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따위 모르고 살고 싶었겠지만 - 물리 덕후가 들려주는 십대가 꼭 알아야 할 일상 속 물리 199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 엮음, 황선영 옮김, 나재흠 감수 / 뜨인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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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따위 모르고 살고 싶었겠지만』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 책이 물리학을 단순한 공식이나 문제 풀이가 아니라 모험 이야기처럼 풀어낸다는 점이었다. 실험을 반복하다 지쳐버린 물리 군이 어느 날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림이 새겨진 맨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낯선 세계 ‘물리도’에 도착한 그는 말하는 고양이 수냥이를 만나게 된다. 물리 군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서 주어지는 미션들을 하나씩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물리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책은 집, 음식, 학교, 전자제품, 빛, 날씨, 우주, 연구소라는 여덟 가지 테마로 나뉘어 있다. 각 영역은 우리가 살아가며 흔히 궁금해했지만 대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들로 채워져 있다. 양치질 후 치약거품이 물속에서 사방으로 퍼지는 이유, 거품망을 쓰면 비누 거품이 풍성해지는 까닭, 햇볕에 말린 이불이 왜 푹신해지는지, 대형마트의 무빙워크가 어떻게 카트를 붙잡아 주는지 같은 질문들이 등장한다. 답변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장면과 연결되어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치약거품이 퍼지는 원리를 설명하면서 계면활성제의 구조와 표면장력의 변화를 함께 알려주고, 이불이 푹신해지는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자외선이 세균을 없애고 섬유 속 공기량을 늘려주는 원리까지 덧붙인다.

읽다 보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깨달음이 이어진다. 무빙워크의 홈과 카트 바퀴 외륜이 만들어내는 마찰력이라든가, 거품망 속 촘촘한 구멍이 공기를 비눗물에 잘 스며들게 한다는 원리처럼, 익숙한 풍경 뒤에 숨겨진 과학이 차례차례 드러난다. 이밖에도 “높은 층에 살수록 모기가 덜 올까?”, “인형 뽑기 기계에서 인형을 쉽게 뽑는 방법이 있을까?” 같은 호기심 가득한 질문들도 다뤄지는데, 단순히 생활 팁이 아니라 물리적 원리로 접근해 답을 들려주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미션 수행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물리 군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질문이나 고민을 듣고 그것에 과학적으로 답해야 한다. 그 답변이 곧 미션의 해결이고, 미션이 완료될 때마다 “미션 완료! 다음 단계로 출발!”이라는 문구와 함께 다음 여정이 열린다. 독자 역시 물리 군과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풀어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셈이다.

책을 덮고 나면 결국 이 모든 모험이 단순한 이야기 놀이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매일 마주치는 현상들을 과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이라는 걸 알게 된다. “혹시 내가 무슨 사명을 가지고 이 세계로 넘어온 게 아닐까?”라고 자문하는 물리 군의 말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작은 사명을 가진 존재인지 모른다.

『물리 따위 모르고 살고 싶었겠지만』은 물리를 어렵게만 느껴온 사람들에게는 생활 속 호기심으로 들어가는 친근한 길을, 이미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잊고 있던 탐구심을 다시 불러내는 자극을 준다.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도 좋고, 청소년에게는 배움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 주며, 어른에게는 일상에서 과학을 발견하는 새로운 눈을 열어 준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과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곁에 있고, 질문하는 순간 세상은 달라 보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양치질, 햇볕에 널린 이불, 무빙워크 같은 작은 장면 하나하나가 과학적 탐구의 출발점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뜨인돌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Q. 대형마트의 무빙워크가 카트를 고정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관찰력이 좋은 친구들은 분명 무빙워크 바닥에 줄줄이 파여 있는 오목한 홈을 발견했을 거예요. 카트를 끌고 무빙워크를 타면 카트의 바퀴가 홈에 끼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이때 카트가 붙잡힌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도 그렇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카트의 바퀴는 바깥쪽 바퀴인 고무 재질의 외륜과 안쪽 바퀴인 내륜, 브레이크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외륜의 폭은 무빙워크 표면에 있는 홈의 폭과 비슷하지요. 카트가 무빙워크에 오르면 외륜이 눌리면서 홈에 끼워지고, 바퀴의 측면과 홈의 측면에 마찰력이 생겨서 바퀴가 앞이나 뒤로 쏠리지 않는 거예요. 다만 외륜이 심하게 마모되면 마찰력이 줄어들거나 생기지 않아서 바퀴가 홈에 완전히 끼어도 카트가 움직일 수 있어요. 브레이크 블록은 이런 상황을 방지합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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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다음 집
상현 지음 / 고래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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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현 작가의 그림책 『집, 다음 집』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며 느낀 건,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읽는 동안 오래전에 살았던 집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집, 크기가 작아 답답했지만 자유의 설렘이 깃들었던 첫 자취방,

잠시 머물다 간 임대 집까지.

