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허기
정능소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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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평 먼저]
간만에 마음에 들어오는 시를 만났다.
이전에 ‘이제야‘ 시인님 시를 접하고 나서 이제 시도 가까워져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만난 시집 또한, 시 한 편으로도 깊은 사유를 하게 하는 매력 있는 시집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추천이다.

[본문 리뷰]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을 다치고도, 이상하게도 다시 손을 내민다. 어떤 날은 사소한 한마디에 금세 가라앉고, 또 어떤 날은 더 확실히 사랑받고 싶어 애쓴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오래 가는 약속을 꿈꾼다. 정능소의 『관계의 허기』는 이런 마음을 딱딱한 설명 대신, 밤·달·바람·물 같은 풍경으로 조용히 어루만진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 장면이 먼저 펼쳐지고, 이성으로 따지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첫 시부터 인상적이다. ‘구름 의자’를 통해 고흐를 만나는 밤이었다.
느릅나무 아래, 칠이 벗겨진 의자에 고흐를 앉히고 담배 한 개비를 내어주며 건네는 질문.

“허망한 꿈을 몇 번이나 꾸셨냐고, 꿈 깨어 목 칼칼한 갈증은 어떻게 꾸셨냐고,
화폭에 별을 뿌렸던 고흐, 영혼과 맞바꾼 별 중에 하나라도 가질 수 있었던가”

이 대목에서 ‘별’은 화려한 상징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마음의 비유로 느껴진다.
우리는 사랑에서든 일에서든 흔들리지 않는 확실함을 원한다. 변하지 않는 애정, 모두가 인정할 만한 성취, 한 번 손에 넣으면 두 번 다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보증 같은 것들 말이다.
시가 말하는 ‘별’은 바로 그런 확실함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별의 속성에 있다.
별은 멀리 있을 때 가장 밝고, 거리를 둔 채 바라볼 때 비로소 빛난다.
그 빛을 손에 쥐려는 순간(상대를 통째로 내 마음대로 하려는 순간) 별은 사라진다.
붙잡음은 빛나는 평온이 아니라, 서로를 질식시키는 그림자를 낳는다.
‘너와 나, 바람에 쉬이 흩어지는 구름일지니’라는 말은 관계라는 것은 원래 바람에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처럼 변하고 흔들리기 쉬운 것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흐름을 허용하고 바라보기를 권한다.
서로를 조종하려 들면 금세 답답해지고, 변화를 전제로 곁을 지키면 관계는 오히려 오래 가게 된다.
이게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소유 대신 인정으로 허기를 줄이는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화자는 고흐를 불러 냈을까. 그는 생전에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는 인상이 강한 인물이다.
살아 생전 ‘안나 보흐‘라는 인물이 ‘붉은 포도밭’ 한 점을 사간 것이 생전 판매 된 유일한 유화 그림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삶은 아를에서의 귀 자해와 병원·요양원 생활로 대표되는 고독과 불안의 이미지가 짙은 인물이다. 그래서 시는 ‘영혼과 맞바꾼 별’의 뜻을 묻기 위해 그를 대표적으로 불러낸 것이 아닐까싶다.
그는 끝내 붙잡으려 했던 빛과 그 대가로 치른 상처를 함께 지닌 사람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고흐에게 묻고 싶었던 별의 진짜 뜻은 무엇일까?
