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 영국 - 인류 역사와 문화의 새로운 발견 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손봉기 지음 / 더블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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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영국편》은 유물과 인물을 통해 사람을 보게 만든다. 전시된 그림·조각·도구를 단순한 설명으로만 다루지 않고, 그 물건을 만들고 붙잡고 살아낸 이들의 마음과 선택, 그리고 그 시대의 공기까지 함께 불러낸다. 그래서 진열장 속 한 점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라 과거로 들어가는 작은 문처럼 느껴진다. 그 문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잠시 들여다본다.

이 책은 먼저 대영박물관으로 데려가 중동·이집트·그리스‧로마·아시아·유럽 전시관을 자연스럽게 거닐게 한다. 그중 첫번째 장소는 55번 전시실(중동 전시관)이었다. 여기서 만난 것은 아시리아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의 점토판 도서관이다. 종이가 없던 시대, 사람들은 설형문자를 점토판에 새겨 기록을 남겼고, 그 결과 13만 점에 이르는 점토판이 그들의 생활과 생각을 지금까지 전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길가메시 서사시』 11번 점토판이다. 기원전 7세기의 홍수 이야기가 적혀 있어 성서의 노아 이야기보다 약 400년 앞선 기록임을 보여 준다. 서사의 중심엔 친구 엔키두의 죽음 이후 영생을 찾아 나선 길가메시가 있다. 그는 불로초를 손에 넣지만 뱀에게 빼앗기고, 마침내 깨닫는다. 영원을 좇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최선이라는 사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메소포타미아가 전하는 메시지는 Carpe Diem(카르페 디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다.

이집트 전시실에서는 내세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그들이 꿈꾼 곳은 멀고 낯선 천국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자리였다. 결국 잘 산 하루를 쌓는 일이 최고의 준비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리스 전시실의 파르테논 조각과 오디세우스 항아리는, 신의 영생보다 유한한 인간의 시간을 사랑했던 태도를 보여 준다. 늙고 약해지는 한계가 있으니 더 뜨겁게 사랑하고 더 깊게 행복을 느껴야 한다. 여기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해진다. 박물관은 완벽한 과거를 쌓아 두는 창고가 아니라 지금을 더 잘 살기 위한 힌트를 주는 곳이란 것을.

로마 편은 인물의 궤적으로 읽힌다.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외치며 로마로 진군했지만 끝내 원로원 회의장에서 암살당한다. 유언에 따라 조카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유산을 잇는다. 처음엔 카이사르의 부관 안토니우스와 공동 통치를 택하지만,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며 이집트에 기울자 민심은 돌아선다. 옥타비아누스는 최고의 장군 아그리파를 앞세운 해전 승리로 정국을 뒤집고, 로마의 첫 황제가 된다. 그는 힘을 과시하기보다 무상 곡물 배급, 경기와 공연, 도시 정비로 시민의 일상을 바꾸었다. 그래서 “흙더미 위의 로마를 대리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말이 생겼다. 그러나 화려함 이면에는 늘 불안이 있었다. 토가 속에 갑옷을 입고 호위병 10명을 상시 대동했던 습관이 그것을 말해 준다. 임종 직전의 한마디인, “내 연극이 볼 만했습니까? 마음에 들었다면 박수를.”이란 말을 통해 평생 황제라는 역할을 완벽히 해내기 위해 애쓰면서도 한 사람으로서는 외로웠던 마음을 조용히 드러낸다.

두 번째 무대인 V&A에서는 아름다움이 생활 속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배운다.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궁전을 지나며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을 소개한다. 앨버트는 1851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를 성공시키고, 그 수익으로 로열 앨버트 홀과 과학·자연사·V&A가 이어지는 ‘박물관 지구’를 닦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도 빅토리아는 뜻을 이어 공간을 완성했다. 좋은 문화 공간은 우연이 아니라 오랜 준비와 애정의 결과라는 점이 또렷해진다.