이 책에서 특히 “아담한 방의 첫인상은 작은 큐브 같았다. 당연히 불편함 투성이었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예전에 살던 작은 원룸이 눈앞에 그려졌다. 공간은 비좁았고 불편했지만, 혼자서 살아간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던 곳이라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책 속에서 알바 알토의 ‘마이레아 주택’ 이야기를 만났을 때는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마이레아(Marie’s)는 집주인 아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자, 핀란드어로 ‘사랑스럽다’는 뜻이라고 한다.“사랑스러운 집이란 무엇일까? 머물던 집을 사랑스럽게 여겨본 적이 있었을까?”

돌이켜보니 내게도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집이 있었다.

멋진 설계나 근사한 구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함께했던 사람들과 품어낸 시간이 집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책은 집에 머물지 않고 동네로까지 이야기를 확장한다.

“굽이진 골목은 복도 같은, 나무 아래 벤치는 안방 같은,

조용한 서점들은 서재 같은, 곳곳 계절을 펼쳐낸 풍경은 경계가 사라진 무한한 창문 같은”이라는

표현은 주변 동네를 바라보며 머물고 싶은 집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동네 속에서 발견하는 시각이 재미있다.

또 한 구절이 오래 와닿았다.

“좋은 집이란 어쩌면 다음 집을 꿈꾸고 상상하게 만드는 집이 아닐까 싶었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현재가 아니라, 언제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발판이다.

이사라는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삶의 전환과 미래의 꿈까지 포함하는 말처럼 들렸다.

책의 제목 ‘집, 다음 집’이 더욱 깊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책 속에는 사소한 일상도 따뜻하게 포착돼 있다.

저자는 집에서 읽기 좋은 곳을 정하기 어렵다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벽에 기대기도 하고, 바닥에 눕기도 하고, 창가에 걸터앉기도 한다. 부산스럽지만 “흔들리는 문장들 사이에서 균형감을 찾는 느낌이 좋아서” 멈춰 선다고 말한다. 그 고백들이 나 또한 책을 읽다가 자리를 옮겨가며 시간을 보내던 모습이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났던 장면이기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점이 다시 공간이 되는 것처럼, 집은 언제나 나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다 놓는다. “짧은 산책으로 확인한 단순한 진실은 나를 안도하게 하고, 비로소 적당한 거리 속에서 다시 일상을 움직이게 만든다”라는 문장이 그 감각을 잘 담아냈다. 세상 속에서 흔들려도 결국 집이 있기에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이 책은 집을 치유의 공간으로도 그린다.

“마음의 회복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 집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볕이 오래도록 드는 창,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동체,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당 같은 곳에서 우리는 서서히 회복한다. 치유의 종착역은 결국 바깥이다. 창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 세상으로 다시 걸어 나가는 힘. 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햇살 좋은 날, 창문을 활짝 여는 작은 행동에서 비롯된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 <업>과 닿아 있다. 칼 할아버지가 아내 엘리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놓쳐버렸을 때, “집은 그냥 집일 뿐이야”라고 담담히 말하던 순간. 결국 중요한 건 집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쌓인 기억이라는 메시지였다. 저자는 집을 여러 개의 그릇에 비유한다. 금이 간 그릇도, 상처가 담긴 그릇도 결국은 사랑할 만한 테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어떤 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집 자체를 사랑하는구나. 그저 집다운 집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지나온 집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금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

앞으로 꿈꾸는 집의 모습은 어떨까?

『집, 다음 집』은 짧고 간결한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남겨주는 여운은 길다.

단순한 그림책을 넘어 집을 매개로 자기 삶을 비춰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고래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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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공간의 사진은 찰나의 장점만을 보여줄 뿐이다. 사실 현실은 불완전함을 적당히 메우며 살아가는, 임시방편의 삶일 뿐이다. 잡지 속에서든, SNS 속에서든 내가 살아보지 않으면,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빈틈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적당히 해결하며 살아간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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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이재아 지음 / 담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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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는 퇴직 후에도 한시를 배우고 친구들을 가르칠 만큼 똑똑하고 품위 있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약속을 잊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친구분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 이미 알츠하이머라는 낙인이 찍혔다.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같은 병을 진단받는 순간, 우리 가족의 삶은 전혀 다른 궤도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주 깜빡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짐을 싸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나중에 되어서 알게 되었지만, 그건 불안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집 안 곳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보따리들을 보면서,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가슴이 저려왔다. 그때는 왜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저자는 엉뚱한 소리만 하며 짐을 풀어 놓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쓰라렸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만 앗아가는 병이 아니었다.

