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밑바닥 노동 - 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 세계 유스리포트 YOUTH REPORT 2
이수정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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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밑바닥 노동>, 청소년 노동인권 네트워크, 교육공동체 벗

 

얼마 전 현장 실습을 하던 고등학생이 끔찍한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얼마 전에는 한 콜센터에서 실습 여고생이 자살한 사건이 모 방송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열 명에 가까운 청년 노동자들이 위험하단 주의조차 듣지 못하고 작업 후유증으로 실명을 당한 메탄올 실명 사건도 오래 된 일이 아니다. 하나 같이 사람 취급 하지 않는 조직 문화, 위험하고 주의조차 주지 않는 현장을 가지고 있었다. 더 안타까운 건 그런 곳에서 너무 괴로워 집에다, 학교에다 그만 두고 싶다고 말하면 참고, 열심히 하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죽을 만큼 힘들면 그만두지 그래가 안 되는 이유>라는 책이 있는데, 정말 수많은 청소년들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고,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 실제로 목숨을 잃거나, 몸과 마음을 다치고 있는 것이다.

 

<십대, 밑바닥 노동>은 노동 현장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러 청소년들과의 인터뷰들을 담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로 호텔, 패스트푸드점, 배달, 택배 상, 하차 등의 일을 하는 청소년들이 위험하고 강도가 심한 노동을 감당해야 하고, 그에 비해서 받는 돈도 적을뿐더러 얼마나 모욕적인 상황에 쉽게 노출되는지를 들을 수 있다. ‘나이가 모든 갑, 을 관계의 기본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우리의 정서여서인지, 언제든지 !”, “로 불리는 건 예사이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을 듣는 등의 모욕적인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배달 아르바이트는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배달 업무 자체가 위험한데, 점점 외주화 되면서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책임을 떠안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반품되는 일을 막으려면 곡예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고, 크고 작은 부상들을 달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배달 업종 외에도 적잖은 일들이 외주화 되면서 청소년과 같이 약자의 입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 위험이 점점 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였다. 게다가 여성일 경우엔 그 정도가 심해질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갑자기 퇴사 요구를 받아도, 일하다 다쳐도, 일을 하고 급여를 받지 못해도 누구에게 억울하다고 말할 곳이 애매해졌다. 회사는 외주 업체로 책임을 떠넘기고, 외주 업체는 모르는 척하거나 잡아떼기 일쑤라고 한다. 일하는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실이 매우 안타까운데, 몇몇 업주들에게는 오히려 득이 된다고 하니 참 개탄스러울 뿐이었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을 읽으면서 한숨짓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한숨지으며 읽다가 청소년들이 너무 착해서 이런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다.”고 현실을 서술한 부분을 보면서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그리고 금세 미안해졌다. 나도 한동안 청소년이라면 공부를 해야지 왜 일을 해?” 라고 생각하며 청소년들이 부당한 상황들을 스스로 내면화 하는 것에 일조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온갖 위험을 무릎 쓰고서라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우리 주변에는 이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나처럼 청소년을 공부 열심히 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존재’ 정도로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재구성하여 읽기 쉽게 했을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 노동의 문제들을 여러 통계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더해서 나름 관련 주제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깊게 하려고 애를 쓴 책 같다. 청소년 인권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이슈화 되고 있는 시점에 읽을 수 있는 괜찮은 책 같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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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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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사계절.

<고민하는 힘>의 저자 소개가 눈에 띈다. “재일 한국인...사회 진출이 힘들어 대학원에서 유예의 시간을 갖던 중...유학의 길. 베버.푸코.사이드를 통해‘재일‘이라는 인식이 서구중심주의라는 보편적 컨텍스트에서 이해,확장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음”. 아마도 이러한 배경이 글 전체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다. 이에 더해서 그의 고민에 큰 통찰을 주고 힘을 주었던‘나쓰메 소세끼’, ‘막스 베버’를 주로 인용하며‘정체성’, ‘청춘’, ‘일’과 같이 인생에 있어서 그 의미들을 묻지 않고 지나기 힘든 주제들을 짧지만 가볍지 않게 다룬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부분은 아무래도‘청춘’에 대한 챕터였다. 저자가 청춘에 대하여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답이 없는 것을 붙잡고 과감하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고,미칠 듯이 타자와의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라 말한다.지금은 그러한 청춘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 졌다는 것이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저자는 여기에서 나쓰메 소세끼와 베버의 통찰이 왜 중요한지를 곳곳에서 인용하는데,이 둘이 중요한 것은 근대라는 시기,자본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그 낯을 드러내는 시기에‘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기 때문이다.그들의 통찰은 문학과 종교사회학이라는 다른 옷을 걸치고 있지만 자본이 왕노릇 하는 시기에 철저하게 개인화 된 지금의 시대에도 적실하다. (저자의 매력적인 소개 덕분에 책장에 먼지만 쌓여 있던 베버의 책<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자꾸 눈길이 간다.어서 손이 가야....ㅎㅎ)

