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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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대강의 줄거리만 아는 정도의 이야기, 언젠가 제대로 읽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래서 현대지성의 최근작 <프랑켄슈타인> 출간 소식이 반가웠다. 이 책은 1818년 초판본을 옮긴 것이고, 역자는 <프랑켄슈타인>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다룬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영문학 전공자다. 이 책에 실린 역자의 해제는, <프랑켄슈타인>의 문학적 위상과 영향, 작품 해설을 통해 독자들이 이 작품을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품은 몇 편의 편지글로 시작된다. 북극 탐사를 위한 꿈을 안고 항해 중인 로버트 월턴이, 누나 마거릿에게 보내는 편지다. 네 번째 편지에 이르러, 월턴은 누나에게 이방인의 존재를 알린다. 그는 썰매를 타다가 얼음 파편에 의지해 월턴이 탄 배에 표류했는데, 두 눈은 광기 같은 기운을 내뿜고 대체로 침울하고 절망스러워 보였다. 월턴은 그의 정체 모를 슬픔에 동정과 연민이 차오른데다 망망대해에서 드디어 형제 삼을 만한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기록을 적어나가는데, 이방인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노라고 말하면서 본격적인 소설이 전개된다. 그 이방인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이 1인칭 화자로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부모님, 고모가 돌아가시고 고모부가 재혼하면서 함께 지내게 된 엘리자베스, 어릴 때부터 함께 어울렸던 친구 클레르발이 소개되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는 "불행한 운명을 장악한 정념"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

 

우연히 보게 된 신비학자이자 연금술사의 책에 불필요한 열정을 쏟게 된 이후, 프랑켄슈타인은 불멸의 묘약이나 유령을 불러내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대학에서는 자연철학 이론과 실험에 통달한다. 또한 생명의 기원을 파헤치기 위해 죽음을 연구하기로 하는데, 부패와 변질을 관찰하기 위해 지하 납골당이나 시체안치소에서 며칠간 보내기도 한다. 결국 "저항할 수 없는 광기 어린 열망"에 사로잡혀 부패한 육신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허황된 일념 끝에, 2년 만에 생명체를 만들어내는데... 눈앞의 형상은 "참혹한 괴물"이다. 경악하며 그에게서 달아나고 만다.

 

창조자에게조차 외면받은 피조물은 흉측한 외모 때문에 인간들에게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 되고, 선한 기운을 모조리 악의 그것으로 바꾸며 창조자의 가족들을 희생양 삼기 시작한다. 그 후 프랑켄슈타인과 대면하고 "세상의 한 점 얼룩, 그저 비참하고 불행한 괴물"로 살아온 심정을 토로하는데, 원래 어질고 선했지만 불행 때문에 악마가 되었다면서 창조자로서 자신을 행복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자신만큼 추악한 여자 피조물을 만들어주면 만족하겠노라고.

 

프랑켄슈타인은 흉측한 피조물에 대한 측은함과 책임감이 뒤섞여 그의 요청을 수락하지만, 괴물 여자를 만들어낸 이후 벌어질 더 큰 화와 저주가 두려워져서 약속을 파기하고 만다. 프랑켄슈타인의 결혼식날 찾아가겠다는 협박을 남긴 채 사라진 괴물. 이후 또다른 희생자들이 생기게 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필사적으로 추적하는데...

 

고전의 힘일까. 줄거리와 세부 묘사만으로 흡인력이 있으면서,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논쟁거리와 다양한 해석의 창을 열어놓고 있다. 과학문명과 생명윤리, 괴물의 상징성,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이 펼쳐낼 미래전망,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 강박적 야심과 헛된 열심 등. 이 책에서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대사와 표현이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를 꼽아본다.