정문 안에서는 데일 치훌리의 거대한 유리 샹들리에가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한쪽 눈을 잃은 뒤 비대칭과 불규칙을 자기 언어로 만든 작가답게, 9미터가 넘는 유리의 소용돌이가 로비 전체를 빛과 그림자로 물들인다. 지하로 내려가면 고딕의 창문 트레이서리가 돌로 만든 레이스처럼 서 있다. 데번셔 사냥 태피스트리는 귀족의 사냥 장면과 의복, 문장(‘많은 욕망’), 희귀 모피까지 한 폭에 담아 신분·취향·권력을 ‘보여주고 공유’하던 방식을 설명한다. 지금의 SNS처럼 자신을 알리고 지위를 확인받는 매체였던 셈이다.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카스트 코트였는데, 이름 그대로 진본이 아니라 석고로 본뜬 복제품을 모아둔 전시실이다.

(영단어 ‘CAST’는 쇠를 녹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굳혀서 만드는 물건을 말하는 것으로 진본이 아니라 복사본을 뜻한다.) “왜 복제품을 모아두었을까?”라는 의문은 곧 풀린다. 유럽 전역을 직접 여행하며 공부하기 어려웠던 시절,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명작을 실물 크기로 본떠 한자리에 모아 둔, 교육을 위한 공공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트라야누스 승전비 복제는 실물을 그대로 세울 수 없어 상·하부로 나눠 전시하고, 2층 난간에서 위쪽 장면까지 보게 했다. 다뉴브강 도하→전투→승리 의식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전쟁 자랑이 아니라 로마는 이렇게 기억되고 싶다는 기억의 설계가 보인다. 옆의 미켈란젤로 ‘다비드’ 석고본은 아래에서 올려다볼 것을 계산해 머리와 손을 조금 크게 만든 비례, 보수적 시선 때문에 덮개를 씌웠던 일화까지 알려 준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시대의 시선을 함께 읽을 때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본 조반니 볼로냐의 〈블레셋인을 죽이는 삼손〉은 나선처럼 치솟는 소용돌이 구도 덕분에 어느 각도에서도 긴장이 흐른다. 굳게 다문 입, 힘줄 선 팔, 발목을 붙잡고 매달린 상대의 절박한 표정과 같은 감정이 돌 속에 선명하게 비춰진다.

이 책을 덮고 나면 핵심이 또렷해진다. 물건을 보면 사람이 보이고, 과거를 보면 오늘이 보인다. 메소포타미아는 지금을 사는 용기, 그리스는 유한함을 사랑하는 태도, 로마는 힘과 품위의 균형, V&A는 아름다움이 일상에서 자라는 과정을 가르친다. 그래서 박물관은 오래된 것을 모아 두는 창고가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선택을 묻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기억을 나눠 주며, 우리가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살아갈지 결심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박물관은 과거의 끝이 아니라 오늘을 더 잘 살도록 연결해 주는 시작점임을 이해하게 된다.

'더블북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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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 ‘CAST’는 쇠를 녹여 거푸집에 부은 다음 굳혀서 만드는 물건을 말하는 것으로 진본이 아니라 복사본을 뜻한다. 17세기 산업혁명으로 부유해진 영국에서는 귀족 자제들을 중심으로 그랜드 투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견문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멀리 그리스까지 방문하는 일종의 유학이었다. 하지만 문화적 변방에 위치했던 영국에서 이런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물리적, 경제적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 공부할 수 없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유럽의 주요 유적지와 유물을 본뜬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런 복제품을 모아놓은 V&A 전시실이 바로 카스트 코트다. 이곳에서 인기 있는 작품은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승전비와 빅토리아 여왕이 이탈리아로부터 선물 받은 석고 주조물을 똑같은 크기로 복제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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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 이겨놓고 싸우는 인생의 지혜 현대지성 클래식 69
손무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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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클래식 69번 『손자병법』(소준섭 옮김)은 원전의 간결한 한문 어조를 살리면서 현대 독자가 매끄럽게 읽도록 다듬은 완역본이다. 이 판본의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 각 편의 핵심 명제를 먼저 분명히 세우고 원문 대역과 해설을 붙여 논리의 뼈대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구성이다. 둘째, 국내 최초로 컬러 명화를 수록한 완역본이라 추상적인 전술 개념(형세·거리·포위·보급선 등)을 장면으로 떠올리며 읽을 수 있게 한 점이다.

