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아버지
한승원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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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부터 월남전 까지 간간이 등장하는 시대상도 함께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11명이나 되는 형제들의 사연을 한국사의 시대흐름하고 엮어서 전개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러면 산만해지려나. 

가난하지만 형제 많은 집 장남, 장녀의 길은 두 가지다. 독일로 간 광부, 간호사들처럼 진학을 포기하고 희생을 해서 나머지 동생들을 공부시킨던가,  첫째한데 공부를 시키고 나머지 동생들은 훗날을 기약하는 것.

제주도 출신의 번역가 김석희 선생은 해양대를 지망했으나 연좌제 때문에 못가고 재수 끝에 번역가의 길을 살고 있다.

일남이가 고시 공부한다고 했을 때 빨치산하다 죽은 할아버지의 연좌제를 어찌 벗어날려고 하는가, 아니면 고시에 성공했는데 집안에 등 돌리고 살것인가 라는 몇 개의 가정을 두고 읽어갔다. 최악의 가정은 군대에서 죽거나 데모 하다가 쫓기는 것이었다. 연좌제라는 사슬때문에 번번이 2차에서 발목을 잡혔지만 교직에 있으면서 그림을 그린다.  좌절을 겪으면 쓰러지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길을 찾아서 일어나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되새기는 감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딛고 한 발 한 발 이들 가족은 내딛는다. 

형제들이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제몫을 하면서 살아가는 건 악착같이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에서 배운거 같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있던 김오현에게 빨치산으로 죽은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서 토벌대장인이었던 노인이 화해의 차원에서 지난날을 이야기 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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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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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작가가 팝캐스트에서 자기 책 읽는 사람 보고 싶다고 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스마트폰에 둘러싸인 4호선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혈육보다 찾기 힘든게 독서인 같다.

단편들의 연결은 잊고 싶은, 잊기 싫은 혈육이다. 혈육의 아름다운 정만 그리지는 않는다. 그리움, 버거움 등 가슴 속에 진한 여운을 준다.

피가 섞인 혈육이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피하고 싶은 부담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책에서는 가족의 정의를 서 있을때 맘편히 기댈 수 있는 벽이라고 했다. 그런데 벽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서 다른 벽끼리 연결하면 되지 않을까. 

몇 년전에 EBS 다큐에서 지방고시에 합격한 사무관 사연이 나온다. 양복점을 하던 아버지가 시장에서 말다툼긑에 재봉가위로 상대방을 죽여서 무기수로 복역중인데, 결혼할 여자집에 찾아갔다가 에비 장인 식구 앞에서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우는 장면이 나왔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멍에는 나는 죄없음에도 함께 아버지의 죄를 짊어가게 한다.  그래도 혈육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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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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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악惡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화로 다가오기  때문에 무섭다. 마이너스 경제성장이라는 숫자는 빈민가의 비참함을 가려준다. 살인 전과가 있으시군요 라는 딱지는 상처처럼 따라붙는다.  살고 있던  임대 주택에서 쫓겨나고, 도서관에서 강연이 취소된다.  가해자를 따라가면서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정당방위라는 사연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한다.  살려면 나쁘게 살고 포기를 하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

얼마나 괴롭혔으면 살해당했을까 라는 의구심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덮는다. 아들은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해명을 듣고자 어머니는 출소한 가해자를 쫓아다닌다. 

어느 누구도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살인자라는 본성을 갖고 태어나고 길러지지 않는다.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남의 생각해 봤으면 한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과  미래를 향헤서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사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난다.

 

나는 찌르라고 해서 찔렀으니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이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후회는 없다.

당신 아들은 카레를 싫어했어요, 그걸 이제야 알았죠, 담배도 피웠답니다. 그렇다고 죽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당신의 무관심이 아들을 죽였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몇 년 전에 만났던 여자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묻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어렸을 때 가출했어요 웃으면서 말했다. 만날때 마다  마치 남의 일처럼 경제적 지원이 있으면 알바 안하고 살아도 될텐데, 아버지 닮았다고 어머니가 어릴때부터 미워했어요,  등등.  

나중에 들은 말들을 맞춰보고 깨달았다. 상경해서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이 번듯한 직장과 행복한 가정을 가졌고 본인이 하고 싶은 욕망은 많지만 이룰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과거를 불행한 방향으로 말해서 연민의 가림막안에 살아간다는 것을.

혼자 일해서 힘들어요 라는 불평에 30살 신입으로 들어가기도,  들어가도 적응이 어려운 행운이라고 속마음으로 답했다.

 

불행한 집안사정과 별볼일없는 학창시절을 보내며  살았다던 중간 보람의 우연한 말 한마디가 큰 보람을 영국으로 보낸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큰 보람도 과거의 상처와 중간 보람을 부러워하며 살아간다.  과거에 발목잡힌게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조립한다.  

  

그러면 현재의 상황에 불안해 하고 과거의 조건에 예속된 삶을 살아야 하나?

인간은 기억만으로는 살 수 없다. 현재의 감정과 지켜야 할 윤리를 사회라는 틀안에서 살아간다.

