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그래픽노블로 만나다
켄 크림슈타인 지음,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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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세번의 탈출>. 켄 크림슈타인. 최지원 옮김. 더숲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 그리고 그녀가 했던 ‘악의 평범성’이란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설교에서 인용하는 것도 들었고 요즘은 티비에서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보니 예전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궁금해서 꼭 한 번은 읽어봐야지...하다 어렵다는 말, 책이 두껍다는 얘기를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피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한나 아렌트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었다. 그러다 옆에 이 책도 있어서 함께 구매했다. 한나 아렌트를 소개하는 책이니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무래도 다른 책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했고 게다가 만화(비록 그래픽 노블이지만)라고 하니 좀 덜 무거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워낙 천재이고 당대의 천재들과 어울렸던 사람이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소개만 하더라도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녀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를 감안하면 술술 넘기며 재미있게 읽었다.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가 독일에서 탈출했던 일, 전쟁의 시기 파리의 수용소에서 탈출했던 일, 마지막으로 그녀가 사랑했고 평생 그녀를 사로잡고 있던 하이데거 혹은 그의 철학으로부터 탈출했던 일을 기준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녀는 하이데거, 야스퍼스, 발터 벤야민 등 화려한 사상가들에게 배웠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괴로웠던 시대 안에서 치열하게 생각했다. ‘죽음’을 강조하며 타인을 속박하려 했던 하이데거의 생각에서 ‘탄생’과 (존재의) ‘복수성’을 강조하며 타인을 존중하려 했던 독특한 아렌트의 생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짧은 지면 안에 생동감있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아렌트가 남긴 유명한 말을 이야기 중에 적절하게 삽입하여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지금도 대중들에게 오르내리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까지 꼭 읽어보고 싶도록 매력 있게 책을 전개했다.

“불이 산소를 연료로 살아간다면 전체주의의 산소는 거짓이었다”173p
“전체주의는 탄생성과 복수성에 의해 질식하게 된다.” 222p
“이스라엘 법원이 내린 판결은 옳아요. 아이히만은 사형당해야 해요. 복수성을 부정하고 유대인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어 했으니까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와 같은 곳에 살 권리를 빼앗기고 말았죠.”229p
“한나는 무덤에서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복수성과 탄생성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비록 소풍 같지는 않겠지만, 아우슈비츠나. 폴 포트, 아티카, IS를 막으려면 인류라는 하나의 종으로서 (서로를) 포용하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고....영광스럽고 결코 끝나지 않는 난장판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끝없는 난장판 말이다. 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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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요일 이 쉬는 날이 되었으므로, 일요일에 해도 적법한 일이 무엇인지 민법으로 정해야 했다. 곧이어 교회법도 일요일에 허용되는 활동과 금지되는 활동을 정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제 일요일이 안식일의 쉼과 연결되었고 그 쉼을 명하는 계명과도 연결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이것이 콘스탄티누스 칙령 덕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였다. 이 칙령은 일요일과 안식일의 쉼을 연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연결은 그보다 앞선 시대의 기독교 사상과 신앙에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이는 일요일이 안식일을 폐지했는지 여부, 기독교 예배를 안식일에 해야 하는지 여부 등등 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을 것이다. 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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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을 감안해도, 우리는 최소한 일주일의 첫째날 예배가 장례식 같거나 침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쁨이 넘치는 예식이었다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다. 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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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나이드만은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한편으로는 죽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살기를 원하는 양가감정이 있음을 강조했으며, 자살하는 사람은 선택의 여지가 한 가지밖에 없는, 곧 자살만을 선택하는 제한된 문제 해결 능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슈나이드만은 이들을 위한 주요 치료 방법이 현재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넓힘으로써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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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뒤에 남는 것들 - 임수희 판사와 함께하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임수희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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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뒤에 남는 것들>. 임수희. 오월의 봄

 

최근 1-2년 사이에 회복적 정의란 말을 종종 듣는다. 방송에서도 본 적이 있고 교회를 섬기는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듣기도 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1974년 캐나다의 한 작은 마을에서 청소년 범죄 문제를 다루던 두 명의 보호 관찰관에 의해 시작된 운동이 점차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들어서 본격적인 연구와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잘못은 피해를 만든다. 그러므로 처벌이 아닌 피해를 치유하는 회복이 곧 정의다. 회복적 정의는 치유와 화해를 부르는 정의다” (회복적 정의와 관련하여 한국평화교육훈련원이란 곳에서 역사, 정의, 연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소개를 하고 있으니 한번 보면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다. kopi.or.kr)

