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나를 멸시하겠어? 그건 아니잖아." - P311
"보면 알죠. 언니는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면서 절대 먼저일을 저지르지는 않잖아요. 그거, 은근 비겁한 거예요." - P312
나는 정선이에게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동질감을 느꼈고 그건 애초에 잘못된 관계의시작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속수무책으로 가까워졌다. 미리내와 내가 지금 이렇게 가까워진 것처럼. - P315
"내가 거짓말을 하면 어떡할 거야?" "언니 뭐,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난 시시때때로 거짓말해." "그럼 뭐, 그런가부다, 하지." - P316
"약속은 약속이고, 안 오는 건 안 오는 거예요." - P325
나와 미리내, 손진영은 꼬막을 먹는 주씨 성을 가진 정선이를 가만 바라보았다. 정선이는 정신없이 꼬막을 먹다가 가끔씩 생각난 듯 손에게도 꼬막을 무심하게 들려주었다. 나는 나란히 앉아 있는 손과 정선이를 바라보다가 눈이 크고 눈동자가 연갈색인 두 사람의 모습이 서로 꼭 빼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쩐지 이상한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이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 P327
손은 내 아이가 아니야. 누군가 낳았지만, 스스로 나를, 이곳을 선택했어. 그리고 나 진짜 그냥 배 나온 거야. 잘 먹고 잘살아서. 우리는 외따로 태어나서 홀로 자신을 길러낸 사람들이고 지금은 함께 살고 있어. - P338
이 여성들은 어렸기 때문에, 편이 갈렸기 때문에, 무섭거나창피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순진함을 이용하고, 누군가의 사악함을 동경한다. 가난과 방치와 학대 속에서 시종 무력할 수밖에 없던 아이가 또래 관계를 통해 멸시와 증오라는 권력의 힘을 배우고, 그 미혹에 빠져드는 일이 반복된다. - P351
2024년 6월 3일,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소중했던 사람을 기어코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저는 다소 비참해졌습니다. 이 마음을 늘 절실하게 간직하며 살아내고 싶습니다. 더한 아픔, 더한 사랑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늘 그들을 좇아 함께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아버지는 저를 많이 자랑스러워하셨는데요. 그러니 책이 나오면 아버지의 봉안당에 꼭 꽂아두겠습니다. 이 책을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2024년 여름예소연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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