이 시에서의 별은 ‘결국 변치 않는 사랑,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 한 번 쥐면 불안이 사라질 보증 같은 것‘을 가리킨다. 고흐에게 던진 질문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하는 질문과 같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갈아 넣어 붙잡으려 한 그것은, 정말 붙잡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답은 시의 마지막에 스며 있다. 별은 가까이 움켜쥐는 순간 사라진다.
별이 빛나는 이유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고, 관계가 오래 가는 이유도 간격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혼과 맞바꾼 별”의 진짜 뜻은, 소유하려는 순간 사라지는 확실함의 환상이며,
우리가 할 일은 붙잡기가 아니라 간격을 둔 바라봄—별은 하늘에 두고 빛만 가슴에 품는 태도임을 말한다.
여기서 화자의 목소리는 고흐를 위로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가르친다.
당신(고흐)은 별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그 별을 보는 눈을 우리에게 남겼다. ㅡ 생전에 칭송받지 못한 시간이 길었다 해도, 그 밤을 건너며 그가 붙잡은 빛은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와닿았다.
(실제로 고흐는 병원과 요양원에 머무르며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작품을 남겼고, 그 밤의 시선이 지금 우리의 밤도 비추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 시에서의 고흐는 실패한 화가의 상징이 아니라 ‘소유 대신 바라봄’을 가르쳐 준 스승에 가깝다. 별을 쥐지 못했기에, 대신 별을 보는 법을 남긴 사람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고흐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평생 찾아 헤맨 그 별은 사실 거리와 함께 있을 때만 빛난다.
그러니 붙잡지 못한 것이 곧 실패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그 밤을 건너며 버틴 당신의 눈이 지금의 우리를 살린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그 외로웠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시는 〈집들이 초대장〉이다.
“우리, 영원히 서먹해야 할 사이는 아니잖소 부딪힌 칼날에 튄 불똥에 데인 날은 있었지만
그대와 나, 칼날이 무디어졌을 지금쯤은 얼굴 한 번 봅시다”라는 말은, 날 서 있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서로를 다치게 하던 말과 감정의 칼끝이 둔해졌으니 먼저 문을 열어 보자는 화해다. 이어지는 “강물은 기다리지 않고 구름은 머물러 있지 않을 테니”는 시간과 감정이 가만히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관계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흐른다. 망설이다가 때를 놓치면, 다시 만날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의 핵심은 누가 먼저 사과하느냐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있다.
“결이 달랐다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어떻겠소”라는 제안은, 옳고 그름을 끝까지 가려 같은 결로 맞추려 애쓰기보다, 서로 다른 결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차이 위에 다시 만남을 이어 보자는 뜻으로 이해된다. 논쟁과 해명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우선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결국 관계 회복의 골든타임은 스스로 여는 것이다. 기다림 속에서 상처의 서사가 길어지기 전에, “이제는 날이 무뎌졌으니 한번 얼굴을 봅시다”라고 초대하는 쪽이 먼저 관계의 회복을 열 수 있다는 메시지다.

