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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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반부에서는 뇌와 관련된 연구 성과나 과학적 사실, 철학적 성취 등을 소개하고 후반부에서는 뇌에서 시작된 우리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구성돼있다. 철학적 질문과 과학적 사실이 적절히 조합되어 흥미를 유발하면서 나름의 주제에 가볍게 접근할 수 있게 쓰였다. 뇌의 무게는 1.4킬로그램이고, 뇌속에는 10의 11승 만큼의 신경세포가 10의 15승 가량의 네트워크 망이 구축되어 있다. 비교적 단순하고 명백한 과학적 사실에 비하면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놀랄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도, 수많은 위협 속에서 여태까지 생존하게 한 것도, 단순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도 모두 그 1.4킬로그램의 덩어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때문에 뇌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뇌에 대한 생각은 고대 그리스 이전부터 있어왔는데, 그것이 확연하게 갈린 것은 아리스토텔리스 학파와 플라톤 학파였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는 생각이 심장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고, 플라톤 학파는 머리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이후 갈렌은 뇌의 빈 공간(뇌실)에 들어찬 공기들이 생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생각이 이뤄지는 부분은 뇌실이 아닌 피질이었다. 데카르트는 육체는 4차원의 공간에 살지만, 정신은 1차원의 세계에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뇌가 단순한 관찰이나 철학을 넘어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골지 컬러링을 통해 뇌의 신경세포가 처음 눈으로 관찰되었고, 카할은 신경세포는 거미줄 모양이 아닌 나뭇잎 모양의 단일세포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뇌과학은 불행히도 역사적으로 처참한 시기에 발달했다. 수술을 잘못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를 연구할 수 있을 때는 오직 전쟁때 뿐이었기 때문이다. 1870년, 1914년, 1939년 등 큰 전쟁이 일어났을 때 뇌과학은 괄목할 성장을 이룩했다. 


뇌과학의 역사를 접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연스레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이는 어느 정도 답이 나왔다고 해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특히 딥러닝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의 지능이 급가속도로 발전하는 지금 인간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저자는 데카르트에서 인도철학, 마야콥스키 시에서 수많은 이들이 그렸던 자화상까지를 등장시키며 '나'라는 존재에 천착하는 인간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는 과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정말 '나'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카프카의 '변신' 우디엘런의 '젤리그' 등으로 계속된다. 특히 나치의 박해 속에 자신의 존재를 알고자 했던 유대인의 이야기, 그 중에서 유대인임을 부정하고 그들의 반대편에 섰지만 결국 죽음을 면하지 못했던 프리츠 하버의 이야기는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과학적으로는 우리 몸의 세포는 시간당 3~4만 개가 죽어나가 내가 나라는 정체성을 증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나의 존재를 계속 확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뇌세포 때문이다. 뇌세포는 거의 새로 만들어지지 않고 어릴 때의 신경세포가 늙어서까지 유지된다. 이와 함께 '이성'은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데, 우리가 매번 이성적일 수 없기 때문에 순간 순간에 과거 DNA의 선택지를 참고하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이성적이기보다 동물적인 답을 내놓는다. 이후 저자는 내가 의미있는 존재인지, 나는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과학자다운 사례와 생각들을 이야기 한다. 마지막 장에서 몇 가지 물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밝히고 글을 맺는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 분야의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주제가 잘 조합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이유는 이야기가 더 진행될듯 하다 끝난듯한 느낌 때문이다. 김대식 교수님의 글은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데 글이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대중성을 생각한 배려 같은데 조금 더 전문적으로 들어갔으면 더 재미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살짝 아쉬운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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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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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독자보다 작가 자신에게 위안이 된다. 짧은 글이라도 써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한강의 글쓰기가 그녀를 위로하는 것이라면 과연 무엇을 위로해 주는 것일까. 그녀의 소설은 대체로 무겁다. 등장인물들은 한없이 가라앉아 있으며, 종내에는 독자에게 그 묵직함을 전파시키고 만다. 나는 한번도 그녀의 소설을 편하게 덮어본 적이 없다. 그것이 내가 그녀의 소설을 읽는 이유다. 