도판은 개념 이해를 돕는 시각적 근거로 기능하고, 사례는 원칙을 실제 맥락에 대입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책의 전체 구조는 13편으로, 앞부분은 ‘왜/언제/어디서/어떻게’의 대전략을 세우는 일에, 중반은 형세를 만들고 주도권을 얻는 기술에, 후반은 현장에서의 판독과 지휘·정보 운용에 초점을 둔다.

1편 ‘시계(始計)’는 다섯 기준—도(目的·정당성), 천(時機·시세), 지(地形·거리), 장(將帥의 역량·기개), 법(組織·규율)—을 제시한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이 다섯 항목을 비교·계산해 승부의 방향을 미리 가늠하라고 가르친다. 핵심 문장은 “먼저 이길 형세를 갖추고, 그다음에 싸움을 구하라(先勝而後求戰)”다.

2편 ‘작전(作戰)’은 속전과 병참을 말한다. 장기전은 국력과 민생을 고갈시키므로, 보급·시간·비용을 함께 계산하지 않는 전쟁은 패전과 다를 바 없다고 경고한다.

3편 ‘모공(謀攻)’은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전(全)의 승리’를 최상책으로 둔다. 성을 직접 치는 정면충돌은 하책이며, 상대의 동맹·의지·책략을 무너뜨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을 우선한다.

4편 ‘형(形)’은 군의 배치와 태세를 다룬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形)을 단단히 하지만 속의 실(實)은 감추고, 움직임의 주도권을 쥘 때까지 허(虛)와 실을 교차 운용하라고 말한다.

5편 ‘세(勢)’는 흐름의 힘이다. 같은 병력도 기세를 타면 폭포처럼 힘을 더하고, 기세를 잃으면 사분오열된다. 손자는 병력 그 자체보다 ‘세를 모으는 장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집중한다.

6편 ‘허실(虛實)’은 공수 간의 빈틈을 겨눈다. 적이 지키는 실(實)은 피하고, 비어 있는 허(虛)를 찌르는 것이 정공법이다. 이때 기동은 빠르되 무모하지 않아야 하며, 허실의 판독이 곧 승패를 가른다.

7편 ‘군쟁(軍爭)’은 선착·후착, 길목, 우회, 기만 등 병력 충돌의 실제 기술을 풀어낸다. 수적 우세보다 자원의 집중과 분산, 속도와 보급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점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8편 ‘구변(九變)’은 원칙의 유연성이다. 지형·적정·군심이 바뀌면 법도 바뀐다. 고정 공식에 기대지 말고, 금기와 권도를 구분해 제때에 바꾸는 용기를 촉구한다.

9편 ‘행군(行軍)’은 이동 중 관측법을 적는다. 먼지의 높이·모양, 새의 움직임, 야간 불빛, 물의 흐름 등 자연과 징후를 읽어 적의 규모와 상태를 추정하도록 안내한다. 정찰과 경계, 휴식의 배분도 이 편에 집중되어 있다.

10편 ‘지형(地形)’은 평지·협곡·산악·하천 등 유형별 이점과 위험을 비교한다. 싸움의 장소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승률이 달라지며, 유리한 지형에서 불리한 싸움을 피하는 것이 지휘의 기본임을 분명히 한다.

11편 ‘구지(九地)’는 전장을 아홉 형국(산발지·경지·분지·교지·중지·중지(重地)·위지·사지·사지(死地))로 나눠 각 상황에서 취할 공격·수비·유인·결전의 원칙을 정리한다. 특히 ‘사지’에서는 후퇴로를 끊어 결전을 강제하는 심리·규율 운용을 설명한다.

12편 ‘화공(火攻)’은 화공의 다섯 방식—인화·물화·시화·야화·천화—과 기후·풍향·보급·신호의 조건을 기술한다. 불은 통제되지 않으면 아군에 돌아오므로, 시작보다 중지(止火)의 규율을 더 중시한다.

