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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 이겨놓고 싸우는 인생의 지혜 ㅣ 현대지성 클래식 69
손무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0월
평점 :

현대지성 클래식 69번 『손자병법』(소준섭 옮김)은 원전의 간결한 한문 어조를 살리면서 현대 독자가 매끄럽게 읽도록 다듬은 완역본이다. 이 판본의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 각 편의 핵심 명제를 먼저 분명히 세우고 원문 대역과 해설을 붙여 논리의 뼈대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구성이다. 둘째, 국내 최초로 컬러 명화를 수록한 완역본이라 추상적인 전술 개념(형세·거리·포위·보급선 등)을 장면으로 떠올리며 읽을 수 있게 한 점이다.
도판은 개념 이해를 돕는 시각적 근거로 기능하고, 사례는 원칙을 실제 맥락에 대입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책의 전체 구조는 13편으로, 앞부분은 ‘왜/언제/어디서/어떻게’의 대전략을 세우는 일에, 중반은 형세를 만들고 주도권을 얻는 기술에, 후반은 현장에서의 판독과 지휘·정보 운용에 초점을 둔다.
1편 ‘시계(始計)’는 다섯 기준—도(目的·정당성), 천(時機·시세), 지(地形·거리), 장(將帥의 역량·기개), 법(組織·규율)—을 제시한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이 다섯 항목을 비교·계산해 승부의 방향을 미리 가늠하라고 가르친다. 핵심 문장은 “먼저 이길 형세를 갖추고, 그다음에 싸움을 구하라(先勝而後求戰)”다.
2편 ‘작전(作戰)’은 속전과 병참을 말한다. 장기전은 국력과 민생을 고갈시키므로, 보급·시간·비용을 함께 계산하지 않는 전쟁은 패전과 다를 바 없다고 경고한다.
3편 ‘모공(謀攻)’은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전(全)의 승리’를 최상책으로 둔다. 성을 직접 치는 정면충돌은 하책이며, 상대의 동맹·의지·책략을 무너뜨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을 우선한다.
4편 ‘형(形)’은 군의 배치와 태세를 다룬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形)을 단단히 하지만 속의 실(實)은 감추고, 움직임의 주도권을 쥘 때까지 허(虛)와 실을 교차 운용하라고 말한다.
5편 ‘세(勢)’는 흐름의 힘이다. 같은 병력도 기세를 타면 폭포처럼 힘을 더하고, 기세를 잃으면 사분오열된다. 손자는 병력 그 자체보다 ‘세를 모으는 장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집중한다.
6편 ‘허실(虛實)’은 공수 간의 빈틈을 겨눈다. 적이 지키는 실(實)은 피하고, 비어 있는 허(虛)를 찌르는 것이 정공법이다. 이때 기동은 빠르되 무모하지 않아야 하며, 허실의 판독이 곧 승패를 가른다.
7편 ‘군쟁(軍爭)’은 선착·후착, 길목, 우회, 기만 등 병력 충돌의 실제 기술을 풀어낸다. 수적 우세보다 자원의 집중과 분산, 속도와 보급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점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8편 ‘구변(九變)’은 원칙의 유연성이다. 지형·적정·군심이 바뀌면 법도 바뀐다. 고정 공식에 기대지 말고, 금기와 권도를 구분해 제때에 바꾸는 용기를 촉구한다.
9편 ‘행군(行軍)’은 이동 중 관측법을 적는다. 먼지의 높이·모양, 새의 움직임, 야간 불빛, 물의 흐름 등 자연과 징후를 읽어 적의 규모와 상태를 추정하도록 안내한다. 정찰과 경계, 휴식의 배분도 이 편에 집중되어 있다.
10편 ‘지형(地形)’은 평지·협곡·산악·하천 등 유형별 이점과 위험을 비교한다. 싸움의 장소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승률이 달라지며, 유리한 지형에서 불리한 싸움을 피하는 것이 지휘의 기본임을 분명히 한다.
11편 ‘구지(九地)’는 전장을 아홉 형국(산발지·경지·분지·교지·중지·중지(重地)·위지·사지·사지(死地))로 나눠 각 상황에서 취할 공격·수비·유인·결전의 원칙을 정리한다. 특히 ‘사지’에서는 후퇴로를 끊어 결전을 강제하는 심리·규율 운용을 설명한다.
12편 ‘화공(火攻)’은 화공의 다섯 방식—인화·물화·시화·야화·천화—과 기후·풍향·보급·신호의 조건을 기술한다. 불은 통제되지 않으면 아군에 돌아오므로, 시작보다 중지(止火)의 규율을 더 중시한다.
13편 ‘용간(用間)’은 정보전의 체계화다. 향간·내간·반간·사간·생간 다섯 부류의 간첩을 구분하고, 첩보를 결속·검증·혼용하는 법을 진술한다. 손자에게 용간은 도덕의 예외가 아니라 전쟁 피해를 줄이는 최적 수단이다.
이 전편의 명제들을 관통하는 철학은 명확하다.
첫째, 전쟁은 국가의 대사이므로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문제다. 명분 없는 전쟁·지나친 장기전·정면의 성공격은 금기다.
둘째, 최상책은 ‘전(全)’—싸우지 않고 온전히 이기는 것—이며, 그다음이 책략으로 꺾는 길, 최하가 성을 치는 길이다.
셋째, 정보와 형세가 병력의 부족을 보완한다.
넷째, 지휘는 공정·절제·간결함을 근간으로 하며, 군의 생존과 보존이 승리 이상의 가치로 놓인다
다섯째, “지피지기(知彼知己)”는 표어가 아니라 절차다. 적을 알기 전에 나(전력·병목·편향)를 먼저 파악하는 순서를 지켜야 오판이 줄어든다.
이 번역본의 해설은 이러한 원칙을 과장 없이 풀어 준다.
원전의 단문을 불필요하게 늘리지 않으면서 필요한 곳에만 보충을 더해 논지를 선명하게 한다.
각 편 말미에 배치된 역사적 사례는 원칙을 장면으로 환원시켜 기억을 돕는다.
널리 알려진 상인 ‘현고’의 벌모 일화처럼, 싸움 없이 의지를 꺾어 대국의 침공을 취소시킨 사건은 손자가 왜 ‘전(全)’을 으뜸으로 치는지를 압축해 보여 준다. 또한 외형과 실효를 나눠 보는 일화(겉모습보다 쓰임을 중시하는 판단)는 ‘형’과 ‘실’을 혼동하지 말라는 교훈을 직감적으로 새긴다.
여기에 더해 컬러 명화 도판은 전술 개념을 공간 감각으로 각인시켜,
문장만으로는 미끄러지기 쉬운 ‘세(勢)’와 ‘포위’의 느낌을 그림으로 붙잡게 한다.
요컨대, 『손자병법』은 군사 지침을 넘어 “싸움을 관리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싸움 없이 이기는 길”을 체계화한 책이다. 다섯 기준(도·천·지·장·법)으로 승부의 조건을 사전에 계산하고, 형·세·허실로 주도권을 만들며, 군쟁·구변으로 상황에 맞춰 법도를 조절하고, 행군·지형·구지에서 현장 운용을 다진 뒤, 화공과 용간으로 비용과 시간을 줄인다. 번역과 편집은 이 체계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독자의 이해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명화 도판은 이해를 ‘글’에서 ‘장면’으로 전환해 기억의 지속성을 높인다.
[핵심 메시지]
“싸우면서 이기려 하지 말고, 먼저 이길 형세를 갖춘 뒤에 싸움을 시작하라—
전(全), 즉 싸우지 않고 온전히 이기는 것이 병법의 최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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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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