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만나는 것은 거의가 스쳐 지나가는 시선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모든 시선에 이름표가 달려 있다. - P43

젖먹이를 아기용 욕조에서 꺼내 타월에 싸고, 꼼꼼하게닦아서 옷을 입히는 듯한 매끄러운 손놀림에 게이코는 시선을빼앗겼다. 얼마나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운 움직임인가. - P45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날이 저물어서 부엌 유리창에 비친 강가의 나무들이 점점 어둠에 빈틈없이 잠기기 시작하고 대신 백열등에 비친 네 사람의 얼굴이 유리창에 떠오르고 있었다. - P46

"거들까요?"라고 해보았지만, 데라토미노는 "아뇨, 오늘은손님이니까"라고 말했다. ‘오늘은‘이라는 말이 게이코의 귀에남았다. - P47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각각의 리얼한 광경이 냄새와 습도,
기온과 바람, 진동까지 수반하면서 눈앞에 떠오른다. 그것이 바로 지금 움직이고 있다. - P50

문에 이고요함의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면 아직 괜찮다. 나가려고 하면 가즈히코가 붙들까?
게이코는 문에 등을 돌린 채 시야 안에 의식을 표류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욕실의 수증기처럼. - P63

가즈히코가 소리 없이 웃는다. 그 숨결이 게이코의 쇄골을 쓰다듬는다. - P70

"홍차를 마시고 나면 오두막으로 안내할까?"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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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자포자기하는 나약한 자의식을드러내는 다큐멘터리들도 많다. 나는 그 다큐멘터리들이훨씬 더 귀하다고 생각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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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말할 때도 미연은 사람을 계속 보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 그녀의 눈빛은 뭐랄까, 마치 아파트 엘리베이터 같은곳에서 잠시 마주치는, 왜인지 모르게 떨리고 있는 아이의눈빛 같다. - P9

"응.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다 그런 거 같아.
아픔이 있는데, 그 아픔이 정말로 커. 근데 정말로 큰그 아픔이 티가 안나. 또 통곡해서 울지도 않아." - P15

나중에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노아는 그런 자신의 행동 양식을
‘액팅아웃‘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노아는 ‘액팅 아웃‘이란
‘억압된 감정들이 행동으로 분출되는 방식의 해소‘이며, 자신의경우에는 그게 난잡한 성 행동이 된 거라고 설명했다. - P25

‘하여튼 엄청 예쁜 아이구나‘라고 노아는 생각하면서, 소녀를 향해달리기 시작한다. 밤색 말의 털처럼 윤이 나는 노아의 긴 머리칼이바람에 나부낀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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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집에서 강가로 내려가는 도중에 또 하나의 커다란 목조오두막이 있다. 거기에서 강이 흐르는 소리에 섞여 낮고 신음하는 듯한 기계음이 연속해서 들려온다. - P31

"데라토미노 씨 소포입니다."
남자는 소포를 보고, 그러고 나서 게이코를 물끄러미 보았다.
군살 없는 단단한 얼굴에 입과 눈매가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 P31

우편배달은 하루 단위로 일이 끝난다. 부재중이라 건네지 못한 우편물을 빼고는 갖고 있던 모든 것이 다 상대방에게 건네어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 P35

홋카이도로 이사가려고 하는 것 자체가 엉뚱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코는 가능한 한 현실적으로 행동하려고 했다. - P37

데라토미노가 무언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것처럼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그 얼굴이 마음 약한 커다란 개 같아서 게이코는 처음으로 웃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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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과의 대화는 늘 예측을 벗어났고 때때로 내가 결코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이슈로 확장되곤 했다. - P27

그의 이야기에는 내 안에서는 찾아내기 어려운 서사가 있었다. 문학적 핍진성眞性, verisimilitude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 P27

"파리의 자유를 좋아했어. 그 자유의 공기를. 가식이없고 아름답지. 다들 있는 그대로를 산다고. 그들의 논쟁에놀랐어. 불란서 애들이 그렇게 입술이 얇은 것은 뽀뽀를많이 해서이기도 하고 말을 많이 해서 그런 것도 같아. - P29

나는 인내심이 강한 편인데, 그런 내가싫어졌다.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다른 삶을 찾고 싶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쉬고 싶었다. - P31

픽션을 하면서 논픽션이라는 새로운 길에서도 창작의 길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영화 창작의세계가 대륙처럼 웅장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 P33

다큐멘터리 제작에 있어서의 주인공과 감독의 관계성이라는 테마는 정답 없는 함수처럼 복잡하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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