 

"인간이 나를 경멸하는데 왜 나는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 거요? (중략) 내가 받은 상처를 복수할 셈이오. 애정이 아니라면 두려움을 일으킬 거요. 특히 나를 창조한 최고 원수인 당신에게 꺼뜨릴 수 없는 증오를 맹세하는 바요. 조심하시오. 내가 당신을 파멸시키고 말 테니."(186쪽)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에게 하는 항변이자 협박이다. 경멸을 받았으니 복수를 하고, 애정을 받지 못했으니 증오로 되갚겠다는 것인데, 괴물 스스로도 깨달은 바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고 자신을 혐오하는 상태에 빠졌을 뿐이다. 억울하고 부당하지만, 그것을 괴물처럼 표출하지 않는 선에서 멈춘다는 것은 과연 단순히 법과 제도, 윤리의 문제일까.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고 야심을 피하십시오. 과학과 발견으로 명망을 얻으려는, 무모해 보이는 야심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284쪽)

 

프랑켄슈타인이 월턴에게 한 말 중에 인상적인 말이 있다. 월턴은 이상적인 생명체를 만들어낼 열망으로 가족과의 만남이나 삶의 휴식도 뒤로한 채 연구에 매진했다. 모든 평온함을 잃어버린 후에는 악몽의 시간과 결과물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생계를 위한 일,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다 보면,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이것까지만 이루고 나서"라는 단서로 보류되는 대상은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이 아니던가. "모두 가족을 위해서야"라는 명분, 그 이면에는 변명일 뿐인, 균형 잃은 '꿈과 현실'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사랑과 우정을 갈구했지만, 계속 거절당했소. 그런데도 여기에 불의가 없단 말입니까? 인류전체가 내게 죄를 지었는데, 유일한 범죄자라는 굴레는 왜 나만 써야 하는 겁니까? (중략) 비참하게 버려진 나는 추한 괴물이니 면박당하고 발길에 차이고 짓밟히는 게 마땅하겠지요. 지금까지도 이러한 불의를 떠올리면 피가 끓습니다. 하지만 내가 쓰레기라는 건 사실입니다. 사랑스럽고 힘없는 이들을 무참히 죽였으니까요."(289-290쪽)

 

괴물이 월턴에게 한 말도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괴물의 말에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흉악 범죄자들의 변명처럼 들려서다. 어릴 때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는 어른이 없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모두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 등등. 살인자에게는 어떤 서사를 만들어줄 필요도, 동정의 여지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범죄자들을 만들어내는 사회, 소위 '괴물'이라 통칭되는 소외된 타자, 나와 다른 부류에 대한 배척, 혐오에 대한 문제는 분명히 심각하게 숙고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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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이와 떠나는 기후 여행 함께 사는 세상 환경 동화 7
김성준 지음, 이은혜 그림 / 아주좋은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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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환경 동화' 일곱 번째 이야기다. 아주좋은날 출판사의 환경 동화 시리즈처럼, 의미 있는 기획도서가 많이 나와주면 좋겠다. 글작가 김성준 님의 <산소를 지키는 호랑이>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인지, <초록별이와 떠나는 기후 여행>을 펼쳐보기도 전에 이야기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다. 그림작가 이은혜 님의 그림은 오밀조밀 귀여운 느낌인데, 둥근 지구처럼 사람이나 사물 외곽선을 둥글게 처리한 부분이 특징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도심 속 무더위에 힘겨워하는 초록별이의 모습은 지구 온난화 설명과 어우러져 심각성과 안타까움을 강조한 듯했다.

 

그림을 포함해서 전체 95쪽 분량의 동화인데, 개인적으로 서두가 좀 길지 않았나 싶다. 전체 3분의 1 이후부터 '기후 여행'이 시작되기에, 읽으면서 '여행은 언제부터 하게 되는 거야?' 하는 조바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자면, 생활동화의 구성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작가는 합창부 삼총사 정현, 수아, 지윤을 소개하는 내용부터 차근차근 전개한 것이 아닐까. 셋이 함께 기후 변화에 대한 자료 조사를 위해 도서관에 모이고 그곳에서 지구의 분신이자 일종의 아바타인 초록별이를 만나기까지, 이 과정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의 대화 내용이다. 이후 아이들은 초록별이와 함께 배를 타고 북극으로, 또한 아름다운 섬나라로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초록별이의 시청각 교육을 받으면서 기후 변화에 대해 배우게 된다.