성격이 달라지고, 때론 억지를 부리고, 작은 일에도 짜증을 냈다.

신사에 멋쟁이셨던 아버지가 목욕을 거부하시며 화를 내실 때마다,

“이게 정말 우리 아빠가 맞나?” 싶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스스로를 달랬다.

“내가 미워서 이러는 게 아니야. 다 병 때문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억지로 웃었다.

그러나 돌봄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부모의 돌발행동을 받아내는 건 단순히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끝없는 불안, 책임감,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부모만 신경쓰고 버티고 있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와 정신의학과를 찾게 되었다.

의사 앞에서 10분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날도 많았다.

대화 도중에 의사 선생님이 “고생 많았어요”라는 한마디의 위로가 삶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선명하게 꺼내셨다.

6.25 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영어를 배우지 못한 아쉬움,

원래 가고 싶었던 법대 대신 아버지의 권유로 들어간 공대 이야기, 이루지 못한 아메리칸드림….

환자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청년으로서의 아버지를 다시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낯설게 다가오는 아버지의 과거를, 나는 늦게나마 곱씹었다.

끝내 병세는 악화되었고 중환자실에 누운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

팔이 묶인 채 애절하게 “이거 다 풀어다오”라고 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코로나 시국이라 병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유리창 너머로 마지막 얼굴을 본 것이 생전 마지막이었다. 집에 돌아와 무릎 꿇고 엎드려 목 놓아 울며 “끝까지 돌봐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사망신고를 하루 늦게 하며 과태료를 낸 것도, 아버지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어서였다.

그 후의 시간은 공허했다. 엄마마저 돌아가시자 우울은 더 깊어졌다.

두 달 동안 집 안에만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본 바이크 영상이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자연 속에서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이 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나도 한번 타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은 설렘이 내 삶의 시동을 다시 걸게 만들었다.

아버지를 돌보며 받았던 수많은 작은 도움의 손길도 떠오른다.

휠체어를 들어 올려주던 낯선 사람, 문을 잡아주던 이웃. 그 사소한 친절이야말로 내 삶을 지탱해 준 힘이었다. 돌봄은 한 사람이 온전히 짊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도움, 나눔, 함께 버티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 집에 혼자 남았지만,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며 인사를 건네는 일상이 나를 지탱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저 들어왔어요.” 그렇게 속삭이면, 여전히 곁에서 대답해 주실 것만 같다.

텅 빈 방에 햇살이 스며들 때, 그 온기가 아버지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단순히 한 가족의 고통스러운 기록이 아니다.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이자, 돌봄의 무게와 상실의 아픔,

그리고 다시 살아내려는 의지에 관한 이야기다.

읽는 내내 저자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었고, 죄책감이 내 마음까지 짓눌렀다.

하지만 동시에, 작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응원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는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삶과 죽음, 사랑과 돌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현재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새삼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는 순간들 앞에서,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사랑을 표현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절절히 일깨워 준다.

결국 이 책은 한 사람의 기록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지금, 곁에 있는 이를 사랑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건넨다.


'담다스 5기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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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영정사진은 슬픔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돌아가시고 한동안 집에서 누워만 있고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일주일 넘게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영정사진을 보고 대화를 시작했다.

"저 지금 나가요. 다녀오겠습니다."
"저 들어왔어요."

그렇게 말을 건네고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 멀리 어딘가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희미한 연결감을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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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빛나는 시간 오십, 당신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된다
최재필 지음 / 작품미디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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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필의 『내 인생의 빛나는 시간 오십, 당신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된다』를 읽으면서, 다가올 미래의 오십이라는 숫자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책의 서문에서 마주한 문장 ― “인생에는 두 번의 봄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이 아직 가능할 때의 이십 대,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여전히 가능함을 깨닫는 오십 대” ― 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저자가 말하는 이십 대의 꿈과 오십 대의 꿈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고, 그 안에는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과 호기심이 숨 쉬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열정을 어디에 어떻게 쏟아야 하는지를 더 잘 알게 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오십을 인생의 마감이 아니라 도약의 티핑포인트라고 정의한다. 예전 사회에서는 오십이라는 나이가 ‘예비 은퇴’나 ‘정리’ 같은 단어와 함께 떠올랐지만, 지금의 오십은 균형 있게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이다. 사회가 규정하는 오십의 모습과 내가 바라는 오십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 그리고 바로 그 틈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는 내 마음 깊이 와 닿았다.