다음 시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별아 내 가슴에>라는 시다.
“겨울바람에 굴려진 조약돌처럼 별빛이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다
별빛, 수천 년 혹은 몇백 년 전에 출발한 빛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고 하니
등골 서늘하게 와닿는 경이로움이여,
별을 하늘 너머에 박아둔 이유는 가슴에다 넉넉하게 담으라는 조물주의 뜻이 아닐까
사람들은 가슴에다 별들을 쓸어 담으며 무정한 세상살이에 위로받지 않았던가
무수히 반짝이는 별 무리,
사람들 마지막 날에 가슴에서 키운 별들을 토해 놓는 바람에 저렇게 무한정으로 늘어났나 보다
나는 왜, 별 무리를 담글 가슴에다 구린내 풍기는 온갖 잡것을 담아두고 애를 끓이는가?
좁쌀아, 좁쌀아, 인간사에 너무 가슴 태우지 마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니”

이 시 구절을 보면, “별을 하늘 너머에 박아둔 이유는 가슴에다 넉넉하게 담으라는 조물주의 뜻이 아닐까”라는 부분이 있다. 별은 소유가 아니라 가슴에 품는 것이라 했다. 그동안 우리는 별을, 그러니까 완벽한 사랑과 확실한 인정 같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더 가까이, 더 오래, 더 확실하게. 그런데 붙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멀어졌다. 별은 손에 쥐는 순간 사라진다.
그러니 우리는 별은 하늘에 두고, 가슴에 그 빛을 품는 법을 배우면 되는 거다. 멀리 있기 때문에 더 잘 보이고, 멀리 있기 때문에 넓게 오래 비춘다. 관계도 그럴지 모른다. 소유하려 들지 않고, 바라보고 돌보며, 각자의 간격을 인정하는 것이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사람들 마지막 날에 가슴에서 키운 별들을 토해 놓아서 하늘의 별이 늘었다”는 시인의 상상은 아름답다. 마음속에서 키운 선한 마음, 다정한 말, 한 번 참은 성급함, 한 번 더 내민 손… 그런 것들이 죽고 나서도 빛이 되어 남는다면, 오늘의 작은 선택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
시에서 말한 ‘가슴에 키운 별들‘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나는 요즘 무엇을 키우고 있나? 가슴 속에서는 어떤 것이 자라나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그러다 이어지는 한 줄에서는 뜨끔하기도 했다.
“나는 왜, 별을 담글 가슴에 구린내 나는 잡것을 담아두고 애를 끓이는가?”에서다.
나는 종종 질투, 억울함, 쓸데없는 비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걱정 같은 것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아무리 예쁜 풍경을 봐도,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결국 허기는 더 심해지고, 속은 더 답답해졌다.
마음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담을지는 스스로 고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게 된다.
시인의 “좁쌀아, 좁쌀아”라는 자기호명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듯 하면서도, 미워하지 않는 말투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사에 너무 가슴 태우지 마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마지막 권유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문장이 아닐까.
큰 기쁨에 너무 들뜨지 말고, 큰 슬픔에도 끝장났다고 생각하지 말자.
지나갈 일을 지나가게 두는 연습. 붙잡을 건 책임이고 내려놓을 건 집착이다.

이 시를 읽고 나서 작은 실천을 한번 적어 본다.
첫째, 마음이 복잡할 때 하늘을 한 번 본다. 별이 보이든 안 보이든 고개를 드는 동작 자체가 숨을 바꾼다. 둘째, 확인이 필요할 때는 사람을 붙잡기보다 내 마음을 먼저 묻는다.
“지금 내가 불안해서 확인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필요한 질문일까?”
셋째,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가슴에 담긴 “잡것” 하나를 이름 붙여서 내보낸다.
며칠 전에 읽은 ‘브레인 덤핑’에서 실행 했던 것처럼,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 이르면 질투, 억울함, 비교, 조급함 같은 것에 총체적으로 “잡것”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것을 가슴 속에서 내보낸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나를 옥죄고 힘들게 하던 것들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잡것”을 내보낸 자리에 오늘 본 작은 빛 하나를 채워보자. 고마웠던 말 한 줄, 누군가의 웃음, 스스로 한 작은 수고와 같은 것들로.

별은 결국 소유할 수 없고, 그래서 더 오래 빛난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나는 너를 가질 수 없지만, 너의 빛을 배울 수는 있다. 그리고 내 안에서 키운 그 빛이 언젠가 누구에게 작은 별 하나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관계의 허기』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아질 거야라는 오래된 기대를 내려놓게 한다.
사람을 바꾸는 대신 나의 허기를 알아차리고, 차이를 인정하고, 슬픔을 제대로 보내고, 내 선(경계)을 제대로 세우고, 충분함을 배우는 일이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타인에게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다.
별을 소유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수록 밤하늘은 더 깊어진다.
이 책은 위로를 약속하기보다 매일 해볼 작은 연습을 권한다.
그 작은 변화가 내일의 관계를 조금 더 안전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시집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분명하다.
관계에서 자주 지치고, 비슷한 자리에서 반복해 넘어지는 사람.
화해와 단념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다.

『관계의 허기』는 정답집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현명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이다.
그 풍경을 지나며 우리는 자기 속도를 회복하고, 그 속도로 타인에게 다가서는 법을 다시 배운다.
허기는 남겠지만, 더 이상 우리를 마음대로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사랑은 소유의 별빛이 아니라 함께 걷는 달빛으로 곁을 비춘다.


