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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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에서 목소리만 듣던 권여선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다.  다 읽고 난 후에 오랜만에 깊은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단편 소설집이었다. 

동사서독에서 취생몽사(醉生夢死) 라는 술이 나온다. 마시면 기억을 잊는다는 술. 인간에게 번뇌가 많은 것은 기억력 때문이다. 술을 안마시는 나로서는 술은 잊기 위해 마시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마주할 수  없기에 잊을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라고, 권여선의 책을 읽으면서 술을 마시는 다른 이유는 삶을 버티기 위해서 마시는 게 아닌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버텨내는 고통도 있듯이  버틸 수 없는 고통도 있다. 누구나 자기 몫의 고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고통에는 위로도 필요하겠지만 지켜 봐 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  


몸이 어느정도 회복된 후에도 영경은 여전히 수환의 존재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는 듯했다. 영경은 계속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렸고 다른 환자들의 병실 문을 함부로 열고 돌아다녔다. 요양원 사람들은 수환이 죽었을 때 자신들이 연락 두절인 영경에게 품었던 단단한 적의가 푹 끓인 무처럼 물러져 깊은 동정과 연민으로 바뀐 것을 느꼈다. 영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그리고 수환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을, 늙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가끔 영경의 눈앞엔 조숙한 소년 같기도 하고 쫓기는 짐승 같기도 한, 놀란 듯하면서도 긴장된 두개의 눈동자가 떠오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종우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왜그러느냐고 거듭 묻는데도 영경은 오랜 시간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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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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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은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고 현재 사회의 고민들을 잘 포착한다. 

몇 번의 해외여행지에서 한국이 싫어서 떠난 사람들의 성공담과 실패한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외국에서 한국인들끼리 만나면 한국 사회의 답답함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불만을 이야기하고 외국에서의 삶에 대한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한국에서 사는 게 외국보다 유리한 점이나 떠날 수 없는 사연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도 그냥 전업주부로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 딱히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한국의 구직 시장이 어떤지도 몰랐어. 그래도 일은 하고 싶었어. 은혜도 그렇고 학생 때는 똑똑하던 여자애들이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바보 되는 거 많이 봤거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고 그러지 않으면 되게 사람이 게을러지고 사고의 폭이 좁아져.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게 되고. 난 그렇게 되기 싫었어.” 


한국에서 실패하고 적응 못한 사람들은 어딜 가도 실패하지만, 학연이나 지연 같은 불합리한 한국 사회의 모순에 좌절한 사람들이 한국이 싫어서 떠난 후에 성공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켜 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기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


나도 한국이 싫지만 막연하게 떠난 외국에서의 삶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국이 싫지만 좋은 점을 찾아서 대안을 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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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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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깎다 만 사과라고 우기다보면, 그걸 마저 깎아서 어쨌든 먹어치워야 할 듯도 하고, 꼭꼭 씹다보면 단맛이 느껴질 것 같기도 하고. 사과의 맛이 조금씩 다르듯 슬픔도 다 다르잖아. 맑은 슬픔, 헛헛한 슬픔, 차가운 슬픔, 말간 슬픔.”


웃음에도 종류가 다르듯이 슬픔도 개별적이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내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외면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들은 타인들과 그몰코처럼 얽혀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공간인 섬을 부유하는 상상을 했고, 고통을 포용할 수 있는 따뜻함을 만날 수 있었다. 섬에서 벗어나고싶은 이믈도 있고 연어처럼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작은 섬 속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은 사람만의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슴께까지 물이 닿은 줄 몰랐다. 한 걸음 내딛는데 긴 해조류 한 가닥이 오른쪽 다리를 휘감는 것 같았다. 미끄럽기보다 섬뜩했다. 하늘이 기우뚱 기울었고 집어등 불빛이 수면에 쏟아졌다. 만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기슭이 꽤 머네. 막 놓친 바닥을 다시 딛기보다는 둥실 떠오르는 그 느낌에 몸이 더 끌린다. 한 바퀴, 두 바퀴…… 검은 물속에서 발톱의 흰 에나멜이 선명히 보였다가 사라졌다. 암녹색 빛의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불면 끝의 졸음처럼 유혹적이다. 짠물이 코로 들어왔다. 찌르르한 통증이 뒤통수까지 후비듯 날카롭게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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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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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무시를 당한다면 당하는 나도 나쁘다. 왜냐하면 내가 존귀하니까. 나도 실은 존귀하니까. 그런데 나는 과연 존귀한 걸까요? 내가 나를 존귀하다고 여기고 있는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귀하다는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나는? 그것은 어떻게 하게 되는 생각일까, 하고 생각하느라고 잠을 이룰 숙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그것은 어떻게 느끼는 것입니까? 사람이 날 때부터 존귀하다면 그것을 스스로 알아체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학습되는 것입니까? 스스로 귀하다는 것은…… 자존, 존귀, 귀하다는 것은, 존, 그것은 존, 존나 귀하다는 의미입니까. 내가 존귀합니까. 나는 그냥 있었는데요 언제나 여기저기에 있었는데요, 이렇게 그냥 있어도 존귀할 수 있습니까.