특히 “두 나라, 두 지구, 두 브레인”을 모두 경험한 세대라는 정의가 인상적이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직관적 사고에서 AI의 효율적 사고로 이동하는 전환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세대가 바로 지금의 50대다. 그래서 오십은 과거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미래를 잇는 다리와 같다. 인간적인 직관과 첨단 기술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큰 자산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책은 가능성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십을 맞이하면서 누구나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 “내 경력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건 아닐까?”, “새로운 기술을 못 따라가면 도태되는 건 아닐까?” ― 같은 고민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기에, 저자의 진솔한 고백에 더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옆집 형처럼 등을 툭 치며 “한번 해봐”라고 말한다. 담백하지만 묘하게 힘이 되는 격려였다.

책 속에는 실제 사례가 풍성하다. 52세에 맥도날드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레이 크록, 40대 후반에 첫 책을 내고 50대에 미디어 제국을 세운 마사 스튜어트, 50세에 요리책을 쓰고 51세에 방송을 시작해 미국 요리 문화를 바꾼 줄리아 차일드, 65세에 치킨 프랜차이즈를 일군 커넬 샌더스, 그리고 40세에 웨딩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해 50대에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 베라 왕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오십을 새로운 시작의 시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도전은 무모한 기세가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 직관과 자신감 덕분에 가능했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가장 좋은 시작”임을 강조한다.

책이 반복해서 전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균형’이다. 젊을 때는 속도와 성취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일과 관계, 건강과 배움, 기여 사이의 균형이 핵심이다. 퇴직을 소속의 상실이 아니라 시간의 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은퇴 대신 “졸업”과 “새로운 입학”이라는 단어로 바꿔 부르는 발상도 인상 깊었다. 삶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아니라, 새롭게 배우고 시작하는 출발점이라는 관점이 참 신선했다.

이 책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추상적인 위로나 좋은 말이 아니라,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지침들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아침 시간을 걷기나 독서로 채우는 작은 습관, 관계의 질을 점검하고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는 태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 자세 같은 것들. 화려한 목표가 아니라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이라서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저자는 또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말을 인용해 오십 이후의 길을 더욱 풍성하게 풀어낸다. 세네카의 “인생은 짧지 않다. 우리가 그것을 낭비할 뿐”, 루소의 “시간은 우리가 가진 유일하고 진정한 재산”, 고대 그리스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 미켈란젤로의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고백,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을 통과해야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비유까지. 이 모든 인용이 오십을 단순한 숫자가 아닌 삶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오래 남은 메시지는 “비교 대신 자기 수용”이었다. 이십 대에는 남과 비교하며 초조했고, 오십 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비교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꽃이 저마다 다른 계절에 피듯, 나 역시 나만의 리듬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한 문장이 불안했던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주었다.

책을 덮고 나니 오십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두려움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바라보아야 할 나이. 저자가 말한 것처럼 하루하루를 천당처럼 감사히 살아가는 태도를 가지려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도 천당에서 하루를 보낸다”라고 생각하고, 작은 선택들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 소소한 행동들이 모여 결국 내 전성기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이 책은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따뜻한 동행에 가깝다. 불안과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괜찮아, 해봐”라고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는 친구 같았다. 이제 오십이라는 숫자가 더는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막 열리고 있다는 설렘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오래 미뤄왔던 공부를 시작해보고, 오랜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야겠다.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내가 꿈꾸는 전성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안게 되었다.


'작품미디어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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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란 그 꿈을 달성한 ’미래’가 아닌 몰두할 수 있는 ‘현재’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꿈을 따르고 몰두하면서 수년을 살다 보면 결국 상당히 큰 뜻을 성취할 수 있다. 오십 이후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
- 아리카와 마유미(작가)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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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사랑 구조법 - 자꾸 꼬이는 연애를 위한 본격 생존 매뉴얼
앨릭스 노리스 지음, 최지원 옮김 / 밝은미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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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isner Awards(COMICS계의 오스카상) Nomineee

해외 누적 조회수 1,200만의 웹툰

“어떻게 사랑하라가 아닌, ’당신답게 사랑하라’고 말하는 책”

