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입은 자의 삶 - ‘하나님의 은혜’ 작사가 조은아 교수의 보냄 받은 이야기
조은아 지음 / 두란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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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작사가의 감사 고백이라는 책 소개만 보고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언젠가 교회 예배시간에 특송으로 불리던 순간, 그 찬양이 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찬양의 가사와 곡조가 주는 감동은 함께 가는 것일 텐데, 몇년 전 신상우 작곡자의 소천 소식을 접했기 때문일까. 그 곡을 찾아 들을 때나 일상에서 찬양할 때 항상 작곡자 이름만 떠오르곤 했다. 이 책은 조은아 작사가를 상기시켰고, 나는 그분이 전하는 '은혜 입은 자의 삶'이 궁금했다.

 

 

저자가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파송받기 며칠 전, 스스로 대견해 하는 순간에 "네가 헌신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은혜야"(10쪽) 하는 하나님 음성이 들려왔고, 저자는 곧장 신앙고백을 담은 '하나님의 은혜'를 일기장에 써 내려간다. 이런 가사의 배경을 알고 다시 보니, 이 가사를 숙고해보는 것만으로 도전과 은혜가 된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접해보는 간증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소감은, 기존에 자신의 신앙체험을 열거한 간증서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글이구나 하는 것이다. 캐나다 이민 1.5세로서, 목사인 남편과 함께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헌신했고, 현재 선교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는 약력만 보면, 낯선 곳에 정착하면서 겪은 일화, 교회 개척 선교사로서 경험한 일련의 일들, 교수로서의 일상이 그려지겠구나 짐작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낮춘다. 오직 선교의 관점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타이밍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사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간증일 테지만.

 

이 책의 구성은 '하나님의 은혜' 찬양의 각 구절을 하나씩 풀어주는 방식이다. 가령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구절 혹은 1장은 창조주 하나님, 저자가 만난 조물주의 사랑을 말한다. 이렇게 8장까지 각 주제에 맞게 하나님을 전한 후, 저자는 각 장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핵심 질문들을 던진다. 그 내용도 본문만큼 풍성하고 깊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1970년부터 2020년에 이르는 여정을 개간되지 않은 땅, 경작된 땅, 기름진 땅으로 구분하고 세부적으로는 온실 속의 흙부터 결실의 흙까지 구분한다. 이 대목을 보면서, 자칫 세상적으로 화려하고 돋보인 시절만 간증 시기로 삼는 게 아니라는 것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내 삶에 희망이 없어 보이는 순간조차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그런 삶의 시간들이 결국 옥토가 될 수 있는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지나온 삶의 어느 한 지점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때가 없다는 고백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 내용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비유는 '화살통'과 '돌베개'다.

 

저자는 인간적인 준비됨이 하나님의 때라는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오히려 스스로 잘 준비되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말이 와닿는다. 나아가 화살통은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일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리를 당신의 손 그늘에 숨기시고, 당신의 화살통 안에 감추신다. 그렇게까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 그렇게까지 우리를 깊은 사랑과 은혜로 보호하신다."(59쪽)

 

도망자 야곱이 베고 누운 돌베개를 보면서, 저자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일들로 하염없이 눈물을 받아내는 자신의 돌베개를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주우시고 품으시고 변화시키신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돌베개가 있다. 그것은 외로움, 슬픔, 육체적 연약함, 정신적 어려움의 돌베개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하나님은 우리의 돌베개를 받으시고, 그 돌베개가 놓였던 자리로 하여금 예배의 자리가 되게 하신다."(143쪽)

 

이 책을 통해 일상에서, 특히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 은혜와 사랑을 일깨우고 하나님과의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크리스천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실상 각자의 소명대로 선교지로 보냄받은 모든 크리스천들의 필독서가 아닐까.

 

이 책에서는 찬양으로 만들어진 가사를 포함해, 저자가 주보나 일기장에 적어 둔 신앙고백들이 꽤 많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가 작사한 찬양들을 다시 들을 때마다, 이 구절들이 같이 떠오를 듯하다. 나만의 신앙고백도 글로 표현해보고 싶다.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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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 수면
마츠모토 미에 지음, 박현아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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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특이하고 "3배 빨리 깊고 짧게 숙면하는 최강 수면법!"이라는 소개 문구도 관심을 끌었다. 언제부터인가 수면 시간을 많이 줄였다. 불면증은 아니고 그냥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되어온 탓이다. 그러기를 몇 달째던가, 어느 순간부터 머리가 지끈하면서 만성피로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이다. 그렇게 버텨가던 중에, 수면에 대한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농축'이라는 말에 이 책을 곧장 펼쳤다.

이 책에서 '농축 수면'의 정의는 여러 번 반복, 강조된다.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니, 먼저 그 의미를 인용해본다.

