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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낙천적인 아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0
원소윤 지음 / 민음사 / 2025년 7월
평점 :

<짧은 평 먼저>
이런 프롤로그 글은 또 처음이다. 이 작가의 세계관이 무척 궁금해지는 글이었다.
뭔가 새롭다. 프롤로그 글만으로도 왠지… 독특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것만 같은,
도무지 파악이 안되는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해져, 책을 열어보게 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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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이름이 치릴로, 소피아, 로무알다 등의 이름이 나오길래
순간적으로 외국 저자인데 잘못 본 건 아닌가 하며 책 표지를 다시 확인 해봤다는 사실은 비밀로.... :)
<본문 리뷰>
원소윤의 장편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된 작품으로, 저자의 삶과 경험이 깊게 배어 있는 성장소설이다. 원소윤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한 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 유머와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져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슬픔과 농담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감정 같지만, 사실은 서로 기대어 서 있다”라며, 웃음을 통해 삶의 무게를 버티고 싶었다는 집필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고민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소윤’이라는 화자가 있다. 소윤은 어린 시절 세 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첫째 오빠의 부재를 경험한다. 이는 소설 속 화자의 기억이자 동시에 작가의 실제 삶과 맞닿은 이야기다. 해마다 오빠의 기일이 다가오면 엄마는 깊은 슬픔에 잠기고, 어린 소윤은 그 곁에서 무력함을 느낀다. 이때부터 소윤은 현실을 견디는 방법으로 농담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여기서 농담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상실과 정면으로 맞서려는 최소한의 방어막처럼 그려진다.
성인이 된 소윤은 대학 시절에도 여러 차례 죽음을 마주한다. 타워크레인 위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위험한 노동을 보며 불안을 느끼고, 외할아버지 치릴로의 죽음을 지켜보면서는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외할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해, 끝내는 장난스럽게 써 내려간 자기 유서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알잖아, 전부 농담인 거.”라는 말로 끝난다. 이는 농담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농담을 삶의 태도로 끝내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읽힌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 곳곳에 스탠드업 코미디 대본 형식의 문장이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자는 마치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마주한 코미디언의 농담을 듣는 듯한 감각을 맛본다. 예수나 부처님을 대상으로 한 농담 같은 대목은 자칫 불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속에는 ‘신을 믿고 있었기에 농담할 수 있었다’는 역설적인 진심이 담겨 있다. 이는 작가가 종교학을 공부한 배경과도 맞닿아 있으며, 농담이 단순한 웃음을 넘어 인간의 신앙과 의심을 동시에 비추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소윤은 또 다른 자리에서 “코미디와 글쓰기는 다르지만 닮아 있다. 코미디는 관객이 웃는 순간 완성되듯, 글도 독자가 읽어야 비로소 완성된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무대에서 쏟아내는 농담과 책 속 문장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 다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의미를 얻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꽤 낙천적인 아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농담과 글쓰기가 함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 소설의 내용으로 들어 가보면, 첫 시작은 외할아버지인 치릴로의 죽음을 계기로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기억과 어린 시절의 불안, 신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치릴로는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서 성당에 들르곤 했다. 하지만 그가 올린 기도의 내용은 조금 뜻밖이다. 누군가의 평화나 건강이 아니라, 며느리, 아들, 사위, 딸에게 차례로 천벌을 내려 달라는 것이었다. 손녀에게 그런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들려주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또 묘하게 애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치릴로는 자신의 글씨체를 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획과 획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빈틈이 남는 글자를 못마땅해하며 손녀에게 종종 글을 대신 써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화자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모든 획이 꼭 닫힐 필요는 없어요.”
글씨가 완벽하게 닫히지 않아도 하나의 문장을 이루어 내듯, 사람에게도 흠이 있어도 괜찮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이 말은 치릴로를 향한 위로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무말랭이무침에 섞여 있던 흰머리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화자는 투덜거리며 먹었지만, 치릴로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도저히 입에 댈 수 없었다. 결국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야 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버렸던 쓰레기 중 가장 버리기 힘든 일이었다. 반찬 하나마저 치릴로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그것을 버리는 일은 곧 그를 떠나보내는 또 다른 작별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사소한 기억들이 쌓여 치릴로라는 인물과 그를 생각하는 화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치릴로의 죽음은 화자에게 신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신은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인정사정없는 개자식일 뿐이었다”라는 독백에는 깊은 절망이 배어 있다. 오랜만에 마주친 교회 선배와 나눈 대화에서는 “죽음이 끝이라면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이 던져진다.
화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우리가 고통을 받는 존재들이니까, 서로 너무 못되게 굴면 같이 힘들어질 것 같다”고 답한다.
단순하지만 진솔한 이 대답은, 인간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가 고통을 겪는 존재이기에 최소한 서로를 더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창한 철학보다 이런 작은 깨달음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기억은 더욱 절절하다. 소윤은 늘 엄마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았다. 엄마가 베란다에 기대어 이불을 털 때마다 혹시 뛰어내릴까 봐 두려워했고, 수업 중에도 불안이 가득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소윤이야”라고 외쳤다. “엄마가 그러다 죽을 것 같았다”는 문장은 어린아이의 공포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열 살 무렵, 선생님이 “소윤이는 무인도에서도 살아남을 아이”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안심했지만 정작 소윤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가 안심하면 자신이 진짜 혼자 살아남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강인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누구보다 큰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소중한 존재인 치릴로 뿐만 아니라 엄마라는 존재도 언젠가 떠나버릴까봐 그 두려움이 가슴속에 남아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소설 속에는 이런 일상의 사소한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작품 속 기억들은 일상적이고 소소하지만, 그 속에 무거운 감정이 배어 있다. 빈 두유 팩, 무말랭이무침, 도서관의 침묵 같은 사소한 장면들이 화자의 내면과 연결되며 고독과 성숙을 드러낸다. 도서관에서 사회복무요원이 “넌 애가 30대 같아”라고 말했을 때 느낀 묘한 기분도 그렇다.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어야 했던 아이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특히, 부모의 사고를 ‘레드 카펫을 밟는 장면’으로 바꾸어 상상하는 대목은 특히 강렬했다.
죽을 수도 있었던 순간을 뒤집어 살아남은 것 자체를 찬란한 무대처럼 비춘 것이다.
그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모인다.
신을 원망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화자는 끝내 유머를 놓지 않는다.
농담이 삶의 무게를 덜어주지는 못하지만 유머가 있기에 우리는 하루를 더 살아낼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힘들어도 서로를 조금 덜 힘들게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제목의 ‘꽤 낙천적인’이라는 표현 역시 특별하다. 이것은 세상에 긍정만을 뿜어내는 명랑함이 아니라, 무겁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가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낙관적이되 절망을 모른 척하지 않는 태도, 그 ‘꽤’라는 단어가 이 작품의 분위기를 잘 압축한다.
결국 이 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농담은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농담을 통해 우리는 고통과 나란히 설 수 있다. 농담이 무력하다는 걸 알면서도 웃어 보려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삶을 붙잡아 주는 가장 인간적인 힘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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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편지 한 줄을 달랑 적어 전달한 날. 선물이 없는 대신 글씨라도 또박또박 쓰려고 어찌나 애를 썼던지. ‘저희를 위해 하신 일과 하지 않으신 일에 대해 미안하고 감사하빈다. 원소윤 올림’ 하나 마나 한 말을 적어 건넸는데 민망하게도 엄마는 그 편지를 액자에 꽂아 거실 벽면에 걸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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