 

초록별이가 가르쳐준 내용들이 기후 변화의 심각한 상황이라면,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학교 발표 내용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실천할 항목들이다. 그리고 세계 기후 변화 총회 개막식에서 합창부가 초청 공연을 하게 되면서, 기후 변화와 관련해 그곳의 여러 부스를 소개하는 내용이 첨가된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상 속에서 접하게 다양한 기후, 환경에 대해 필요한 내용을 최대한 꼭꼭 담아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였다. 제목에 나와 있는 '기후 여행'이라는 말 때문에, 은연중 신나는 모험 이야기를 기대했었나 보다. 실제로 초록별이와 떠나는 여행 대목에서는, 주로 정보를 담은 대화 중심이어서 활기차고 동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여행'에 대해 머릿속에 그려놓은 편견을 살짝 거두고 보면, 이 동화는 초등학생들에게 기후와 환경 문제, 실천 등을 가르쳐주는 데 꼭 필요하다. 이해하기 쉽게 대화로 이루어진 정보 속에 중요한 내용들이 속속 담겨 있다.

 

이 책은 날씨와 기후의 차이부터 기후 변화가 무엇인지 알려주는데, 좋았던 점은 아이들의 질문이 오가면서 내용이 풍성해졌다는 것이다. "온실 역할을 해주는 거면 식물이나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 거 아냐?"(43쪽), "얼마나 심각하길래 그래?"(44쪽), "사실 100년에 1도 오르는 것도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지 않아?"(48쪽), "기후 변화와 북극곰이 먹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어?"(53쪽), "어차피 북극은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인데, 육지의 빙하가 녹아서 새로 땅이 생기면 사람들이 살 공간이 늘어나서 좋은 거 아니야?"(59쪽), "빙하가 녹은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 생긴다는 문제가, 혹시 이 섬나라들이 없어진다는 거야?"(61쪽), "전염병도 지구 온난화와 관련이 있다고?"(65쪽) 등의 질문들을 통해, 주입식으로 정보를 듣는 것보다 관련 내용을 확실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초록이가 어떻게 답변을 하는지, 동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실천 방법을 말하면서 지윤이는 심폐 소생술을 비유한다. 우리의 실천 방법들은 우리 지구와 우리 스스로를 위한 심폐 소생술이 될 수 있다고. 절박한 문제의식에 어울리는 꽤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체험 행사 부스로 오는 중에 쓰레기를 주우면서 왔다는 정현도 대견하고, 합창부에서 부를 노래의 가사를 직접 썼다는 수아도 멋지다. 세 친구가 만난 초록별이, 그런 작은 모형 혹은 AI가 아이들에게 직접 기후와 환경을 가르쳐주면 정말 실감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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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란 : 사계절 건강 밥상편 - 따라 하고 싶은 한 끼! 알토란
MBN〈알토란〉제작진 저자 / 다온북스컴퍼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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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알토란 프로그램을 애청하시는 엄마께 선물하고 싶은 책이 나왔다. 1편 <알토란>(만능장편)이 나오기도 전부터 "혹시 알토란 책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물으실 정도로 요리책을 기다리셨는데, 2편은 1년도 못 되어 나온 셈이다. 반가웠다. <알토란> 책들은 서체가 크고 보기 쉽게 구성되어 있어서 어르신들이 활용하기에도 좋아 보인다. 만드는 법을 차근차근 쉽게 따라해볼 수 있고, 셰프의 몇 줄 설명과 간단한 요약인 '한 장 레시피'도 유용하다.

