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라면 군주론
김경준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군주론'이란 책은 고전으로 추천될 만큼 오래된 책이다. 과거 왕과 절대 권력이 있던 시대의 책인데 굳이 오늘날에 읽어야 할까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온 국민의 머릿속에 "왜"라는 물음표를 심어준 대통령과 그를 있게 한 대한민국의 현시점에서 어떤 지도자가 정말 뛰어난 지도자인지

#군주론 을 통해 알아보자! #오십이라면군주론 #믹스커피 #원앤원출판사


마키아벨리? 그는 누구?

마키아벨리는 1469년 피렌체에서 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중류 가정에서 출생했다. 1469년이면 조선은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 재위 시절이다.

예종은 1년 4개월 정도 왕위에 있었지만 당시 남이 장군의 역모 사건이 있었던 때다. 이렇게 조선시대와 비교하니 무척이나 옛날 사람이다.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아 29세 때인 1498년 피렌체 공화국 제2사무국의 서기관으로 발탁되는데, 현재의 중앙부처 과장급에 해당하는 실무 관직이다. 같은 해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안보 담당 핵심 조직인 10인 전쟁위원회의 비서로도 선출되어 현직에서 물러나는 1513년까지 15년 동안 피렌체의 외교 전선을 종횡무진 누빈다.

15세기 대항해시대의 개막으로 지중해의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경제력 약화는 불가피했다. 경제 환경의 변화는 정치 환경의 변화로 이어져 중앙집권체제의 통일국가로 변모한 스페인, 프랑스의 부상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정치적 입지를 급격히 축소시켰다.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했던 강대 세력 베네치아조차도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갈기갈기 찢어지고 분열된 이탈리아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정치적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고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시대가 바로 이때였다. 특히 마키아벨리의 조국인 피렌체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참주 형태로 통치하고 있었으나 무능력한 통치로 추방되었고, 베네치아를 본뜬 공화정이 수립되었지만 정국의 불안은 지속되었다. 이 시점에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관에 임명되며 외교 실무를 담당하며 각국에 사절로 파견되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이었던 마키아벨리는 대사직에 적절치 않아 보통 차석인 부사로 실무를 책임졌다. 협상을 주도하고 본국에 보고서를 써서 보내는 역할을 수행하는 피렌체 외교의 최전선에서 국제외교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경험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공직 생활은 44세가 되는 1513년에 끝났다. 피렌체에 정변이 일어나 메디치 가문이 복귀하면서 공화국의 충성스러운 관료 마키아벨리는 직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반 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 이후 풀려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남쪽 산탄드레아의 농장에 은둔하며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집필했다.

르네상스가 신에게서 인간을 분리한 과정이듯, 마키아벨리는 윤리에서 정치를 독립시켰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대변자였다. 마키아벨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시민의 자유와 법에 의한 통치였다. 공화정, 군주정 같은 정치체제의 외양보다 실질적 리더십을 확보하고 시민의 자유와 법치가 이뤄지는 체제를 지향했다. 특히 도덕과 윤리라는 추상적 가치에 매몰되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리더야말로 공동체를 파멸로 이끄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면서, 고귀한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선 실질적 힘을 확보하고 변덕스러운 군중의 심리를 다스리면서 공동체를 생존과 번영으로 이끄는 리더의 덕목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책 속으로

리더는 공동체의 목표를 추구하고자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다. 리더가 이끄는 조직의 특성에 따라 목표는 다양하게 변주되지만 근본 성격은 '생존과 번영'으로 동일하다. 군주의 목표는 국가를 방어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공정한 법치를 확립해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국가의 목표로 회자되는 '홍익인간' '부국강병' '국태민안' 등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분명히 전제한다. 단 군주가 선함을 유지하려면 악함을 이해하고 때로는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선악 개념을 초월해야 한다고 통찰한다. 실제로 악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악인은 악인이라기보다 차라리 바보에 가깝다. 진짜 악인은 선함을 가장하는 교활함이 있다. 선과 악이 세상의 두 가지 측면이라고 할 때 선으로만 상대하는 건 무기의 절반만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으로 포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한 악인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선인으로 위장해 상대, 즉 선인을 공격하고 파멸시키는 일이 현실에서 드물지 않다. 따라서 리더는 악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악을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선을 바탕으로 하되 악덕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선과 악이라는 두 가 지 무기를 모두 사용할 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대의 유럽에서 교회는 종교적 권한 위임과 동시에 세속 권력이었다. 교황은 세속 군주로서 교황령을 통치했고 추기경이나 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도 관할 교구의 정치 행정 지도자인 경우가 많았다. 마키아벨리는 신의 대리인으로 존중받는 교황조차도 현실 통치에선 피상적 선악 개념을 넘어서는 사례를 생생하게 체험하면서 선과 악에 대한 견해를 정립했다.

