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8 - 박경리 대하소설, 2부 4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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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8권』은 “이제 어디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갈까”를 묻는다.

흉년이 들고, 왜놈들은 “문서가 없다”는 말로 사람들의 땅을 빼앗는다. 병이 나도 약 한 첩 못 짓는 집이 태반이다.

이런 바닥의 현실에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이 생존의 자리 위로 종교와 정치 이야기가 포개진다. 스님과의 긴 대화 속에서 불교·유교·동학·태평천국·백련교가 오가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멋진 말이나 내세의 약속보다, 지금 당장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먼저라는 것. 억압이 깊어질수록 돈과 힘이 손을 잡고, 그 틈에 낀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본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이 부분은 8권 전체의 기초가 되는 부분 같다. ‘왜 싸우느냐’보다 ‘무엇으로 버티느냐’를 묻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물들이 제자리를 다시 잡는다. 길상은 더 멀리 나가 독립운동을 돕기로 마음먹는다. 서희는 집 안에서 남은 삶을 지키며 “돌아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김개주의 아들 김환과 환이(구천)가 등장하면서, 피와 역사, 사랑과 죄책이 한꺼번에 꿈틀거린다. 작가는 ‘반역의 피’를 눌려 살던 사람들이 "이대로는 못산다"라고 말하며 일어서는 마음으로 보여 준다. 김환은 그 기세를 타고났지만 방향을 잘 못 잡아 흔들리고, 환이는 길상과 서희, 이동진의 오래된 상처를 다시 건드린다. 나는 여기서 ‘반역’이 단순한 불온함이 아니라 살아 보려는 발버둥이자 더 나은 삶을 향한 힘으로 읽혀졌다.


이 책의 정점은 월선의 병세와 마지막 밤이다. 옹이는 다 식어 가는 월선을 무릎에 안고 “우리 많이 살았다, 여한 없제?”라고 묻는다. 월선이 고개로 답하자, 그는 고요히 이불을 펴고 작은 얼굴을 쓸어주며 눕힌다. 장식 없는 이별이 품격이 되는 순간이다. 그 옆에서 죽은 이의 돈을 노리는 임이네의 모습은 더 추하게 보인다. 옹이는 남 탓만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오며 저지른 잘못을 떠올리고, 남은 날을 바르게 살려 한다.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이 사랑은 끝났지만 예의와 품격은 남는다.


서희의 마음은 그보다 더 큰 파도를 지난다. 조준구와 홍씨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돌아가서 다 갚겠다”는 분노가 치밀지만, 그는 끝내 마음을 다잡는다. 분노를 좇다 보면 아이들과 자신의 삶이 무너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서희는 계산으로 조준구를 무너뜨리고, 아이 둘의 손을 잡고 조선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길상은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서희의 길은 ‘지금 여기서 가족을 지키는 일’, 길상의 길은 ‘밖에서 더 크게 싸우는 일’로 갈라진다.

나는 이 선택을 파탄이 아니라 각자 중요한 것을 선택한 것으로 읽고 싶었다.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이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김두수는 반대로 더 어두운 쪽으로 깊어진다. 금녀를 쫓아 하얼빈까지 가고, 총을 맞고도 이익부터 계산한다. 그는 독립세력의 재산까지 노린다. 거창한 말은 필요 없다. 김두수에게 탐욕이 있었고, 돈과 힘이 한패가 된 세상은 그런 사람을 더 빨리, 더 높이 올려 주었다. 그러니까 김두수의 악행은 그 사람만의 문제이면서, 그런 사람을 키워 주는 세상의 분위기이기도 했다. 이 조합은 앞으로의 더 큰 비극을 예고한다.

한편, 이 모든 소용돌이 뒤에서 시간은 묵묵히 흐른다. 누가 이겨도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붙고,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늘을 다시 추스른다. 서희는 돌아갈 준비를, 길상은 떠날 준비를, 옹이는 남은 날을 단정히 살아갈 준비를 한다. 책의 마지막에 남는 마음은 울분만이 아니다. 주먹을 꽉 쥔 분노가 아니라, 조용하지만 단단한 결심이다. 지금 당장 완벽히 이기지 못해도 내 자리를 만들며 버티겠다는 결심이다.


『토지 8권』은 선악을 가르는 판결문이 아니라 살 길을 찾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월선의 마지막은 “사랑은 끝까지 돌보는 일”임을,

서희의 결심은 “생존도 전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길상의 선택은 “해방에는 값이 따른다”는 현실을 보여 준다.

