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주일 그림책 수업 - 원고 한 편이 완성되는 금요일의 기적
채인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아름다운 가치 사전>으로 작가를 알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읽혀줄 책을 찾다가 직접 책을 썼다는 스토리도 그때 알았다. 당시에는 대단하고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첫 그림책을 펴낸 작가들의 소개글을 보면 엄마가 되어 쓰거나 그리게 됐다는 내용이 꽤 많다. 그리고 막상 내가 엄마가 되어 그림책을 읽던 가운데, '아이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 적이 있다.
이후 현재 활동하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 거슬러 지명도 있는 수상작가의 그림책을 찾아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느꼈기에, 너무 기발하고 재미있으며 감동적인 내용이 많았기에, 그 바람은 말 그대로 마음속에서 휙 사라져버린 듯했다. 그러다가 이 책의 저자와 제목을 접하는 순간, 처음 그림책의 신세계를 경험하며 가졌던 소망을 떠올렸다. 또한 창작 수업 이전에, 현재의 그림책들에 대한 안목을 키워볼 수 있는 책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작가의 말'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나왔다. 작가는 한국 그림책이 양적 성장을 이루었고 주목받는 작가들을 배출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평한다. 도넛이 커지면서 구멍도 커진 모양새처럼. 이 비유가 재미있으면서 꽤 의미 있게 다가왔다.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자신의 삶을 비춰보고 그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장치를 해야 한다. 구경이 아닌 발견이 되도록. (중략) 이제는 구멍 뚫린 도넛 말고 한가운데를 단팥으로 가득 채운 단팥빵을 아이들에게 주자!"
(8쪽)
이 책은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각각 오전, 오후에 걸쳐 주제별 이야기를 펼쳐간다. 그동안 작가가 꾸려간 그림책 글쓰기 워크숍의 형식을 취했다. 현장 워크숍은 일주일 프로젝트로 오전에는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오후에는 실제 쓴 원고를 낭독하고 합평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 책의 제목도 그렇고 워크숍 과정도 그렇고, 정말 5일 만에 그림책 원고가 가능한가 의문이 드는데,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금요일의 기적을 주문"한다고 말한다.
첫째 날이다. 그림책의 정의를 시작으로, 작가는 픽션 그림책의 네 갈래, 즉 사실 이야기, 마술적 사실 이야기, 의인화 이야기, 환상 이야기를 소개하고 여섯 가지로 구분된 중심 내용을 서술한다.
이제 실전 시간! 이야깃거리를 모으기 위해 일단 써보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아이에게(없다면 자신에게라도) 질문을 던지고 답하듯이, 가령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가짜 산타를 만나면 어떻게 할까?"에 대해 곱씹다 보면 웅얼대는 내 안의 말을 만나게 될 테니 그것을 적어본다. 자기 나름의 답, 이야기 골격을 생각해보고, 이를 조금씩 길게 써보는 연습을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작법서와 비슷할 수 있는데, 이 책의 특별한 점은 가상의 이야깃거리 여섯 가지를 제시한 후, 조목조목 비판을 써내려간 대목이다. 창작이 비평이고 글을 쓰면 비평은 따라오게 마련이니, 이야기의 어떤 지점이 미흡한지 파악해보는 안목을 키우는 의미도 있겠다.
둘째 날이다. 주제와 플롯, 구조에 대한 내용이 핵심인데, "이야기의 이정표이자 목적지"인 주제가 모호하다고 느낄 때, 작가가 제시한 팁이 있다. 그것은 이 책에 소개한 '이야기의 효능' 여섯 가지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책을 통해, 각 효능이 무엇인지, 풍부한 사례와 함께 확인해볼 수 있다. 구조의 종류는 도식화되어 있는데, 대칭 구조, 물결 구조, 혼합 구조의 각 양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둘째 날의 내용 분량이 제일 많다. 이제 실전 시간! 저자는 플롯에 조급증을 내지 말고 서두와 중반, 결말로 이야기 흐름을 잡으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서두가 무엇인지, 그 시작에 대한 여러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셋째 날이다. 문체와 주인공, 이야기의 유형이 펼쳐지는데, 문제가 마무리되는 방식 혹은 문제가 나타나는 방식에 따라 세분화된 이야기 유형이 새롭지만 조금은 막연하게 다가왔다. 유형화의 목적은 원고 각각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원고를 쓰기 위함이라는데, 아무래도 주제가 정해지고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와닿는 구분이 아닐까 싶다.
이제 실전 시간! 중반을 어떻게 그려갈지에 대한 내용에 이어, 저자는 중반의 지루함을 날리는 장치들과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런 장치들의 소개야말로, 작가의 작법서만의 특별함이 아닐까 싶다.
넷째 날이다. 저자는 시점에 대해 알려주고 글의 역할, 그림의 소임을 차근차근 일러준다. 이 대목은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그림책의 특성을 반영한 것인데,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다를 경우 더욱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제 실전 시간! 문장과 단락 쓰기를 어떻게 할지, 특히 아이들의 말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앞서 둘째, 셋째 날에 차례로 서두, 중간에 대한 내용이 나왔으니, 여기서는 결말 부분이다. 작가는 결말의 다양한 사례들도 첨가한다.
다섯째 날이다. 그림책 쓰기의 최종 기술로 옛이야기에서 배울 것, 이야기 전개는 영화나 연극처럼 할 것, 언어는 시처럼 쓸 것 등이 제시된다. 작가는 원고를 투고하고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준다.
이제 실전 시간! 원고 제출 전의 점검사항을 꼼꼼하게 따져본다. 전체 구성 가운데 다섯째 날의 경우 이미 모든 원고가 완성된 시점을 기준으로 했기에, 상대적으로 분량도 적고 엄밀히 말하면 실전 적용이 앞선 날들과 다른 맥락 같다. 출간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전에 투고 자체를 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는 내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습작 차원을 넘어 궁극적으로 원고 한 편의 결과물을 지향한다는 주제의식을 확인해보는 내용이기도 하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편집자 눈에 확 뜨일 원고로 발상의 참신함, 그림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원고, 자연스러운 상상, 암시된 철학(핵심 가치) 등을 강조한다. 이후 창작과 관련해 작가가 자주 받는 질문과 답변을 담고, 마지막으로 이 책에 언급한 그림책을 비롯한 참고서적을 첨부했다. 400페이지가 넘는 그림책 작법서 안에 꽤 많은 책 내용이 인용되고 논리 근거나 사례로 제시된 만큼, 직접 그 글을 찾아보도록 의도한 것이리라.
어쩌면 그림책에서 글이 차지하는 분량 자체가 작기 때문에, 이 책의 흐름대로 따라가다 보면 작가 말대로 '금요일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솟아나는 여러 질문들, 그로 인한 웅얼거림에 귀기울이는 것부터, 첫 발을 내딛어야 할 터이다. 그림책 글 작가 지망생들에게 유익한 책이면서,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는 특별한 책이다. 덕분에, 나와 아이가 함께하는 그림책 세상이 더 즐거워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