통상 거짓말, 기만, 책략 등은 비난받아야 할 악덕으로 간주되나 리더의 관점에서 봤을 땐 다르다. 리더는 도덕을 외치는 종교인도 아니고 윤리를 가르치는 선생도 아니다. 리더의 임무는 공동체를 안전하게 유지하고 번영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 차원의 윤리와 지도자의 덕목은 별개다. 예를 들어 거짓말은 악덕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조직 차원에서도 악덕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거짓과 기만은 현실 세계에서 조직의 생존을 위한 기본 방식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이중성의 변주를 이해하고 구사하는 게 리더에겐 필수적 덕목이자 역량이다.

마키아벨리가 "인간이란 어떤 악이든 예사로 범할 수 있는 게 아닐 뿐만 아니라 또 그렇다고 해 완전무결한 성인일 수도 없다(로 마사 논고』 1-27)"라고 지적한 것처럼 인간은 신처럼 성스럽기도 하고 야수처럼 잔인하기도 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신의 속성을 가진 성스러운 인간을 통치하는 건 법이고 야수의 속성을 가진 흉포한 인간을 통제하는 건 힘이다. 법으로만 야수를 통제할 수 없고 힘으로만 인간에게 인정받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국가 번영의 핵심 요건을 '좋은 법률과 강한 군대'로 규정했다. 강력한 국가의 소프트웨어는 법률로 이해하고 하드웨어는 군대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타국과의 싸움은 외교와 무력으로 전개된다고 봤다. 외교는 상대국을 원칙과 법률에 기반해 말로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이고 무력은 군대를 동원한 전쟁이다.

마키아벨리는 부유했으나 자체 군사력이 없었던 약소국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외교력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현명한 군주는 법률과 무력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더의 엄격함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리더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가지도자는 영토를 지켜야 하고, 군대 지휘관은 규율을 유지해 적군에게 승리해야 하며, 경영자는 경쟁력을 확보해 기업을 생존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다. 엄격함이 개인 차원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공인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면 리더에겐 오히려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평면적 자애심이 아닌 '현명한 엄격함'이 조직 전체를 살리는 진정한 자비가 될 수 있는 리더의 역설을 꿰뚫고 있다.

리더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에너지의 원천은 결국 '존경 아니면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리더를 존경하기 때문에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벌을 받기 때문에 움직인다. 물론 자발적 동기가 가장 강력하지만,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사안에 많은 사람의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동참을 기대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1차적 동기는 결국 '이익과 손실'이기 때문이다. 소위 자비롭고 착하기만 한 리더는 태평성대에 초등학교 반장 역할은 무리가 없겠지만, 미래를 위한 변화를 이끌거나 난세를 돌파하는 역할은 수행할 수 없다.

목표를 갖고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직에서 리더가 원칙을 지키고 잘못을 지적하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조직에 적절한 긴장감이 유지되고 질서가 잡힌다. 물론 두려움은 공포와는 다르다. 공포가 근거 없는 막연한 불안감이라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두려움은 일정한 원칙과 질서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으로 해석된다. 중간 간부 이상이 되어 실제 조직을 이끌어 가는 입장에 있다면 '사랑과 두려움' '존경과 긴장감'이라는 대칭적 요소가 주는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 적절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지프 나이는 자신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개념을 마키아 벨리 『군주론』의 '사랑과 두려움'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하드파워'를 이용해 두려움을 이끌어 낼 수 있고 비전과 소통, 동기부여 등의 '소프트파워'로 사랑받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사랑만 받으면 하찮아 보이기 쉽고 두려움만 주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조직의 생존과 발전이 현실론과 이상론의 합주곡이듯 리더십도 사람과 두려움의 합주임을 마키아벨리는 통찰했다.

마키아벨리는 리더가 관대한 정신을 가지는 건 바람직하나, 물질을 베풀어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으려는 건 파멸의 전주곡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으로 충분한 연예인과 달리, 리더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감수하더라도 공동체의 기초 체력을 키우고 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리더는 진정으로 관대해지기 위해선 인색하다는 악평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주장한 건, 리더란 대중의 인기에 울고 웃는 연예인이 아니라 올바르게 인정받는 리더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직의 리더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구조를 재편하려면 고통이 따른다. 평온한 현실에 안주할 것인지, 고통스러운 재탄생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리더의 선택에 달려 있다. 리더가 찬사를 듣고 싶은 허영에 사로잡히면,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현재 가진 걸 나누려 하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기보다 주변에 영합한다. 막연한 관대함이 아닌 '전략적 인색함'이 공동체를 부강하게 한다.

