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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줄게요 - 늘 괜찮다는 당신에게
박지연 지음 / 어바웃어북 / 2021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과 표지를 보자마자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이 책도 그랬다. "안아줄게"라는 반말이 아니어서 좋다. 언젠가 나보다 연장자인 분들에게 위로를 담은 책을 건네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반말 제목은 좀 그럴 것 같았고, 사실 적당한 책도 찾지 못했다. 이 책은 내용 속에 어르신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내용을 담은 듯하다. 드디어 선물용 위로책을 만났다.
솔직히 내용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커다란 곰이 안아주는 모습이 그냥 좋아 보였고, 그 그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한 페이지씩 읽어갈수록 내용이 너무 좋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순간 멈칫, 마음도 쉼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글에 따라 내가 곰이 되어 누군가를 안아주기도 하고, 내가 글 속의 주인공이 되어 곰에게 안겨 있기도 했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독자인 내게도 전해져 오는 듯하다.
작가의 시선은 따뜻할 뿐 아니라 굉장히 폭넓다. 커다란 곰은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수많은 '나'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각자의 서사를 가진 돌멩이와 도시의 생존자인 민들레도 감싸준다. 사실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누군가를 안아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아주는 일"이 될 테니까.
작가는 포옹하고 포용하되 날카로운 문제의식도 담고 있다. 거리로 내쫓긴 강아지, 잊지 말자는 다짐을 주는 '평화의 소녀상', 사냥꾼의 표적이 되는 북극곰, 실험실에 있다가 안락사되는 토끼, 지구온난화로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펭귄, 로드킬로 희생되는 야생동물, 영혼을 살해당하는 아이들,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생수병까지, 우리가 잊고 사는 진실을 보도록 이끌어준다. '흔하디흔한 여행기'의 몇 구절을 소개해본다.
나 생수병./ 당신과 헤어진 후/ 나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나요? (중략)
내 여행의 종착지, 당신의 식탁에 도착했어요.
우리, 오랜만이네요.(124-125쪽)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서랍장, 공중전화부스 속 전화기, 12월 26일이 되면 방치되는 크리스마스 트리, 버려지는 곰인형, 1993년 캐릭터 '꿈돌이', 한때 인기상품이었던 과자, 고물이 되어버린 자전거 등 작가가 머무는 대상에는 추억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 대상들을 통해, 지나간 꿈에 잠겼다가 앞으로의 꿈을 펼쳐보자는 의미일까.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구절(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이 떠오른 '한 번이라도'의 경우, 그림은 좌변기를 끌어안은 곰의 뒷모습이다. 얼핏 보면 엉뚱하고 우습게 느껴지는 그림이, 다음 글과 어우러진다.
묻고 싶다
당신은 한 번이라도
세상 어디에도 꺼내놓지 못한
저마다의 바닥을
헤아려보려 애쓴 적이 있던가?(185쪽)
이 책에서 여러 사람들과 사물들을 만난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대상을 본다. 어쩌면 최고의 위로는, 내 문제 속에 침잠할 때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돌아보며 함께할 때 발견되는 게 아닐까. 나를 안아줄 누군가를 찾기보다 내가 안아줄 누군가를 떠올려보게 되는 책, 행운의 네 잎 클로버가 아니라 행복의 세 잎 클로버가 떠오르는 그림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