13편 ‘용간(用間)’은 정보전의 체계화다. 향간·내간·반간·사간·생간 다섯 부류의 간첩을 구분하고, 첩보를 결속·검증·혼용하는 법을 진술한다. 손자에게 용간은 도덕의 예외가 아니라 전쟁 피해를 줄이는 최적 수단이다.

이 전편의 명제들을 관통하는 철학은 명확하다.

첫째, 전쟁은 국가의 대사이므로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문제다. 명분 없는 전쟁·지나친 장기전·정면의 성공격은 금기다.

둘째, 최상책은 ‘전(全)’—싸우지 않고 온전히 이기는 것—이며, 그다음이 책략으로 꺾는 길, 최하가 성을 치는 길이다.

셋째, 정보와 형세가 병력의 부족을 보완한다.

넷째, 지휘는 공정·절제·간결함을 근간으로 하며, 군의 생존과 보존이 승리 이상의 가치로 놓인다

다섯째, “지피지기(知彼知己)”는 표어가 아니라 절차다. 적을 알기 전에 나(전력·병목·편향)를 먼저 파악하는 순서를 지켜야 오판이 줄어든다.

이 번역본의 해설은 이러한 원칙을 과장 없이 풀어 준다.

원전의 단문을 불필요하게 늘리지 않으면서 필요한 곳에만 보충을 더해 논지를 선명하게 한다.

각 편 말미에 배치된 역사적 사례는 원칙을 장면으로 환원시켜 기억을 돕는다.

널리 알려진 상인 ‘현고’의 벌모 일화처럼, 싸움 없이 의지를 꺾어 대국의 침공을 취소시킨 사건은 손자가 왜 ‘전(全)’을 으뜸으로 치는지를 압축해 보여 준다. 또한 외형과 실효를 나눠 보는 일화(겉모습보다 쓰임을 중시하는 판단)는 ‘형’과 ‘실’을 혼동하지 말라는 교훈을 직감적으로 새긴다.

여기에 더해 컬러 명화 도판은 전술 개념을 공간 감각으로 각인시켜,

문장만으로는 미끄러지기 쉬운 ‘세(勢)’와 ‘포위’의 느낌을 그림으로 붙잡게 한다.

요컨대, 『손자병법』은 군사 지침을 넘어 “싸움을 관리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싸움 없이 이기는 길”을 체계화한 책이다. 다섯 기준(도·천·지·장·법)으로 승부의 조건을 사전에 계산하고, 형·세·허실로 주도권을 만들며, 군쟁·구변으로 상황에 맞춰 법도를 조절하고, 행군·지형·구지에서 현장 운용을 다진 뒤, 화공과 용간으로 비용과 시간을 줄인다. 번역과 편집은 이 체계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독자의 이해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명화 도판은 이해를 ‘글’에서 ‘장면’으로 전환해 기억의 지속성을 높인다.

[핵심 메시지]

“싸우면서 이기려 하지 말고, 먼저 이길 형세를 갖춘 뒤에 싸움을 시작하라—

전(全), 즉 싸우지 않고 온전히 이기는 것이 병법의 최상책이다.”


'현대지성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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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만 알면 되는 경제학 만화 - 뉴스가 어렵고 숫자에 약해도
김상현 지음 / 빅피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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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늘 “어렵다”는 선입견이 앞선다. 금리나 환율 같은 단어를 들어도 내 일상과는 딱히 이어지지 않는 느낌. 그런데 이 책은 그 벽을 만화 한 컷, 대사 한 줄로 가볍게 허문다.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데, 덮고 나면 뉴스와 생활 장면들이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단순한 개념 암기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행동, 사회 구조를 경제학의 언어로 번역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의 부정적 호혜성 이야기가 강렬했다. 쉽게 말해 “나한테 해코지하면 나도 갚아준다”는 마음이 강한 편이라는 뜻. 처음엔 웃음이 나다가도 곧바로 뜨끔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복수심이 공동체 협력을 받쳐주는 장치로도 작동한다는 해석이다. 서로 함부로 했다가 되갚음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면, 오히려 예의를 지키고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 한다. 감정이라는 복잡한 요소를 협력의 경제학으로 연결해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 책이 왜 “생활 경제학”인지 실감했다.