"잠이 든 지 30분 이내에 제일 깊은 수면인 논렘수면 상태에 접어들고, 일정 시간 동안 깊은 수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수면"(10쪽)

평균적으로 사람이 깊은 잠에 도달할 때까지 90분 걸린다고 할 때, 농축 수면은 3배의 속도인 30분 이내에 깊은 잠에 도달하는 것이다. 농축 수면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로, 저자는 뇌 피로 없애기, 혈액 순환 촉진, 수면 환경 정리를 들고 있다. 이후, 세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방법들이 꽤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두개골 마사지, 혈자리 마사지를 비롯해 스트레칭, 스쿼트 방법, 바른 걸음걸이, 장 마사지 등을 그림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농축 수면의 효과를 누리려면, 이처럼 평상시에 필수적으로 해야 할 게 많다. 평균보다 3배를 앞당겼으니, 그만큼 기본 준비가 더 많은 느낌도 든다.

이 책은 어떤 통념 혹은 논점을 살짝 건너뛴 채 내용을 전개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시간은 7-8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소위 '수면의 골든타임' 시간대인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는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는 말도 있다. 저자는 양적으로 긴 시간보다 짧지만 질적인 시간의 잠을 강조하면서, 골든타임도 실상 근거가 없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는 언급을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관련 자료를 종합해서 판단해야 할 듯하다.)

수면의 최소 시간이나 골든타임에 대한 저자 견해를 차치하면, 이 책은 질적 수면을 위한 실천적 종합서라 할 만하다. 이 책에서 새롭게 다가온 내용은 뇌 피로로 두개골이 비대해질 수도 있다는 대목이다. 이는 뇌내의 혈행이나 뇌수의 흐름이 나빠지고 노폐물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노폐물이 신경 세포에 손상을 주게 되면 위험해진다. 두피가 딱딱해지거나 모자가 꽉 낀다는 느낌이 든다면, 뇌 피로를 푸는 두개골 마사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불안과 희망 노트, 명상법, 감사, 미소 연습을 실천해볼 수 있고, 스트레칭의 경우 이런저런 도구 없이 타월과 목욕 타월을 활용할 수 있다. 스쿼트를 일상의 행동 가운데 매일 6번 해보는 것은 운동 대체의 효과도 있겠구나 싶다. 저자의 '나무발 침대' 추천은 재미있다. 그런데 침구에 먼지가 쌓여 호흡기에 영향을 미치고, 그러면 얕은 호흡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수긍이 간다. 책 후반부에는 수면의 질을 높이는 열한 가지 습관, 농축 수면을 실천하고 지속하기 위한 테크닉과 요령 등을 실었다.

이 책이 '짧지만 깊은' 잠을 말하지만 강조점은 깊이에 있지 않을까. 길든 짧든 숙면이 중요하니까. 이 책에 나온 구체적인 방법들 가운데 당장 실천하고 적용해볼 것들도 한눈에 들어왔다. 깊은 숙면을 위해서는 단지 잠자기 직전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루 전체가 중요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이 책으로 다시 상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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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시계만 알면 누구나 푹 잘 수 있다 - 삶의 질을 높이는 최고의 수면처방전! ‘저절로 잠드는 법’
이헌정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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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대한 신간을 찾아보던 중 이 책이 눈에 띈 이유는, 제목에 들어간 단어 '생체시계' 때문이다. 2017년 '일주기 생체시계의 유전자' 규명으로 세 명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바 있다. 이후 생체리듬과 관련된 책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생체리듬이 깨진 것 같은 몸과 마음 상태에 이른 최근에서야, '생체시계'를 제대로 알아서 어그러진 잠의 패턴을 바로잡아야겠구나 싶었다.

한때 건강관련 서적에는 일본 번역서가 많았던 듯한데, 어느 순간 우리나라 저자들의 책이 많이 출간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좋다고 느꼈다. 이 책은 국내 최고의 수면 전문가로 자처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쓴 책이다. 전체적으로 상세한 서술과 함께, 최신 연구결과, 관련 상식과 시각자료, 행복수면을 위한 팁 등 알찬 구성이 돋보인다. 1장에서는 잠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수면의 깊이와 단계, 유익, 잠을 조절하는 뇌 기능, 수면과 각성의 원리 등을 서술한다. 2장에서는 불면증과 수면 부족의 위험성에 대해 서술한다. 저자는 평소 수면의 양과 질이 충분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질문 1. 평소 자명종 없이도 쉽게 일어나는가?

질문 2.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함을 느끼는가?

