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작은아버지 홀로 견뎠어야 할 공포와 죄책감을 보지 않은 누군들 안다고 할 수있으랴. 역시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만의 사정이있었던 것이다. 독한 소주에 취하지 않고는 한시도 견딜수 없었던 그러한 사정이 - P131
황사장에게 조금씩 끌려가던 노인이 뒤돌아 침을 퉤뱉었다. 빨갱이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저노인 하나뿐이겠는가. 그게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이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경우바르고 똑똑한 아버지가 21세기인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침 뱉어도 되는 빨갱이일 뿐인 것이다. - P133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 P137
"그이가 밥숟가락을 놓고 멀뚱멀뚱 허공을 바라보면서나지막이 웅얼거렸다. "노동이……… 노동이……… 힘들어." - P150
아버지가 소리 내어 웃으며 마당을 빙 둘러 내달렸다.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뭐가 그리좋았는지 나는 아버지의 목 위에서 등허리가 흠뻑 젖도록웃어젖혔다. 우물가에 핀 달큰한 치자꽃 향기에 숨이 막혔다. - P158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오거리슈퍼였다. 그보다멀 게 분명한, 옛 처제의 딸이 운영하는 슈퍼를 아버지는일부러 찾아서 갔을 것이다. 구례라는 곳은 어쩌면 저런기이하고 오랜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 작은감옥일지도 모른다. - P163
"누구긴 누구겄냐! 늬 어매 첫서방이제 서방 앞에서첫서방 야그를 저래 당당허니 꺼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늬 어매 하나배끼 읎을 것이다." - P167
"지한테 득이 안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등을 놀리는것이 민중이여. 민중이 등을 돌린 헥멩은 폴쎄 틀레묵은것이제."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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