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9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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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토지 9권(3부 1)』은 3·1운동 이후의 거친 시대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고 무엇을 고르는지 조용히 따라가는 이야기다. 처음에 나오는 “뿌리 없는 나무도 없고, 열매 없는 나무도 없다”는 말이 이 권 전체를 이끈다. 뿌리는 우리 각자의 과거와 가족, 고향이고, 열매는 오늘 해야 할 선택과 책임이다. 나는 뿌리를 없애야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인정하고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더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무대는 간도와 용정, 하얼빈, 그리고 평사리로 이어진다. 만세의 함성은 잦아들었지만 체포와 감시, 흩어진 가족,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남는다. 자연은 먼저 봄을 보여 준다. 얼음이 녹아 강물이 흐르고, 까치는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고, 번데기가 몸을 흔들어 나비가 되려 한다(9권 p247). 추운 겨울을 버틴 다음에야 따뜻한 계절이 오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버틴다.

서희는 오래 준비한 끝에 조준구와 마주선다. 집을 넘기는 자리에서 서희는 두 가지를 딱 잘라 말한다. 양심을 가져갈 것인지, 오천 원을 가져갈 것인지 고르라고 한다. 조준구는 돈을 고른다. 그 순간 서희가 크게 웃는다. 그 웃음은 단순히 “이겼다”가 아니다. 오래 의심하던 조준구의 속마음을 스스로 드러내게 만들었다는 시원함, 길게 끌던 싸움이 끝났다는 가벼움, 그리고 상대의 낮은 선택을 바라보는 차가움이 섞인 웃음이다. 나는 이 장면이 통쾌한 응징이라기보다 “판단을 끝낸 순간”처럼 느껴졌다. 말싸움으로 누르지 않고, 선택의 자리로 끌어내어 스스로 답하게 만든 점이 서희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에 쥔 승리와 마음의 평안은 다르다. 아이들을 얻고 집을 되찾아도 서희의 가슴에는 바람이 분다. 긴 세월의 결핍이 남긴 허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길상과의 사이는 가깝지만 멀고, 환국과 윤국을 향한 애틋함은 때로 불안과 집착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상처가 채워지는 동안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채운 뒤에도 모습을 바꿔 계속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홍이는 이 권에서 유난히 마음을 끈다. 월선의 죽음 뒤에 그는 흔들리고, 생모 임이네를 받아들이지 못해 거칠게 굴기도 한다. 그래도 끝내 아버지 용이를 찾아 산으로 들어가 섣달 그믐에 함께 내려온다. 홍이는 그 길에서 어른의 문턱에 선다. 용이는 예전의 호기와 기세가 사라지고 병든 몸으로 삶과 죽음 사이를 서성인다. 말은 줄었지만, 지나온 날들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다. 나는 부자의 화해가 큰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겨울바람을 함께 맞는 조용한 시간에서 시작된다고 느꼈다.

한복이는 “죄인의 아들”이라는 낙인 때문에 언제나 문턱 앞에서 멈춰야 했던 사람이다. 함께 노래하고 외치고 싶어도 스스로를 묶어 두어야 했다. 그러다 드디어 역할을 맡고, 길상이 한복이를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그때 한복이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확인한다. 나는 옳다고 말하는 것보다 자리를 내어 주고 일을 맡기는 행동이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했다.

김두수는 점점 더 어두워진다. 처음에는 흔한 악한처럼 보였지만, 권력에 기대고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면서 끝내 금녀를 망가뜨리는 지점까지 간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약한 자가 더 약한 자를 밟는 모습이 되풀이된다. 이런 흐름을 보면 한 사람의 타락을 성격 탓만으로 말하기 어렵다. 나는 분노가 필요하지만, 분노만으로는 길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구조를 알아야 분노가 정확해지고, 그래야 바꿀 힘이 생긴다.

