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독일기 : 잠명편 - 눈은 자도 마음은 자지 마라
이지누 지음 / 호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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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 아무리 검색해도 출생년도를 알 수 없다. 책 속에 언급하기를 50년 세월~~ 이라 했으니 50대려니 짐작만 해본다.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우리 문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란다. '우리 땅 밟기'라는 단체를 이끌고 잡지나 신문사의 사진 편집인과 논설위원을 거쳤으며, 지금은 스스로의 작업만 한다고 한다. 저서로는 '절터-그 아름다운 만해-강원도.경상도편' '잃어버린 풍경1-서울에서 한라까지' '잃어버린 풍경2-백두산을 찾아서' '이지누의 집이야기' '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가 있다. 

리뷰를 쓰면서 이렇게 작가에 주목해 보긴 처음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사람 참 독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2002년 중양절부터 90일간 선현들의 말씀을 읽고 관독일기를 쓰는 걸 8년째 계속하고 있다니, 어찌 독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남의 가정사가 왜 궁금할까마는 이 사람 결혼은 했는지, 결혼했다면 그 부인이 참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자신에게 엄격하고 독특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됐다.

관독일기(觀讀日記)는 '책만 읽는 바보'라고 알려진 형암 이덕무가 음력 9월 9일 중양절 이후 11월말까지 90일 동안 책을 읽고 소감과 서평을 붙인 관독일기를 보고 따라 했는데, 이 책은 2007년 10월 19일부터 2008년 1월 16일까지 쓴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받은 것은 11월 중순이었으나 쉽게 손에 잡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 2월중순 2층 세입자와 목청을 돋우는 일이 생겨, 내 마음을 다스릴 겸 비로소 읽기 시작했다. 나의 언행을 돌아보며 거울에 비춰보기는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지 싶다. 이 책의 저자도 잠과 명을 읽으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적나라하게 비추기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 언행을 조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갖고자 들춰보게 된 것이다.

잠(箴)은 누구에게 보이는 글이 아니고 자신의 허물을 예방하고 반성하며 결점을 보완하려고 짓는 글이고, 명(銘)은 스스로를 반추하며 새기는 글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하룻밤에 좌르르 읽을 책이 아니다. 하루 한 편씩 읽으며 마음에 새기는 독서를 해야할 책이다. 나는 열받은 마음을 달래고자 몰입해 하룻만에 읽었으나 리뷰를 쓰기까지는 또 한 달이 흘렀다. 감히 어줍잖은 말로 내 감상을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책을 나누려고 어머니독서회 3월 토론도서로 정해 오늘 토론을 했다. 다들 저자가 독한 사람이라 공감했고, 우린 흉내도 낼 수 없노라 고백했다. 오로지 한 회원이 책읽기를 시작한 날, 딱 하루 일기를 쓰고는 다음 날은 잊어버렸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 책을 읽고도 그 약발이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 나는, 올 가을 10월 19일부터 한 편씩 다시 읽으며 새기겠다고 말했더니, 그도 좋은 방법이라며 잠자기 전 한 편씩 읽고 묵상하던지, 아침에 마음을 가다듬고 읽는 것도 좋겠다고 호응했다.

저자에게 잠과 명을 들려준 분은 장유, 신흠, 이규보, 최한기, 허균, 기대승, 안정복, 이식, 이덕무, 정약용 등으로, 선현들의 주옥같은 말씀이 담겨 있다. 책을 읽어가며 나의 무지함에 부끄럽고 성현들의 지혜로움에 감탄하며 밑줄긋기에 바빴다. 깊이 사유하지 않고 살아온 나날들이 부끄럽지만, 또 다시 그렇게 살아갈 것을 알기에 책을 읽으며 내내 부끄러웠다. 약발이 사흘이라도 자꾸 말씀을 새기다 보면, 좀 더 성숙한 인품을 갖게 되지 않을까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리며 좋은 말씀을 옮겨 본다. 

언어는 침묵을 통해 깊어진다.
차라리 낮을지언정 높지 마라.
눈은 자도 마음은 자지 마라.
홀로 갈 때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세 번 생각하고 세 번 침묵하라. 