쓸모 있는 일이 곧 돈이 되는 건 아니라는 부분도 오래 남는다. 기후 위기를 줄이거나 장애 인식을 개선하는 활동은 사회 전체에 분명한 가치를 주지만, 그 혜택을 특정 사람에게만 제한하기 어렵다. 그래서 수익 모델로는 이어지기 힘들다. “돈이 안 되니 안 한다”가 아니라, “왜 구조적으로 돈이 되기 어려운가”를 이해하게 만드는 설명이다. 가치와 수익, 공공재와 외부효과를 생활 예시로 풀어 주니 머릿속에 단단히 앉는다.

교육경제학 파트는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부모가 더 엄격해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임금 격차를 피할 수 있다는 불안이 양육 태도를 밀어 올린다. 그래서 교육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실험들도 유용하다. 성적이 오르면 주는 상보다, 공부 행동 자체에 바로 보상을 주는 방식이 습관 형성에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 성과가 아니라 행동을 보상하면 “어떻게 공부할지”가 구체화되니, 결국 성적은 뒤따라온다. 경제학이 돈을 넘어 행동을 바꾸는 기술이라는 말이 딱 맞다.

투자 파트는 솔직해서 더 좋다. 우리는 손해 본 주식은 끝까지 들고 가면서 언젠간 오를 거라 위로하고, 조금만 오르면 다시 떨어질까 봐 서둘러 판다. 스스로의 정보를 과대평가하며 “최적의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고 믿는 과신 편향도 흔하다. 책이 제시하는 현실적인 태도는 의외로 담백하다. 여윳돈이 생기면 사고, 돈이 필요할 때 판다. 거기에 분산투자와 장기 보유를 더한다. 초보자라면 직접 종목을 고르기보다 시장 전체를 담는 지수형 펀드 같은 수단으로 간단히 분산을 달성하는 편이 낫다. ETF, MMF처럼 끝에 붙는 F가 Fund의 약자라는 기본부터, 펀드의 가치는 기초자산의 합이라는 핵심까지 한 번에 정리된다. 괜히 어려운 말로 겁주지 않고, 실천 가능한 원칙을 남겨 준다.

부동산도 차분히 구조를 보여준다. 공포와 소문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자기실현적 기대, 대출과 금리의 민감도, 그리고 한국 특유의 전세 제도.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을 맡기는 게 아니라, 집주인이 세입자에게서 돈을 빌리는 형태라는 설명이 붙자 여러 사건들이 하나의 구조로 연결된다. 전세금을 투자금으로 삼는 갭투자는 결국 레버리지 투자이므로 하방 위험이 크게 확대된다. 감정적인 분노보다 먼저 구조적 이해가 자리 잡으니, 뉴스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돈의 조건을 다루는 대목도 흥미롭다. 위조가 어렵고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희소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기준에서 보면, 디지털 기록과 암호 기술을 활용한 비트코인은 적어도 그 한 가지 요건을 충족한다. 다만 실사용성, 변동성, 제도적 수용성 등 남은 과제도 있음을 함께 짚어 준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조건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태도가 균형감 있다.

끝으로 뉴스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다. 경쟁이 있다고 해서 왜곡이 자동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다. 만약 소비자가 자극적인 거짓을 원한다면, 미디어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자극적인 내용을 들이밀 수 있다. 그래서 언론의 편향을 탓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클릭하고 무엇을 신뢰하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결론에 닿는다. 경제학이 소비자의 선택과 인센티브를 다루는 학문이라면, 뉴스 소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째, 최저임금이다. 이 책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단순히 좋다·나쁘다로 가르지 않는다. 업종과 지역, 경기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여러 경로를 함께 보여 주면서, 왜 그런 차이가 생기고 정책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를 묻게 만든다. 둘째, 왜 부자만 더 부자가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복리, 자본수익률, 자산 인플레이션, 신용과 정보 접근성 같은 메커니즘을 꼭 필요한 만큼만 짚어 주고, 지금 당장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선택까지 힌트를 남긴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진다. 내 소득에서 투자 가능한 몫을 어떻게 꾸준히 만들어 갈지, 시간이라는 우군을 어떻게 내 편으로 데려올지.