평사리의 사람들은 늙고, 병들고, 떠난다. 한때 마을의 중심이던 사내들은 이제 탕숫국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고, 아기였던 아이들은 거칠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청년이 된다. 이 교대의 풍경은 앞서 본 봄의 풍경과 겹친다. 강물이 흐르고 둥우리가 쌓이고 번데기가 깨어나는 것처럼, 사람의 삶도 그렇게 변한다. 봄은 달콤하기만 한 계절이 아니라, 아프게 몸을 일으키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문턱에서 백정들이 쫓겨나는 장면은 이 권의 중심에 놓인 문제다. “신 앞의 평등”이라는 말은 있지만, 현실에서는 문턱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을 받아 주는 곳으로 향한다. 이것은 교리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맞아 주느냐 밀어내느냐의 문제다. 나는 정의가 정답을 말하는 입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맞아들이는 손에서 시작된다고 느꼈다.

상현 같은 청년은 방황한다. 배운 것은 많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여성”을 둘러싼 시선도 흔들린다. 만세 이후의 허탈, 윌슨의 민족자결, 러시아의 혁명, 최재형의 죽음 같은 시대의 사건들은 인물들의 마음을 흔드는 바람이 된다. 이 소설은 사건을 장식처럼 세우지 않고, 사건이 사람의 속으로 들어와 체면, 두려움, 의기, 허무를 건드리는 모습을 따라간다. 그래서 이 권에서 감동은 크고 화려한 장면보다, 장터의 소음, 집안의 언쟁, 식탁의 한숨, 아이들이 잠든 뒤의 정적 같은 아주 구체적인 순간에서 온다고 느꼈다.

마지막에 다시 서희로 돌아온다. 조준구와의 매듭이 지어져도 서희의 길은 끝나지 않는다. 복수는 마음을 가볍게 해 주지 않고, 사랑은 마음을 완전히 붙들어 주지 않는다. 그래도 서희는 더 이상 과거에만 묶여 있지 않다. 아이들이 있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고,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서희가 내게 남긴 표정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책임의 미소”였다. 크지 않지만 단단해서 오래 남는 표정이었다.

결국 9권은 각자 자기 뿌리를 안고 오늘의 열매를 맺으려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서희는 판단을 끝내고 다음 걸음을 뗀다. 홍이는 상실을 지나 어른이 되는 길에 선다. 용이는 약해진 몸으로도 기억의 무게를 견딘다. 한복이는 일을 맡아 공동체의 품으로 들어온다. 김두수는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가며 우리가 고쳐야 할 문제를 드러낸다. 이들 곁에서 계절과 역사, 문턱과 환대, 체면과 행동의 갈등이 한 줄로 이어진다. 나는 이 책이 큰 구호 대신 작은 결심을 남기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오늘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시작하라고,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해 주는 이야기였다.



#채손독 을 통해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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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究竟)열반한들 그것이 무엇이랴. 석가여래께서 입멸하셨을 적에 많은 성문들은 어찌하여 울었더란 말이냐
죽음이기 때문일 것이며, 다시 만나볼 수 없다는 슬픔 때문일 것이며… 형체가 있고서야 마음을 보지 아니하겠는가.
마음 없는 형체는 물건이요. 형체 없는 마음은 실재가 아니지 아니한가.
목숨이 오고 가고, 오고 갔을 뿐인데 육도윤회라 하는가. 윤회는 무엇이냐.
내가 모르는 윤회는 없는 것이며 내 목숨 간 곳을 모른다면 그것은 내 목숨이 아니지 아니한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아아 ㅡ 어느 곳에도 실성은 없으니, 사멸전변, 내가 없도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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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워 시대의 몰락 - 팔로워 숫자에 중독된 시대, 진짜 영향력을 만드는 법
백성국 지음 / 드림셀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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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국의 『팔로워 시대의 몰락: 팔로워 숫자에 중독된 시대, 진짜 영향력을 만드는 법』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팔로워 수 = 영향력”이라는 공식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저자는 수많은 마케팅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겉으로 보이는 숫자가 아니라 실제 행동과 전환이 진짜 영향력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책은 인간 본능에서 출발한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타인의 기술을 배워야 했고, 이는 곧 팔로잉과 팔로워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였다. 우리 뇌가 생존과 번식을 기본 목표로 삼는다는 사실, 그리고 타인의 행동을 보며 마치 내가 직접 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거울 뉴런의 존재는, 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따라 하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맺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가 부모의 말투와 몸짓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도 결국 이 거울 뉴런의 작용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후 이야기는 브랜드와 시장으로 확장된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도입, 성장, 성숙, 쇠퇴라는 주기를 거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초기 수용자에서 대중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생기는 간극, 이른바 ‘케즘’을 설명한다. 이 간극을 넘지 못하면 아무리 화려해 보이는 브랜드도 쉽게 사라지고 만다.