김두수의 행로는 “나쁜 마음을 더 키우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깨운다.

큰 구호 대신, 오늘을 살아내는 힘과 자세를 묻는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쓸쓸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앞으로 걸어갈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다음 9권이 기대되게 만드는 8권이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더럽고 아니꼬운 놈들만 잘사는 이눔의 세상 아니오? 도둑질 많이 하는 놈일수록 잘살고, 신령님이 있긴 어디 있어? 신령님? 복장 터지는 얘기지."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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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영감노트 -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전 수업
기무라 류노스케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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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류노스케의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셰익스피어를 책상 위의 고전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무대 위로 다시 불러오는 책이다. 연출가로서 배우와 스태프 사이에서 언어에 숨을 불어넣어 온 저자의 시선은 학술적 해설처럼 딱딱하지 않고, 무대 현장에서 얻은 생생한 감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묻는다. 우리는 정말 셰익스피어를 알고 있는가. “죽느냐, 사느냐”나 “오 로미오” 같은 대사는 이미 대중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400년 전 사람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말하고 있는 존재다.

저자는 셰익스피어를 “인간을 흔들고(Shake), 꿰뚫는(Spear) 천재”라고 정의한다. 그는 웃음과 눈물, 분노와 두려움, 삶을 지탱하는 힘까지 언어로 길어 올려 인간의 본질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언어의 힘은 단순히 문학적 장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사고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생몰 연대(1564–1616)를 장난스러운 기억술로 소개한다. “히토고로시 이로이로”라는 말장난은 전쟁과 죽음, 격동이 넘치던 시대의 공기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연극이 가장 활활 타오르던 런던으로 건너와 37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희극·비극·역사극을 넘나들며 오늘날의 ‘히트메이커’처럼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시대와 대중을 동시에 흔든 배경을 알게 되면, 그의 언어가 왜 지금까지도 생생한지 더 분명해진다.

책 속에서 다루는 대사들은 하나같이 강렬하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보고 외치는 말, “아아, (저 사람은) 횃불에게 찬란하게 타오르는 비법을 가르치고 있구나!”(『로미오와 줄리엣』 1막 5장)는 평범한 ‘아름답다’는 감탄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어지는 “저 손을 감싸는 장갑이 되고 싶다. 그러면 저 뺨을 만질 수 있을 테니!”(2막 2장)라는 고백은 다소 무모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진솔하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감정이 넘쳐흐르는 순간을 언어로 과감히 붙잡아냈다. 같은 장면에서 “드넓은 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별이…”라는 대사는 사랑의 고백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시킨다. 결국 메시지는 하나지만, 언어가 감정을 증폭시키며 청중에게 새로운 차원의 감각을 전달한다.

사랑의 언어가 인간의 감정을 끌어올린다면, 설득의 언어는 사람들의 행동을 뒤바꾼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안토니의 연설은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는 겸손하게 시작한다. “저에게는 지혜도 언변도 권위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피를 들끓게 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전략이었다. 이어서 그는 가정법과 반복을 통해 군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브루투스는 공명정대한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정말 그런가?’라는 의심을 자연스럽게 심어준다. 이렇게 언어가 현실을 움직이고 민중을 행동하게 만드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단순한 문학을 넘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힘으로 작용했음을 잘 보여준다.

짧은 문장 속에서도 본질을 찌르는 그의 언어는 더욱 빛난다. “사람은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악당일 수 있다. 적어도 덴마크에는 틀림없이 그런 자가 있다.”(『햄릿』 1막 5장)는 한 나라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오히려 모든 사회에 적용 가능한 통찰을 전한다. 또 “조심하시길, 장군이여, 질투라는 사실을. 이 녀석은 초록 눈을 한 괴물이오.”(『오셀로』 3막 3장)는 질투라는 감정을 초록빛 괴물로 형상화해, 인간의 내면을 서서히 좀먹는 무서운 감정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왜 지금도 끊임없이 새롭게 읽히는 걸까. 저자는 그 이유를 ‘여백’에서 찾는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몬테규와 캐퓰릿이 왜 원수인지,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이 재판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리처드 3세』에서 마가렛은 어떻게 쇠락했는지 등 수많은 빈칸이 남는다. 이 여백은 독자와 관객의 상상으로 채워지며, 작품은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완성된다. 기무라는 희곡을 “놀면서(희) 구부린다(곡)”라고 설명하며, 희곡이란 본래 관객과 배우, 독자가 함께 가지고 노는 장르라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셰익스피어는 시대를 초월해 늘 새롭게 해석될 수 있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 감정을 다루는 방식 또한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저자는 배우들에게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라고 주문한다. 좋은 배우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과 ‘놀 줄’ 안다. 로미오가 하루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인을 사랑한다고 외치다가 줄리엣을 본 순간 “내 마음이 지금껏 사랑을 한 적 있던가?”라며 갈아타는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감정이 원래 그렇게 모순투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한다. 전쟁조차 셰익스피어에게는 단순히 비극의 무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인간 감정을 자유롭게 굴리는 장치였다. 결국 그의 작품은 인간 정신의 자유를 예찬하는 무대였다.