2층 세입자가 이사하고 모든 일이 마무리 되는 3월 2일까지 보름을 시달리면서, 나름 침묵하거나 맞대거리를 중지했던 건 바로 이 말씀 때문이었다. 나를 돌아보며 언행을 삼가할 수 있었으니 어찌 좋은 책이 아니겠는가! ^^

그대 입을 다물어라  멍청한 바보처럼
속이 시끄러운 사람  싸움질하고 치달리지
이것이 병통이라  침묵 해치는 적이로세
그대 정신 수습하여  공허한 경지에 놔 두게나
깊고 깊은 연못 속 外物에 동요되지 않나니
그대의 삶 텅 비우면 만물을 포용하리
때때로 꺼내 써도 고갈되지 않으리니
아 이것이 바로 침묵하는 이유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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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3-24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지누씨 책이었군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독서가 뭉클합니다. 천천히 읽어서 곱씹어야 할 책들이 있지요. 리뷰 잘 보았어요.^^

순오기 2009-03-25 11:00   좋아요 0 | URL
곱씹고 곱씹어 읽고 또 읽으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겠죠~~~ ^^

글샘 2009-03-2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루룩 읽기의 제 스탈을 버리고, 이 책은 야금야금 읽고 있습니다.
스스로 부끄럽게 만들죠. ^^

순오기 2009-03-25 11:0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 책은 주루룩 읽으면 절대 안되는 책~~
그런데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 날마다 부끄러워서 살기 힘들거 같아요.^^
 
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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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작가의 어른을 위한 동화, 바로 내 어린시절 이야기라 공감이 갔다. 삽화가 곁들여진 한편의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추억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농부인 박기도씨나 그 딸 재희가 아닌 똥친 막대기가 주인공이다. 백양나무 곁가지였던 똥친 막대기는 재희네 가족의 삶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똥친 막대기의 시선으로 본 재희네 가족 이야기와 더불어 산전수전 다 겪은 똥친 막대기가 나무로 뿌리 내리는 야무진 꿈을 이루는 즐거운 감동이 있다.  

챕터 하나의 에피소드가 한 편의 단편소설 같은 맛이 난다. 화물차 기관사인 이장의 아들이 날마다 마을 앞을 지나며 울려대는 기적소리에, 놀란 암소가 써레질을 하다 달아나 버려 휘초리로 쓸려고 백양나무 곁가지를 자른 박기도씨. 하지만 새끼를 가진 암소의 등짝을 때리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막대기를 집으로 가져와 싸리울에 세워두었지만, 공부가 형편없다고 회초리를 가져오라는 엄마의 서슬에 회초리를 찾는 재희의 손에 들린 막대기. 엄마는 재희가 빌거나 도망치기를 바랬지만 당당하게 목침 위에 올라선 재희의 종아리를 세차게 내려친다. 말리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면서... 

매를 맞고 쓰러진 딸을 끌어안으며 눈물 흘리는 엄마는 연고를 발라 주고, 다음 날엔 학교도 쉬게 한다. 부모 마음은 다 이런 것이거늘... 나도 어린시절 매맞을 일이 있으면 빌거나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맞았다. 훗날 엄마는 도망칠 줄도 모르냐면서...에미 맘을 그리도 모르냐고 푸념하셨다. 내가 엄마가 돼 보니 그 마음을 알겠더라. ^^ 

재희의 종아리를 때리게 된 막대기는 측간으로 쫒겨나고, 항아리를 묻고 발판을 걸친 측간에서 볼일을 본 박씨는 똥덩어리가 빨리 삭아 거름이 되라고 휘휘 젓는 똥친 막대기로 쓴다. 아~ 이 일을 어쩐다냐? 그 오물을 뒤집어 쓴 막대기의 운명은 이렇게 끝날 것인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몸을 버린 똥친 막대기는 동무들의 놀림에 당당히 맞서는 재희의 손에 들려 위력을 과시한다. 나 어릴때도 이런 녀석들이 있었다.ㅋㅋㅋ 

재희의 손에 들려 논에 나간 똥친 막대기는 파리 한마리 꿰어진 낚시대가 되어 개구리를 잡아 올린다. 착한 딸 재희는 엄마의 몸보신을 위해 똥친 막대기의 허리가 휘어지도록 개구리를 잡았다. 나도 어릴 때 동무들이 잡아온 개구리를 깡통에 끓여 뒷다리 하나 떼어 주길래 먹어 봤는데 닭고기 맛이었다.^^ 

낚시대에 임무가 끝나자 졸지에 봇도랑에 버려진 똥친 막대기는 홍수를 만나 떠내려 가다가, 돼지 등에 올라타고 넓은 들판으로 나와 드디어 뿌리 내릴 곳에 이르게 된다. 회초리 매에서 똥친 막대기와 개구리 낚시대도 되었지만, 홍수에 떠내려 오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꿈을 접은 적이 없었다. 똥친 막대기는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어미나무가 살았던 것처럼 몰아치는 비바람과 천둥 번개에 겨울 칼바람을 이겨내며 의연하게 살아갈 것이다.  