‘고민’과 ‘관계’라는 주제는 ‘청춘’ 챕터를 넘어서 책 전반에서 다루어진다. 저자가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관계와 고민은 결국 이어지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저자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결국 자아란 타자와 마주치면서 인식이 되고, 생겨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저자를 따르자면 사랑이란 찰나의 기쁨을 위해서 타자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민에 지속적으로 반응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관계를 맺어주기보다 분리하고, 단절시킨다. 여기에 익숙해진 청춘들은 사랑하지 않는 것을 그리 이상하게 느끼지 않게 되었고 타자와의 관계 가운데서만 할 수 있는 치열한 생각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 아니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책을 읽다가 얼마 전 배달 어플들이 잘 나가는 이유를 나름 분석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배달 어플들을 사용해보면 전화로 음식을 시키는 것보다 단계도 더 많고 오히려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점점 이런 어플들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목소리조차 주고받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치열한 경쟁 속에 던져지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관계 맺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사랑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타자와 깊은 관계들을 맺을 수 없으니 덩달아 자신이 누구인지 깊이 고민하기 힘든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덮으면서 제일 먼저 생각이 난 것은‘교회’였다. 내가 목사이니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교회만큼 ‘고민’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곳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해석(고민)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학문을 논하는 신학교에서 조차 그러한데, 교회는 심하면 더 심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소그룹 모임을 장려하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눔 들은 설교자의 이야기들을 재탕하는 경우에서 그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이러한 모습은 저자의 주장들이 교회 안에서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교회 안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데 합리적이든,그렇지 않든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고민들에 합당하게 반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보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얇지만 ‘관계’와 ‘고민’에 대해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나름 ‘진지하게’답하고, 우리에게 답해보라 권한다. 시간을 내서 거기에 응답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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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십계명>, 스탠리하우어워스, 복있는 사람.

주기도문과 십계명, 교회 좀 다닌 사람들이라면 익숙하다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주기도문이나 십계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기도문과 십계명은 기독교 역사 내내 기본 중에서도 기본으로 여겨지고, 가르쳐졌던 것인데 의외로 그 해석들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려서부터 매주 예배 시간 마다 암송했을 주기도문이고, 수시로 들여다보았던 것이 십계명이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상당히 의외의 모습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개인의 차원에서 기껏해야 (지역)교회 내에서의 규범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보더라도 결코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데 그동안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이 귀한 기도문과 삶의 방식을 개인적으로, 그것도 내적으로만 가두어 놓았다는 말이다.

우선 스탠리하우어워스의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는 이런 식의 주기도문 사용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이 될 만한 책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주기도는 개인과 교회 안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주기도란 무엇인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기도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밝히는 기도문이다. 동시에 그 기도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운데 실천하며 참여해야 하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주기도는 철저하게 정치적이면서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정치적, 공적이란 말은 세상이 그어 놓은 기준에 따라 어느 편에 속하는 것을 나타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주기도문은 “세상이 그어 놓은 경계들 – 성, 계급, 인종, 경제 등에 기초한 – 에 반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무엇보다 그 힘은 전 세계인의 생활방식이 되어가고 있는 소비주의를 거스를 수 있게 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반대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이처럼 공적이며, 구체적인 내용을 가진 주기도는 ‘예배의 요약이자 결정체’라 할 수 있는데, 매 주일 이것을 암송하는 사람들은 결국엔 주기도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가족을 넘어 다양한 나라, 민족, 문화로부터 나아온 사람들과 가족이 되는 것을 연습해야 하고, 점차 ‘우리’가 되는 것이다.