샤넬의 사례는 특히 설득력이 있었다. 샤넬은 신제품을 내놓을 때 상류층 여성이나 유명인에게 무상으로 옷을 제공해, 그들이 입고 다니는 모습 자체를 광고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팔로우하듯 따라 했고, 자연스럽게 브랜드는 유럽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단순히 광고를 집행한 것이 아니라, 동경과 모방의 본능을 활용한 전략이었다. 오늘날의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사실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했음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책은 한국의 디지털 문화도 짚는다. 싸이월드는 개인 홈페이지 개념을 도입해 사람들의 일상과 정체성을 온라인에 보여주게 했고, ‘파도타기’ 같은 기능을 통해 친구의 친구로 관계를 확장시켰다. 지금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추천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역시 학창 시절 미니홈피를 꾸미며 친구의 다이어리에서 다른 친구로 이어지던 경험이 떠올랐다.

결국 기술은 바뀌었지만, “누구를 팔로우하고, 그 사람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방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의 중반부는 팔로워 숫자에 매달리는 습관을 내려놓고, 행동 기반 지표를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좋아요와 조회수 같은 허영 지표는 잠시 마음을 만족시킬 뿐이다.

중요한 것은 체류 시간, 재방문, 구독 전환, 재구매, 추천 같은 실제 행동이다.

저자는 “영향력은 콘텐츠–관계–신뢰가 맞물려야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그 지점에서 라포르라는 개념이 힘을 얻는다. 신뢰와 친밀감이 쌓일 때 사람은 메시지를 수용하고 행동으로 이어진다.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깊이가 결국 성과를 만든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또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외적 보상보다 내적 동기에서 나온다. 내가 왜 이 브랜드를 따라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얻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 행동이 일어난다. 결국 좋은 콘텐츠란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권을 주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며,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구전효과에 대한 설명도 공감이 갔다. 광고보다 우리는 주변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고, 멀리 있는 유명인보다 가까운 지인의 추천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후기, UGC, 커뮤니티 대화 등 다양한 형태로 구전이 번져 나간다. 샤넬이 만든 ‘움직이는 광고’, 오늘날의 브이로그나 공동구매 체험 콘텐츠 모두 결국은 입소문을 촉발하는 장치였다.

인플루언서 활용에 대한 조언도 구체적이다. 단순히 팔로워가 많은 사람을 찾을 게 아니라, 브랜드와의 적합성, 팔로워의 신뢰, 해당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공동구매를 잘 이끄는 인플루언서가 처음부터 제품을 들이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활 속 사용 모습을 보여주다가 나중에 제안을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알고리즘의 변화는 팔로워 규모의 의미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추천 시스템이 정교해지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건 더 자주 보고, 원하지 않는 건 아예 차단한다. 작은 계정이라도 전문성과 진정성을 갖춘 콘텐츠라면 정확한 관심사 집단에 깊게 도달할 수 있다. 짧은 숏폼 영상은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붓는다. 신규 구독자의 상당수가 숏폼을 통해 유입된다는 사실은, 팔로워 규모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AI 시대의 변화를 짚는다.

생성형 AI는 단순히 팔로워가 많은 채널이 아니라, 전문성과 신뢰가 축적된 채널을 더 많이 학습한다.

이는 곧 앞으로 영향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숫자가 아니라 전문성과 진정성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책을 읽고 나니 가장 마음에 남은 말은 “팔로워의 규모는 지표일 뿐, 진짜 영향력은 관계와 진정성에서 나온다”였다. 라포르로 맺어진 신뢰, 동기부여로 움직이는 팔로워, 구전효과로 확산되는 영향력이야말로 진짜 힘이었다.

『팔로워 시대의 몰락』은 그저 SNS 마케팅 전략서가 아니다.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관계, 브랜드의 역사와 기술 변화를 아우르며,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묻는 책이다.

