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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갑 선생의 이 책을 보면서 감탄과 전율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주의 바람이 그대로 느껴지는 사진의 황홀경은 전기에 감전된 듯 말을 잊게 했다. 김영갑 선생의 사진에 대한 열정과 제주사랑이 고스란히 남겨진 두모악, 기필코 그 곳에 가보리라 꿈꾸기에 충분했다. 두모악에 가보기를 꿈꾼지 2년이 지나 생각도 못한 제주여행에 초대받았다. 넝쿨째 굴러운 행운은 2012년 11월 17일,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하는 2박 3일의 제주답사였다. 유홍준 선생님은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 본 듯, 제주에 왔으면 두모악을 들러야 한다며 일정에도 없던 그 곳으로 안내했다. 꿈꾸는 자,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정말 이루어진다~만세! 전시실 사진으로 보는 선생의 모습과 작품들은 다시 마음을 뜨겁게 했다. 그 누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선생은 예술 뿐 아니라 당신의 인생과 이름을 모두 두모악에 남겼다.
'나 두모악에 왔어!' 마음으로 소리쳤고, 사진에서 맛보던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체감하던 순간은, 김영갑 선생께 빙의된 듯 숨쉴 수가 없었다.
선생의 제주사랑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어줄 정도로 깊었다. 1957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한 선생은,1985년부터 제주도에 정착해 살면서 제주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2005년 5월 29일 루게릭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는 돈벌이 사진 작업이 아니라서 극빈의 삶을 살았고, 스스로 외부와 소통을 차단하고 외로움을 견디며 사진에 집착한 예술인이다. 그의 인생은 가난, 고독, 투병의 3중주였지만... 그에겐 제주가 있고 사진이 있었다. 선생의 사진만 봐도 가난과 고독이 배인 예술가의 포스가 느껴진다.
이 책은 겉표지를 벗기면 또다른 속표지를 볼 수 있고, 제주의 사계절을 보여주는 파노라마 사진과 다양하게 시도된 편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진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오롯이 담긴 작품은 정말 감동스럽다. 그는 사진으로 눈에 보이는 자연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건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이라 싫어했고, 작품 해설도 단호히 거절했다. 설명할 수 없기에 사진으로 담았고, 작가의 의도보다 감상자의 감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사진을 건지는 행운은 스스로 준비해야 얻을 수 있다며, 상상한 장면을 찍기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몇날 며칠을 기다리는 열정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순간을 담았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황홀경에 마음을 뺏기고,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은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의 비밀을 알아가면서 카메라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알게 된다. 바람과 싸우며 척박한 땅에 살아온 그들이 꿈꾼 유토피아 이어도의 실체가 무엇인지 탐구한다.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자기 몫의 삶을 스스로 해결하는 노인들은 그의 이정표였다. 그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동무이기도 했고, 노인들은 그에게 혼자 궁색하게 살지 말고 결혼하라고 스스럼없이 권하는 이웃이었다.
선생은 북제주군 구좌읍 대천동의 중산간 마을에 여덟 평 움막을 지어 십여 년을 사는 동안 몸을 너무 혹사한 탓에 건강을 해친 것 같다. 가난한 사진가는 굶기를 밥먹듯 했고, 험한 잠자리는 그의 몸을 무력화 시켰다. 루게릭병이란 진단을 받고 온갖 좋다는 방법은 다 써봤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몸과 마음이 원하는대로 먹으며, 자신의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에 전념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임대한 폐교를 2002년 사진 갤러리로 꾸미는 공사를 시작했다. 일년 만에 갤러리는 문을 열었고, 운동장은 제주의 소박한 것들을 모아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몄다. 아래 사진은 바람이 지나는 순간을 포착한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한 장면이 떠올라 주제음악이 귓가에 흐르는 듯했다.
선생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깊었다. 좌익으로 몰려 감옥살이를 한 아버지는 그후 술을 마시며 폭군이 됐고, 어머니는 폭력을 견디며 묵묵히 7남매를 키우셨다. 그는 함께 떠나자는 여인을 뿌리치고 제주에 와서 살면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사랑으로 바꿨다. 어머니는 인생의 스승이었고 구원이었으며, 그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고 살아가는 이유였다고 한다. 그의 상황을 알고 서울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제주에 온 형제들, 루게릭병으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그는 따뜻한 밥 한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슬픔으로 말을 잃은 형제들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돌려보낸 작별은 눈물겨웠다.
구술 형태로 씌어진 그의 투병이야기는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이 났고, 한숨을 토해내느라 책읽기를 멈춰야 했다. 가난, 고독, 투병의 삶을 마치기 전, 그는 김영갑 사진 갤러리 두모악(한라산의 옛이름)을 완성하고, 2005년 5월 29일 숨을 거뒀다.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져, 그가 사랑했던 제주에 영원히 잠들었다. 선생의 뼛가루와 숨결이 남아 있는 갤러리 마당을 걸으며 그의 인생과 예술을 생각하는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힐링'이 대세다. 그만큼 상처을 많이 받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겠지. 북콘서트나 토크쇼로 힐링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선생은 '설명할 수 없기에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135쪽)'이라고 말한다. 선생은 작품에 제목이나 그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고, 오로지 사진으로 위로와 감동을 준다. 제주를 가시는 분들은 필히 이 책을 읽고 김영갑 사진 갤러리 두모악에 들러 보시라! 선생의 삶과 작품으로 깊은 감동과 영혼의 울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두모악 입구에서 맞아주고 배웅하던 모자 쓴 소녀의 얼굴은 선생의 표정 같아서 자꾸만 돌아보고 돌아보며 떠나왔다. 속으론 '다음에 또 올게요' 되뇌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