존귀하다는 것, 그것은…… 아무래도 상태는 아니지 않아? 정태(靜態)가 아니고 동태(動態)가 아닙니까? 가만히 있어도 존나 귀하다면 그것은 인단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냥 있는 것 자체로 존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선 인간에 속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요. 왜냐하면 인간은 똥을 싸는 데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생물이니까 병원비와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자존하고 있습니까 제대로…… 존귀합니까. 존나 귀합니까…… 누구에게 그것을 배웠습니까. 


서로 이해하는 것은 모든 일의 시작이다. 동정없는 세상, 공감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외치지만 결국은 약자들끼리 아웅다웅하는 것이 현실이다. 가슴속에 화를 품고 있다가 누군가 건드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나보다 약한 자들에게 방아쇠는 담겨진다. 소설이 사회과학 책 보다 뛰어난 점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감정을 움직여서 나를 돌아보게 하고 사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눈물이 날 수도 있고 행동으로 동참할 수도 있다. 황정은의 소설은 달콤하지는 않지만 몇 번이나 문장을 곱씹으면서 되쇠긴다.  

소설 속에서 바라본 현실의 불편하고 아프지만 그러면서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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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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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고민은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거예요. 백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생각할걸요. 외롭다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롭고 끔찍하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거는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사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질문을 외면하죠. 마주하면 괴로운 데다 답도 없고, 의심하고 탐구하는 것만 반복하니까. 산다는 건 결국 존재를 의심하는 끝없는 과정일 뿐이에요.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는 게 얼마나 드물고 고통스러운지 알아가는…….”

지금 우리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를 살아간다. 강상중은 『고민하는 힘』에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고민을 통해서 사회문제로 접근하라고 쓰고 있다. 고민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결과이다. 나에 대한 존재를 고민하고 탐구했을 때 타자와 만나게 되고 고립감에서 벗어나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각성하게 되고 연대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걸요? 억울함에 대해 뒷얘기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야죠. 내가 말하는 전복은 그런 겁니다. 내가 세상 전체는 못 바꾸더라도,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을 수는 있다고 믿는 것. 그런 가치의 전복이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적절하게 등장하는 음악들 때문에 찾아서 들으면서 소설을 읽으면서 한 편의 영화를 떠올렸고 주인공에는 누가 좋을지를 상상했다. 재즈들인데 나하고 취향이 비슷해서 반가왔다.  

 

베니 굿맨의 <Body and soul>이 흘러나온다. 주인장이 꽂힌 건지 실수로 리피트가 걸린 건지 계속 같은 곡만 반복이다. 

엘라 피츠제랄드가 나른하게 부르는 <I‘m beginning to see the light>가 귓가에 부드럽게 감겼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해리코닉 주니어다. 떨군 시선 끝에 액정에 뜬 제목이 보인다. <Don‘t get around much anymore>. 나직하지만 꽉 찬 선율이 귀를 메우기 시작한다. 날아가는 새도, 트랙 안을 돌고 있는 사람들도 그 순간만큼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세트나 엑스트라처럼 보였다.

쳇 베이커가 반주도 없이 <Blue room>을 부른다. 쳇은 아무리 명랑한 곡도 자신만의 서늘하고 불안한 톤으로 색칠한다. 그가 연주하는 트럼펫 소리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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