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소설, 잇다 6
박화성.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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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


작가정신 출판사의 [소설, 잇다] 의 시리즈입니다.

[소설, 잇다] 는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 지하련, 이선희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충분히 언급되지 못한 대표 근대 여성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오늘날 사랑받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읽는 시리즈' 라고 합니다.

작가정신 출판사의 '작정단 13기' 로

이 책이 선정되어 읽어보았습니다.

박화성 작가님과 박서련 작가님의 중단편 글들이

담겨 있는데,

책 대표 제목인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을

먼저 읽었습니다.

대학교 독서 동아리 모임에서의

진과 림의 이야기입니다.

p.172

"탕수육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탕수육'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누가 뭘 반대할 거라는 말이야?"

p.177

아무도 반대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다.

p.195

"여성 총학생회장을 본 적 없는 학교라

레즈비언 총학생회장은 괜찮게 생각할 지 잘 모르겠어."

전교 여학우를 위하여 총여학생회를 재건하자는 사람이 여자 총학생회장과 레즈비언 총학생회장이 크게 다른 것처럼 말하는 건 아무래도 모순적인데.

림은 진을 이해했다.

모순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이 더는 완전무결하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에게는 총여학생회 재건이 그렇게도 중요한 위업이라는 것.

너무도 중요해서 표면에 조금의 흠집조차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한다는 것.

이해할 수 있었기에 섭섭했다.

진과 림은 동성연애 중입니다.

중국집에서 메뉴를 정할때,

책 구입 활동비를 결정할 때조차

이것이 정세에 합당한가? 를 생각하는 림.

독서 동아리 사람들에게만은

커밍아웃을 하고 싶지만,

그것조차 정세에 합당하지 않는다는

진의 의견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림.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 림은 이렇게 말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p.202

"저요.

저, 할 말이 있어요.

우리는 정세에 합당한 연애를 하고 있어요.

정세에 합하지 않은 연애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림은 이 말들이 자기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발화되는 것을 상상했을 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모두가 조용했고
진은 여전히 림을 보고 있었다.

림은 실제로 말했던 것일까요?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이야기 속
독서 동아리 모임에서 림과 진은

박화성 작가님의 <하수도 공사> 소설을 읽습니다.

이 소설에서 역시.

"용희! 나는 용희를 정말로 사랑하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사랑이 현재 우리 정세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억제하는때가 많소." (p.54)

라고 말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진과 림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같은 뜻을 가진 동지와의 연대가 중요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성 동지와의 사랑은 '한가한 결혼문제 '로 표현하는 동권의 모습은 여성을 진정한 동지로 바라보지 않는 모순된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소설 구조가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현대의 독서 동아리 모임에서

근대 여류 작가 박화성의 1932년 소설 <하수도 공사>를 읽고,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라는 주제로

그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점이

흥미로운 구조였습니다.


여성다운 글쓰기를 거부하고 일제에 저항하였으며,

나아가 식민지 조선이라는 현실에서 하층민의 삶을 묘파한 박화성 작가님의 글을 알게 되고,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계급투쟁의 여러 모순과 이를 둘러싼 이데올로기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박서련 작가가 소설을 통해 보여준 시각과 맞닿아 있다는 작가정신 편집부의 글을 통해 완벽히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정신 [소설, 잇다] 시리즈를 읽을 수 있어

저에게 좋은 독서 확장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수도 공사>에서 동권이 말한 '객관적 정세'가

결코 객관성을 보증할 수 없었던 것 처럼.

림은 '정세'라는 말이 가치판단의 영역에 들어서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아갑니다.

"정세에 합하지 않는 연애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라는 말이 백 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림의 입에서 홀린 듯 목소리를 낼 때,

끝내 침묵으로 떨어졌던 용희의 물음은

다시 살아나 현재를 관통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과거에 이루지 못 한 것을, 말하지 못 한 것을

현대에는 이루어 낼 수 있을까요?

깊이있는 생각을 던져주는 의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책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어보고 솔직하게 쓴 후기입니다)

#정세에합당한우리연애 #박화성 #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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