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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읽는 시간 -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클래식 이야기 207
김지현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0월
평점 :

클래식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나 역시도 그렇다.
악보는커녕 공연 프로그램 북에 적힌 짧은 표기 조차도 무슨 뜻인지 몰라 헤매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클래스 용어 풀이만 해주는 책을 만난다면 오히려 클래식과 더 멀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김지현의 『클래식을 읽는 시간』은 다르다.
클래식에 대한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아주 쉽게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의 1장은 클래식을 낯설게 만드는 기본 용어를 의미·역사·실제 쓰임새까지 묶어 차근차근 풀어준다. 계이름, 조성, 작품번호, 악보와 빠르기말, 성악·기악의 연주 형태는 물론 음악회 현장의 풍경과 지휘자의 세계까지 살핀다. 그래서 프로그램 북의 곡명·조성·작품번호 같은 기본 정보만 봐도 작품과 연주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서들을 읽어낼 수 있게 해 주며, 클래식에 대한 서먹함을 자연스럽게 덜어 준다.
흥미로웠던 건 조성 부분인데, 평소에 클래식 제목에 적힌 번호와 영어 표기들이 난해한 문자같이 느껴졌는데,
이 파트를 통해 조금은 이해하게 된 부분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C Major」의 C처럼, 제목 옆 알파벳은 곡의 조성을 뜻한다. 메이저(장조)·마이너(단조) 체계는 바로크 시대에 자리 잡았고, 당시에는 장조를 기쁨, 단조를 슬픔과 연결해 이해했다. C장조(다장조)는 조표가 없고 피아노의 흰 건반(도레미파솔라시)만으로 구성되어 오래도록 순수·창조·동심의 정서를 상징했으며, 라모는 이를 “행복한 음악을 위한 열쇠”,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대묻지 않은 하얀색”에 비유했다. 실제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작은별 변주곡」, 베토벤의 첫 교향곡, 프로코피예프 「피터와 늑대」가 모두 C장조다. 이에 대응해 a단조(가단조)는 역시 조표 없이 ‘라–시–도–레–미–파–솔’ 음계로 이루어지며, 라비냑이 말한 대로 “소박한 슬픔”을 불러온다(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쇼팽 유작 「왈츠 19번」, 슈만 「피아노 협주곡」 등). 빠르기·편성·음색도 영향을 주지만, 곡의 첫인상과 분위기를 크게 좌우하는 축은 조성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작품번호(오푸스, Op.)에 대한 설명도 시야를 넓힌다. 원래 ‘일·노동’을 뜻하던 라틴어가 출판 관행 속에서 ‘예술작품’의 표식이 되었고, 한 권의 악보집 안에 여러 곡을 묶어 내던 바로크 관습(예: 비발디 Op.8에 「사계」와 다른 여덟 곡)이 왜 생겼는지까지 짚는다. 무엇보다 Op.1이 ‘첫 명함’이었다는 맥락이 설득력 있다. 슈베르트는 「마왕」을 Op.1로 내세워 자신을 ‘리트(예술가곡)의 작곡가’로 선언했고, 브람스는 과거 작품을 접어 두고 「피아노 소나타 1번」에 Op.1을 붙여 첫인상을 스스로 설계했다. 파가니니는 「24개의 카프리스」를 Op.1로 삼아 동료 연주자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으로 삼았고, 베토벤은 빈의 취향을 겨냥해 피아노 3중주 세 곡을 묶어 Op.1로 내놓았다. 숫자 하나에도 시대의 공기와 작곡가의 전략이 배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작품번호(오푸스 Op.)에 대한 설명도 시야를 넓힌다. 원래 ‘일·노동’을 뜻하던 오푸스(Op.)는 악보 출판의 편의를 거치며 ‘작품 번호’가 되었고, 바로크 시대에는 한 권에 여러 곡을 묶어 내며 번호를 붙이곤 했다(비발디 Op.8 안에 「사계」와 다른 여덟 곡이 함께 실린 방식). 그중에서도 Op.1은 작곡가가 대중 앞에 내미는 첫 명함이었다.
슈베르트는 생전에 직접 번호를 붙여 악보를 냈고, 그가 Op.1로 고른 곡이 가곡「마왕」(D.328)이었다. 리트(독일 예술가곡) 작곡가로서의 정체성과, 중산층 음악 애호가에게 잘 팔릴 성악 장르를 첫 번호로 택한 현실적 판단이 함께 읽힌다. 이후 「물레잣는 그레첸」(D.118), 「들장미」(D.257) 등 대표 가곡들이 연달아 출판됐다. 브람스는 이전 작품을 미뤄 두고 「피아노 소나타 1번」에 Op.1을 붙였다. 슈만 부부 앞에서 연주해 새로운 음악이라는 극찬을 받은 직후였고, 이 곡은 그를 세상에 알리는 표지가 되었다(헌정: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
파가니니는「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스」를 Op.1로 내며, 아찔한 기교의 난곡을 특정 후원자가 아니라 모든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헌정했다. 가장 전략적 사례로, 베토벤은 빈 데뷔 초기 피아노 3중주 1·2·3번 묶음에 Op.1을 붙였다. 당시 귀족들이 특히 선호하던 편성을 겨냥해 악보 판매와 후원자 확보에 성공했고, 음악도시 빈에서 작곡가의 명함을 힘 있게 건넨 셈이다. 그래서 음악학자 알프레도 현장을 여는 지휘와 튜닝에 대한 설명은 읽는 즐거움을 높인다.