'메이킹북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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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사냥
차인표 지음 / 해결책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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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차인표의 『인어 사냥』은 1장을 마무리 하기 전부터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강력하여 몰입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표면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과 생명의 존엄을 따져 묻는 윤리 소설이다. 전환점은 분명하다. “인어 기름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서사는 한 가지 질문으로 좁혀진다. 가족을 살리려는 마음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작가는 긴 설명 대신 인물들의 선택과 그 결과를 끝까지 따라가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 해보게 해준다.

이 책의 줄거리는 두 갈래로 흘러간다. 1902년 강원도 통천,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덕무와 딸 영실이, 막내 아들 영득이가 있다. 그리고 훨씬 이전 시대에 바다의 비밀을 마주친 소년.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듯 연결되면서,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탐욕이 충돌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픈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끝내 금단의 바다로 들어간다. 한편 훨씬 이전 시대의 소년은 우연히 마주친 낯선 존재를 지켜 주려다, 그 선택 탓에 마을의 공포와 욕망의 표적이 되어 그 반발을 정면으로 맞는다. 이렇게 두 시간의 이야기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선의가 욕망으로, 연민이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이 시대를 달리해 반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중 구조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린다는 사실을, 두 서사가 한 결로 모여 또렷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초반의 몇 문장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하얀 찔레꽃 언덕에 어머니를 묻었다. “사람은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던 엄마의 말과는 다르게, 땅속에 묻힌 엄마를 보며 서럽게 울던 영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영실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묻는다. “어머이는 왜 나무를 좋아해?” 어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나무는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아. 태어난 땅에서 일생을 살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바람이 불면 지나갈 때까지 바람을 맞고, 눈이 내리면 녹을 때까지 가지 위에 소복하게 담아 둔단다. 태어난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며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살아 내는 거야.”
어쩌면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살리기 위해 내민 손이, 어느 순간 다른 생명을 해치는 손이 되지 않으려면,
어디에서 멈춰야 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공 영감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는 강치 가죽으로 돈을 벌며 바다를 함부로 대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 ‘바다의 벌’ 같은 일이 닥치자, 어부들 사이에서는 그럴 만했다는 말이 돈다. 공 영감이 강치로 이익을 취하던 모습은 현실의 역사와도 겹친다. 동해의 강치(독도강치)는 실제로 20세기 초 일본 오키 제도 어민들의 대량 남획과 가죽·기름 채취로 급격히 줄었고, 결국 20세기 중반 멸종했다. 소설은 이 사실을 일본이 강치를 끔찍하게 대량 학살 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피바다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누구하나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는 시대의 무력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소설은 한 사람 안에도 여러 얼굴이 있음을 보여준다. 탐욕적인 인물도 때로 주저하고, 헌신적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선택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쉽게 단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아이의 시선이 세계를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낼 존재’로 돌려놓는다. 나는 이 시선이 이야기의 심장이라고 느꼈다. 책은 내내 두 마음을 비교하게 한다. 하나는 ‘살리려는 욕망’, 다른 하나는 ‘살아 있게 두려는 사랑’. 작가는 이 차이를 몇몇 장면으로 차분히 보여 주며, 끝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욕망·자연·인간을 한자리에서 묻는다. 상업 판타지에서의 흔한 회귀·환생 같은 도식은 거의 쓰지 않고, 한국 설화의 결과 실제 역사·생태의 그늘을 차근차근 쌓아 미지의 생명을 불러낸다. 쫓고 쫓기는 장면도 과한 자극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침묵과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게 한다.
욕망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타자와 공존한다는 건 무엇인가. 내 선택의 무게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책은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문장으로, 배우 출신 작가라는 선입견을 금세 잊게 만든다. 읽는 동안 독도 강치 멸종이나 바다 생태 파괴 같은 현실이 슬며시 겹쳐지지만, 작가는 설명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몇 개의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줘 독자가 스스로 지금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이 소설은 생명의 가치를 되묻게 하고, 욕망이 어떻게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끝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인어 사냥』은 오래된 신화로 오늘의 윤리를 다시 묻는다. 어둠을 밀어내는 건 소유의 힘이 아니라 멈춤과 놓아줌의 태도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그 절제를, 소설은 마지막까지 기억하게 한다.