 

<처벌 뒤에 남는 것들>은 회복적 정의를 연구하고 재판과정에서 적용하고자 10년 정도를 꾸준히 노력했던 임수희 판사의 칼럼 모음집이다. 경찰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검찰단계, 재판단계에서 어떻게 적용했는지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여주고 그것이 갖는 의미, 더 나아가 회복적 사법의 제도화에 대한 저자의 바람까지를 다룬다.

 

일단 하면 일반 사람들에는 딱딱한 느낌을 준다. 나 말고 다른 유명인들의 재판이라면 모를까 어떤 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은, 가능한 피하고 싶은 것이 재판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이 치유, 회복을 목표로 하는 형사재판과정을 다룬다 한들 정서적으로 거리감을 느꼈다. 나하고 이것이 무슨 상관? 뭐 이런 느낌 말이다.

 

책을 펴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선한 오지랖(?)으로 충만한 저자의 글에 매력이 있었다. 재판도 역시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라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법대로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저는 일단 숨을 한 번 크게 쉬었습니다. 그리고는 끄덕끄덕하며 천천히 아이 엄마의 마음을 공감해주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놀랐을지, 얼마나 아팠을지, 괴로웠을지, 걱정되었을지, 불안했을지, 그리고 아이를 돌려받고도 얼마나 화가 났을지, 계속해서 얼마나 불안하고 반복되는 공포를 마주했을지, 그래서 전화도 연락도 아무것도 못 할 만큼 얼마나 두려웠을지, 나아가 얼마나 그 아빠에 대한 원망이들지, 실망스러울지, 앞으로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하고 답답할지, 얼마나 좌절스러울지, 고통스러울지……. 그래서 아이 엄마의 얼굴이 굳고 일그러지고 저절로 몸이 피고인석으로부터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판사로서 법정에서 잘 보아주고, 잘 들어주고, 잘 알아주어야 했습니다. 34p

 

책을 읽는 내내 눈에 띄었고, 마음을 동하게 했던 것은 단연 저자의 마음 씀씀이였다. 형사사법절차에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는 경찰, 검찰, 사법부의 일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을 응보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것 만큼이나 그 과정까지 오게 된 피의자와 피해자의 마음을 알아주고자 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저자의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저자는 덮어 놓고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고 회복적 사법이 최고라 말하지도 않는다. 응보적 사법제도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과 필요한 점을 언급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갖는 취약점을 드러낸다. 또한 응보적 사법제도가 확립된 상태에서 회복적 사법이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피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들은 피해자의 곤경이 아니라 자신의 곤경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형사절차의 복잡성과 범죄 가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재판과정으로 인해 자신의 법률적 상황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208p

 

불안정한 조건하에서의 회복적 사법의 적용은, 자칫 피고인의 인권침해로 이어지거나, 피해자가 참여자 지위를 넘어서서 절차를 주도하고 휘두를 위험이 있고 그 결과 종래 형사재판에 의해서라면 국가도 지우지 못할 수준의 과도한 부담이나 처분을 피고인에게 강요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응보사법의 확립이야말로 회복적 사법이 가능한 조건이자 회복적 사법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이지요. 249p

 

조금만 주변을 살펴도 송사에 관련되어 싸우느라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피해자이든, 피의자이든 모두가 괴롭다. 어찌 되었든 재판까지 갔으니 결판이 나야 하는데 끝나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고 판결이 내려져도 그것이 정말로 끝이 나질 않는다. 그 파장이 모두에게 부정적으로 오래오래 미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런 막장까지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엔 경찰서에, 검찰청에,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얼마나 무섭고 막막할까? 형사사법제도가 갖는 한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 중에, 정작 중요한 나와 상대방의 '관계'나 '피해 회복'이 사라져 버렸을 때 합법적인 힘을 가진 사람이 정말 중요한 것을 다시 짚어주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벌 뒤에 남는 것들>은 많은 이들에게 아직 낯선 회복적 사법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고 이것의 제도화에 대한 당위성을 쉽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읽다 보니 불가능한 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실현되고 있는 부분들이 있었고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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