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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김성윤 지음 / 북인더갭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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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나 'specialist' 같은 표현에 비하면 '덕후'에서는 왠지 저급한 이미지가 느껴진다. 사실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스러운 '오타쿠'라는 단어는 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이다.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오덕후'라고 불리면서 뭔가 소외된 외골수의 광기를 부르는 말처럼 그 의미가 폄하되었다. '덕후'라는 단어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우호적인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본다면 소위 '덕후'라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지식과 전문가다운 통찰, 다양한 접근방식에 놀라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덕후감'이라고 썼다고 밝혔지만 이 책은 대중문화의 '덕후'만 쓸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특히 어떤 현상에 대해 몇십년을 오가며 논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랜시간동안 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과거 문화평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식이다. '허무개그'가 대중들 사이에서 만연하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고 그로 인해 사회가 건조해 지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라거나, '만득이 시리즈'가 인기를 끈다는 것은, 컴퓨터 등 첨단문화에 짓눌린 신세대들이 귀신이야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같은 식이다. 이 말은 얼핏 듣기에 그럴듯 해 보이면서도 억지스러운 면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무슨 평론가라고 하면 으레 '하나마나한 소리를 어려운 단어를 들먹이며 특별한 척 포장해 본인만 알고 있는 사실처럼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런 말을 미리 하는 것은 물론 이 책이 기존의 그런 선입견과는 달리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라는 부제를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I show not your face, but your heart's desire(p.9)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해리포터의 이 한 문장처럼 적절한 말도 없을듯 싶다. 대중들의 소망이 담겨 있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믿는 것, 그럼에도 사실은 자신들이 끌려가고 있는 것이 대중문화이다. 저자는 크게 6부로 나눠 '대중문화'라고 하면 떠올릴만한 컨텐츠들을 끌어모아 이 책을 구성했다. 당연히 그 첫번째는 아이돌 문화가 빠질 수 없고 다음으로 명품 문화, 이데올로기와 문화,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화 같은 내용들이 순서대로 실려 있다. 대중문화는 개인적으로 무척 관심있는 분야라 내 생각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 독창성과 색다른 접근법에 고쳐 앉아 읽게 된 책이다. 아이돌 문화에서 '성(性)'적인 코드를 읽는 정도야 예상 가능하지만, 팬덤문화에서 시작된 동생애 코드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 판타지의 발견, '삼촌팬'이라는 용어에서 내포하는 '성적욕망의 금지'를 공식화 한 채 감춰진 내밀한 욕구처럼 생각지 못한 디테일이 흥미를 끌었다. 또한 재범사건에서 등장하는 '애국주의'의 한계, 실제의 욕망을 감춘 채 그것을 다른 것으로 포장해버리는 대중의 공격, 그것을 방어하면서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팬들의 어쩔수 없는 한계와, 이를 통해 보는 SM과, JYP, YG의 확연히 다른 대처 방향과 색깔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여러 장이 재미 있었지만 특히 재미있게 본 장은 5장이었다. '정치의 소실점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윤리'를 다룬 이 장은 캠퍼스 드라마로부터 시작한다. 1987년을 기점으로 캠퍼스 드라마의 재현은 그 이면의 지향점을 이전과 달리하는데 이는 다분히 정치적이면서 경제적 의미를 담는 변화였다. 홍학표의 첫사랑 배종옥이 위장취업으로 감옥에 다녀온 문성근을 사랑한다는 설정은 그 당시까지 남아 있던 정치적 메시지가 다소 잔존함을 보여주는 출발점이었지만, 그 마지막에 가서는 소비지향적 대학생의 재현으로 막을 내린다. 이 바통을 이어 받은 '내일은 사랑'은 아예 대학생 문화에서 크게 위축된 정치적 포지션을 배제한 채 시작되고, 이는 '카이스트'에서 경쟁과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로 완전히 정착한다. 신자유주의 스토리는 영화에서도 드러나는데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은 '공각기동대'였다. 특히 철학적인 메시지 해석에 열을 올리던 나는 이러한 접근 방식이 처음에는 다소 무리라고 느껴졌지만, '어벤저스', '아이언맨'으로 넘어가는 그의 논리를 따르다 보니 매우 근거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흐름은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선악 대결 구도에 골몰하던 관객에게 새로운 시사점-시스템을 위협하는 것은 무조건 악인가-를 제시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아쉬운 점은 이 책이 과거의 기고문을 모으다 보니 최근 문화에 대한 분석글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다행히 마지막 장에서는 '국제시장'과 '변호인'이라던가 '케이팝 스타', '무한도전'에 대한 분석이 실려 있어서 괜찮았지만 최근의 문화를 중심으로 후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여기 실려 있는 문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대중문화를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 것 같아서 지금에 대입해도 충분히 무방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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