이번 책은 특히 '사계절 건강 밥상편'이어서 말만 들어도 뭔가 일년 내내 밥상이 풍족해지는 기분이다. 사계절 밥상과 함께 복날, 추석, 정월 대보름, 동지, 설날 밥상 등 특별한 날들을 위한 밥상도 다루고 있어 더욱 알찬 느낌이다. 나에게도 많이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봄 밥상 메뉴에서는 장아찌가 눈에 띄었다. 햇마늘장아찌와 햇양파장아찌. 껍질 벗기기 쉬운 마늘, 이게 수확 직후 건조하지 않고 바로 유통되는 장아찌용 햇마늘이라는 설명을 읽었다. '햇마늘과 마늘 고르는 법, 보관법의 모든 것'의 정보가 꽤 유용하다. 햇마늘 반 접(50개)을 이용해서 장아찌를 만드는데, 껍질을 한두 겹 남긴다. 통마늘로 만들면 껍질의 좋은 성분도 섭취 가능하다고 한다. 식초물에 일주일 담가두는 이유는 햇마늘의 아린 맛을 빼기 위한 것이다. 집에 있는 햇마늘을 그냥 다져서 냉동실에 넣어둘까 했는데, 장아찌로 만들어봐야겠다. 햇양파의 경우 특징과 활용법, 고르는 법, 특히 보관법이 유용하다. 스타킹, 달걀판, 랩 등을 사용하면 좋다고 나와 있다. 당장 쓸 분량이 아니면 매번 냉동실에 방치해두곤 하던 양파를 이제는 장아찌로 만들어볼 요량이다.

여름 밥상 메뉴에서는 돼지고기가지찜, 애호박초무침, 전복장, 그리고 복날을 위한 삼계탕, 서리태콩국수, 닭볶음탕이 나와 있어서 좋았다. 최근에 보랏빛 통통한 가지를 사서 그냥 먹기도 하고 간장조림을 했는데, 사실 찜을 해보고 싶었다. 가지찜을 보니 가족 모임에도 올릴 만한 별미 같다. 애호박도 자주 만들어 먹기는 하지만 조림 아니면 지짐인데, 초무침은 더위로 입맛 잃었을 때도 좋겠구나 싶다. 죽 만들 때만 사용했던 전복도 절임장에 넣어두면 반찬으로 먹을 수 있겠다. 절임장에 사이다를 넣는 게 신기했는데, 탄산이 전복을 부드럽게 만들어 절임장이 잘 배게 한단다. 복날 음식 가운데 서리태콩국수의 경우, 불릴 때와 삶을 때, 갈 때 넣어야 할 물의 양도 '맛의 한 수'로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가을 밥상 메뉴에서는 김밥에 든 우엉이 아니면 잘 먹지 않는 우엉 요리가 나와 있어서 관심을 끌었다. 우엉조림과 우엉불고기. 정말 특이한 부분은 단호박맛탕과 대추생강청이었다. 고구마맛탕이 아니라 단호박맛탕이라니, 설탕과 함께 유자청을 넣어주면 식어도 서로 달라붙지 않는 팁도 확인해본다. 최근에 생강청을 선물받았는데, 여기서는 대추까지 들어가서 뭔가 생강의 쓴맛을 보완해줄 것 같고 더 건강식으로 보인다. 매실청처럼 꾸준히 만들어둘 품목이 아닐까 싶다.

겨울 밥상 메뉴에서는 대파김치와 시래기밥, 시래기소고기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파김치는 작은 파로 만드는 게 아니었던가. 겨울 대파는 맵지 않아 마늘로 김치의 매운맛을 살려준다고 한다. 추어탕에 들어간 시래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이 책 덕분에 밥과 반찬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됐다. 시래기를 양념한 후에 볶으면 간이 잘 배고 구수한 풍미가 살아날 뿐 아니라, 한 번 볶으면 특유의 냄새가 제거되는 효과를 가진단다.

<알토란> 책을 통해, 기본 음식과 새로운 음식을 만날 수 있다. 기본 음식의 경우도 '맛의 한 수'나 세프의 팁을 통해 색다른 음식으로 거듭날 수 있다. 사계절 건강 밥상편 가운데 무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여름 밥상 메뉴를 하나씩 만들어봐야겠다. 다른 요리책처럼 책꽂이에 가두어놓지는 않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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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걸리면 진짜 안 돼? - 응급의학과 의사의 선별진료소 1년 이야기
서주현 지음 / 아침사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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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경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가 심각하게 거론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은 "코로나19가 왜 생기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이다. 그게 궁금해서 평소에 보지 않던 과학 잡지를 들여다보았고, 중국인 저자의 <우한일기>, 우리나라 한의사의 합리적 의심을 기초로 한 <코로나 미스터리>, 우리나라 과학전문기자가 쓴 <팬데믹 리포트>도 읽어보았다. 팬데믹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어느 순간 원인 규명보다 빨리 좀 종식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여전히 알고 싶다. 우한에서 발생한 집단 폐렴은 왜 생겼던 것일까.