질문 3. 주말이나 휴일에 평일보다 더 자는 수면량이

2시간 이내인가?(74쪽)

위 질문들에 대해 어느 하나라도 '아니오'가 있다면, 평소 잠의 양이 부족하거나 잠의 질이 낮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잠 부족 탓에 '잠빚'이 늘수록 건강상의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1, 2장의 내용이 과학적 이론을 포함한 사전 지식 편이라면, 3장부터 5장까지 숙면을 위한 내용이 본격적으로 서술된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아데노신의 축적으로 자연스럽게 잠을 부르는 '항상성 과정'과 24시간 하루 주기에 따른 생체리듬인 '일주기 과정'이 조화롭게 움직여야 한다. 항상성을 방해하는 요인은 낮잠이다. 또한 인간을 비롯한 주행성 동물은 24시간보다 긴 일주기 시계를, 박쥐 같은 야행성 동물은 그보다 짧은 주기의 리듬을 가지는데, 인간은 아침 빛 덕분에 생체리듬을 약간씩 앞당겨 24시간에 맞춰 생활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아침에 충분한 빛을 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수적으로 신체 활동, 식사 시간, 규칙적인 사회 활동도 일주기 리듬을 조절하는 자극제다.

저자는 만성불면증,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기면병 등의 수면장애에 대해 알려주고, 야식과 야간 스마트폰 사용 등 여러 수면 방해 요인들을 경계한다. 무엇보다 수면제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아침 산책하기, 낮잠 안 자기, 활동량 늘리기를 해도 불면증을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수면장애가 있는지 상담해볼 일이다.

"잠만 쏙 들게 하고 각종 부작용과 내성과 의존성이 없는 수면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이상적인 수면제는 없다. 게다가 그런 수면제의 존재는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잠은 낮밤에 맞춰서 사는 24시간의 일주기 생체리듬의 결과이기에, 낮 동안 충분한 빛 노출과 활동이 선행되지 않으면서 밤에 잘 자기 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179쪽)

저자는 수면제 복용을 아예 시작하지 말고 수면 리듬을 회복하기를 권한다. (오래전 가족이 수면장애로 인해 수면제를 처방받은 적이 있다. 짧은 복용으로 끝나서 다행이었지만, 그때 의문이 들었다. 내과든 정신과든 의사들은 왜 그리 쉽게 수면제를 처방해주는가. 수면제 처방받으러 병원 갔다가, 그 부작용을 해결하려고 또 의사를 찾아야 하는 격이라면, 처음부터 의사들은 수면제 처방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책은 잠들기 좋은 자세는 무엇인지, 어르신은 적게 자도 좋은지, 아침형 인간이 좋은 것인지, 춘곤증과 월요병을 어떻게 이겨낼지, 잠이 안 올 때 이런저런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전문가적 소견을 덧붙인다. 어떻게 하면 잠을 푹 잘 수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은 이론과 실제를 겸비했다. 개인적으로, 내 안의 '생체시계'의 중요성을 일깨운 점이 가장 좋았다. 숙면을 위한 어떤 비법을 찾아나설 게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지 않는 숙면의 기본원리에 충실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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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해! 그 반대 이마주 창작동화
이상교 지음, 허구 그림 / 이마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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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교 작가님의 동시를 좋아한다. 칠십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계속 창작활동을 하시는 모습도 좋아 보인다. 이번 작가님의 신간 <싫어해! 그 반대>는 동화다. 이 책은 초등학교 어린이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그린 창작동화 시리즈로, 출판사에서 소개한 주제어는 '우정, 이해, 배려'다.

제목만 봤을 때는, "싫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 무엇이든 반대로 말하는 아이에게 일어나는 재미있는 소동일까 싶었다. 그런데 내용을 다 읽고 나니, "싫어해!"는 그냥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 어쩌면 의미 없는 표현에 불과했다. 주인공 단지가 사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반대"였다. 그 반대라면, "좋아해!"다.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 에피소드는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겪어본 일이 아닐까. 단지는 이런저런 별명으로 불리기 딱 좋은 자기 이름이 싫어서, 은근히 전학생 예리나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애써 감추고, 오히려 예리나 때문에 삼총사의 우정이 깨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 그래서 왠지 얄밉게 여기는 마음만 내비친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예리나도 함께하는 사총사가 된다.

단지가 친구들이 보는 식물도감을 흘낏 보던 장면 묘사가 인상적이다. 책표지의 그림이 바로 돼지감자꽃이다.

샛노란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눈에도 탐스럽고 밝은 느낌의 꽃이었습니다.

"돼지감자를 뚱딴지라고도 부른대. 뚱딴지!"

예리나가 이어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는 갑자기 두 귀가 밥그릇만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38쪽)

단지는 컴퓨터로 돼지감자를 검색하고 뒤이어 '뚱딴지'라는 다른 뜻도 찾는다. 결국 '뚱딴지'는 "가을꽃이 매력적인 귀화 식물"과 "이치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이나 행동", 두 가지 뜻을 가진 같은 발음의 말이라는 것을, 작가는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어쩌면 '뚱딴지'는 단지가 언니와도 티격태격, 친구들에게도 툴툴대지만 실상 예리나를 배려하고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표현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장면이 책을 덮은 이후에도 인상적으로 남았나 보다.

