희는 길상과 상현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한 사람은 하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양반 자제였다.

하지만 서희의 마음은 단순한 신분 문제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녀는 길상과의 관계에서 늘 스스로를 경계한다. 자신이 길상을 사랑하는 게 진심인지, 아니면 야망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길상 역시 서희를 사랑하지만, 서희가 자신을 ‘수단’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는 그 사랑이 순결하길 바란다. 서희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지만, 사랑만큼은 거래의 도구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우면서도 결코 닿지 못한다. 그 간극이 무척 아프게 느껴졌다.


상현은 조금 다르다. 그는 서희를 향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소유욕에 더 가깝다. ‘명색이 사대부 집 규수가 하인 놈하고 혼인이라니’라며 분노하고, 자신이 서희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한다. 서희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자존심과 자격만을 앞세운다. 결국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길상이를 “죽이고 싶다”, “함께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싶다”는 말까지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 순간 상현이란 인물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자기 연민과 패배감에서 비롯된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간도의 풍경은 그런 감정들을 더욱 뾰족하게 만든다. 조선에서 밀려나온 사람들, 나라 없는 백성들이 모여 사는 땅. 이들은 청나라 땅에서 소작도 못 되는 반 머슴으로 살고, 딸과 아내조차 빚 때문에 빼앗기기도 한다. 삶은 늘 가난하고 추위는 매섭다. 먹고사는 문제 하나 해결하는 것도 버겁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송장환, 이동진, 권필응 같은 이들은 손문이 일본을 끌어들인 것에 대해 회의감을 품고, 김옥균의 실패를 떠올리며 또다시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외세를 끌어들여 안 망한 나라가 없다”는 말이 참 무겁게 들렸다.


그런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떠나지 못한다. 용이와 월선의 이야기가 그렇다. 월선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용이는 결국 그녀를 다시 찾아간다. 캄캄한 움막 속에서 그녀를 부르며 헤매는 용이의 모습은 절박하고 애틋하다. “꿈을 꾸었소”라는 용이의 고백과 “호랭이 새끼는 산으로, 오리 새끼는 물로 간다”는 월선의 대답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장면이었다. 그 대화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책 후반부로 가면 점점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진주에서는 봉순이가 ‘기화’라는 이름으로 기생이 되어 살아간다. 과거를 끊고 새로운 삶을 택한 그녀의 모습은 안쓰럽지만 동시에 강단 있어 보인다. 한 여자로서 자기 삶을 선택하고 감당해내는 모습이 멋있었다. 석이, 환이, 동학 출신 젊은이들이 등장하면서는 이 이야기가 단지 과거의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민족의 아픔을 품은 다음 세대가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는 건, 어떤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6권의 마지막 장, ‘밤에 일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 같다. 밤이란 시간은 피곤하고 외롭고, 누구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밤에 누군가는 일을 하고, 싸우고, 살아간다. 땡땡이중, 나룻배꾼, 술집의 여자들, 의병들, 기생들까지. 낮의 세상에서 밀려난 이들이 밤을 붙들고 자신을 지켜내려 애쓴다. 그 모습이 너무 먹먹했다. 밤이 지나도 밝은 아침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토지』 6권은 한 편의 사랑 이야기이자,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백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역사의 문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희와 길상의 아픔, 상현의 좌절, 용이의 애틋함, 월선의 쓸쓸함, 봉순이의 결심, 그리고 밤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모두가 이 소설 속에서 저마다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울컥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이 땅의 밤은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 없는 고요한 투쟁으로 이어져왔다는 것을!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다산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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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20 세트 - 전20권 (반 고흐 에디션) - 박경리 대하소설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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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6권을 읽어 보니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책이었다.

토지 6권은 ‘간도’라는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옛 이야기지만 마치 우리가 겪은 가족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던 책이다. 이 권은 특히 사랑과 이별, 신분과 자존심, 그리고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의 민족의식까지 한꺼번에 짊어진 인물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더 깊이 와 닿는다.


무엇보다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서희다. 서희는 길상과 상현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한 사람은 하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양반 자제였다.