'해결책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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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의 『인어 사냥』은 1장을 마무리 하기 전부터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강력하여 몰입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표면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과 생명의 존엄을 따져 묻는 윤리 소설이다. 전환점은 분명하다. “인어 기름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서사는 한 가지 질문으로 좁혀진다. 가족을 살리려는 마음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작가는 긴 설명 대신 인물들의 선택과 그 결과를 끝까지 따라가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 해보게 해준다.

이 책의 줄거리는 두 갈래로 흘러간다. 1902년 강원도 통천,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덕무와 딸 영실이, 막내 아들 영득이가 있다. 그리고 훨씬 이전 시대에 바다의 비밀을 마주친 소년.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듯 연결되면서,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탐욕이 충돌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픈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끝내 금단의 바다로 들어간다. 한편 훨씬 이전 시대의 소년은 우연히 마주친 낯선 존재를 지켜 주려다, 그 선택 탓에 마을의 공포와 욕망의 표적이 되어 그 반발을 정면으로 맞는다. 이렇게 두 시간의 이야기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선의가 욕망으로, 연민이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이 시대를 달리해 반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중 구조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린다는 사실을, 두 서사가 한 결로 모여 또렷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초반의 몇 문장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하얀 찔레꽃 언덕에 어머니를 묻었다. “사람은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던 엄마의 말과는 다르게, 땅속에 묻힌 엄마를 보며 서럽게 울던 영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영실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묻는다. “어머이는 왜 나무를 좋아해?” 어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나무는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아. 태어난 땅에서 일생을 살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바람이 불면 지나갈 때까지 바람을 맞고, 눈이 내리면 녹을 때까지 가지 위에 소복하게 담아 둔단다. 태어난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며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살아 내는 거야.”
어쩌면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살리기 위해 내민 손이, 어느 순간 다른 생명을 해치는 손이 되지 않으려면,
어디에서 멈춰야 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공 영감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는 강치 가죽으로 돈을 벌며 바다를 함부로 대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 ‘바다의 벌’ 같은 일이 닥치자, 어부들 사이에서는 그럴 만했다는 말이 돈다. 공 영감이 강치로 이익을 취하던 모습은 현실의 역사와도 겹친다. 동해의 강치(독도강치)는 실제로 20세기 초 일본 오키 제도 어민들의 대량 남획과 가죽·기름 채취로 급격히 줄었고, 결국 20세기 중반 멸종했다. 소설은 이 사실을 일본이 강치를 끔찍하게 대량 학살 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피바다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누구하나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는 시대의 무력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소설은 한 사람 안에도 여러 얼굴이 있음을 보여준다. 탐욕적인 인물도 때로 주저하고, 헌신적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선택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쉽게 단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아이의 시선이 세계를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낼 존재’로 돌려놓는다. 나는 이 시선이 이야기의 심장이라고 느꼈다. 책은 내내 두 마음을 비교하게 한다. 하나는 ‘살리려는 욕망’, 다른 하나는 ‘살아 있게 두려는 사랑’. 작가는 이 차이를 몇몇 장면으로 차분히 보여 주며, 끝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욕망·자연·인간을 한자리에서 묻는다. 상업 판타지에서의 흔한 회귀·환생 같은 도식은 거의 쓰지 않고, 한국 설화의 결과 실제 역사·생태의 그늘을 차근차근 쌓아 미지의 생명을 불러낸다. 쫓고 쫓기는 장면도 과한 자극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침묵과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게 한다.
욕망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타자와 공존한다는 건 무엇인가. 내 선택의 무게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책은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문장으로, 배우 출신 작가라는 선입견을 금세 잊게 만든다. 읽는 동안 독도 강치 멸종이나 바다 생태 파괴 같은 현실이 슬며시 겹쳐지지만, 작가는 설명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몇 개의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줘 독자가 스스로 지금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이 소설은 생명의 가치를 되묻게 하고, 욕망이 어떻게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끝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인어 사냥』은 오래된 신화로 오늘의 윤리를 다시 묻는다. 어둠을 밀어내는 건 소유의 힘이 아니라 멈춤과 놓아줌의 태도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그 절제를, 소설은 마지막까지 기억하게 한다.


