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모는 수박을 싫어해요? 아저씨가 고생한 게생각나서요?"
내가 물었다. 이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다 지난 일인데 그런 걸로 수박을 싫어해서 뭐해?"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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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모는 수박을 싫어해요? 아저씨가 고생한 게생각나서요?"
내가 물었다. 이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다 지난 일인데 그런 걸로 수박을 싫어해서 뭐해?" - P183

그 일로 한동안 무척 자책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껏이런 식으로 거리를 두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생각이 들었다. 우정이 시간과 더불어 저절로 지속되지않는다 싶어지면 금세 포기해버렸다. 한동안 스웨터를 내팽개쳐둔 것은 그 때문이었다. - P187

카세트테이프를 살펴보던 영주 이모가 갑자기 모든 것이 떠오른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때 이모들은 가기싫다는 엄마를 설득해 종종 노래방에 갔는데, 즐거운 노래방은 손님들이 룸에서 부른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주곤 했다. 그건 이 낡은 카세트테이프에 오래전 엄마가 부른 노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 P191

무엇을 하든 나를 탓하고 의심했다. 한때 사랑했던 것들과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 몰라서였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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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의사의 말대로 되었다. 엄마는 복수가 차오르고 두통과 구토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 섬망을 보는지허공을 향해 손짓을 하며 중얼거렸다. 휘파람을 불 때도있었다. 어쩌면 한숨을 쉬는 것인지도 몰랐다. 한숨은 때로 휘파람 소리처럼 들리니까. 좋은 꿈을 꾸는 중이라고말해준 사람은 영주 이모였다.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 같아서 조금 안심이 됐다. - P169

기숙사 생활은 삐걱거리는 옷장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곰팡내가 심해서 한참 환기를 한 후 엄마의 방식대로 서랍장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양말과 속옷을 작은 크기로 접어서 넣어뒀다. 한방에 배정받은 동기는 밤이 되자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기숙사의 허술한 냉방과쿰쿰한 냄새를 불평했다. - P173

"왜요?"
왜요는 일본 요고." - P174

"세 사람의 이름이 다 그런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언젠가 내가 묻자 엄마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내 이름은 경주였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가장 좋아하는지역의 이름을 따서 내 이름을 지었다. - P175

다시 만난 이후 이모가 이렇게 오래 입을 다문 건 처음이었다. 만약 뜨개질이 아니었다면 이모는 무슨 핑계로소란한 마음을 감추었을까.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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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거 말고 다른 건 안 필요해?
물건을 계산할 때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어 놀란다그 사람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 P79

다음 장을 펼치는 대신다른 책의 아무렇게나 펼쳐진 곳을 읽었다 - P83

자켓의 규범 표기는 재킷이라고 한다 - P85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은 있다. - P87

살아라라는 말이 비겁하게 느껴질 때도 - P88

내게 날개가 없어서 다행이다날개가 있었다면 떼어내고 싶은 것이 하나 더 늘어났을지도 모르니까 - P91

무게는 항상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나왔다 - P94

나는 절반쯤은 개다. 나는 절반쯤은 풀꽃이고, 나는 절반쯤은 비 올 때 타는 택시. 나는 절반쯤은 소음을 못 막는창문이다. 나는 절반쯤은 커튼이며, 나는 절반쯤은 아무도 불지 않은 은빛 호각. 나는 절반쯤은 벽. 나는 절반쯤은휴지다. 절반쯤 쓴 휴지다. 네 눈물을 닦느라 절반을 써버렸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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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걱정하든 그 이상을 쓰는 게 내 목표다. 아,
다음 안주는 뭐 쓰지?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 P9

어떤 성급한 동네 의사는 내가 네 살 때 기관지가좋지 않아 평생 바닷가에서 요양하며 살지 않으면 요절하기 십상이라는 망언을 해 우리 어머니를 기함하게 했다. - P17

그런 유치한 입맛을 가진 채로 나는 성년이 되었다. - P19

김밥은 너그러운 음식이다. 김과 밥만 있으면 나머지 재료는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김밥은 아름다운 음식이다. 재료의 색깔만 잘 맞추면 이보다 어여쁜 먹거리가 없다. 그래서 김밥에는 꽃놀이와 나들이의 유혹이 배어 있는지 모른다. 지참하기 간단해서가 아니라그 자체가 꽃밭을 닮아서.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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