어릴 때는 자기 이름이 얼마나 예쁜 뜻을 담고 있는지, 자기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스스로 모를 때니까. 여러 번 말해줘도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때니까. 이름 때문에 속상해 하는 단지가 귀여우면서도 귓속말로 알려주고 싶다. "네 이름은 참 멋지다. 너는 참 예뻐!"라고.

앞서 언급한 '어떤 일'에 대해서는,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좀 의아스럽다고 느꼈다. 단지가 예리나를 배려하는 장면 설정이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면 어땠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가져본다. 이후 예리나가 단지에게 했던 반응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런 대목이 아이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눌 지점이기도 해서, 결과적으로 유익하다고 해야 할까.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 그게 참 어렵다는 생각 한 조각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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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전망
낸시 프레이저 지음, 김성준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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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물러났고 이제 미국은 바이든 시대다. 미국의 정치철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인 낸시 프레이저는, 이 책에서 미국 내에서 신자유주의가 약화된 양상을 보여주고 '진보적 포퓰리즘'을 현재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가 논의 전개상 기본 전제로 끌어온 도구적 개념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헤게모니 블록이다. 헤게모니란 "지배계급이 자신의 세계관을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상정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과정"이고, 헤게모니 블록이란 "지배계급이 모은 이질적인 사회 세력들의 연합"이다. 저자는 헤게모니 블록마다 옳음과 정의를 상정한다고 보는데,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가진 측면은 분배와 인정, 곧 경제구조와 지위 질서라고 서술한다.

책의 앞부분에 나온 위 개념들을 이해한 바탕 위에서, 트럼프가 등장하기 전 지배하던 '진보적 신자유주의', 그것의 붕괴와 '분배와 인정의 규범적 합의'에 대한 불신임이 초래한 '트럼프 집권',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는 헤게모니의 공백과 정치적 위기에 대한 저자의 논의를 따라갈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도 인용된 그람시의 말을 상기한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러한 공백 상태에서는 아주 다양한 병적인 증상이 출현한다."(39쪽)

저자에 따르면,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가 길어질수록 모든 노동 계급은 압박과 빚, 초과근무, 사회적 불안정성, 무엇보다 분노 때문에 생기는 희생양 만들기식 혐오, 연대의식이 사라진 세상에 만연한 폭력 분출 등의 '병적 증상'에 허우적댈 것이다. 평등주의적인 재분배와 비위계적인 인정을 합친 '진보적 포퓰리즘'만이, 현재 유일한 헤게모니 선택지다.

진보적 포퓰리즘 블록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기반을 위해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자본주의의 대대적인 구조 변혁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경제와 정치, 생산과 재생산,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을 관계 짓는 새로운 방식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기존의 인정 정치와도 결별해야 하는데, 배제적인 종족 민족주의, 자유주의적이고 능력주의적인 개인주의도 청산 요소다.

이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즘의 측면에서 일련의 미국 정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트럼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기존 헤게모니의 붕괴 현상이 있었다는 저자의 식견은, 거시적인 통찰과 합리적인 조망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미국 정치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서가 아니었다. 저자의 통찰력과 정치 전망을 보면서, 한국 정치에 적용될 측면은 없을지 궁금했다. 가령 이명박 집권의 배경에는 "(선거유세용 수사에 불과했던) 경제 대통령 뽑아서 내 집값 좀 올려보자"는 말들도 있지 않았던가.

이 책은 낸시 프레이저의 논의에 뒤이어, 미국의 사회주의 잡지 <자코뱅> 발행인과의 대담을 실었다. 여기서 눈에 띈 대목은, 저자가 신자유주의를 하나의 세계관이 아니라 "진보적인 인정 프로젝트들까지 포함하는 서로 다른, 심지어 서로 경쟁하는 인정 프로젝트들과 조응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경제 프로젝트"로 명명한 부분이다. 또한 진보주의자들의 '해방'에 대한 능력주의적, 유리천장 깨기식 관점이 자유시장의 집단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통찰도 와닿았다. 진보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 모두 개인주의적 극복을 말한다는 것이다.

번역본 말미에 실린 '해제'에서는 저자의 논의를 요약해주면서, 저자의 낙관론이 가진 맹점을 지적한다. 그중 "그동안 소외되어온 노동계급이 경제적 포퓰리즘보다 초반동적 인정 정치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대목은, 맥락상 수긍이 가는 반론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언급하면서, 오히려 트럼프식 반동적 인정 정치 의제에 기회를 줄 여지가 많지 않을까 하는 어두운 전망도 귀기울여볼 만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분배와 인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재고해봄으로써, 보수냐 진보냐의 단순 이분법적 논의를 넘어서서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현실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조망하는 책들도 많이 나와주기를 기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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