'해결책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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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의 『내 손으로 칠하는 마티스 컬러링북』은 “색을 칠한다”는 가장 단순한 동작으로, 앙리 마티스의 예술을 몸으로 익히게 해 주는 책이다. 책의 첫머리에서는 마티스의 삶을 치유와 자유의 여정으로 소개한다. 젊은 날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어머니가 건넨 물감 상자를 그는 ‘인생의 계시’라고 불렀다. 전쟁과 병, 상실을 겪으면서도 그는 색과 형태로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말년에는 침대와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손에서 도구를 놓지 않았다. 구아슈 데쿠파주—구아슈 물감으로 칠한 종이를 오려 붙이는 방법—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페이지를 넘기면, 컬러링이 단지 밑그림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리해 주는 과정이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결과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잘 보여 준다는 데 있다. 선을 따라가고, 어울리는 색을 고르고, 가볍게 덧칠해 농도를 쌓아 가는 반복이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 붙잡아 준다. 저자는 이를 위해 실전 팁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했다. 첫째, 세게 누르지 말고 얇게 여러 번 겹쳐 칠하기. 둘째, 밝은 색에서 어두운 색으로 칠하기. 셋째, 블렌더나 면봉으로 경계를 살짝 풀어 주기. 이 세 가지만 지켜도 색이 탁해지지 않고 종이의 결이 살아나 마티스 특유의 선명함이 잘 드러난다. 초보자는 넓은 면부터 채우며 빠르게 ‘성공 경험’을 얻고, 익숙한 독자는 명암과 대비, 흐름의 변화를 더 섬세하게 실험할 수 있다.

수록 작품은 총 24점. 한 권 안에서 다양한 시기와 분위기의 마티스를 차례로 만나며 직접 색을 올려 볼 수 있다.

먼저 〈붉은 방(The Red Room), 1908〉. 테이블과 벽지, 사물이 붉은 색면 속에서 하나로 이어지며 공간이 색으로 새로 짜여지는 장면을 보여 준다. 색연필이라면 밝은 레드를 넓게 깔고, 접히는 자리나 모서리 쪽에 따뜻한 레드를 여러 번 덧칠해 깊이를 만들면 좋다. 선을 칠한다는 느낌보다 넓은 면의 흐름을 만든다는 감각으로 접근해보면 좋을 것 같다.

〈금붕어, 1912〉는 마티스의 ‘고요히 바라봄’이 잘 보이는 그림이다.

물속의 주황빛 금붕어와 주변의 녹색·파란색이 강하게 대비된다.

잎사귀의 녹색을 먼저 얇게 깔고, 물 표면의 반짝임은 남겨 둔 뒤 마지막에 유리 가장자리와 물결을 한 톤만 살짝 올리면 투명한 느낌이 살아난다. “밝은 색 → 어두운 색” 순서를 손으로 이해하기에 딱 좋은 페이지다.

전쟁 이후 마티스가 표현을 더 단순하게 바꾸어 가는 변화는 <폴리네시아, 바다, 1946〉와 〈이카로스, 1947〉에서 뚜렷하다. ‘폴리네시아’는 파란 바탕 위에 흰 모양이 떠 있는 듯한 구성으로, 칠하지 않고 남겨 둔 빈 공간이 그림에 여유를 준다. ‘이카로스’는 검은 몸의 실루엣과 가슴의 붉은 점(심장을 표현), 주변의 노란 별들이 상징처럼 놓여 있다. 이 두 작품에서 중요한 건 정교한 묘사보다 배치와 간격이다.