수채화 같은 내 어릴 적 고향 풍경을 그려내며 생명 철학을 담아 낸 어른들을 위한 동화 똥친 막대기는, 어른들에겐 유쾌하고 따뜻한 추억여행을 선사하고 어린이들에게 옛날엔 이런 뒷간에서 볼일을 봤구나~ 이해하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강산의 삽화가 참 정겹고,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발견하는 기쁨은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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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9-02-1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똥친막대기가 그런 데 쓰이는 거였군요. 뜻을 이제서야 알았다는 ... ^^;

순오기 2009-02-19 00:38   좋아요 0 | URL
흐흐~ 시골 출신이 아닌 분들은 잘 모르실 듯...
저런 측간에서 볼일을 본 적도 물론 없겠죠?^^

마노아 2009-02-19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대기가 주인공이었군요. 표지 그림의 단발머리 아이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자주자주 들여다보았는데 보관함에만 계속 머물러 있었거든요. ^^

순오기 2009-02-19 02:52   좋아요 0 | URL
그림도 스캔받아 한 컷 정도 올려볼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2-1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목부터 만점 인데요 ^^;;
저는 기억에 없는데 어릴때 사진보니까 비료포대 하나가득 개구리를 잡아서 한마리는 손에 기념으로 들고 찍은 사진이 있더라구요.. 그땐 개구리가 많았나봐요.

순오기 2009-02-20 01:35   좋아요 0 | URL
개구리가 많았죠~ 우린 풀꿰미에 줄줄이 꿰어 잡아오면 삶아서 닭에게 먹였어요.^^
 
잘 읽고 잘 쓰기 - 초등학생을 위한 통합교과논술
윤성근 지음, 연두스튜디오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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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실에서 빨간색이 눈에 확 띄길래 집어왔는데 기대만큼 알차지 못하다. 부제는 초등학생을 위한 통합교과논술이라고 되어 있는데, 대상을 어디에 두고 집필했는지 명확치 않다. 게다가 저자가 초등생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해 봤는지 묻고 싶다. 이 책은 초등생을 위한 이론서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많다. 차라리 부모를 위한 글쓰기 지도책으로 컨셉을 잡았더라면 좋았을 듯... 글쓰기나 논술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막연한 부모가 읽으면 도움은 될 듯하다.

글쓰기의 첫걸음, 글의 구성, 글의 내용, 글쓰기의 사례까지 네 개의 챕터에 소제목은 꼭 필요한 것들을 짚어 주었지만, 설명은 썩 잘 된 것 같지 않다. 초등 고학년을 위한 글이라도 예문이 적절하지 않다.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설명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저자가 초등생을 지도한 실전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논술 관련 책을 선택할 때, 실전 경험이 있는 저자가 쓴 책을 선택하면 후회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소제목으로 뽑은 것들을 잘 활용하면 글쓰기는 분명 좋아질 것이다.
*글쓰기의 첫 걸음
1.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2. 글감을 평소에 잘 모아 두자.
3. 일기를 써 보자.
4. 독후감을 써 보자.
5. 정서법을 익히자.
6. 시를 많이 외우자.
7. 고전을 많이 읽어 보자.
8. 좋은 글쓰기는 내 안에 있다. 

*글의 구성
1. 첫머리를 잘 시작하자.
2. 글의 구성에 유의하자.
3. 겉모습보다 원모습을 주의 깊게 살피자.
4. 앞뒤 문장의 연관에 유의하자.
5. 단락을 잘 짓자.
6. 쓰고 나서 고쳐 보자.

*글의 내용
1.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자
2. 소박하게 쓰자
3. 다르게 생각하자.
4. 창의적으로 쓴다는 것. 

