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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한국어판 발매 20주년 기념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5년 9월
평점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강제 수용소라는 극한의 현실을 기록하면서도, 인간이 그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책이다. 영어판만 73쇄에 이르렀고, 19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어판만 250만 부 이상이 팔린 기록은 이 책이 전 세계 독자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를 증명한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에서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담담하고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고, 존엄과 자유가 박탈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프랭클은 작은 친절과 연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기억, 혹은 자연의 한 장면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지탱하는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카포라는 죄수 관리자들의 잔혹함과 배신이 절망을 더 깊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삶의 의미를 붙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이 물음의 답이 제2부 「로고테라피란 무엇인가」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로고테라피는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학파와 달리 인간을 쾌락(프로이트의 ‘쾌락의 법칙’)이나 권력(아들러의 ‘우월 욕구’)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프랭클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본다. 특히 그는 인간이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발생하는 ‘누제닉 노이로제(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정신적 공허와 절망으로 인한 신경증)’를 주목했다. 이 신경증은 단순한 심리적 갈등이 아니라 실존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프랭클이 강조하는 로고테라피의 특징은 몇 가지다.
첫째,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보다 덜 회고적이고 덜 자기 성찰적이다.
대신 환자가 미래에 성취해야 할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나 ‘피드백 기제(feedback machanism)’를 약화시켜 환자가 자기 집중에 빠지고 증상이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셋째, 환자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데 초점을 두며, 이를 통해 환자가 정신적 역량을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로고스(Logos)’가 그리스어로 ‘의미’를 뜻하듯,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그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근본적인 동력으로 본다.
프랭클은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단순한 본능의 ‘이차적 합리화(자신의 본능적 충동이나 행동을 그럴듯한 이유로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과정)’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이며,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해야 하고 그 사람만이 실현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고, 때로는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다. 프랑스와 빈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고 대답한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자신의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을 우선순위로 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프랭클은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될 때 ‘실존적 좌절’이 생긴다고 본다.
실존적 좌절은 병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이며,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잘못 해석하면 의사는 환자의 실존적 절망감을 단순히 신경 안정제로 잠재우려 하게 된다. 프랭클은 이를 경계하며, 의사의 역할은 환자가 실존적 위기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자신의 실존 안에 숨겨진 ‘로고스’, 즉 삶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도록 이끄는 과정을 과제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과 닮았지만도 다르다.
무의식 속 본능적 요소만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앞으로 성취해야 할 잠재적 의미까지도 고려한다. 인간을 단순히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존재, 사회와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로 보지 않고, 의미를 성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정신 분석과 구별된다.
프랭클은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마음에 평온보다는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긴장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다. 이미 성취한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역동성이다. 그는 이를 건축의 아치에 비유한다. 아치를 튼튼히 하기 위해 건축가는 하중을 더 얹는다.
마찬가지로 심리 치료사는 환자가 삶의 의미를 찾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긴장을 유도해야 한다.
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이러한 메시지를 현재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1983년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발표한 강연을 바탕으로, 프랭클은 인간 존재의 세 가지 불가피한 조건―고통, 죄,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여전히 삶에 “예스(Yes)”라고 말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비극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껴안으면서도 다시 삶을 긍정하는 힘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낙관이란 현실을 가볍게 덮는 긍정이 아니라, 고통과 상처를 껴안은 채로 나아가는 용기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책의 1984년 서문에 담긴 프랭클의 조언은 지금도 울림이 크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행복과 마찬가지로 성공은 목표로 삼는 순간 멀어진다.
그것은 무관심할 때, 어느 날 불현듯 다가오는 것이다.”
그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우리가 성공을 집착처럼 좇는 습관이 오히려 삶을 더 빈곤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할 때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였던 고든 W. 올포트의 추천사는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적 동기와 불안에 초점을 맞춘 반면, 프랭클은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누제닉 노이로제(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정신적 공허와 절망으로 인한 신경증)’를 주목했다고 말한다. 프랭클은 프로이트의 업적을 무시하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학파를 세웠으며, 다른 실존적 치료법과 대립하기보다 함께 논의하며 발전시켜 나갔다. 올포트는 이 책이 단순한 체험담을 넘어, 인간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지막 자유, 곧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를 지닌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준다고 평하며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전하는 핵심은,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없지만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자유는 언제나 남아 있다. 로고테라피는 그 자유를 현실 속에서 실천하도록 돕는 철학이자 치료법이며, “비극 속에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자유는 바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삶의 안내서가 된다. 절망의 순간에도 의미를 붙잡을 수 있고, 그 순간 삶은 다시 빛을 발한다.
바로 이것이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세대를 넘어 읽히는 이유이자,
내가 이 책을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권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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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정신 분석과 비교해 볼 때 로고테라피가 덜 회고적이고, 덜 자기 성찰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로고테라피는 미래, 즉 환자가 미래에 성취해야 할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실제로 로고테라피는 의미에 중점을 둔 정신 치료법이다). 동시에 로고테라피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 formation)’와 ’피드백 기제(feedback mechanism)’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 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 집중 증상아 발생하고 깊어지는 것을 막는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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