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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영감노트 -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전 수업
기무라 류노스케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평점 :

기무라 류노스케의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셰익스피어를 책상 위의 고전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무대 위로 다시 불러오는 책이다. 연출가로서 배우와 스태프 사이에서 언어에 숨을 불어넣어 온 저자의 시선은 학술적 해설처럼 딱딱하지 않고, 무대 현장에서 얻은 생생한 감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묻는다. 우리는 정말 셰익스피어를 알고 있는가. “죽느냐, 사느냐”나 “오 로미오” 같은 대사는 이미 대중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400년 전 사람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말하고 있는 존재다.
저자는 셰익스피어를 “인간을 흔들고(Shake), 꿰뚫는(Spear) 천재”라고 정의한다. 그는 웃음과 눈물, 분노와 두려움, 삶을 지탱하는 힘까지 언어로 길어 올려 인간의 본질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언어의 힘은 단순히 문학적 장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사고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생몰 연대(1564–1616)를 장난스러운 기억술로 소개한다. “히토고로시 이로이로”라는 말장난은 전쟁과 죽음, 격동이 넘치던 시대의 공기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연극이 가장 활활 타오르던 런던으로 건너와 37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희극·비극·역사극을 넘나들며 오늘날의 ‘히트메이커’처럼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시대와 대중을 동시에 흔든 배경을 알게 되면, 그의 언어가 왜 지금까지도 생생한지 더 분명해진다.
책 속에서 다루는 대사들은 하나같이 강렬하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보고 외치는 말, “아아, (저 사람은) 횃불에게 찬란하게 타오르는 비법을 가르치고 있구나!”(『로미오와 줄리엣』 1막 5장)는 평범한 ‘아름답다’는 감탄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어지는 “저 손을 감싸는 장갑이 되고 싶다. 그러면 저 뺨을 만질 수 있을 테니!”(2막 2장)라는 고백은 다소 무모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진솔하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감정이 넘쳐흐르는 순간을 언어로 과감히 붙잡아냈다. 같은 장면에서 “드넓은 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별이…”라는 대사는 사랑의 고백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시킨다. 결국 메시지는 하나지만, 언어가 감정을 증폭시키며 청중에게 새로운 차원의 감각을 전달한다.
사랑의 언어가 인간의 감정을 끌어올린다면, 설득의 언어는 사람들의 행동을 뒤바꾼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안토니의 연설은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는 겸손하게 시작한다. “저에게는 지혜도 언변도 권위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피를 들끓게 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전략이었다. 이어서 그는 가정법과 반복을 통해 군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정말 그런가?’라는 의심을 자연스럽게 심어준다. 이렇게 언어가 현실을 움직이고 민중을 행동하게 만드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단순한 문학을 넘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힘으로 작용했음을 잘 보여준다.
짧은 문장 속에서도 본질을 찌르는 그의 언어는 더욱 빛난다. “사람은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악당일 수 있다. 적어도 덴마크에는 틀림없이 그런 자가 있다.”(『햄릿』 1막 5장)는 한 나라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오히려 모든 사회에 적용 가능한 통찰을 전한다. 또 “조심하시길, 장군이여, 질투라는 사실을. 이 녀석은 초록 눈을 한 괴물이오.”(『오셀로』 3막 3장)는 질투라는 감정을 초록빛 괴물로 형상화해, 인간의 내면을 서서히 좀먹는 무서운 감정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왜 지금도 끊임없이 새롭게 읽히는 걸까. 저자는 그 이유를 ‘여백’에서 찾는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몬테규와 캐퓰릿이 왜 원수인지,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이 재판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리처드 3세』에서 마가렛은 어떻게 쇠락했는지 등 수많은 빈칸이 남는다. 이 여백은 독자와 관객의 상상으로 채워지며, 작품은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완성된다. 기무라는 희곡을 “놀면서(희) 구부린다(곡)”라고 설명하며, 희곡이란 본래 관객과 배우, 독자가 함께 가지고 노는 장르라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셰익스피어는 시대를 초월해 늘 새롭게 해석될 수 있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 감정을 다루는 방식 또한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저자는 배우들에게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라고 주문한다. 좋은 배우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과 ‘놀 줄’ 안다. 로미오가 하루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인을 사랑한다고 외치다가 줄리엣을 본 순간 “내 마음이 지금껏 사랑을 한 적 있던가?”라며 갈아타는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감정이 원래 그렇게 모순투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한다. 전쟁조차 셰익스피어에게는 단순히 비극의 무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인간 감정을 자유롭게 굴리는 장치였다. 결국 그의 작품은 인간 정신의 자유를 예찬하는 무대였다.
책은 또한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권한다. “네 이 사탄놈아!”(『실수 연발』) 같은 짧은 대사라도 입 밖에 내면 기분이 정리되는 경험을 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나 “깨끗한 것은 더럽고, 더러운 것은 깨끗하다” 같은 대사를 읽는 순간, 마음은 전혀 다른 리듬을 얻는다. 저자는 이것을 ‘말의 임파워먼트’라고 부른다. 말이 사람을 위로하고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단순히 고전을 해설하는 책이 아니라, 언어가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주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마지막에는 부록이 실려 있다. 셰익스피어 연표를 통해 그의 생애와 더불어 태어나기 전의 시대적 사건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고, 주요 캐릭터 도감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개성과 특징을 다시 짚을 수 있다. 또 독자가 Yes/No를 선택하며 자신에게 맞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찾는 게임 같은 코너는 책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마지막에는 저자가 직접 추천하는 작품 목록까지 담겨 있어, 책을 읽고 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결국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고전이 결코 낡은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말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책이다. 셰익스피어를 멀게 느끼던 독자에게는 친절한 입문서가 되고, 이미 익숙한 독자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술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기 때문에,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 세계를 직접 탐험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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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퀘스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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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저 사람은) 횃불에게 찬란하게 타오르는 비법을 가르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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