나 역시 팔로워 숫자에 집착하던 시선을 내려놓고, 앞으로는 진정성 있는 관계와 의미 있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고민하게 해보게 되었다.

이 책은 SNS를 운영하는 개인, 마케터, 그리고 브랜드 관계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드림셀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콜랩아시아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크리에이터 중에 신규 구독자 중 거의 80퍼센트 이상이 숏폼 콘텐츠를 통해서 채널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이는 팔로워 규모가 작아 짧은 길이의 영상을 자주 만들어서 올리면 그만큼 타겟 관심사에 노출되어서 채널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도 매우 높아졌다는 의미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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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덤핑 - 생각 정리의 기술
닉 트렌턴 지음, 김보미 옮김 / 넥서스BIZ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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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곤 했다.

닉 트렌턴의 브레인 덤핑』을 집어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에게 쏟아내는 부정적인 말들이었다. “또 못 했네, 왜 이럴까, 내일도 바쁘겠지…” 같은 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결국 내 집중력을 잠식해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저자는 이런 상태를 정신적 잡동사니라 불렀다.

부정적인 자기 대화와 걱정, 두려움이 겹겹이 쌓여 진짜 중요한 것들이 흐려지는 상태.

내 머릿속 풍경이 책상 위 뒤엉킨 노트와 쌓여 있는 책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책은 그 해결책으로 ‘브레인 덤핑’을 제안한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모든 생각을 종이에 꺼내 적고, 눈으로 보며 정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흘러나왔다.

미뤄둔 일, 해야 할 연락, 설명하기 힘든 불안, 막연한 걱정까지.

종이에 적히는 순간 그것들은 안개처럼 모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목록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단계는 분류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 건 무엇인지 선을 그었다.

책 속 질문들을 따라가면서—“지금 내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지금 가장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일의 이점은 무엇인가?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가?”—머릿속의 소음이 차분히 정리되는 걸 느꼈다.

이 단순한 과정 뒤에는 세 가지 태도가 숨어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과 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감각

판단을 미루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태도

감정에 휘둘릴수록 자신을 한 발 옆으로 물려 객관의 자리를 찾는 연습.

세 가지 모두 평범한 듯하지만 실제로 불안을 다루는 순간에는 큰 힘이 된다.

나 역시 “나는 불안한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낙인찍곤 했는데,

이 책은 그 문장을 “불안이 찾아왔다”로 바꾸라고 권한다.

작은 전환이지만, 불안을 정체성에서 분리해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그 손님에게 ‘덜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덜덜이에게 이름을 붙이니, 언제 나타나고 어떻게 나를 흔드는지 관찰할 수 있었고, 미리 대비할 수도 있었다. 덜덜이가 찾아오면 나는 심호흡을 길게 하고, 결과가 아닌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걱정한다고 결과가 바뀌는 건 아니야”라는 문장을 속으로 반복하면서.

그렇게 하니 불안의 그림자가 조금은 옅어지는 느낌이다.

책은 미디어 소비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질 수 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부정적인 계정을 끊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팔로우하며, 하루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훈련을 권한다. 실제로 피드의 분위기를 조금만 바꿔도 하루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경험담은 크게 공감됐다. 결국 우리가 보는 화면은 우리의 마음을 반영하고 또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오래 머물게 했다.

누구에게나 해로운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늘 노골적으로 해롭지 않고, 종종 친절과 사과의 가면을 쓰고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예전에는 이런 관계 속에서 늘 내 탓을 먼저 찾았다. 내가 예민한 걸까, 내가 오해한 건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해로운 사람의 행동에 분명한 경계를 세우라고 말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내 선택을 존중해 줬으면 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시간을 줄이거나 대화의 주제를 제한하고, 때로는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고 했다.

중요한 건, 해로운 행동이 나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래 미뤄둔 대화들이 떠올랐고, 내 마음속에 선명한 선이 그어졌다.

책은 용서에 대해서도 깊은 사색을 던진다.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과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났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말한다. 미련 속에서 시간을 고여 썩히기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나를 향한 용서 역시 마찬가지다. 실수를 부정하지 않고 책임을 지되, 끝없이 나를 벌주지 않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품는 것. 그것이 자기 연민이자 성장의 첫걸음이다.