세계보건기구가 중국과의 이해관계를 떠나 처음부터 제대로 된 조사를 했더라면, 하는 갑갑함이 여전한 가운데 최근 기사를 보니, 미국와 영국의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제기된 의혹은 코로나19의 발원지를 우한의 한 연구소로 본다는 것이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연구진이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박쥐의 배설물을 채취하다가 박쥐에게 물린 상처를 보여주는 영상도 있다. 이런 와중에, 제목부터 관심을 끌게 만드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코로나19, 걸리면 진짜 안 돼?>가 내포하는 의구심은 '코로나19가 그렇게 심각한 거야? 모든 일상을 뒤바꿀 만큼? 그럼, 다음에 또 다른 이름의 전염병이 생길 때마다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해?'라는 것들이다.

저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선별진료소에서 근무 중이다. 이 책은 크게 '코로나와 응급진료', '코로나로 멈춘 세상'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중증 외상, 심정지 등 응급 환자들의 진료에 차질이 생기게 하는 시스템을 비판한다. 열이 나는 환자는 진료를 거부당하고 큰 사고를 당하거나 심장질환, 뇌졸중처럼 위급한 환자들조차 골든타임을 놓치는 현재 상황이 과연 정상적이고 합리적인지 되묻는다. 현재 시행되는 선제검사와 격리, 거리두기 정책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정책"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한다.

보통 '코로나 검사'로 불리는 'RT-PCR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확진자가 되는데, 증상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으면 격리해제가 된다. 그런데 이 검사는 민감도가 매우 높아 개인 체질에 따라 두 달에서 석 달까지 양성이 나온다. 저자는 코로나19만 병원체가 나오면 무조건 다 확진자가 되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손에서 세균이 검출됐다고 전부 세균 감염이 아니라는 기본 상식, 여러 기저질환을 가지고 폐렴, 요로감염, 장염 등을 앓는 중증환자들의 콧속에서 코로나19가 검출되면 확진자가 되고 사망하면 기존의 기저질환과 감염병은 지워진 채 사망원인이 '코로나19'가 되는 현실의 모순을 지적한다.

저자 자신이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해오고 있기에, 코로나19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선별진료소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폐렴이 심한 환자를 확진 가능성 높은 고위험군으로 정했는데, 실상 폐렴이 심하지만 코로나19는 음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무증상이나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인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증상 있는 자와 접촉력 있는 자로 선별진료소가 이원화된다. 그러다가 증상도 없고 확진 가능성도 낮지만 검사 받고 음성증명서를 받아가는 세 번째 선별진료소가 생긴다.

저자는 무더위와 추위 등에 맞선 선별진료소 의료진의 고충을 전하는 한편, 확진 건수의 통계를 제시하기도 한다. 2021년 3월 31일 기준, 우리나라 코로나19 검사 건수는 인구 10퍼센트가 넘는 수, 그중 양성은 103,088건으로 70명 검사하면 한 명 정도의 확진이다. 그로 인한 사망은 하루 평균 4.3명. 대부분 80세 넘으신 기저질환자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기저질환자들에게는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한 병원 운영 때문에 더 위험해진 게 아닌가 우려를 가지게 됐다. 만성 호흡기 질환자들은 평소에 호흡곤란이나 가래가 있는 환자로, 감기만 걸려도 쉽게 폐렴에 이르고 사망할 위험도 높다. 호흡곤란 증상이 조금만 심해져도 곧장 응급실로 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본적으로 호흡곤란 환자, 특히 호흡곤란에 열까지 나는 사람을 병원에서 꺼리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감염자일지 모르니.