앨릭스 노리스의 『망한 사랑 구조법』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느낀 건, 이 책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애 조언집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다. 2024년 아이스너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해외 웹툰으로 누적 조회수가 1200만을 넘었다는 사실 때문에 관심이 갔지만, 막상 읽다 보니 단순한 연애 만화나 가벼운 조언서로만 볼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한다”는 답을 던지지 않고, “당신답게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내세운다는 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책은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읽을수록 묘하게 무게감이 있다. 우리가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받아온 연애의 법칙들을 하나하나 비틀며 보여주기 때문이다. 보통은 누군가의 강연이나 자기계발서에서 정답처럼 제시되는 연애의 규칙을 외우고 따르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런 관행 자체가 얼마나 기묘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정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다운 사랑’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혼자일 때, 함께일 때,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각 부분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담겨 있다. “사랑은 꼭 필요한가?”, “왜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서 더 어색해질까?”, “고백했다 차이면 어쩌지?”, “이상적인 연인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같은 물음들은, 읽는 내내 나 자신의 경험과 겹쳐지며 곱씹게 만든다.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사랑은 꼭 필요한가?”였다. 저자는 사랑이 인간을 온전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타인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가까운 사랑의 대상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점.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것, 그것이 곧 타인의 사랑을 받아들일 힘이 된다는 말이 낯설지만 묘하게 위로가 됐다. 사랑의 시작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질문, “혼자가 더 좋다면?”도 기억에 남았다. 홀로 만족스럽게 살아도 세상은 늘 연애하지 않는 사람을 불행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시선을 견뎌내며 자기만의 삶을 지켜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읽으면서 ‘사람마다 삶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렇게 크게 다가온 적이 있었나 싶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강하게 사회적 규범 속에서 길러져 왔는지 깨닫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특정한 젠더 역할을 연기하길 요구받고, 반드시 이성과 짝을 이뤄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저자는 사랑이 반드시 젠더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이유는 다양하고,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큰 울림을 남겼다.

그리고 “이건 사랑인가 욕망인가?”라는 질문은 특히 솔직했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없으니 결국 대화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말, 각자가 무엇에 매료되는지 서로 이야기하며 두 사람의 감정이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조언이 인상 깊었다. 사랑을 눈치로만 알아차리길 바라는 내 습관을 돌아보게 만들고, 결국은 솔직한 대화가 관계를 지탱하는 핵심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과거 경험이 떠올랐다. 늘 같은 패턴으로 연애가 힘들었던 이유, 새로운 관계 앞에서 어색함과 불안이 따라붙었던 이유, 또 이별 후에도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순간들을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됐다. 정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 힘이 분명히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책은 하트를 사랑의 여러 측면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그려낸다. 사랑은 부드럽고 아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날카롭고 아프기만 하다. 그 안에 갇히면 옴짝달싹 못 하게 되기도 한다. 책은 사랑을 추상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지만, 결국 현실을 마주하면 사랑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깨닫게 된다. 직접 부딪치며 실수를 통해서만 비로소 자신만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책을 읽고 나니, 부디 자기만의 사랑 방식을 찾으라는 저자의 당부가 마음속에 남았다. 그래야만 어려움에 대비하고 위험을 피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 책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 건 독자가 그 안의 이야기를 자기 삶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라는 말이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책 말미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노리스는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히며, 이 책에 그런 시각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한다. 원래는 풍자적인 웹툰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독자들이 바란 건 가볍고 웃긴 농담이 아니라 공감에서 비롯된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고 고백한다. “제 인생이 완벽해서 조언을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남다르고 괴상한 책을 써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게 저라는 사람이니까요.”라는 말은, 이 책 전체의 톤을 가장 잘 보여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이상하고 괴상해도 그게 곧 나라는 사실.

결국 『망한 사랑 구조법』은 망한 사랑에 매달리지 않고 나답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게 해준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갇히지 않도록 이끌고, 수많은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다. 사랑은 늘 어렵고 때로는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나다운 방식을 찾아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배워야 할 사랑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묻고 또 묻는 든든한 동반자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밝은미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특정한 젠더를 연기하도록 강요받아요.
다른 젠더처럼 꾸미거나 대담한 시도를 해 보는 건 허락되지 않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반드시 "이성"과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배워요.
조금이라도 그 길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취급받으며, 손가락질 당하기도 해요.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젠더에만 집착하지만, 누군가에게 끌리는 이유에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고 있어요. 연인의 어떤 면을 중요하게 보는지는 사람마다 달라요.
젠더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여태껏 굳어진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내가 정녕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것도요.
외부의 시선과 죄책감을 이겨 내야 하니까요.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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