책은 또한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권한다. “네 이 사탄놈아!”(『실수 연발』) 같은 짧은 대사라도 입 밖에 내면 기분이 정리되는 경험을 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나 “깨끗한 것은 더럽고, 더러운 것은 깨끗하다” 같은 대사를 읽는 순간, 마음은 전혀 다른 리듬을 얻는다. 저자는 이것을 ‘말의 임파워먼트’라고 부른다. 말이 사람을 위로하고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단순히 고전을 해설하는 책이 아니라, 언어가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주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마지막에는 부록이 실려 있다. 셰익스피어 연표를 통해 그의 생애와 더불어 태어나기 전의 시대적 사건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고, 주요 캐릭터 도감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개성과 특징을 다시 짚을 수 있다. 또 독자가 Yes/No를 선택하며 자신에게 맞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찾는 게임 같은 코너는 책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마지막에는 저자가 직접 추천하는 작품 목록까지 담겨 있어, 책을 읽고 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결국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고전이 결코 낡은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말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책이다. 셰익스피어를 멀게 느끼던 독자에게는 친절한 입문서가 되고, 이미 익숙한 독자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술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기 때문에,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 세계를 직접 탐험해보고 싶어진다.


'더퀘스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아아, (저 사람은) 횃불에게
찬란하게 타오르는 비법을 가르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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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싸우는가 - 싸울 수밖에 없다는 착각 그리고 해법
크리스토퍼 블랫먼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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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블랫먼의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싸우는가?”

저자는 우간다 북부와 시카고 갱단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폭력을 통해, 사회의 성공이란 단순히 부의 증가가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집 앞에 앉아 평온히 쉴 수 있고, 경찰이나 법원을 찾아 정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고향에서 쫓겨나지 않는 일상적인 안전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쟁을 국가 간 대규모 전투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마을과 씨족, 갱단과 종파, 정당과 국가 등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지는 폭력적 갈등을 모두 전쟁으로 본다. 사실 대부분의 적대적 집단조차도 실제로는 나란히 살아간다. 그런데 왜 어떤 사회는 타협에 실패하고 폭력으로 치닫는가?

블랫먼이 제시하는 답은 다섯 가지다.

첫째, 견제되지 않은 이익이다.

권력자가 전쟁의 대가를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을 때, 자신의 이득만 보고 무모한 선택을 한다.

둘째, 무형의 동기다.

복수, 명예, 종교적 열망 같은 가치가 현실의 피해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셋째, 불확실성이다.

상대의 힘과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선제공격이 합리적 선택이 되기도 한다.

넷째, 이행 문제다.

상대가 미래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은 오늘의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다섯째,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는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착각하면서 협상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잘못된 인식’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본문에서는 심리학적 편향들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지식의 저주’(내가 아는 만큼 상대도 알 거라 가정), ‘사후 확신 편향’(결과를 알고 나서 그 결과가 당연했다고 믿음), ‘허위 합의’(상대도 내 판단과 같을 것이라는 착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오류는 우리가 적의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해의 손길조차 속임수로 해석하게 만든다. 결국 갈등은 힘의 충돌 이전에 인식의 충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은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평화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도 이야기한다. 흔히 빈곤이나 불평등 같은 문제를 전쟁의 직접 원인으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것들이 단지 갈등을 악화시키는 연료일 뿐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다섯 가지 전쟁 동기를 약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다. 그가 말하는 보호 장치는 네 가지다. 첫째, 서로 얽혀 있을수록 전쟁 비용이 커지는 상호의존. 둘째, 권력자의 오판을 막는 견제와 균형. 셋째, 협상이 폭력보다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규칙과 집행. 넷째, 갈등이 폭발하기 전에 막는 개입. 이 네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전쟁은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 된다. 평화는 우연이 아니라 세심한 관리와 설계의 결과라는 점이 강조된다.