한 남자가 찾아 온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 찾아오는 일은 흔하다. 세상에 없는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던가. 이상한 일은 '내(k)'가 진짜 보고 싶어했던 경주 언니가 아니라, 경주 언니와 각을 세웠고 갖은 노력에도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했던 임선배가 찾아온 것이다. 그와 경주언니의 갈등이 불거진 것은 k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갔던 회사 수련회에서 였다. 경주는 임선배의 얼굴에 맥주를 끼얹었다. 회사의 불공정한 원칙에 대해 내내 침묵했던 그에 대한 반감이 폭발한 것이었다. 여직원이 결혼을 하면 으레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에, 경주는 이에 맞서 싸웠고 유일한 미혼남이면서 훗날에도 회사에 남을 임선배는 침묵했다...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후에 경주는 그 역시 나서지 않았던 것일 뿐 자기 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모두와 똑같이 무력했던 것뿐인데, 나 자신부터 그토록 철저하게 무력했는데, 어째서 그 미소 짓는 얼굴에 술을 뿌릴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 믿었던 걸까?(p.28)

경주가 분노했던 임선배는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회사를 나와 시사잡지 편집부에서 일했다. 거기서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인쇄 직전 삭제되는 사건을 이유로 회사와 싸우게 된다. 싸우던 이들은 결국 그 잡지사를 나와서 새로운 잡지사를 꾸린다. (시사저널에서 시사IN으로) 그는 거기서 4년 여를 일하다 암에 걸려 생을 달리 한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어려운 형편을 잘 몰랐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선뜻 도움을 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쓸쓸한 죽음을 위로하는 글이 실리고, 한강 작가는 그 글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소설이 그녀에게 위로해 주는 것은 미안함을 대신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도와줄 수 있었던 일이든 아니든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려는 모든 이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녀의 소설은 그 빛들에게 진 빚에 대한 작은 보답 같은 것이다. 


화자인 k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암자에 한 소녀가 찾아오고 두 스님 중 한 명인 노힐부득은 그녀의 유혹이 두려워 재워주지 않는다. 나머지 달달박박은 그녀를 재우고 목욕물도 받아 준다. 다음날 노힐부득이 친구가 유혹에 넘어 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 갔을 때 그들은 모두 황금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관음보살이었다. 노힐부득도 몸을 씻고 황금 부처가 된다. 그러나 k는 끝내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없었다. 도무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같은 꿈이에요.... 

잃어버린 사람들....

영영 잃어버린 사람들.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자주 찾아온다. 그녀가 시나리오를 더 쓸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의 삶이 어느 것에도 동화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통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힘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어 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녀를 평화스럽게 했고, 그만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누군가는 부처가 되고 관음보살이 되는 기적이 세상 어느 곳에서는 일어나겠지만, 그것이 되지 않고 평화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미완'과 '방관'의 선택지만을 손에 쥔 것도 모른 채 완성의 갈증을 풀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왜 번번히 절망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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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아직 원시시대 - 진화의학자 로빈 박사의 특별한 건강 상담소
권용철 지음 / 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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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종의 유전자가 개체를 적응시키며 유전형질의 변화를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나름의 생존에 최적화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와 함께 유전자에는 과거로부터의 생존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는 의미 역시 포함되어 있다. 진화론에 관련된 서적을 보면 얼마 전에 출간된 윌슨 교수의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나 전중환 교수의 '오래된 연장통' 모리스 교수의 '털없는 원숭이' 등 제목만 봐도 그 내용을 짐작케 한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유전자들은 과거 아날로그 시대부터 전해져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까지 그 특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화론 책을 읽을 때면 심하게 말해서 나는 우리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힘이 약한 존재를 공격하게 되는 성향,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은 성향, 위협을 느끼면 비굴해지는 성향, 완벽하게 아름다운 이성에 더욱 끌리는 성향 등 우리가 하는 많은 행동들이 거의 유전자의 영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몸은 아직 원시시대'는 진화의학자인 저자의 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윈의학과 관련된 내용들이 담긴 책이다. 과거에 이와 관련된 유명한 책은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가 있는데, 이 책 '...원시시대'는 그러한 다윈의학의 좀 더 대중적인 버전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다윈의학이 시작되는 시발점은 바로, 이렇게 완벽한 인간의 몸이 왜 질병을 유발하는 그 많은 특질들을 그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도 해결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은 인간의 몸은 과거에도 그들과 절충을 해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 적정한 선을 찾아 타협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당분이나 지방을 선호해서 생기는 질병에 대해서 의아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특질이 식량이 충분치 않은 시대에는 생존에 도움을 줬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음식물이 풍부한 환경에 우리 몸은 아직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 원시시대부터 내려오던 특질로 아직 적응을 하는 중이다. 다른 예로 세균과 싸우기 위해 우리 몸은 열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세균과 싸울 수 있는 온도로 우리 몸을 유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균과의 경쟁을 위해 높은 온도를 유지한다면 열량 소모가 20%는 더 많아지고, 조직의 손상을 쉽게 가져올 수 있다. 우리 몸이 진화하는 과정은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식으로 적정선을 유지하는 시행착오의 연속인 셈이다. 