다시 의지를 소생시키고,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라는 자부심을 되찾는게 필요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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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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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연작 단편집을 읽는 듯 했다.  대화를 동시에 하는 두 개의 독백이라는 말처럼 내 말만 할뿐 상대방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서 SNS에는 독백들이 넘친다. 몇 년동안 SNS를 하면서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공감하기를 원하지만 막상 타인의 아픔에는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는,  버겁지 않냐는 말로 외면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된 삶의 위안으로 다가오지만,  관심과 오지랍 사이의 경계는 아슬아슬하다. 감당할 수 없으면 타인의 일에는 개입하지 말라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호기심 때문에 남의 일에 발을 담그지만 상대방의 위선에  치를 떨기도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평행선처럼 마주보기만 할 뿐이고 상대방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 섣부른 손내밈으로 나의 안위를 위협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그러다 내 감정에 상처입긴 싫을 뿐이다.

모멸감은 (내생각에)나보다 못하거나 약간 위인 상대방이 퍼부을 때 생긴다. 을인 우리는 갑의 횡포에 대항하기보다는 다른 을에게  내가 당한대로 똑같은 말로 욕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거나 언젠가 나도 갑의 세계에서 을을 착취하기를 소망하며 산다. 약간만 나를 건드리면 그 몇배나 되갚아주겠다는 성난 얼굴로 살아간다. 공적으로는 순응하지만 사적으로는 분노사회다. 입장바꿔 생각해보라는 말 대신에 나만은 그런 처지에 있지 않을거야 라는 다짐만 한다.  앞만 보고 달리지만 사소한 사건이 우리의 일상에 균열을 가져온다. 소시민으로 살다가도 그래 이젠 내맘대로 살겠다는 배짱으로 나가기도 한다. 아동학대를 방치하면 언젠가 성장해서 우리 아파트에 불을 지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신고한 겁니다 라는 학대박는 애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라는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나도 힘듭니다, 일하시느라 힘드시겠어요 라는 말에 사기꾼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나에 대한 배려로 쌍욕을 하는 것인가 하는 자기 위안.   

소설에서는 어떻게 살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일단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해도,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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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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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세계명작과  한국책은 전래동화나 민담책들을 읽었다.  세계명작도 어린이용으로 축약한 책들 같은데 서양 책들만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동화책을 읽은적은 없다.  고전도 나올 당시에는 통속문학이었을 뿐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고전이 됐고 한국으로 건너온 책을 무비판적으로 읽은 것이다. 이오덕, 권정생 두 분의 이름도 2000년대 초에 접했을 뿐이다. 

 

이 책은 72년부터 2002년까지 권정생 선생님과 이오덕 선생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으로 그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왔다. 이오덕 선생이 12살 연상이지만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들은 우정의 증표이자 당시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역사 이다.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아날로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장면들이었다.

70년대 편지들이 주로 소개되는데 당시는 우리 역사의 어둡지만 역동적인 시대였다.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변해가는 농촌과 물질만 추구하는 각박한 현실이 군데군데 등장해서 가슴 아프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당시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권정생 선생님은 1981년 2월 2일에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아이들이 불쌍합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 대학을 나온 학생이나, 낙오자가 되어 좌절과 실의에 빠진 학생이나 모두가 병든 사회의 생산품입니다. 그들 중 어디 인간이 있습니까? 국가기관이든 사회기관이든, 그들은 소수의 주인에게 사용되는 물건입니다.” 라고 이오덕 선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권정생 선생님의 이런 우려는 지금은 더 심해졌고  그나마 당시에는 대학만 가면 됐지만 지금은 대학을 다녀도 힘들긴 마찬가지인 현실이다. 

창비가 당시에는 아동문학에도 주력했고, 판화가 이철수, 전우익 선생님도 등장해서 시대와 함께 살았음을 보여준다.

권정생, 이오덕 두 분도 일본 동화책을 번역없이 읽고 편지에서 토론하고, 일본책을 표절하는 일부 유명한 한국 동화작가들의 현실을 개탄한다.  책을 읽으면서 일본 아동문학의 발달이 부러웠고 그 당시 우리 문학도 소설, 시는 작품이 나왔는데 아동문학이 미진한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보았다.  

 

“일본 작가의 작품을 우리 작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였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본 작품이라고 다 좋은 거는 아니지 않습니까?
외국 작가의 영향을 받은 한국문학이 동화, 동시만이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내면적인 사려를 거친 다음, 장정만을 받아들였으면 그건 잘한 일입니다만, 그렇지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외래 문화의 주체적 수용에 대한 필요성은 이처럼 당시에도 제기됐었고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 문제이다.  한류를 보면 이제 우리도 많이 변했지만 무비판적 수용과 선진국 문화만 접하는 풍토는 지양하고 다양한 문화를 만나는게 필요할 것이다.

현실이 힘들다고 서구의 이론과 사례를 찾기보다는  이번 책 처럼 과거를 돌아보는것이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앞 세대들은 그래도 현실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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