그 흐름이 〈파란 누드 I, 1951〉와 〈달팽이, 1953〉에서 더 또렷해진다.

‘파란 누드’는 우리가 자주 마시는 와인이나 편의점 술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마티스의 대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인체를 큰 면과 굽은 선으로 단순하게 잡아낸 그림이다. 배경을 남기고 인체의 윤곽만 색으로 채워도 멋이 살아난다. 코발트 계열 블루를 얇게 여러 번 겹치면 그 깊이가 느껴진다.

‘달팽이’는 색종이 조각을 소용돌이처럼 배치한 작품으로, 이 페이지의 포인트는 순서와 대비다.

따뜻한 색(오렌지·레드)과 차가운 색(퍼플·그린)을 마주 보게 놓고,

만나는 자리에는 중간 톤을 살짝 깔아 경계를 부드럽게 풀어 주면 화면이 경쾌해진다.

이 책의 페이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티스가 예술을 “마음을 달래는 좋은 약”에 비유한 이유가 쉽게 이해된다. 컬러링은 결과를 자랑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색을 칠하다가 잠시 멈추고, 마음이 끌리는 색을 다시 올리고, 어울리지 않으면 한 겹 더 얹는 동안 나만의 색을 만들어간다. 완성보다 과정, 잘하는 것보다 참여의 과정이다.

종이 두께나 제본 같은 만듦새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도입의 설명, 바로 따라 해 볼 수 있는 도구 가이드, 난이도를 달리한 24점 구성까지 균형 있게 갖췄다. 하루에 한 장씩 색칠해도 좋고, 주말에 몰아서 해도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구아슈 데쿠파주의 정신—정답을 정해 두지 않고 즐기는 창작—을 색연필이라는 쉬운 도구로 안전하게 연습하게 해 준다. 손을 움직이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티스의 표현 방식, 즉 선·면·색·리듬을 배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컬러링북이 전하고 싶은 핵심은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오늘의 마음을 잠시 쉬게 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색을 고르고 선을 따라가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잦아들고, 흐트러졌던 균형이 서서히 돌아온다. 책은 이를 돕기 위해 “얇게 여러 번, 밝은 색부터, 경계는 부드럽게”라는 간단한 원칙을 안내하고, 1908년의 색면 실험부터 1950년대 구아슈 데쿠파주에 이르는 작품들을 배열해 손끝으로 마티스의 변화를 따라가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명화를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이자, 하루를 차분히 마무리하는 작은 루틴이 된다.

이 컬러리북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마티스의 색과 리듬을 손으로 체득하고 싶은 미술 애호가

- 업무·육아로 마음이 산만해져 ‘집중 루틴’이 필요한 분

- 그림 실력보다 색감 놀이와 몰입의 기쁨을 찾는 초보 컬러리스트

- 색칠하기 좋아하는 어린이와 성인


'온초록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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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말토’s 꿈꾸는 집 - 게임 배경 콘셉트 아티스트 이소말토의 첫 아트북!
이소말토(손혜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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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흐름과 학습 포인트가 분명한 배경 콘셉트”아트북"

이소말토는 게임 업계에서 배경 콘셉트와 환경 원화를 중심으로 작업해 온 아티스트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시각디자인을 부전공했으며,

넥슨·넷마블·라인·컴투스·님블뉴런 등과 협업해 온 이력이 알려져 있다.

참여작으로는 ‘BTS Universe Story’, ‘나이츠 크로니클’,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 등이 대표적이라 한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강의도 병행한다. 이 기본 정보는 작가의 공개 프로필과 유통사 소개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이라 신뢰해도 되겠다.

작업 방식은 하이브리드 파이프라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러프 스케치에서 콘셉트 키워드를 잡고,

3D 도구로 형태와 구도, 동선을 먼저 확인한 다음,

최종 단계에서 2D 페인팅으로 질감과 색, 감정선을 마무리하는 식이다.