<십계명> 역시 위의 책과 비슷한 논조를 가지고 있다. 루터와 칼뱅의 십계명 해설들을 바탕으로 급진적이고, 구체적이고 공동체 중심적인 그의 십계명 해석과 적용들을 전개한다. 특별하게 새롭거나 폭넓은 논의를 전개하진 않지만 ‘십계명은 하나님 백성의 예배 방식’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십계명을 해설한다. 이 말은 윤리(삶, 실천)와 예배를 나누지 않는 저자의 신학과 이어져 있는데, 십계명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교회라면 목숨 걸고 살아내야 하는 삶의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들을 읽다 보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저가가 교회에 대하여 굉장한 소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은 참된 공동체가 되는 것은 생사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오늘날 진실함을 제대로 증언할 수 있는 곳은 교회의 강단 뿐”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교회가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 줄로 알)고 말(만)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그의 교회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소문으로만 그 명성을 들었던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이라든지 <교회됨>을 더욱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의 회고록 <한나의 아이>를 읽으면서 그의 매력에 빠진 이후 이 책들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책들을 읽어나가는 중에 있다. 그의 글들은 그의 보수적인 신학과 신앙을 견지해서인지 개혁주의 전통에서 자랐고 일하고 있는 나에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중요시 여기며 신앙을 개인의 내적 영역에만 머물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급진적인 실천이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다며 그 중요성을 역설하는 주장은 그 어떤 윤리학자의 글들보다 도전적이었다. 왜 지금껏 그의 글들을 몰랐는지 안타까울 정도다. 기독교의 기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스탠리하우어워스라는 탁월한 그리스도인의 해설로서 읽을 수 있는 이 책들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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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리뷰 101

풀타임 사역 시작하고 6개월인가 지나서 함께 일하는 목사님 한 분이 책리뷰, 영화 리뷰 매니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에 영화 500, 책 500이 넘었다 했으니, 한 10년 넘게 열심히 리뷰를 쓰신 분이다. 그분의 권유로 책을 읽으면 알라딘 블로그에 짧게라도 흔적을 남겨 놓았다. 3년 가까이 된 지금 돌아보니 벌써 100개의 리뷰를 넘었네. 점심을 대강 먹고 그동안 무얼 읽었고, 그중에 어떤 책들이 좋았는지 한 번 추려봤다.


기독교 

로완 윌리엄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리처드보컴. <예수와 그 목격자들>, 리차드 미들톤.  <새 하늘과 새 땅>, 톰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 본회퍼. <성도의 공동생활>, 그레고리 빌. <성전신학>과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 스탠리하우어워스. <한나의 아이>, 베트케의 <디트리히 본회퍼 – 신학자, 그리스도인, 동시대인>, 김용규. <데칼로그>


사회과학

피케티. <21세기 자본>, 한상용. 최재훈<IS는 왜?>, 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우리는 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가>, 정희진.<페미니즘의 도전>, 케이시 윅스.<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황석영 외.<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문학

권정생.<몽실언니>. 요나스 요나손.<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주제 사라마구<죽음의 중지>


생각보다 문학작품을 잘 안 읽었다. 이 부분이 많이 아쉽고, 사회과학 관련 책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그중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책들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철저하게 남성중심적,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그래도 목사인데 기독교 관련 책들을 제일 많이 읽었네. 좋은 책들이 여럿 있었는데 로완 윌리엄스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과 본회퍼의 <성도의 공동생활>이 정말 좋았다. 그러고보니 개혁주의 책들이 리뷰 101 목록에 몇 권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사상이.....ㅎㅎㅎㅎ


가만 보니 문학 작품을 좀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조금 힘들더라도 고전을 읽어야한다는 부채감은 더 무거워진다. 3년 동안 사역하면서 바보 되지 않으려고 나름 몸부림 쳤는데, 몇 권 안 되는 책 읽다보니 읽어야 할 책들은 훨씬 더 많이 보이고,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은 점점 많아지고, 아이들은 더 눈에 들어오고, 아내한테는 늘 미안하고...뭐 그렇다 ㅎㅎ 101이라는 숫자가 보니 괜히 기분 좋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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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힘들면 회사 그만두지그래"가 안 되는 이유
시오마치 코나 지음, 우민정 옮김, 유키 유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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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힘들면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어진다는 지적은 과로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렇고. 몸과 마음이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면 즉각 일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신을 염려해주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는 제안도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잘 실천하지않는 조언아닌가 싶다. 단순한 조언에 대충그린듯한 만화이지만 깊이 빨려들어가는 것이 나 역시 공감할 수밖어 없는 상황에 있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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