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2월 30일 고종 황제가 단발령을 내렸을 때조선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는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감히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는 뜻으로「효경』에 실려 있다. 이는 조선을 지배하던 유교적효 사상의 핵심 문구였기에 조선인에게 머리카락을 자르는것은 시대사조에 순응해야 하는 운명인 동시에 영혼을자르는 일과 같았다. 그러니까, 장발의 준일이가머리카락을 자른 것은 졸업하기 2개월 전쯤이었다. - P19

준일이는 때때로 피 묻은 옷을 입고 학교로 왔다. - P20

10월쯤으로 기억한다. 그 어느 날에 준일이와 위탁연장 상담을 했다. 위탁은 기본적으로 6개월 단위로이루어지는데, 위탁 연장 상담이란 아이가 우리 학교에온 지 6개월이 되어갈 때쯤 여기서 위탁 교육을 계속할지아니면 소속 학교로 돌아갈지를 의논하는 자리라고 할 수있다. - P21

"좀 당황스럽긴 하죠. 그런데 엄마는 제가 잘 지내고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엄마한텐 새 가정이 있으니제가 피해 끼칠 생각은 없어요. 지금처럼 계속 제 상태를몰랐으면 좋겠어요. 엄마를 이해해요. 괜찮아요." - P22

허울 좋은 꽃,
김준일 자작시사람은 꽃과 같다새싹이 되어아름답게 피우겠지그럼에도꽃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허울 좋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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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 글을 솔직하게, 꾸밈없이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감상적 표현을 배제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싶다. 적어도 이 주제에 있어서는 그렇다. - P131

한 인간으로서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사는 일은 대부분 고난과 고통을 견디는 일이지만, 계절에 따라 변하는빛과 바람, 자연의 풍경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일만으로도 사는 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 P133

"너는 죽어서 태어났어." - P134

"뭐 하고 있어, 가자!"
엄마는 새끼를 낳은 동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알았다. 엄마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 P139

"이렇게 겁 많은 사람이 어떻게 엄마로 사는지 몰라"
내 말에 엄마가 웃었다.
"엄마가 되는 건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는 것처럼조금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어"
엄마는 내 말에 더 크게 웃었다. - P140

"어미는 잘 먹어야 해. 새끼들을 생각해서라도 먹어야지. 네가 잘 지내야 새끼들도 잘 지낸단다"
엄마가 어미 개에게 말했다.
"엄마는 채워야 해. 채워야 줄 수 있어"
엄마가 내게 말했다.
"모성은 다 비우는 건 줄 알았지."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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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나를 멸시하겠어? 그건 아니잖아." - P311

"보면 알죠. 언니는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면서 절대 먼저일을 저지르지는 않잖아요. 그거, 은근 비겁한 거예요." - P312

나는 정선이에게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동질감을 느꼈고 그건 애초에 잘못된 관계의시작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속수무책으로 가까워졌다. 미리내와 내가 지금 이렇게 가까워진 것처럼. - P315

"내가 거짓말을 하면 어떡할 거야?"
"언니 뭐,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난 시시때때로 거짓말해."
"그럼 뭐, 그런가부다, 하지." - P316

"약속은 약속이고, 안 오는 건 안 오는 거예요." - P325

나와 미리내, 손진영은 꼬막을 먹는 주씨 성을 가진 정선이를 가만 바라보았다. 정선이는 정신없이 꼬막을 먹다가 가끔씩 생각난 듯 손에게도 꼬막을 무심하게 들려주었다. 나는 나란히 앉아 있는 손과 정선이를 바라보다가 눈이 크고 눈동자가 연갈색인 두 사람의 모습이 서로 꼭 빼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쩐지 이상한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이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 P327

손은 내 아이가 아니야. 누군가 낳았지만, 스스로 나를, 이곳을 선택했어. 그리고 나 진짜 그냥 배 나온 거야. 잘 먹고 잘살아서. 우리는 외따로 태어나서 홀로 자신을 길러낸 사람들이고 지금은 함께 살고 있어. - P338

불가해한 사랑의 스캐닝 - P339

이 여성들은 어렸기 때문에, 편이 갈렸기 때문에, 무섭거나창피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순진함을 이용하고, 누군가의 사악함을 동경한다. 가난과 방치와 학대 속에서 시종 무력할 수밖에 없던 아이가 또래 관계를 통해 멸시와 증오라는 권력의 힘을 배우고, 그 미혹에 빠져드는 일이 반복된다. - P351

2024년 6월 3일,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소중했던 사람을 기어코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저는 다소 비참해졌습니다. 이 마음을 늘 절실하게 간직하며 살아내고 싶습니다. 더한 아픔, 더한 사랑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늘 그들을 좇아 함께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아버지는 저를 많이 자랑스러워하셨는데요. 그러니 책이 나오면 아버지의 봉안당에 꼭 꽂아두겠습니다. 이 책을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2024년 여름예소연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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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냈어? 요즘 안 그래도 네 생각 났는데, - P48

망원시장:반찬 10,000원자두 4,000원제습제 18,600원 - P90

몸을 축 늘어뜨린 채로 눈만 깜빡였다.
절반 가까이 남은 삼십 대는 물론이고 내 사십대도, 그 이후도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 P67

노화란 무엇인가. 늙은 여자가 된다는건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할까. 시장성이 없는 상품, 철 지난 유행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존재로 취급받는 것. 어떤 면에서는 해방감을 줄까, 아니면 끝내 모욕적일까. 젊음과는 또 다른위험이, 젊은 날엔 짐작도 못한 위협이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 P73

우선 조언대로 내비게이션을 켜는 상상부터 해야겠다. 잘 늙는 것만큼이나 계속 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 P74

무엇보다 이해와 오해를 반복하며 다 된 영화에함께 글을 얹을 다음 사람이 기다려진다. - P85

이른 아침에 한강을 방문하면 게이트볼장을 점거한 할머니들의 혈기 왕성함에 약간 기가 죽는다. 그곳은 완전한 아마추어의 세계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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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벌써 날이 어둑해지고 말았다. - P268

사흘 만에 무화과나무에 물을 주었다 - P269

주워온 천냥금이 오랜 시간에 걸쳐 새잎을 내는 동안 병실에 누운 남편도 서서히 달라졌다. - P271

"곧 죽냐고요. 우리."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 P273

정미씨는 이혼 후 느지막이 부동산 중개 자격증을 따서 일을 시작했고 이제는 낯선 집에 발을 들이는 데 익숙해졌다고했다. 그러다보니 사람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요리조리 눈치를 보게 되었다고. 신혼부부를 돌려보내고 나니 윤재의 표정이 아른거렸다고 했다. 맥없어 보여요. 윤재는 얼마 전 직장을•그만두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학원 일을 했거든요. 그러자정미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 P274

"저는 할머니가 생전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줄 알았어요."
"다 할머니 거예요?" - P277

‘쥐‘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지. 얄궂은 애라서 다행이네. 차연은 웃었다. 곧이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오른쪽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어왔고 잎사귀들이 슥슥 저마다 속삭이는 소리를 내었다. 쿰쿰한 냄새도 났다. 제라늄이구나. - P281

"이쪽은 카일리 씨."
남자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겸연쩍은 마음에 진짜 이름을말하려고 운을 뗐지만, 할머니가 먼저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델마라고 해요. 나는 할머니의 손을 맞잡고는 비굴해보일 정도로 상체를 숙여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델마 씨." - P290

생각을 하는 우리가 질릴 만큼 못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진경은 종종 그때의 언니를 회상하곤 했다. 그 말을 하던 승혜언니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가 멋대로 삶을 망치게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 우리에게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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