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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 슈퍼 에디션 : 파이어스타의 임무 (양장) ㅣ 전사들 슈퍼 에디션
에린 헌터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전사들> 시리즈를 처음 읽는다. 고양이들의 눈으로 그린 세상이 궁금했고, 표지의 고양이 표정에 압도되었다고 해야 할까. 650쪽의 분량에 놀랐지만 술술 읽히는 흡인력이 신기했다. '등장하는 고양이들' 소개부터 예사롭지 않다. 다섯 종족, 그들의 옛 종족, 종족에 속하지 않는 고양이들까지, 고양이에 대한 한 줄 묘사가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구나 싶다. 고양이들의 각 이름 옆에는 우리말 번역이 첨가되어 있다. 브라이트하트(빛나는심장), 모닝플라워(아침꽃), 헤비스탭(무거운걸음), 에코송(메아리노래)과 같은 식이다. 주인공 파이어스타는 불꽃별로 천둥족의 지도자다. "황갈색 수고양이로 불꽃처럼 밝은 주황색 털가죽이 특징이다. 훈련병 브램블포를 가르친다."는 소개가 나와 있다.
이야기의 서두 '프롤로그'에는 파이어스타가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옛 천둥족을 비롯한 다섯 종족의 모임 현장. 하늘족 지도자 클라우드스타가 모든 종족을 이끌고 나타난다. 두발쟁이(인간)들이 거대한 괴물을 몰고 와서 그들 영역을 덮치려고 하고 이미 보금자리는 사라진 상태다. 클라우드스타는 다른 네 종족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영역을 나누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거부되는 상황이다. 클라우드스타는 하늘족을 이끌고 그곳을 떠나지만 그의 짝 버드플라이트와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는 천둥족에서 거두게 된다.
천둥족 지도자 파이어스타는 물웅덩이에 비친 환영, 소용돌이치는 물살 속에서 첨벙거리며 울부짖는 고양이들을 본다. 꿈속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나타나는 형상들 가운데 그가 아는 선조 전사들은 없었다. 그는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고자 별족을 찾아나서는데, 이 부분의 묘사가 이채롭다. 어떻게 별족과 만날까 궁금해서 더 주의 깊게 읽은 대목이기도 하다.
그의 여정과 행동을 따라가보자면, 그는 천둥길을 건너고 바위 비탈을 기어 올라가 산등성이에 다다른다. '어머니의 입'이라 불리는 시키먼 구멍이 산비탈에 뻥 뚫려 있고 달바위로 이어지는 빛이 없는 굴길을 따라간다. 굴길이 넓은 동굴로 이어지면서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별들이 언뜻 보이고 달이 움직이는 가운데, 그는 달바위 앞에 엎드려 코가 달바위에 닿을 때까지 몸을 쭉 늘인다.
파이어스타는 다섯 번째 종족인 하늘족이 있었다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후, 하늘에서 네 종족을 지켜주던 별족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만다. 하늘족 지도자가 그의 꿈 속에 나타나고, 파이어스타는 자신의 운명이 흩어진 하늘족 후예들을 모으는 것일까 반문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의 옛 터전이었던 두발쟁이 보금자리를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하늘족 지도자인 연회색 고양이를 만난다. 읽는 내내 나도 파이어스타처럼 궁금했다. 왜, 그가 하늘족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지, 왜 꼭 그여야만 하는지...
하늘족 지도자는 파이어스타를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말하면서, "그대는 강하고, 지도자이며, 우리가 느끼는 배신감에 피가 오염되지 않은 고양이다. 그대는 우리를 내쫓은 고양이들의 후손이 아니지만 진정한 종족 전사다. 그러니 하늘족을 되살리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다."(117쪽)라는 이유를 제시한다. (파이어스타는 다섯 종족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셈인데, '애완 고양이 출신'이라는 표현이 책 말미에 나온다.)
이후 파이어스타는 짝인 샌드스톰과 함께 길을 나서고, 홀로 전사의 길을 지켜나가는 늙은 고양이 스카이(나중의 이름 스카이왓처)를 비롯해 흩어진 하늘족 후예들을 만나는 여정이 이어진다. 그리고 두발쟁이들과 살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전사의 규약을 알려주고 하늘족 훈련병이 되도록 이끌어준다. 그가 종족에 속하겠다고 모인 고양이들과 나누는 대화 중 인상적인 부분이 나온다.
우리는 왜 가족을 부양할까, 왜 애써 자녀를 키울까, 왜 가족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기도 할까, 그런 질문들도 겹쳐보게 된다. 그래서 얻는 게 뭐냐는 질문은 이기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 본질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이 분명할 때, 우리는 지치거나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전사는 종족을 위해 사냥을 하고, 종족의 모든 고양이를 먹여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해서 전사가 얻는 게 뭐죠?"
"명예와 존경. 동료들의 믿음, 그리고 종족을 위해 봉사했다는 만족감을 얻게 됩니다."(405쪽)
위 부분과 함께, 파이어스타가 종족 고양이로 사는 삶, 전사, 훈련병, 원로, 종족 지도자, 치료사, 죽은 후 별족과 함께 거니는 생활 등을 설명하는 대목이 재미있었다. 특히 치료사의 역할이 아프거나 다친 이들을 돌보는 것뿐 아니라 별족이 보낸 꿈을 통해 종족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에코송이 별빛의 신호를 받고 진정한 치료사가 되고, 리프대플이 하늘족 지도자로 지목받은 후 하늘족 별빛 영혼들 아홉 목숨과 지도자의 이름(리프스타)을 받게 된다는 대목은 뭔가 신비하고 장엄한 느낌이다. 인내의 목숨, 희망의 목숨, 사랑의 목숨, 말과 경쟁으로 생긴 상처를 치유하는 목숨, 지혜의 목숨, 동정심과 이해의 목숨, 이타적인 목숨, 결단력의 목숨, 충성심의 목숨. 뭔가 지도자의 덕목을 말하는 듯하다. 옛 지도자들이 옛 하늘족 지도자에게 사죄하는 장면들도 인상 깊었다.
천둥족의 터전으로 돌아온 파이어스타와 샌드스톰. 그들에게는 새끼 암고양이 두 마리가 생긴다. 기쁘기만 한 순간, 파이어스타의 귓가에 앞서 스카이왓처가 했던 예언이 맴돌고, 그가 오싹한 한기를 느끼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