현재 백신을 맞으면 열이 나도 코로나19 검사를 안 해도 되고, 약을 먹고 이틀 동안 지켜보는 방침이다. 저자에 따르면, 의심이 되거나 열이 나면 무조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하라는 것과 대조되는 기준이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자궁경부암 백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하나,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서는 기저질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에서만 다루고 있다. 다만 인간의 힘으로 바이러스를 막기 어렵고 백신의 효과란 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는 효과일 뿐, 감염을 막는 효과는 마스크보다 못하되 부작용은 클 것이라는 견해를 덧붙인다.

이 책은 한마디로, 선별진료소 의료진의 눈으로 바라본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견해다. 프롤로그에 압축적으로 문제의식이 잘 나와 있고, 본문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전개하는 방식이다. 이 책으로, 병원의 응급 우선순위가 코로나19에만 중점을 둔 결과 벌어지는 위험성에 대해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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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전사, 마법사, 연인 - 어른이 되지 못한 남성들을 위한 심리 수업
로버트 무어.더글러스 질레트 지음, 이선화 옮김 / 파람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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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차이와 그에 따른 대화법을 알려주는 심리학 책, 남녀 차이를 넘어 차별의 양상을 보여주는 페미니즘 책, 가부장제나 왜곡된 남성성이 가지는 문제의 배경을 서술하는 사회학 책을 통해, 남자들의 심리나 성향 등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결과 뭉퉁그려서 '남자들은 다 그래.'로 귀결되는 감상이 남았다. 어떻게 보면 편협한 독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남자들의 여러 유형에 대한 책은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궁금했다.

이 책은 성인 남성 심리의 기본 구성요소로 네 가지 원형이 있다고 전제한다. 제목에 나와 있듯이 그 원형은 왕, 전사, 마법사, 연인이다. '어른이 되지 못한 남성들을 위한 심리 수업'이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도무지 어떤 책인지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칼 융을 계승하는 정신분석학자로서 정신분석치료와 심리상담을 해왔던 로버트 무어, 신화학자이자 목회 상담가인 더글러스 질레트의 공저다.

서문에서 저자들은 20세기 말 남성 정체성이 위기에 봉착한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원인을 두 가지로 분석한다.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성년의식'의 실종과 여성성뿐 아니라 남성성에도 위협이 되는 '가부장제'다. 특히 가부장제에 대해, 소년 심리의 표출이고 남성성의 어둡고 광적인 면을 부각시킨 미숙한 단계의 남성성의 표현으로 규정한 부분이 새롭게 다가왔다.

나아가 저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처럼 남성성의 약화가 필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남성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때의 남성성은 소년을 벗어난 성숙한 남성성을 의미한다. 이 책은 이런 기본 입장을 바탕으로, 남성 안에 가진 소년의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는데 소년기의 원형은 성숙한 남성의 원형으로 이어진다.

성장 단계에 따라 소년기의 첫 원형은 신성한 아이, 그다음이 조숙한 아이와 오이디푸스적 아이, 마지막 원형은 영웅이다. 이 원형들은 성숙한 남성의 원형으로 이어질 때 각각 왕, 마법사, 연인, 전사가 된다. 여기서 잠깐,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게 될 '원형'에 대한 의미 파악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

칼 융과 그의 학파는 사람들의 심리가 '집단 무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발견했고 이것은 인류의 오랜 본능적 패턴과 에너지로 구성된 것이다. 집단 무의식을 이루는 원형들은 우리 행동의 근원이고 이미지를 창조한다. 소년기의 원형 중 오이디푸스적 아이의 그림자 원형을 소개해보면 마마보이와 몽상가다. 마마보이는 자기애가 강하고 자위행위와 포르노의 강박적 사용에 심취한다. 반면 몽상가는 고립감을 느끼고 인간관계에서 단절되며 상상의 세계에서 살고 부정직하다.

이 책은 소년기의 원형을 피라미드 구조와 함께 하나씩 서술한 이후, 본격적으로 왕, 마법사, 연인, 전사를 다룬다. 왕 원형은 가장 중요하면서 다른 원형들의 바탕이 되지만 마지막으로 작동된다. 선량하고 생산적인 왕은 훌륭한 전사이자 마법사, 연인이 된다.