이 책을 읽고 나면, 경제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복잡한 숫자나 그래프만 떠올리는 것만이 경제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호혜성에 관한 내용과 양육과 불평등, 공부 습관과 보상의 설계, 투자와 심리, 전세와 레버리지, 돈의 조건과 뉴스 소비, 최저임금과 부의 메커니즘까지. 이 책은 거대한 이론을 외우게 하기보다, 내가 매일 마주치는 장면을 해석하는 눈을 길러 준다. 경제 공부가 두렵거나, 시작은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한 사람에게 이만큼 친절하고 현명한 출발선도 드물다. 만화처럼 가볍게 펼치고, 덮을 때는 생각이 묵직하게 남는 책이다.

'북스타그램_우주 @woojoos_story 모집',

'빅피시 출판사 @bigfish_book'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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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서 2022년 사이, ‘패닉 바잉panic buying’이라는 말이 유행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집값이 더 올라서 앞으로 평생 집을 못 살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공포심 때문에 집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서 실제로 집값이 더 많이 올랐죠. 이처럼 부동산 가격에 대한 기대는 자기실현적 성격으로 비이성적 충동, 사회 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예측이 어렵습니다.
부동산 시장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그 순환을 이해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핵심 키워드는 ‘대출‘입니다. 대출이 용이해지거나 대출 금리가 낮아지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합니다. 왜 부동산 시장은 대출 비용에 특별히 민감할까요? 그건 부동산을 구매할 때 큰 금액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금을 몇억 원씩 가지고 있다가 마음에 드는 집을 ’탁‘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원하는 집을 사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지요.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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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헨리 지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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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역사에서 수많은 종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공룡은 인류의 상상 속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로 남아 있다.

트라이아스기 말기에 등장해 약 1억 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지만, 6,600만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운석일 수도 있고, 전염병이었을 수도 있으며, 단순한 생식 실패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단 하나다.

지배자라고 해서,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인류에게 너무도 정확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공룡과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을까?”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까지 그 어떤 생명체보다 뛰어난 생존력을 보여왔다. 농업혁명으로 식량을 안정시켰고, 산업혁명으로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늘렸으며, 과학혁명과 녹색혁명을 통해 기근과 전염병까지 돌파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구 생태계 전체를 사실상 독점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정점이 바로 전환점일지도 모른다. 선진국을 시작으로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고, 유엔과 여러 연구기관은 머지않아 인류 전체가 감속 구간으로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보고서 속 문장이 아니라, 매년 갱신되는 폭염과 폭우, 예측 불가능한 날씨로 현실을 흔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전염병이 여전히 문명을 경직시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인류는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의해 흔들리는 존재가 되었다.

헨리 지는 이 책에서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한때 변방의 소수 종이었던 호미닌은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러 폭발적인 개체 수 증가를 통해 지구를 장악했지만, 이제는 그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역자는 후기에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역사는 인구 곡선과 함께 읽으면 더 선명해진다고. 개체 수가 늘어날 때 종은 팽창하지만, 정점에 이른 종은 내부 요인에 의해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로마제국이 외부의 침략이 아닌 내부의 붕괴로 무너졌듯이, 인류 또한 동일한 궤도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비관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마지막에 뜻밖의 방향을 제시한다. 지구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다면, 지구 바깥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달이든, 화성이든, 소행성 내부든, 혹은 인공 거주지든 상관없다. 심지어 유전자 기술을 동원해 새로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인간 자체를 개조하는 방안까지 거론한다.

처음엔 터무니없이 들리지만, 기묘하게도 설득력은 누적된다. 과거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났던 두 차례의 대이주 역시 계획된 도약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본능적 이동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불안 역시 세 번째 이주를 향한 신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묻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멸종을 두려워하며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진화를 감수하며 이동할 것인가.