책의 후반부는 평화를 향한 구체적 길을 보여준다. 지난 300년 동안 서서히 진행된 참정권 확대와 정치권력의 분산은 폭력을 거치지 않고도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인쇄기와 같은 새로운 의사소통 기술, 신세계라는 대안적 공간, 군사기술의 변화, 새로운 생산 방식 등이 대중의 협상력을 높였다. 그 결과 엘리트들은 양보를 선택했다. 재무부나 관료제 같은 제도를 마련하고, 의회와 지방정부로 권력을 쪼개고, 도로·보건·학교 같은 공공재를 제공했다. 내부의 투쟁은 때로 격렬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협상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평등과 안전, 강력한 국가는 바로 이 과정 속에서 태어났다.

물론 취약한 사회에 사는 이들에게 수 세기를 기다리라는 말은 공허하다. 그들은 지금 당장 평화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조금씩 평화를 만들어가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고. 완벽한 해법은 없지만, 과학이 발전해온 길처럼 평화 역시 실험과 수정, 보완을 거듭하며 조금씩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전쟁을 인간 본성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제도와 인식의 실패로 설명한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고 현실적이다. 전쟁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같이 편향과 오해 속에 살아갈 때 이미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전쟁 연구서이자 평화를 위한 실용적 안내서다.

영웅적 덕목이 아니라 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인식의 장치를 갖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평화의 길임을 강하게 일깨워준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 '당신이 읽고 싶은 책은?'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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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적의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지 않는 재주, 그래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기는 커녕 혐오스러운 외집단에 대한 편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견해를 확증하는 고집스러운 성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주의, 확증 편향, 동기화된 추론 등 우리에게 내재한 편향성이 복합되면서, 신중하게 반응하며 양측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책을 찾으려는 우리의 의욕을 위축시킨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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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지적이고 싶은 사람을 위한 명문장 필사책
박경만 지음 / 책글터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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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만의 『인생에서 지적이고 싶은 사람을 위한 명문장 필사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고 삶의 태도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지 새삼 실감했다. 평소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 필사를 해왔는데, 이 책은 그런 습관을 한 권 안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준 느낌이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좋은 문장을 만나면 오늘 하루의 완성이며 다시 시작이다”라고 고백한 부분은 깊은 공감을 주며 곱씹을수록 울림이 있었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글쓰기에 관한 조언이었다. “사물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볼 것을 명심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그 대상 자체를 정확히 보지 않는다면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라는 구절은 글쓰기가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임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필사가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본질을 직시하고 구체적인 언어를 길러내는 훈련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책 속에서 인용된 파스칼의 구절 또한 오래 남았다. “사악한 인간들은 그 어떠한 진리를 알고 있어도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 있을 때에만 이것을 인정한다. 그 외의 경우에는 이 진리를 버린다.” 이 문장은 진리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내려는 용기라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 스스로는 과연 얼마나 일관되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저자가 전혜린을 회상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학창 시절 우연히 집어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고백은, 나 역시 살면서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삶의 방향을 흔들었던 경험과 겹쳐졌다. 전혜린처럼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강렬한 힘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루소의 『에밀』에서 발췌한 “인간의 정신적 고통은 전부 다 자신의 생각 속에 있다. (…) 시간이나 죽음은 우리의 약이나 다름없다.”라는 구절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실제 사건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이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통찰은 일상과 직결되는 메시지였다.

필사는 이런 문장을 내 안에 각인시키는 행위이고, 쓰는 과정은 곧 마음을 단단히 다지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공자의 가르침, 롤로 메이의 철학, 에밀 쿠에의 자기암시가 이어진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신의와 절약, 사랑을 강조했고, 롤로 메이는 인간이 본성을 실현할 때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밀 쿠에는 “나는 날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라는 자기 암시를 통해 확신과 믿음을 키울 것을 권한다.

짧은 문장이지만 삶을 바꾸는 힘은 언제나 이런 꾸준한 반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가 강조한 ‘삼다(三多)’, 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평소 책 읽기는 이어가고 있었지만, 나만의 글쓰기를 소홀히 했던 것이 아쉽게 다가왔다. 그래서 앞으로는 틈새 시간을 내어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고, 그 속에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지적이고 싶은 사람을 위한 명문장 필사책』은 그저 명문장을 모아둔 책이 아니다.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고, 필사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우는 책이다.

읽는 동안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다시 써보고 싶게 만들었고,

책을 덮고 나서는 그 문장들을 머릿속 깊이 새겨두고 싶어졌다.