저자는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는지 아닌지에 따라 우리 몸이 적응을 어떻게 해나가는 지를 설명한다. 애벌레와 나비, 올챙이와 개구리가 같은 유전자를 갖고도 완전히 다른 모양을 갖는 것도 어떤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는 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첫 장에 나오는 고혈압의 이야기만 봐도 그렇다. 생태계에서 높은 혈압이 필요한 경우는 포식자가 먹이사냥을 하거나 초식동물이 도망을 가야할 때이다. 특별한 상황에서 혈압을 높이는 것은 사냥이나 생존에 유리했으므로 이는 계속 보존되었다. 현대인은 과거보다 더 높은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혈압을 높이는 쪽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평시에도 각성 상태에 있으므로 혈압은 낮춰질 줄 모르고 높은 상태를 유지한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사라진다면 혈압을 높이는 유전자는 꺼질 것이다.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특별한 가족력이 있지 않은데도 유난 혈압이 높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지속적인 긴장 상태에 있다는 증거이다. 유전자가 꺼지고 켜지는 것에 관계되는 것은 유전자가 메틸화 되었느냐 아닌가의 차이이다. 또 한가지는 유전자가 감겨있는 히스톤이 찌그러졌을 때 유전자는 꺼지게 된다. 둘의 차이는 전자는 한 번 꺼지면 오랫동안 유지되고, 후자는 일시적이라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식습관이나 스트레스 조절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밖에도 특별하면서 흥미로운 사례들이 꽤 많은데, 책의 후반부에 있는 어린시절의 경험과 유전자의 관련성 사례도 눈여겨 볼만 하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코르티솔'이라고 하는데 이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분비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호르몬은 어려움 극복에 도움이 되는 대신 다른 장기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몸이 정상일 때는 코르티솔 수용체가 코르티솔 호르몬의 양이 많은 것을 감지해 분비를 중지시킨다. 수용체가 적게 만들어지면 코르티솔 호르몬의 양이 많아지는데, 이 때문에 아주 작은 어려움에도 계속 코르티솔을 분비하게 된다. 어린시절 학대를 받거나 방임된 사람은 코르티솔 수용체의 유전자 정보가 꺼진다. 이런 사람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게 나타나 모든 상황을 항상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많아져야 하는데, 기분좋은 경험이나 긍정적인 생각이 절대적인 이유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사례들이 40여가지 실려 있는데 각각의 사례를 따로 떼어내어 글을 써도 될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쉽게 쓰여서 누구나 보기 쉽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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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용기 외 옮김 / 책사랑(도서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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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데뷔작인 '문신'은 지금은 절판이 되어서 책을 구할수가 없었다. 다행인지 올해 1월에 비록 PDF파일이지만 이북으로 출간되었다. 호평을 받았던 단편이라 그래도 분량이 꽤 될줄 알았는데, 페이지가 2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마스무라 야스조가 1966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젊은 문신사 세이키치가 활동하던 시기는, 사람들이 그나마 '어리석음'이라는 귀한 덕을 가지고 있을 때였고 오직 아름다운 사람만이 '강자'이던 시대였다. 강자가 되기 위해 다들 아름다워지고 싶었으며, 때문에 몸에 문신을 새기는 고통 정도는 누구나 견딜 용의가 있었다. 세이키치는 문신을 새기는 동안 살의 욱신거림을 참지 못하고 신음이 격렬해질 때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그정도의 아름다움을 갖기 위해 응당 견뎌야 할 의례였으며, 그것을 감내하는 것만이 진정 '탐미적 삶'의 완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피부에 자신의 혼을 실은 문신을 새기는 것이 그의 숙원이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마에서 삐져나와 있는 한 소녀의 발을 본다. 바로 쫓아 갔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한 세이키치는 딱 오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난다. 다시는 그 소녀를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녀를 잠재우고 등에 커다란 거미 문신을 새기기 시작한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가장 많이 오버랩 되는 작품은 아무래도 한강의 '채식주의자'였다. 연작 중 두번째 '몽고반점'에서 처제의 몸에 그림을 그려 넣는 형부의 모습이 나온다. 결국 그는 예술의 완성을 꿈꾸며 처제와 관계를 갖는다. 탐미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사회적 범주에서 보자면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미친짓이다. 탐미주의는 바로 이러한 도덕적 한계의 언저리에서 도착적 집착을 보인다. 그것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가 완성하느냐 못하느냐의 결과로 가름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위험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 아름다운 것은 하나 같이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대부분의 아름다운 것들은 위태롭다. 문신을 새길 때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어떠한 아름다움도 저항을 극복하지 않고 가질 수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극악의 규율조차 짓밟고 미를 향하는 본능만이 예술의 완성에 다다를 수 있다. 