왕의 원형에서, 저자들은 고대의 신화, 설화, 전설에 나타난 왕을 살피고 그 속에 있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알려주며 두 가지 그림자 원형인 폭군과 나약한 왕을 서술한다. 현실 속에서 폭군 유형은 비판에 매우 민감하고 겉으로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나 실제로는 쉽게 무력감을 느낀다. 나약한 왕 유형은 내면의 중심이 없고 안정적이지 못하며 피해망상을 가진다. 핵심은 자신의 자아를 왕 에너지와 동일시하지 않는 '인지적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내재된 왕 에너지에 하인 된 자세"를 가질 때, 선량하고 정당하며 충만한 왕의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다.

전사의 전통은 전쟁으로 채워진 인류 역사, 모든 문명을 봐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전사의 특징 중 하나인 '공격성'을 삶에 대한 자세를 일깨우고 행동의 동기를 부여해주며 전진하는 동력으로 의미 부여한다. 어떤 때 공격성을 가져야 할지, 명확하고 분별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 '파괴' 이미지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하는데, 전사가 파괴되어야 하는 것, 가령 부패, 독재, 억압, 불의 등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관점이다.

전사 에너지는 인생의 덧없음을 알고 자의식에 빠지기보다 적극적인 삶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저자들은 전사 에너지를 다른 성숙한 남성 에너지와 결합했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지도 적고 있다. 한편 전사의 그림자 원형은 새디스트와 매저키스트다.

마법사는 지혜로운 사람이며 첨단 기술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이 책에서는 성경에 나온 나단 선지자를 다윗왕의 마법사로 예를 들거나 전통 사회의 주술사, 고대 영지주의자,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로 이어지는 마법사의 자취를 언급한다. 지식과 기술 양면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심층 심리학이 현대 물리학과 상통하는 지점은 모두 사물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법사 원형은 사려 깊음과 심사숙고의 원형으로, 내향성 에너지다. 이때 내향성이란 "내면과 외부의 폭풍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내면의 깊은 진실과 사고의 원천에 접목"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법사의 그림자 원형으로는 조작자와 '순진한' 사람인데, 순진한 사람의 숨겨진 동기를 타인에 대한 질투로 본다.

마지막으로 연인 원형은 외부 환경에 대한 감수성 에너지다. 이런 감수성은 열정을 수반한다. 이는 삶의 즐거움뿐 아니라 타인과 세상과의 일체감에서 오는 고통도 느낀다. 연인의 모습은 넓은 의미의 예술가, 심리학자나 심령사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모든 예술적 혹은 창조적 일들은 연인의 에너지와 관련된다.

연인의 그림자 원형으로는 중독자와 무력한 연인이 있다. 연인은 다른 남성 에너지를 인간적이고 애정 넘치게 서로 연결시키며 험난한 세상에서 잘 적응하도록 한다. 물론 연인도 다른 남성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저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연인을 억압하며 살아서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감정이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취급되고 만다.

"고대 왕의 자비심과, 고대 전사의 용기와 결단력, 고대 마법사의 지혜와 연인의 열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던져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도전에 응하는 위대한 개인이 되자."(222쪽)

결론에서, 저자들은 위와 같은 선포와 함께 네 가지 원형을 접하기 위한 기술 몇 가지, 일종의 심리훈련을 추가적으로 서술한다. 간략하지만 실제적인 적용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또한 남성과 여성은 서로 적이 아니라면서, 그들의 적은 "유치한 허세와 거기에서 비롯된 자기분열"이라고 덧붙인다. 이 책 안에는 테스트가 별지로 첨부되어 있어서, 성격 테스트처럼 남자들의 심리적 원형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 제시된 남자들의 네 가지 원형처럼, 고대 인류로부터 기인한 여자들의 원형들은 무엇이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들었고, 저자들이 오늘날 더 강한 남성성이 필요하다고 말한 부분에서는 다른 학문 혹은 사유와의 통합적 이해가 필요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네 가지의 그림자 원형들이 출몰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적, 신화적, 심리적 차원에서 접근한 남자들의 원형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적어도 가족의 성향에 대해 모든 남자들의 특성으로 퉁치듯 대하지 않고 디테일하게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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