하지만 서희의 마음은 단순한 신분 문제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녀는 길상과의 관계에서 늘 스스로를 경계한다. 자신이 길상을 사랑하는 게 진심인지, 아니면 야망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길상 역시 서희를 사랑하지만, 서희가 자신을 ‘수단’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는 그 사랑이 순결하길 바란다. 서희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지만, 사랑만큼은 거래의 도구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우면서도 결코 닿지 못한다. 그 간극이 무척 아프게 느껴졌다.

상현은 조금 다르다. 그는 서희를 향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소유욕에 더 가깝다. ‘명색이 사대부 집 규수가 하인 놈하고 혼인이라니’라며 분노하고, 자신이 서희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한다. 서희를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자존심과 자격만을 앞세운다. 결국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길상이를 “죽이고 싶다”, “함께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싶다”는 말까지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 순간 상현이란 인물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자기 연민과 패배감에서 비롯된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간도의 풍경은 그런 감정들을 더욱 뾰족하게 만든다. 조선에서 밀려나온 사람들, 나라 없는 백성들이 모여 사는 땅. 이들은 청나라 땅에서 소작도 못 되는 반 머슴으로 살고, 딸과 아내조차 빚 때문에 빼앗기기도 한다. 삶은 늘 가난하고 추위는 매섭다. 먹고사는 문제 하나 해결하는 것도 버겁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송장환, 이동진, 권필응 같은 이들은 손문이 일본을 끌어들인 것에 대해 회의감을 품고, 김옥균의 실패를 떠올리며 또다시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외세를 끌어들여 안 망한 나라가 없다”는 말이 참 무겁게 들렸다.

그런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떠나지 못한다. 용이와 월선의 이야기가 그렇다. 월선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용이는 결국 그녀를 다시 찾아간다. 캄캄한 움막 속에서 그녀를 부르며 헤매는 용이의 모습은 절박하고 애틋하다. “꿈을 꾸었소”라는 용이의 고백과 “호랭이 새끼는 산으로, 오리 새끼는 물로 간다”는 월선의 대답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장면이었다. 그 대화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책 후반부로 가면 점점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진주에서는 봉순이가 ‘기화’라는 이름으로 기생이 되어 살아간다. 과거를 끊고 새로운 삶을 택한 그녀의 모습은 안쓰럽지만 동시에 강단 있어 보인다. 한 여자로서 자기 삶을 선택하고 감당해내는 모습이 멋있었다. 석이, 환이, 동학 출신 젊은이들이 등장하면서는 이 이야기가 단지 과거의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민족의 아픔을 품은 다음 세대가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는 건, 어떤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6권의 마지막 장, ‘밤에 일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 같다. 밤이란 시간은 피곤하고 외롭고, 누구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밤에 누군가는 일을 하고, 싸우고, 살아간다. 땡땡이중, 나룻배꾼, 술집의 여자들, 의병들, 기생들까지. 낮의 세상에서 밀려난 이들이 밤을 붙들고 자신을 지켜내려 애쓴다. 그 모습이 너무 먹먹했다. 밤이 지나도 밝은 아침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토지』 6권은 한 편의 사랑 이야기이자,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백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역사의 문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희와 길상의 아픔, 상현의 좌절, 용이의 애틋함, 월선의 쓸쓸함, 봉순이의 결심, 그리고 밤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모두가 이 소설 속에서 저마다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울컥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이 땅의 밤은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 없는 고요한 투쟁으로 이어져왔다는 것을!


채손독 을 통해 #다산북스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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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령서 돌아온 길상에 대한 미움이 지글지글 끌어오르는 것을 송애는 억제하질 못한다. 회령 병원에 가노라 하며 서희가 길상을 데리고 떠난 뒤 구구한 소문을 송애는 아직 삭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회령에다 과부하고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에 꼬리를 물고 이번에는 서희와 혼인할 거라는, 거의 장담하다시피 하던 말들이 비상처럼 송애 마음에 흘러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요즘이다. 길상의 마음이 자기에게 기울어지리라는 희망은 눈꼽만치도 없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길상에 대한 원한이요 미움이다. 한때 주변에서도 그랬었거니와 길상에게 시집갈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꾸었던 게 병이었다. 과부 운운할 적에 송애 마음이 열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 거라면 서희의 경우는 천 길 낭떠러지로 구른 기분인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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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먹을 때는 울지 않기로 해 - 류라이 길티플레저 에세이
류라이 지음 / 자크드앙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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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라이의 『딸기를 먹을 때는 울지 않기로 해』를 읽었다.