세이키치는 문신을 새기기 전 소녀에게 ' 비료(肥料)'라는 그림을 보여준다. 그 그림은 젊은 여자가 벚나무 줄기에 기대 서 있고, 그 아래에 겹겹이 남자들의 시체가 즐비한 그림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성장시키고 완성시키는 것은 그 발아래 무릎꿇고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수많은 탐미주의자들인 것이다. 소녀는 부들 부들 떨며 두려워 하지만, 거미의 문신이 완성되고 난 후의 그녀의 눈빛은 그 어떤 여자의 그것보다 더욱 욕망에 가득차 있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으니 소설은 조금만 핀트가 어긋나면 오해받기 딱 좋은 소설임에는 틀림 없다. 사실 몽고반점도 이상문학상을 받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그런 역겨운 소설이라며 내던졌을 지도 모른다. 경계에 서 있는 감정들은 항상 어느쪽으로 넘어지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크게 엇갈리기 마련이다. 희한하게도 우리가 거부감을 느끼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매번 인간의 '욕망'이다. 우리는 그것이 여과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될 때 불편함을 느낀다. 덧붙여서 내 욕망의 방향과 조금이라도 틀어진다면 우리는 가차없이 '쓰레기'라고 규정해버리곤 한다.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인정을 받은 것은, 욕망에서 모든 부수적인 저항을 소거해 버리고 오직 '미'의 차원으로 작품을 승화시킨 업적을 인정 받아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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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신의 입자 속으로 - 무엇으로 세상은 이루어져 있는가
짐 배것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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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4일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99.999994%의 확률로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LHC는 27km에 달하는 둥근 터널 모양의 장치로 스위스, 프랑스에 걸쳐 지하에 설치되어 있는 강입자충돌기이다. 여기서 양성자를 양쪽 방향으로 발사하면 1000억개 이상의 양성자들이 만나게 되는데 이 때 고작 20정도가 만나 충돌을 일으킨다. LHC에서는 이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거기에서 '힉스'를 발견한 것이다. 힉스는 1964년 영국의 피터 힉스 교수가 예견했던 입자였다. 표준모형이 완벽히 성립되기 위해서는 힉스보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표준모형은 무엇일까. 이 책은 상당 부분을 표준모형이 완성되기까지의 시행착오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표준모형은 '소립자에 의한 상호작용과 힘을 설명하는 표준이론'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자연계의 힘은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 있다. 표준모형은 중력을 제외한 나머지의 힘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입자는 모두 16가지이다. 그 중에 12가지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이고, 4가지는 힘을 매개하는 입자인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는 쿼크 6가지, 렙톤(경입자) 6가지가 있으며, 이 중 쿼크는 글루온이라는 매개체를 주고 받으며 결합하며, 경입자들은 W, Z로 불리는 매개입자들, 전자기력은 광자를 매개입자로 하고 있다. 


표준모형이 기본 전제하고 있는 대칭성을 '게이지 대칭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게이지 대칭성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 대칭이 유지되는 것을 뜻하는데, 그 말은 다시 말하면 기준이 변할 때마다 위상을 상쇄시켜줄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를 게이지 입자라고 하는데 게이지 입자가 바로 위에서 말한 광자와  W, Z 입자, 광자이다. 여기에는 큰 결함이 있는데, 게이지 이론은 모든 입자가 질량이 없을 경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입자는 질량이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라는 이론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이론과 현실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 때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가 '힉스'라는 것이다.


힉스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내용은 힉스가 어떻게 질량을 부여하는 가에 대한 설명이다. 그 방법은 특히 정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런던의 교수인 데이비드 밀러의 설명이 보편적이다. 넓은 홀에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마가릿 대처가 나타나면 모든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몰려들어 이동이 어려워지고 이 과정이 질량이 부여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약력을 매개하는 W, Z 입자가 질량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표준모형의 정립과정에서부터 LHC에서 힉스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이 비교적 쉽게(?) 서술되어 있지만, 비전공자에겐 이 책 외의 다른 자료를 뒤지고 또 뒤져봐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었다. 수학에서 비슷한 책을 고르자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같은 책으로 봐얄까. 나름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쉽게 접근하고 흥미를 주고자 한 짐 배것의 노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물론 그러고도 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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