책은 또 조망수용, 즉 타인의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연습을 권한다.

드라마 속 인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거나, 갈등 상황을 글로 적어본 뒤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는 것. 이렇게 하다 보면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회색 지대를 발견하게 되고, 그 작은 여유가 결국 내 마음의 평온으로 돌아온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 안에 남은 문장은 하나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릿속 잡동사니를 기록으로 비워내야 비로소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최근 ‘브레인 덤핑’ 챌린지를 통해 노트를 손에 가까이 두고 하루의 시작과 끝에 덤핑을 하고 있다. 잡동사니를 비워내면 자리가 생긴다. 그 자리에 오늘 꼭 해야 할 일, 내일의 작은 약속, 나를 북돋아줄 한 문장을 들여놓는다. ’덜덜이’가 다시 찾아올 때면 나는 이제 조금은 준비가 된 것 같다.

불필요한 관계와 감정의 무게도, 경계와 용서를 통해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평온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펜 한 자루와 종이 한 장,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게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그것이 전부지만, 사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넥서스BIZ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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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어떤 사람이 해로운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낸 뒤, 몸이나 마음이 지치고 허탈한가?
그 사람을 만날 생각만 해도 불편하거나 꺼려지는가?
함께한 이후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이나 자신감이 줄어들었는가?
그 사람 때문에 내 신념이나 경계를 의심하게 되는가?
나의 욕구나 생각, 감정이 그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해로운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계속 이어가는 것은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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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한국어판 발매 20주년 기념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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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강제 수용소라는 극한의 현실을 기록하면서도, 인간이 그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책이다. 영어판만 73쇄에 이르렀고, 19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어판만 250만 부 이상이 팔린 기록은 이 책이 전 세계 독자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를 증명한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에서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담담하고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고, 존엄과 자유가 박탈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프랭클은 작은 친절과 연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기억, 혹은 자연의 한 장면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지탱하는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카포라는 죄수 관리자들의 잔혹함과 배신이 절망을 더 깊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삶의 의미를 붙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이 물음의 답이 제2부 「로고테라피란 무엇인가」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로고테라피는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학파와 달리 인간을 쾌락(프로이트의 ‘쾌락의 법칙’)이나 권력(아들러의 ‘우월 욕구’)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프랭클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본다. 특히 그는 인간이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발생하는 ‘누제닉 노이로제(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정신적 공허와 절망으로 인한 신경증)’를 주목했다. 이 신경증은 단순한 심리적 갈등이 아니라 실존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프랭클이 강조하는 로고테라피의 특징은 몇 가지다.

첫째,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보다 덜 회고적이고 덜 자기 성찰적이다.

대신 환자가 미래에 성취해야 할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나 ‘피드백 기제(feedback machanism)’를 약화시켜 환자가 자기 집중에 빠지고 증상이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셋째, 환자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데 초점을 두며, 이를 통해 환자가 정신적 역량을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로고스(Logos)’가 그리스어로 ‘의미’를 뜻하듯,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그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근본적인 동력으로 본다.

프랭클은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단순한 본능의 ‘이차적 합리화(자신의 본능적 충동이나 행동을 그럴듯한 이유로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과정)’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이며,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해야 하고 그 사람만이 실현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고, 때로는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다. 프랑스와 빈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고 대답한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자신의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을 우선순위로 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프랭클은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될 때 ‘실존적 좌절’이 생긴다고 본다.

실존적 좌절은 병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이며,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잘못 해석하면 의사는 환자의 실존적 절망감을 단순히 신경 안정제로 잠재우려 하게 된다. 프랭클은 이를 경계하며, 의사의 역할은 환자가 실존적 위기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자신의 실존 안에 숨겨진 ‘로고스’, 즉 삶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도록 이끄는 과정을 과제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과 닮았지만도 다르다.

무의식 속 본능적 요소만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앞으로 성취해야 할 잠재적 의미까지도 고려한다. 인간을 단순히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존재, 사회와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로 보지 않고, 의미를 성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정신 분석과 구별된다.