*글쓰기의 사례라고 되어 있는데 주제 토론이 나온다. 토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한 독자에게 유익할 듯하다. 하지만 토론 후에 실전 글쓰기 예문이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딸랑 하나 뿐이라 아쉽다. 초등생들은 논술 쓰기에 100자, 200자~ 점차 늘려가며 써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지만 논술 관련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원론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할 듯. 저자도 서문에서 밝혔지만,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많이 읽고 써보는 것, 글쓰기는 생각쓰기라 깊이 있게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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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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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다의 기별'을 읽은지가 벌써 일주일이 넘어서니 가물거리지만, 내 딴에는 읽은 감동을 숙성시켰다고나 할까! 그의 책을 읽고 어줍잖은 몇 마디로 리뷰를 쓴다는 게 송구할 뿐이다. 그의 문장에 감탄하며 압도되듯 밑줄을 좌악 그었고, 무엇보다 그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좋았다. 에세이는 저자의 삶이 담겨 있기에 나와 같이 숨쉬는 김훈을 만난다는 것, 그의 살내음을 맡는다는 것이 좋았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은, 카리스마의 그도 따듯한 인간애가 물씬 풍기는 아버지라는 것! 

허클베리핀의 아버지 같았다는 그의 아버지. 광야를 달리는 말이었지만 달릴 광야가 없었던 시대에, 그의 아버지는 기자였고 무협소설도 썼다니 그의 글발은 아버지로부터 유전이구나 짐작해본다. 그의 아버지 이야기는 짠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병석에 계신 아버지의 아랫도리를 살필 때, 아버지도 울고 자신도 울었다는 이야기는 내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을 떨구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 파이프를 훔쳐내 담배를 태우다 뺏겼을 때, 학교에서 찾아 아들에게 건네며 한마디 하셨다. 청소년들은 이런 아버지가 부러울까?^^
"너 가져라, 학교에는 가져가지 마라. 너, 담배 줄여."

그는 딸이 취직해서 첫 월급으로 사온 핸드폰과 용돈 15만원을 즐거이 받는 아버지다. 일상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더라도, 무사한 순환이 계속되는 걸 행복으로 삼는 평범한 아버지다. 그는 귀가가 늦어지는 딸에게 전화해서, "운전 조심해라." 말하는 우리들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라는 글에서, 긴급조치 4호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형법 상의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던 사위 김지하가 형집행정지로 영등포 교도소에서 출감하던 날, 10개월 된 손자를 업고 마중 나온 박경리선생을 관찰했던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기어이 나를 울렸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만, 그 여인네의 등에 매달린 아이가 발이 시려우면 안 될 텐데. 그런 걱정만을 했다. 지방판 마감이고 뭐고 간에 어서 빨리 저 여인네의 용무가 끝나서 그 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이 추운 언덕의 바람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만을 했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서, 나에게 없었던 따듯한 것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울음에 가까운 따듯한 것들이 돋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이었던가, 나는 지금 그 20년 전의 따스함의 정체를 겨우 입을 벌려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것은 나에게 감염된 그 여인네의 모성이었으며 허름하고 남루한, 그 풀포기와도 같은 무력과 무명의 모습이야말로 그 여인네의 힘의 모든 원천이었음을."(89~90쪽)

 
   

스물두 살 영문과 학생이었던 그가 만난 '난중일기'는 그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버렸다. 낭만과 이상을 꿈꾸는 문학이 현실을 말하기엔 얼마나 빈약한지 깨닫고 학교를 접고 군대를 갔고, 제대해선 내 밥을 벌어먹으려고 신문사에 들어갔단다. 난중일기를 만난지 27년이 지나 '나의 언어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날, 난중일기와 이순신이 처한 절망에 대해 무언가를 쓸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37년이 지나서 두 달만에 엄밀히 말하면 40일만에 '칼의 노래'를 써버렸단다. 일체의 수사 없이 사실만을 기록한 난중일기에서 글쓰기의 진수를 발견했고, 언론과 담론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은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다 말한다.  

자신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고귀함을 언어로써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말미엔 부록으로 그의 소설과 소설집 서문과 에세이집 서문, 문학상 수상소감이 수록되어 그의 작품과 그를 알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바다의 기별은 작가이며 아들이고, 아버지이며 시민인 김훈이 말하는 사랑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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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1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김광주 씨의<정협지>가 나오던데요.저에겐 김광주 단편 몇 편이 있어요.아직 안 읽어봤지만...