어쩌면 답은 이미 결정된 상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또 한 번 떠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지구에서.”


'까치글방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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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뇌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 하나, 상상에 관한 안내서
애덤 지먼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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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지먼의 『상상하는 뇌』는 상상을 “마음의 눈”이라고 부른다. 상상은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미리 그려 보게 하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낮에는 계획을 세우게 하고, 밤에는 꿈으로 모습을 바꿔 찾아온다고 말한다. 상상은 즐거움과 창조를 가져오지만, 때로는 몽상과 환각처럼 어두운 모습도 만든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빛과 그림자를 함께 알아야 우리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책은 먼저 상상이 왜 중요한지부터 보여 준다. 우리는 매일 머릿속에서 장면을 만든다. 시험을 앞두고 발표 장면을 떠올리고, 친구 표정을 기억해 보며 그 마음을 짐작한다. 소설을 읽을 때는 글 속 단서로 인물의 목소리와 장소를 그린다. 이 과정에서 뇌는 들어온 감각을 그대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 빈칸을 채우며 “그럴듯한 화면”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현실도 완전히 날것의 사실이 아니라, 뇌가 추측과 보정을 거쳐 만들어 낸 결과에 가깝다고 알려 준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경험을 “제어된 환각”에 비유한다. 엉뚱한 환각이 아니라, 질서 있게 조율된 해석이라는 뜻이다.

상상의 뿌리를 언어에서도 찾는다. ‘이미지’와 ‘상상’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마음속 그림과 바깥세계의 초상·조각 같은 표상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소개한다. 그래서 상상은 원래 내면과 외면을 이어 주는 다리 같은 개념이었다고 풀이한다. “나는 상상한다”가 동사형인 것도 이유가 있다. 상상은 가만히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기억 조각과 지금의 상황을 직접 모아 조립하는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문학의 비유, 과학의 가설, 예술의 실험이 모두 이 조립 위에서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상상을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조립 기술’로 이해하면, 누구나 연습으로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사람마다 상상 방식이 다른 점도 중요한 내용이다. 어떤 사람은 눈앞에 그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어떤 사람은 말과 논리로 장면을 세운다. 또 어떤 사람은 소리·냄새·촉감 같은 감각이 먼저 온다. 저자는 이 차이를 능력의 높고 낮음으로 보지 않는다. 선호하는 입력 통로가 다를 뿐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통로를 알면 공부와 글쓰기, 발표 준비를 더 잘 설계할 수 있다. 그림형이면 도식과 스케치를 먼저 쓰고, 말·논리형이면 핵심 문장을 먼저 세우고, 감각형이면 소리나 리듬·몸의 느낌을 먼저 불러오면 도움이 된다고 제안한다.

상상은 발달과 진화의 역사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아이는 역할놀이로 규칙을 배우고, 없는 물건을 있는 것처럼 쓰며 문제를 푼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운동선수가 실제로 뛰지 않아도 동작을 머릿속으로 반복해 기록을 올리듯이, 우리는 발표·면접·협상 전에 머릿속에서 예행연습을 한다. 언어와 상징은 마음속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만들었고, 그 공유가 제도와 기술, 예술의 바탕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상상은 소수 예술가의 특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 기술이라는 관점이 설득력을 가진다.