공연 시작 직전 오보에 수석이 길게 내뿜는 ‘라(A)’가 오케스트라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오보에는 안정적인 음정과 밀도 높은 소리를 큰 음량으로 내고, 중앙에 앉는 경우가 많아 기준음으로 최적이다. 오늘날 많은 오케스트라가 A=442Hz를 쓰지만, 세부 선호는 악단과 지휘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지점까지 간단 명료하게 정리된다. 지휘는 오른손으로 박자를 맞추고 왼손으로 소리의 세기나 들어올 타이밍을 알려주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렇게 생각하고 무대를 보면, 지휘자의 손짓 하나에 음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훨씬 잘 보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륄리가 1.5미터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치며 박을 맞추던 바로크의 지휘 장면과 그 지팡이가 부른 비극적인 일화가 음악사의 장엄함과 아이러니를 동시에 전한다.
오케스트라에서 음정의 ‘기준’은 오보에가 맡는다.
지휘자가 무대에 오르기 전, 오보에 수석이 표준음 ‘라’(A)를 길게 내고,
관악기가 먼저 그 음에 맞춰 조율한 뒤 악장이 받아 현악 파트가 튜닝한다.
오보에는 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원추형의 검은색 목관악기로,
이름은 프랑스어 오부아(hautbois, ‘음이 높은 나무 피리’)에서 왔다.
겹리드(더블 리드)를 취구에 꽂아 소리를 내는데 소리 내기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기준을 맡는 이유는 안정적인 음정, 밀도 높고 쨍한 소리, 큰 음량,
그리고 무대 중앙 배치 덕분이다. 실제로 많은 악단이 오보에의 A를 442헤르츠로 맞추고
(지휘자 성향에 따라 441Hz를 선호하기도 함),
일반 청중에게는 미세하지만 오보에 주자에게는 큰 차이가 된다.
성악 파트에서는 네 개의 성부(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를 기본으로 삼는다.
이 가운데 테너(남성의 가장 높은 성부)는 라틴어 테네레(‘길게 지속하다’)에서 온 말로, 처음에는 테노르라 불렸다.
중요한 점은, 1250~1500년 사이 중세에서 르네상스 초기에 이르기까지 테너가 음악의 중심을 받치는 성부였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가곡·오페라·칸타타·오라토리오·미사·합창을 연표로 나열하기보다,
텍스트·선율·반주가 한 작품 안에서 어떻게 만나고 역할을 나누는지를 따라가며,
악기와 성부가 실제 무대에서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까지 연결해 보여 준다.
이 모든 설명이 믿음직한 이유는 저자의 현장감 때문이다.
김지현은 클래식 음악 전문 작가이자 해설자로, 대학과 대학원에서 작곡 이론을 공부하고
(성신여대, 서울대 대학원), 《월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등에 공연 리뷰를 썼다.
KBS교향악단·세종솔로이스츠·예술의전당 등에서 곡목 해설을 맡았고,
2010년부터 KBS 클래식FM 프로그램 집필을 이어 와 현재 「출발 FM과 함께」를 담당하고 있다.
학자·연주자·평론가의 언어를 잇되, 독자의 첫걸음을 배려하는 문장과 배열이 이 책 전반에 녹아 있다.
『클래식을 읽는 시간』에서 소개하는 음악을 먼저 감상하고,
책으로 관련 내용을 본 뒤, 다시 찾아 보게 되면, 조성과 작품번호, 지휘와 튜닝,
악기와 성부가 무대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지휘자에 대한 몰랐던 정보와 오보에가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음정의 기준을 맡고 있다는 사실과 같이 흥미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된다.
결국 클래식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삶에 함께 숨쉬는 음악으로 가까이 존재한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게 된다면 공연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감상 습관과 자신감을 얻게 되고,
멀게 느껴졌던 클래식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클래식이 어려웠던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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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퀘스트라 2기 활동으로
'더퀘스트 출판사'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피아노 소나타 16번 C Major>에서 알파벳 C는 이 곡의 조성을 듯합니다. 메이저major는 장조를 뜻하므로 우리말로 ‘다장조‘죠. 지금의 장,단조 체계는 바로크 시대에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음악으로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장조는 기쁨과 연관이 있고 단조는 슬픔을 의미한다고 보았죠. 오랜 시간 음악사에서 C장조(다장조), 그러니까 올림표나 내림표 같은 조표가 붙지 않고 피아노의 흰 건반 일곱 개(도레미파솔라시)로 쓰인 곡은 순수, 창조, 동심 같은 정서를 뜻했습니다. 바로크 시대 이론가 장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는 C장조를 "행복한 음악을 위한 열쇠"라고 말했고, 19세기 러시아의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는 "대묻지 않은 하얀색"에 비유했죠.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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