여기서 3D는 구조 검증용 가이드로 쓰이는 편이다.

이 때문에 카메라 높이, 시선 유도, 주요 동선 같은 장면의 논리가 먼저 정리되고,

이후 텍스처·색 온도·재질 대비로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설명은 작가가 공개해 온 작업 예시와 이번 책의 지면 구성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번 책 『이소말토’s 꿈꾸는 집』은 작가의 첫 아트북이다. 표지 일러스트만 보아도 책의 방향이 명확하다.

곡선형 지붕과 장식 타일, 기둥 상단의 오브제 모티프가 강조된 판타지 건물을 전면에 배치해 건축적 형태와 색채 설계가 핵심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상단 카피는 ‘첫 아트북’임을, 띠지 문구는 ‘집 20점’, ‘세계관 설정’, ‘러프–채색–후반부 과정’, ‘디테일 포인트’, ‘작가 Q&A·인터뷰’ 수록을 명시한다.

청록 배경과 노란 제목의 고대비 조합은 서가 진열 시 식별성과 가독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책의 구성은 콘셉트 단위의 집 20점을 중심으로 한다.

각 장은 외관–실내–소품이 하나의 콘셉트로 묶여 있고, 왜 이런 형태가 되었는지를 단계별로 보여 준다. 러프 아이디어→3D로 구조 점검→라이트/구도 테스트→2D 페인팅의 흐름이 과정 캡처와 설명으로 정리되어 있어, 결과만 나열한 작품집과는 결이 다르다. “3D를 구조 검증용으로 쓴다”는 표현이 책 속 문장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3D 활용 과정이 단계적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은 지면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이소말토의 강점은 ‘사용 맥락을 고려한 설계’다. 건물·실내·소품을 예쁜 장식으로 그치지 않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까지 반영한다. 손잡이의 마모, 문지방의 긁힘, 케이블의 동선 같은 사용 흔적이 기능을 증명해 주기 때문에, 화면이 ‘그럴듯함’이 아니라 개연성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흔히 나오는 “멋은 있는데 왜 이렇게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피하게 해 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학습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포인트가 분명하다.

첫째, 포트폴리오 패키징을 배울 수 있다.

콘셉트–구조–최종의 3장 세트로 정리하는 방식이 반복되어, 제출물 구성이 깔끔해진다.

둘째, 리뷰 체크리스트가 잡힌다.

카메라 높이·주 동선·시선 유도·덩어리 값 분배를 먼저 보고, 이후 재질·색·엣지로 넘어가는 순서를 책이 자연스럽게 제안한다.

셋째, 3D–2D 핸드오프 기준을 익힐 수 있다.

3D는 가이드, 2D는 감정과 질감의 마무리라는 역할 분담이 명확해 협업 기대치를 맞추기 쉽다.

넷째, 소품 설계 항목이 응용 가능하다.

쓰임새, 보관 위치, 접근성, 유지보수 흔적, 전원/배수/배기의 연결성 같은 질문을 적용하면, 설명 없이도 기능이 읽히는 화면을 만들 수 있다.

부록 형태의 Q&A/인터뷰디테일 포인트 요약도 유용하다. 작업 시간 안배, 중간 점검 방법(값 분배, 형태 우선순위, 리드 라인), 3D–2D 전환 시 주의점 같은 항목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어, 스튜디오 공용 가이드로 전환하기도 쉽다. 이 파트만 발췌해 팀 온보딩 자료로 쓰더라도 손색이 없다.

정리하면, 이소말토는 환경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설계하는 콘셉트 아티스트이고,

이번 책은 그 강점을 과정과 기준까지 포함해 보여 주는 첫 아트북이다.

결과물 감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작업과 포트폴리오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현실형 레퍼런스를 원하는 독자에게 적합하다. 환경·배경 실무자, 콘셉트 지망생, 웹툰/일러스트 작가, 팀 리드·AD 모두에게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흐름을 제공한다.

'한스미디어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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