책의 후반부는 상상의 어두운 면을 구체적 사례로 보여 준다. 외부 자극을 크게 줄이면, 오히려 뇌의 내부 활동이 두드러진다. 감각 차단 탱크 같은 곳에 있으면 몇 시간이나 며칠 안에 많은 사람에게 환각이 생긴다는 연구가 소개된다. 빛이 거의 없는 공간에 오래 있는 수감자가 점과 무늬, 잔상을 보기도 하는데, 이를 “죄수의 영화관”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극지 탐험에서 보고되는 기묘한 “누군가의 존재감”, 종교적 금욕 중의 환시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익숙한 입력이 끊어지면 뇌가 빈칸을 못 견디고 스스로 화면을 채우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시력을 잃은 노년층에서 나타나는 환각도 자세히 다룬다. 단순한 섬광과 줄무늬부터 그물·격자 같은 기하 무늬, 더 복잡한 장면까지 다양하게 보인다고 정리한다. 대개 위협적이지 않고 주변 상황과 크게 어긋나지 않으며, 바깥에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의학에서는 이를 샤를 보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외부 입력이 줄어 내부의 예측과 기억이 전면으로 올라온 결과로 설명한다. 배우자를 잃은 뒤 목소리나 손길을 느끼는 경험도 비슷하다. 오랜 애착이 뇌에 깊이 새겨져 있어 결핍이 커지면 뇌가 스스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고 설명한다. 이때 떠오른 심상이 현실과 겹쳐 아주 생생한 만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인다. 애도기의 환각을 무조건 ‘이상’으로만 보지 않고, 애착 회로의 보정 작용으로 이해하면 불필요한 낙인을 줄일 수 있다는 시선이 도움이 된다.

병적인 경우도 소개된다. 어떤 환자는 발작이 오기 직전에 형언할 수 없이 지독한 냄새를 맡았다. 이는 측두엽에서 비정상적인 발화가 퍼지기 직전 뇌가 “경보”를 올리는 신호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문장을 남긴다. 경험은 본래 “제어된 환각”이어서, 상황에 따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쉽게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리를 알면 두려움이 줄어든다고 강조한다. 진단이 사람을 낙인찍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이해를 돕는 도구일 때 치료에 힘이 된다.

잠과 상상의 관계도 실생활에 바로 쓸 수 있게 풀어 준다. 막 잠에 들 무렵에는 의식을 단단히 붙잡던 통제가 느슨해진다. 그 틈에서 안쪽 생각의 흐름이 힘을 얻어 엉뚱하지만 유용한 연결이 튀어나온다. 심한 피로나 특수한 조건에서는 깨어 있음에서 바로 꿈 단계로 미끄러지는 일도 생긴다고 설명한다. 수면 마비는 꿈의 장면과 강한 감정이 깨어 있는 의식 위로 겹쳐 올라오는데, 몸은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한다. 매우 무섭지만, 잠의 단계와 깨어남이 비정상적으로 겹친 결과이니 곧 지나간다고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고 안내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상상은 꾸밈이 아니라, 뇌가 현실을 운영하는 기본 방식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통로와 조립 습관이 다르다. 그 차이는 잘하고 못함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이라고 말한다. 상상은 예술, 과학, 학습, 치료, 애도, 의사결정까지 넓게 연결되는 공통 언어라고 정리한다. 현실을 다르게 살고 싶다면, 먼저 상상을 쓰는 습관을 바꾸면 된다. 그림으로 떠올리던 사람은 말로, 말로 정리하던 사람은 냄새·소리·촉감 같은 감각으로도 떠올려 본다. 멍하니 산책하거나 잠깐 쉬는 시간처럼 느슨한 틈을 일부러 만든다. 예상이 빗나가면 뇌가 빈칸을 채워 넣으려 한다는 점을 기억하고, 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급히 믿지 말고 한 번 더 확인하면 된다.

이 책은 상상을 밝음과 어둠으로 나눠 단순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같은 작동 방식이지만, 상황이나 정도에 따라 모습이 다르게 나타날 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상상은 모두의 일상 기술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차분한 설명과 풍부한 사례가 이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상상이 삶을 움직이는 엔진이라면, 우리는 그 엔진의 구조를 이해하고 손질하는 법을 배우는 편이 좋다.

'흐름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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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 상상imagination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힘이다. 이 힘은 우리를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게 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내다본다. 소설가와 영화 제작자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를 탐험하고 창조의 첫 순간에서 우주의 가장자리, 심지어 원자의 심연까지도 여행할 수 있다. 상상은 깨어 있는 낮뿐 아니라 꿈꾸는 밤에도 우리를 찾아온다. 때로는 창의력과 영감으로, 때로는 몽상과 환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만큼 상상은 삶의 기쁨과 성취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고통과 어둠도 불러온다. 하지만 그 어둠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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