저자 류라이, 본명은 유소희.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책을 읽고 나서야 틱톡을 찾아보고, 류라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녀는 틱톡에서 발랄한 영상으로 50만 명의 팔로워를 지닌 인플루언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얼굴은 전혀 다르다.

인플루언서 류라이가 아닌, 한 사람 유소희의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딸기를 너무 좋아해서 한 달에 수백만 원어치를 사 먹는다는 고백은 단순한 취향 이야기가 아니다.

딸기는 그녀에게 위안이며,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작고 확실한 의식이다.

딸기 하나를 입에 물며 하루를 버티고, 그렇게 다음 날도 살아내는 일.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마음.

우리는 그런 걸 ‘길티플레저’라고 부른다.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사람이 무섭다는 고백이 나온다.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줄까 봐, 혹은 상처받을까 봐 사람을 피했고,

그 회피의 장소로 선택한 곳이 SNS였다.

틱톡은 그녀에게 5년간의 일기장이 되어 주었다.

영상 하나 올리고, 댓글이 달리고, 어떤 이는 악플을 남기기도 한다.

그 댓글들을 ‘내 일기를 본 사람의 감상평’이라고 여긴다는 말이 묘하게 인상 깊었다.

기특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스무살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좀 놀라웠다.

이 책에는 그녀가 피하지 않고 마주한 감정들이 담겨 있다.

왕따를 당한 이야기, 외모로 놀림받은 기억, 급식실에서 혼자 울었던 날들,

그리고 전신 성형을 고민하던 밤까지.


누군가는 자극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거짓 없이 꺼낸 이야기에는 꾸밈이 없었고, 그래서 더욱 진심으로 다가왔다.

무심한 듯 적힌 이 한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친구라는 사람은 나에게 행복도 주지만, 그와 동시에 불행도 준다.

믿은 만큼 배신감도 느낀다.

나는 그런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행복을 포기한 것이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행복을 포기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슬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완전히 낯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도 종종 비슷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니까.

이야기는 계속 사람을 향한다.

그녀 곁에 있어준 사람들 - 급식실에서 도시락을 챙겨준 보건쌤, 흉터 없이 수술해주려 애쓴 집도의 의사 선생님, 틱톡을 통해 나에게 관심을 가진 ‘류씨 집안 아가들’을 만들어준 회사 사장님, 그리고 부모님.

세심한 배려와 온기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지금껏 버텨내지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사는 것이 지옥이었을 것이다.

위로는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잊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겐 숨구멍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딸기는 색이 어두울수록 더 달콤하다.”

묘하게도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어두운 색일수록 더 달콤하다니… 어쩌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겉은 물러 보이지만 막상 먹어보면 달콤한 딸기!

겉만 멀쩡해선 소용이 없다. 상처가 많고 조금씩 부서진 마음들이 오히려 더 단단하고 깊은 맛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울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딸기 하나 입에 물고, 잠깐 멈춰서서, 오늘 하루 나를 다독이자고 말한다.

울어도 괜찮고, 무너져도 괜찮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나를 놓지 말자고 한다.

그 말이 다정하게 들려와 오래도록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구나 자기만의 딸기 하나쯤 떠올리게 된다.

그게 음악이든, 커피든, 혹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딸기라는 이름의 작고 달콤한 안식처. 우리는 결국 그런 걸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류라이의 글은 화려하지 않지만 솔직하다.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일기장을 몰래 들춰본 기분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문득, 나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아무리 흔들리고 힘들어도

딸기를 먹을 때만큼은 울지 않기로 해보자.

좋아하는 딸기를 한 입 베어 무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길 바란다.


'자크드앙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난 예측 가능한 것, 이미 알고 있는 결말 등 안정적인, 변화가 없는 것들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 불가능한 것 같은 불안정한 것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맛이 나는 음식만 먹고, 내가 알고 있는 결말의 영상만 본다. 하루하루도 마찬가지다. 나는 반복되는 하루가 내가 생각한 루틴이나 계획에서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불안해 하고 무서워 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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