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끓여준 청국장에 출생배추를 먹으며 자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세 번째갔을 때는 작은 교자상에서 노트를 반으로 접으면두 사람이 충분히 숙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오징어집과 자갈치를 섞으면 바다칩이 된다는 것을깨달았다. - P47

한국어 초급반인 반려인마르땅은 그 암호 같은 말들을 이해할 수 없을것이고, 반려견 이안이는 글씨를 읽지 못하니까. 나는비밀을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다. - P51

"아니야, 유진 빼고 유진 식구들은 다 소리를 내면서밥 먹어."
마르땅이 말했고, 나는 그 순간 그의 입에 팔뚝만한 바게트 하나를 쑤셔넣고 싶었다. - P62

나는 모자라게 사랑해서 슬펐다. 죽었다 깨도엄마만큼 사랑할 수 없어서. 그까짓 신발, 안 맞으면바꾸거나 버리면 그만인데 왜 그 자리에서 사지않았을까. - P69

어떤 글은 나를 뿌리째 옮겨심기도하니까. 페소아는 내가 어디에 있든 단숨에 나를리스본으로 데려간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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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다. 길이 미끄러우니 내일 가라고 붙잡았다. - P131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그러자 이모든 게 내가 어젯밤 꾼 꿈처럼 느껴졌다. - P139

나는 0부터 9까지 천천히 숫자를 세면서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숨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 역기를 든다. - P195

여름방학 내내 나는 옥상 평상에서 잠을 잤다. - P199

눈이 내리면 그때도 이렇게 같이 침낭에서 잠을 자자고 말했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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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평생 교육자로 사셨어요.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셨죠. 책을 많이 수집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성격이 밝은 분이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저를 보면 붙잡아놓고 늘 책 얘기만 하시니까요. 그래서 명절 때 집에 가면 일부러할아버지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제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 찾으시는 이 책이 마지막 책이될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렇게 사장님을 뵈러 온 거예요. 무슨 책이든 다 찾아주신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 P77

천천히 책장을 살피며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모은 책을 눈에 담았다. 과연 노인은 무슨 책을 찾고 싶은 걸까? 어쩌면 그 책은 그가 마지막으로 손에 쥐고 싶은 책일수도있다. 영상 속 노인의 눈빛에서 나는 그걸 느꼈다. 삶의 마지막을 가장 아끼는 책과 함께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내게 전해졌다. 그건 나의 오해이며 과도한 의미부여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거대한 장서들을 마주하면서 한 번도 실제로 만나보지 못한 한 노인의 인생을 경험하는 듯한 감동을 전해 받았다. - P80

모든 책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아이러니하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책을 쓴 사람의 갖가지 인생 이야기가 거기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P83

아무래도 작전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기억이 흐릿한 책을 찾을 때는 그 책을 읽었을 때의 추억을 말하도록 이끄는 것도 좋은방법이다. 딱히 책 얘기가 아니더라도 그즈음에 있었던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친구들 얘기를 하다 보면 갑자기 잊고 있던 책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일이 있다. 나는 K씨에게 그 책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녀는 책 이외의 일들에 대해선제법 구체적인 기억이 있었다. - P86

"책은 제가 찾았지만, 이 책이 나타날 마음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어느 도서관 책 무더기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을 겁니다."
"책이 자기 스스로 나타나줘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 P90

동생은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어 했고○씨는 그깟 공부를 해서 무얼 하냐며 언성을 높였다. 두 사람은 워낙 다른 길을 걸어가고있었기에 제대로 말이 통할 리 없었다. O씨는 화를 참지 못해 어느 날 동생이 쓰는 방에 들어가 책장에 있는 책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동생은 그런 형의 행동에 어쩌지도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널브러진 책을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 P98

"아뇨. 인생의 답은 마치 우주에 있는 외계문명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엄청나게 많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철학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러셀은 말하고 있습니다. 동생분이 힘겹게 찾으려고 했던 것도 답이아니라 거기로 향해 가는 길일 겁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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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죄를 죄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에 뒤집어씌웠다. ‘적자생존은 원래 다윈이 고안한 표현도 아니다. 다윈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의 작품인데 앨프리드 윌리스Alfred Wallace의 종용으로 다원은 <종의 기원> 제5판을 출간하며 당신 이론의 토대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그러나다윈의 죄는 거기까지다. <종의 기원>은 물론,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그는 생존투쟁ruggefor existence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the fittest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를 들어풍성하게 설명했다. 그의 후예들이 오히려 그를 좁고 단순한 틀 안에 가둔 것이다. 이 책은 그 틀을 속시원히 걷어낸 반가운 책이다. - P6

나는 이 책이 특별히 반갑다. 조금은 외롭던 차에 학문적 동지를 만나 기쁘고, 인류의 기원과 보편적 인간성에 관한 참으로 탁월한 분석을 맞이해 더할 수 없이 반갑다. 아직도 성악설과 성선설 사이에서 흔들리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조간신문과 저녁뉴스가 들려주는 사건, 사고 소식에는 인간의 잔인함이 넘쳐나지만,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정연한 논리로 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은 참 오랜만이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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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H의 사진은 없다.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는 내 아들 버트, 그리고 바다를 찍고 또 찍었으니까. 이상한 점은 그날오후부터 이틀 뒤까지 사진상 기록에 공백이 있다는 점이다. 이틀 후에 찍은 사진 속에서는 H가 병원침대에 누워 카메라를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려 애쓰고 있다. - P10

이런 재양의 한가운데 어딘가에서, 하나의 공간이 열렸다. 집에서 병원, 병원에서 집으로 오가는 동안, 꾸벅꾸벅 졸고 있는H의 침대맡에 앉아 있는 동안, 병동 회진이 있을 때 매점에서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흘러갔다. 나의 날들은 긴박한 동시에 느슨했다. 나는 계속해서 어딘가에서 깨어 있으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했다. 그런 한편 불필요한 침입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주변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음속은 이 새로운 경험들을 분류하고 그 맥락을 찾아내느라 분주했다. - P13

매일의 세계의 톱니바퀴 사이에는 틈이 있고, 때로 그 톱니바퀴가 열리면 우리는 어딘가 다른 세계로 떨어진다. 그 어딘가다른 세계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금 여기와는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어딘가 다른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현실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언뜻 보일까 말까 한 유령들이 산다. 어딘가 다른 세계는 지연된 시간 위에 존재하기에 현실 세계와 보조를 맞출 수 없다. 아마도 나는 이미 어딘가 다른 세계의 언저리에 위태롭게 서 있다가 마침내 마룻장 사이로 떨어지는먼지처럼 가뿐하고 조용하게 그곳으로 떨어진 것이리라. 그곳이 내심 집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어 나는 놀랐다. - P14

누구나 한번쯤 겨울을 겪는다. 어떤 이들은 겨울을 겪고 또 겪기를 반복한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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