순오기 2009-01-18 10:22   좋아요 0 | URL
김광주씨가 김훈의 아버지군요. 책에선 이름이 안 나오고, 무협지가 잘 팔릴 때 장안의 술값을 다 내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리고 당대의 글쟁이들이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벼락을 맞아 '우리들의 시대는 이미 갔다'고 밤새 술마시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이야기가 나오죠.^^
아무래도 노이에님과 같은 광주에 사니까 한번 만나야겠어요.ㅋㅋ 우리딸은 요즘 작은할아버지(6.25때 돌아가셨을거라 짐작됨)가 남긴 6.25때 일기를 읽고 있는데, 태백산맥과 남부군에 묘사된 것들과 같은 상황을 보고 있지요. 현대사 관련 과제물에 적용한다고 연구하고 있어요. 나중에 일기를 사진으로 한번 올려볼게요. 노이에님도 관심이 생길거예요. 다른 분들이 남긴 일기도 있거든요~~ 아마 귀중한 자료가 될 거예요.^^

노이에자이트 2009-01-18 16:21   좋아요 0 | URL
그런 중요한 일기는 순오기 님 가문에서 먼저 연구해야겠는데요.어느 정도 해당 시기에 대한 공부를 한 다음 그 당시를 체험한 고령자와 이야기를 해보면 생생한 지식을 얻을 수 있지요.따님이 그 방면에 관심이 있나 보군요.

프레이야 2009-01-1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은가요? 그런 것 같군요, 오기님 리뷰를 보니.

순오기 2009-01-18 10:16   좋아요 0 | URL
김훈의 에세이는 많이 읽지 않아서, 그를 알아가는게 즐거웠어요.
도서관에 있으면 한번 보셔요.^^

메르헨 2009-01-17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소설 이외의 글은 별로라 계속 어쩔까 했는데 순오기님 리뷰를 보니 봐야겠네요.^^

순오기 2009-01-18 10:17   좋아요 0 | URL
저도 김훈의 소설만 봤기에, 그가 이런 사람이구나~ 알아가는게 좋았어요.^^

소나무집 2009-01-18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한산성> 읽다가 짜증나서 그의 글이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순오기 2009-01-18 10:19   좋아요 0 | URL
흐흐~ 남한산성, 정말 읽기 힘들었어요. 나도 재작년 8월1일부터 사흘간 삐대며 읽었어요. 리뷰 제목을 '답답한 남한산성'이라고 붙였지요.^^

가시장미 2009-01-1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시어머니께 선물로 드렸어요. 읽고 싶었던 책인데, 저도 김훈의 책이라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답니다.
좀 어둡고 무거운 면이 많을 것 같아서요. 나중에 아이낳고 봐야겠죠? :)

순오기 2009-01-18 21:40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선 어둡고 무거운 면은 없어요. 편하게 볼 수 있어요.^^
 
다시 쓴 리뷰~ 천사들의 행진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야누슈 코르착 지음, 노영희 옮김 / 양철북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3학년때부터 초등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는 큰딸이, 교대에 가서 1년 공부하고 돌아와 한 말이 생각난다. 공부를 하면서 엄마가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지 짐작하게 됐고, 지금 자기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의 근저에 엄마가 끼친 영향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고. 엄마가 어떤 성향인지 또 엄마의 그런 마인드가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그래서 뭐가 잘못 됐다고 생각해?" 물었더니, 딱히 잘못 됐다고 말할 건 없는데, 엄마가 이렇게 안 했으면 우리가 또 달라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였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자식을 키우는데 정답은 없다. 아이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기에 아무리 좋은 말씀도 모두에게 들어 맞는 건 아니다.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양육 태도가 다를 수 있고, 양육 태도에 따라 결과도 천양지차로 다를 수 있다. 누구도 자녀 교육에 모범답안을 제시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을 대하는 기본 자세에 대해 조언해 주는 좋은 책이 있다.  