프랭클은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마음에 평온보다는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긴장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다. 이미 성취한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역동성이다. 그는 이를 건축의 아치에 비유한다. 아치를 튼튼히 하기 위해 건축가는 하중을 더 얹는다.

마찬가지로 심리 치료사는 환자가 삶의 의미를 찾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긴장을 유도해야 한다.

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이러한 메시지를 현재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1983년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발표한 강연을 바탕으로, 프랭클은 인간 존재의 세 가지 불가피한 조건―고통, 죄,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여전히 삶에 “예스(Yes)”라고 말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비극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껴안으면서도 다시 삶을 긍정하는 힘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낙관이란 현실을 가볍게 덮는 긍정이 아니라, 고통과 상처를 껴안은 채로 나아가는 용기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책의 1984년 서문에 담긴 프랭클의 조언은 지금도 울림이 크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행복과 마찬가지로 성공은 목표로 삼는 순간 멀어진다.

그것은 무관심할 때, 어느 날 불현듯 다가오는 것이다.”

그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우리가 성공을 집착처럼 좇는 습관이 오히려 삶을 더 빈곤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할 때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였던 고든 W. 올포트의 추천사는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적 동기와 불안에 초점을 맞춘 반면, 프랭클은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누제닉 노이로제(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정신적 공허와 절망으로 인한 신경증)’를 주목했다고 말한다. 프랭클은 프로이트의 업적을 무시하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학파를 세웠으며, 다른 실존적 치료법과 대립하기보다 함께 논의하며 발전시켜 나갔다. 올포트는 이 책이 단순한 체험담을 넘어, 인간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지막 자유, 곧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를 지닌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준다고 평하며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전하는 핵심은,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없지만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자유는 언제나 남아 있다. 로고테라피는 그 자유를 현실 속에서 실천하도록 돕는 철학이자 치료법이며, “비극 속에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자유는 바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삶의 안내서가 된다. 절망의 순간에도 의미를 붙잡을 수 있고, 그 순간 삶은 다시 빛을 발한다.

바로 이것이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세대를 넘어 읽히는 이유이자,

내가 이 책을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권하고 싶은 이유다.

'청아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정신 분석과 비교해 볼 때 로고테라피가 덜 회고적이고, 덜 자기 성찰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로고테라피는 미래, 즉 환자가 미래에 성취해야 할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실제로 로고테라피는 의미에 중점을 둔 정신 치료법이다). 동시에 로고테라피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 formation)’와 ’피드백 기제(feedback mechanism)’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 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 집중 증상아 발생하고 깊어지는 것을 막는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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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 - 김익한 교수의 읽고 쓰는 실천 인문학
김익한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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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서문에 적힌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어른이 되면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면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현실은 규범과 책임, 끝없는 경쟁과 성과의 굴레가 나를 가뒀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착하게 살아가며 스스로를 억누르는 어른들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고 싶었다는 고백이 더 진하게 와닿았다.

책은 ‘탐색–변화–성장’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탐색의 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자유를 배우지 못한 채 성장했다고 지적한다.

학교는 규율과 통제를 가르쳤고, 사회는 성과와 경쟁으로 우리를 몰아세웠다. “왜?”라는 질문은 문제적 태도로 간주되고, “다르게 하고 싶다”는 욕망은 묵살당했다. 개성보다 조화, 비판보다 순응을 배워온 우리는 자유를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자유는 관념으로만 존재하고 실제 삶에서는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게 되었다.

변화의 장에서는 자유를 가로막는 사회 구조와 권력의 실체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저자가 인용한 미셸 푸코의 이론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푸코는 현대 사회를 ‘규율사회’라 불렀다. 과거의 권력이 법과 강제력으로 사람을 통제했다면, 근대 이후의 권력은 제도와 규칙 속에 스며들어 우리를 훈련하고 조율했다. 감시와 비교, 평가라는 장치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규제하며 내면화된 복종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철학자 한병철의 분석이 이어진다. 푸코가 규율사회의 권력과 통제를 말했다면, 한병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을 ‘성과사회’로 진단한다. 더 이상 외부의 감시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를 감독하고 채찍질하며, “더 노력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구호 아래 자발적으로 자신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듯 보이는 자기 동기는 결국 피로와 번아웃을 낳는다. 한병철이 말했듯, 이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 착취”일 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옭아매는 감옥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성과사회의 문제를 넘어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철학자도 책 속에 등장한다.