결국 필사는 글을 옮겨 적는 일이 아니라, 나의 삶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성찰의 행위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책글터(세이코리아)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117>
기쁨은 행복과는 달라서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는데, 이 기쁨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완수하는 데서 동반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나 존엄성을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값있게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맛보는 것이다.
- 롤로메이(미국 심리학자)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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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기는 세일즈 - SNS로 억대 매출을 만든 워킹맘의 실전 전략
윤도연 지음 / 노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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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연의 『끌어당기는 세일즈』를 읽으면서, 처음엔 단순히 세일즈 노하우를 담은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은 물건을 잘 파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어떻게 삶의 고난을 버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가에 관한 기록에 가까웠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명함을 돌리고, 추운 겨울 복조리를 팔던 이야기,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맞으며 뛰어다니던 순간들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그때는 단순한 경험이었겠지만, 뒤돌아보니 그것이 집안 어딘가에서 이어져 내려온 기질임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의 도전 정신, 이모의 사업적 감각이 그녀 안에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삶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은행에 다니던 시절, 알 수 없는 아픔이 찾아와 결국 퇴사하고, 인도로 선교 활동을 떠났던 경험은 그녀를 다시 숨 쉬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부모의 말과 행동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고, 회사에 복귀했지만 끝내 다시 그만두게 되었다. 분가를 결심하고도 남편의 실직 소식에 절망했을 때, 읽는 나까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다. 메리케이를 시작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관심이 없던 동생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언니와 함께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두 자매가 함께 메리케이를 다니게 된다. 샘플을 나눠주고, 거절을 견디고, 때로는 삼각김밥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버텼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힘들었을 텐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순간조차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이 대목에서 힘들었던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전환점은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을 때였다. 병원 침대에 누워 울며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다섯 살 아들의 “엄마, 죽으면 안 돼요”라는 말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 장면을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수술은 성공했고, 살아남은 이후 그녀는 가족과 자신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그 뒤로는 예전처럼 몸을 갈아 넣는 방식 대신, 온라인으로 고객과 소통하며 더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찾아갔다.

책에는 세일즈 현장에서 얻은 깨달음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무작정 들이대는 영업 방식 대신, 작은 샘플 하나에도 진심을 담아 고객과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았다는 이야기. 메리케이가 한국 철수를 진행하던 순간에 성형외과에 스카웃을 받아 일할 때 고객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직접 지방 흡입 수술을 받는 경험, 중국 고객과의 상담을 위해 매일같이 중국어를 공부한 노력, 그 모든 과정이 단순한 영업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돕는 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녀의 세일즈는 단순히 판매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고객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방식이었다. 그녀의 세일즈는 끌어당김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억지로 밀어붙이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진정성을 느낀 고객이 먼저 다가오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후반부 내용 중에 와닿은 부분은 ‘끌어당김의 법칙’이었다. 부정적인 말이 불행을 끌어오듯, 긍정적인 상상과 언어가 기적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전한다. 저자가 핑크색 표지의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간절히 그렸고, 결국 그 꿈을 현실로 만든 이야기는 마치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세일즈를 단순히 ‘물건을 파는 일’이라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은 이 책을 읽고 완전히 깨졌다. 그것은 결국 사람과의 신뢰를 세우는 일이고, 자신을 세상에 당당히 드러내는 일이었으며, 끝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처럼, 그녀의 인생은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결국 새로운 길을 열어갔다.

『끌어당기는 세일즈』는 영업인을 위한 책으로만 보기엔 아깝다. 삶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특히 “성격은 선택할 수 없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 있다”는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나 역시 저자의 실천력을 보면서 작은 일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일을 작게나마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다. 그런 힘을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세일즈를 시도하고 있지만 자꾸 벽에 부딪히는 느낌처럼 막막하다면 저자의 경험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노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사업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내 길을 내가 결정하는 여정이다. 실패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방향을 조정하고 더 나은 전략을 발견하게 해주는 과정이다. 나는 늘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안에서 길을 찾았다. 단기 수익보다 장기 신뢰를 택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앞으로도 그 선택을 변함없이 이어갈 것이다.
이제 나는 단순한 판매자를 넘어, 삶의 변화를 제안하는 리더로 자리하고 있다. 잠재의식의 힘을 강조한 조셉 머피의 말처럼, "우리가 집중하는 것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된다. 내가 믿는 방향, 내가 선택한 길, 내가 책임지는 태도…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 또한 그렇게 만들어질 것이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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