야누슈 코르착, 그는 2차대전 당시 희틀러의 유대인 말살 정책 희생자로 200여명의 유대인 고아들과 같이 죽어간 진정한 교육자이고 철학자였다. 자신은 살 수 있었지만, "당신의 아이가 아프고, 불행하고, 위험에 처해 있다면, 당신은 그 아이를 버리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200명이나 되는 우리 아이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라면서 함께 죽음의 기차에 올랐다. 그는 평생을 바쳤던 고아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말을 몸소 실천한 사랑의 아버지였다. 그가 말만 내세우는 사람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그의 글들은 이론가가 아닌 실천가인 야누슈 코르착의 잠언이기에 감동을 준다.  

아이들은 정직합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아이는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얘기할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연히 알게 된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침묵은 때때로 정직함을 표현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표현대로 침묵은 정직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양심에 비추어보거나 경험으로 안다. 그가 우연히 발견한 것은 아닐진대, 그는 우연이라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이다. 진정으로 어린이를 사랑하고 이해한 그의 삶에서 얻은 진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표정을 읽습니다.
마치 농부가 하늘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듯이.
어린이는 자신의 환경을 잘 압니다.
분위기, 습관, 결점 등을.
어린이는 그것을 능숙하게 이용할 줄 압니다.
친절함을 느끼고, 거짓을 알아차리고,
어떤 것이 엉터리인지 알아차립니다.
그것은 이미 여러 해 동안 그것을 관찰하고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코르착은 어린이를 어른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한 사람이다. 가식이 아닌 진정한 삶으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글은 그의 삶에서 나온 빛나는 잠언이다. 어느 구절이든 허투루 읽을 수없는 마음에 새겨야 할 명문이다. 비록 내가 다 실천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런 마음을 갖고 어린이를 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특히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엄마의 양육태도를 평가하기에 도달한 우리 딸에게도 일독을 권해야겠다. ^^   

이 책의 저자가 '야누슈 코르착'으로 되어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는 아니다. 코르착의 저서 '어린이를 사랑하는 법'과 '어린이 존중'에서 좋은 말씀을 옮겼다고 샌드러 조지프는 서문처럼 밝히고 있다. 후반 40쪽은 코르착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고 있어, 야누슈 코르착을 저자로 표기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제목을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이라고 했으니까 저자를 '샌드러 조지프'로 표기해야 옳을 것 같다. 샌드러 조지프는 야누슈 코르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코르착은 존경받고 인정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그가 순교자여가 아니라, 그가 위대한 작가에다 의사여서가 아니라, 불쌍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계에 비할 데 없는 기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이를 깊이 믿고 사랑했으며, 그 사랑 때문에 살고 또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코르착은 전정으로 '어린이들의 투사'였다. (18~19쪽)  
   

이 책은 강무홍의 글과 최혜영의 그림으로 양철북에서 나온 '천사들의 행진'과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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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1-1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 짠하게 만드는 리뷰예요. 민주의 한 해 한 해가 또 기대가 되기도 하구요. 큰 딸이기도 하지만 역시 독서의 힘인지 생각하는 것이 늘 성숙해요.

순오기 2009-01-11 00:18   좋아요 0 | URL
눈물이 났어요?
빛나는 20대를 누려야 할 민주가 방구석에서 빈둥거려요~ 그래도 날마다 책 한권씩 읽는 것만으로 칭찬해야죠.^^

꿈꾸는섬 2009-01-1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장바구니로 바로 담아요. 꼭 읽고 어떤 엄마가 되어야할지 많은 고민을 해야할 것 같아요. 늘 아이들에게 부대끼는게 벅차고 힘들어하는 섬.

순오기 2009-01-11 00:19   좋아요 0 | URL
잠언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해야겠죠?
좋은 말씀이 많아서 다 담기에도 벅차지만요~ ^^

bookJourney 2009-01-11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도 생각이 참 깊은 것 같아요.(민주의 글이 궁금해졌어요. ^^)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는 확신이 팍팍 들어요.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리뷰에요. 저도 이 책 보관함에 담아둡니다.

순오기 2009-01-11 18:26   좋아요 0 | URL
민주는 책을 읽고 노트에 짧은 글이라도 남기더라고요.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죠.^^ 이젠 엄마를 평가하고 있어요.ㅜㅜ

후애(厚愛) 2009-01-1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을 존경하고 사랑해요~
큰따님이 훌륭한 선생님이 될 거라고 믿어요.^^

순오기 2009-01-11 18:27   좋아요 0 | URL
엄마가 되는 건 또 하나의 축복이죠~
우선 좋은 선생님이 되면 훌륭한 선생님도 될 수 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