바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이다. 그는 소득이나 실력이 삶의 질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역량(capability)이 진정한 자유의 척도라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이 빵이 없어서 굶주리는 것과, 빵이 있음에도 금식을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할 자유’다.” 이 비유는 자유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 주었다. 단순히 돈이나 성과가 아니라, 내 삶의 선택지를 얼마나 확보하고 실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역량이라는 메시지가 크게 다가왔다.

마사 누스바움이 이를 확장해 제시한 ‘10가지 인간의 필수 역량’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경제적 풍요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특히 공감한 부분은 “무기력감은 자기결정감의 상실에서 비롯된다”는 구절이었다. 자유란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매 순간 나의 일상을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해야 할 일들에 파묻혀 자기 목소리를 잊고 살아간다. 결국 삶의 주인이 아닌 손님처럼, 외부의 요구에 반응만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던져야 할 질문이 바로 “나는 지금 누구의 선택에 따라 살고 있는가?”라는 문장이었다. 이 물음은 책장을 덮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성장의 장에서는 이 모든 사유가 ‘기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자신을 옭아매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기록이었다고 고백한다. 아주 사소한 메모 하나, 선언 하나가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많은 SNS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나도 읽으며 줄을 긋고 짧은 문장을 메모하는 과정 자체가 자유를 연습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유는 거창한 투쟁이나 혁명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작은 실천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이 책이 알려주었다.

저자는 기록을 통해 파편적인 경험과 상처가 다시 하나로 묶이고, 무력감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가 발견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지나간 일을 적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나는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오늘의 선택은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막연했던 감정과 사건은 기록 속에서 탐구의 대상으로 구체화되고, 축적된 기록은 곧 삶의 숨은 규칙과 의미를 드러내는 의식의 자산이 된다.

이 과정에서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적 시간’ 개념이 소환된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선형적으로 작동한다. 현재의 경험이 과거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그렇게 재해석된 과거는 또 다른 방식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연다. 어린 시절 실패가 무력감으로 남았더라도, 성인이 되어 그것을 배움으로 재구성한다면 상처는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바뀐다. 기록은 바로 이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실천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또한 기록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그는 방황과 갈등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며 내면의 질서를 다시 세웠다. 글쓰기는 상처를 객관화하고 재해석하는 자기 치유의 과정이 되었고, 이는 ‘자기 서사화(self-narration)’라는 이름으로 자아를 새롭게 구성하는 행위였다. 저자 역시 두 차례 자기 역사 쓰기를 경험했고, 매년 한 해를 정리하는 ‘연사(年史)’를 적으며 잊고 있던 감사와 진짜 바람을 되살려냈다고 한다. 기록은 결국 “누가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내가 내 삶의 저자가 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이 책 『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은, 자유는 먼 곳에 있는 이상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권력과 사회 구조를 성찰하고, 나 자신을 억누르는 내적 감옥을 깨며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기록하는 작은 실천 속에서 살아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란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며 사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힘, 곧 역량을 키워가는 여정이다.

📚 이 책을 읽으면 좋을 사람들

- 바쁘게 살아가지만 문득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잊어버린 어른

- 성과와 경쟁에 지쳐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싶은 직장인

- 철학이 멀게만 느껴졌지만 삶 속에서 자유를 찾고 싶은 사람

- 기록과 글쓰기를 통해 자기 성찰을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


'김영사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자유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며, 행복한 삶을 향한 가장 본질적인 길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더 미루다 보면, 내 인생은 타인의 것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삶, 의미 없이 휘둘리는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자.
본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누가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책임도 불안도 커지겠지만, 동시에 창조적인 자유의 여정을 시작할 수도 있다. 나를 가두는 감옥은 어쩌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감옥을 깨기 위한 첫걸음은 아주 사소하다. 메모 하나, 생각 하나, 선언 하나,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이 한 문장이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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