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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꿈틀 마음 여행
장선숙 지음, 권기연 그림 / 예미 / 2021년 6월
평점 :
내가 속했던 교회 청년부에서 소년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 혼자 가는 게 아니었는데도 '콩닥콩닥'이었다. 이 책에 나온 '콩닥콩닥'이 그리운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연관되었다면, 나는 좀 무서운 마음 때문에 그랬다. 편견이었을까. 그냥 낯선 공간,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작 대면한 아이들은 교회 주일학교에서 보는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이후 지속적인 방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 만약 다시 그곳에 간다면 나는 그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이 책은 교도관이 된 지 30년이 넘었다는 저자가 쓴 에세이다. 교도관 생활의 에피소드를 담은 책은 이미 출간된 바 있는 듯하고, 이 책은 특별하게 모양을 나타내는 우리말 의태어들로 저자의 추억, 소소한 일상과 감상을 엮어냈다.
이 책은 크게 겨울, 봄, 여름, 가을, 환절기로 구성하여, '쉬엄쉬엄'부터 '홈착홈착'에 이르는 의태어들을 선보인다. 이런 발상 자체가 매력적인 책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의태어를 끌어모아 이야기를 펴낼 생각을 했을까.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에서 뒤척거림, 뭉그적거림, 꿈틀거림 등을 말한다. 그저 이 책으로 독자들이 편안하게 쉬고 기운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각 의태어별 글마다 권기연 님의 예쁜 캘리그라피를 만날 수 있다.
먼저 한 페이지씩 캘리그라피부터 읽어나갔다. 작은 그림과 함께 캘리그라피가 마음속에 잔잔히 스며든다. 저자의 글에서 뽑아낸 글귀로 손글씨를 쓴 것이니, 글의 분위기도 살짝 짐작하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라디오 방송의 조금 긴 오프닝 멘트를 읽는 느낌도 들고, 말랑말랑 감상에 젖어보기도 한다. 한 편의 글은 저자의 추억담이나 자연 묘사, 예화 소개에 그치지 않고 응원이나 격려, 제안과 권유를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사색과 실천의 장으로 인도한다.
"아장아장 걸음마 하는 아이처럼 용기내는 오늘이길 기원합니다."(22쪽)
"아쉬움들을 다시 넘실넘실 떠오르는 해마냥 밝고 따뜻하게 가꿔보면 어떨까요?"(28쪽)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설렘, 고마움, 충만함, 감동들을 내 마음 항아리에 다보록다보록 담아보아요."(30쪽)
저자는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삶의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삶의 어떤 꽃을 피울 수 있을지에 대해. 마음이 무슨 색인지, 마음이 언제 설렌지도 묻는다.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나의 꿈을 떠올려보는 시간이 된다.
"노래를 잘 못해 아직 고백을 망설이고 계신가요?
부족한 부분은 그 사람을 향한 마음으로 꼭꼭 채워 고백하세요."(128쪽)
이 구절이 사랑고백에 한정된 것은 아니리라. 사람을 대할 때나 무슨 일을 시
도할 때, 우리는 외형과 조건을 갖추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알맹이, 진심이 쏙 빠져버린 껍데기, 가식이 가득 차고 만 것은 아닐까. 또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은 더 행복하게 몰입할 다른 일을 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도 공감이 된다.
저자는 둘째로 아들을 낳은 후 "맏며느리 소임을 다한 것 같아 세상을 가진 듯한 넉넉함"이 생겼다고 말한다. '으쓱으쓱' 의태어와 관련되어 나온 표현이다. 아들 낳는 게 맏며느리 소임을 다한 것이라는 낡은 통념을 말할 뿐 아니라,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마음을 가졌다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저자는 '꾸깃꾸깃' 지폐가 구겨졌다고 돈의 가치가 없어지는 게 아니듯이, 손으로 펴고 풀로 붙이면 본래의 지폐가 되듯이,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입은 사람과 한 번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로 전과자가 된 사람도 존재만으로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입장도 밝힌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글, 한 줄 글귀와 예쁜 손글씨를 보면서 미소 지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매 페이지마다 던지는 질문들에 굳어 있던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제목 그대로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꿈틀꿈틀 올라오는 느낌이다. 잊고 지내던 사람, 감정, 가치가 파도 출렁이듯 밀려온다.
표지 그림이 한 발짝 내딛는 발에 주목했듯이, 마음이 움직일 때, 어떤 열망이 차오를 때, 우리의 발이 성큼 앞서나갈 터이다. 한 발자국이라도, 저자가 말했듯이 아장아장 용기를 내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그러기를 소망한다. 오늘 하루, 저자의 다음 질문을 내 것으로 수용해,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 생애의 최고의 순간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태어난 순간과 행복한 지금 이 순간인 것 같습니다. 그대의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일까요?"(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