사람들은 다분히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리더의 선행에도 불만을 갖는 경우가 많다. 리더가 베풀 때도 분명한 원칙을 유지하지 못하면 리더의 선행이 오히려 조직 내 구성원들 간의 갈등 원인이 된다. 원칙 없는 선행은 모두를 불만에 가득 차게 하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법가사상은 법치[法], 통치술[術], 세력[勢]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군주가 내면적으로 통치술을 습득하고 외부적으로 법치를 시행해 세력을 유지한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법치의 핵심은 공을 세우면 반드시 포상을 받고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벌을 받는 신상필벌에 있다. 군주의 권위와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기본은 신상필벌에 따른 분명한 원칙에 있다는 관점이다. 그는 "상을 지나치게 남발하는 지도자는 되레 백성의 마음을 잃을 것이며, 형벌을 지나치게 가하는 지도자는 되레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국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기본적 힘은 군사력이다. 다음으로 넓힌 영토를 운영하기 위한 제도와 법률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군사력이 강해 일시적으로 영토를 확장했으나 이후 통치체제를 만들지 못한 세력은 단순한 정복국가로만 기록되었다. 그러나 군사력이라는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제도와 법률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갖춘 고대 로마, 칭기즈 칸의 몽골은 세계 제국으로 성장했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지만 읽을수록 옛사람의 통찰과 혜안이 빛을 발했다. 역시 50이라는 나이에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책 속의 주옥같은 글귀에 눈이 띈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액 토지 투자지도 - 상가보다 쉽고 아파트보다 효과적인
안영태 지음 / 원앤원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지 투자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또한 오랜 기간 투자금이 묶이기에 종잣돈이 많이 필요한 투자이다. 그런데 소액으로 전국에 투자할 수 있다면?

책 제목을 보면 나름 이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소액토지투자지도 #원앤원북스 #믹스커피


소액 토지 투자지도 책에서 얻은 정보 하나. 지방의회 회의록에 숨겨진 힌트를 찾아라.

지방의회 회의록을 보면 해당 지역에 일어나는 일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알 수 있다. 우선 관심 도시의 시의회에서 '회의록 검색' 기능을 이용해 원하는 자료를 찾는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색인어 검색' 기능을 이행해 단어를 입력하고 검색하면 된다. 예를 들어 '가곡리'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색인어 검색에 들어가서 '가곡리'를 검색하는 식이다. 그러면 회의록 중 해당 키워드가 들어간 자료만 노출된다. 이때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용도지역의 변경이다. 용도지역이 바뀌면 평당 가격이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투자 사례를 소개한다. 하지만 저자가 입찰에 성공한 사례는 별로 없다. 투자에 앞서 어떻게 엑시트 할 것인지에 대해 정리한 정도라 할까? 한마디로 엑시트 하는 과정에 대한 소개와 그를 통해 상대방과 어떻게 협상을 했고 투자 성과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한마디로 반쪽짜리 지식이랄까?

또한 투자 지도라는 제목으로 인해 전국의 다양한 투자 사례가 소개될 것 같았는데, 저자는 고향인 제주도에 국한된 토지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 솔직히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극히 작은 곳이며, 관광지라는 특수성이 있기에 토지 투자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말하기가 부담이 되는 지역이다. 저자는 그래도 이 사례들과 정보를 통해 기본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거라 말하지만 독자인 나에겐 저자의 실력이 와닿지는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 (양장) - 한 권으로 보는 셰익스피어 심리학 Memory of Sentences Series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예진 편역 / 센텐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셰익스피어인간심리속문장의기억 책 머리말에 "가장 유명한 고전은 모두가 알고 있어 아무도 읽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있다.

'에이~ 설마!'라고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니 사실이었다. 심지어 #셰익스피어 의 명작이라 일컫는 #로미오와줄리엣 도 읽지 않았고, 영화로 나왔지만 보지 않았다. 이유는 뻔히 아는 내용에다 여자 주인공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이었다.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읽어 본 기억은 없다. 아~ 이런...

#센텐스 #리텍콘텐츠출판사 #리텍콘텐츠 에서 출판한 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을 통해 명작을 만나보자!


셰익스피어는 부유한 상인 가정의 8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학교 공부보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생각에 잠기거나 시를 짓는 것을 좋아했다. 열네 살이 된 셰익스피어는 기울어진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그는 결혼했고, 가슴속에 품은 '배우'라는 꿈을 위해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향했다. 런던에서 셰익스피어는 극장의 마구간 지기로 생활했는데, 어느 날 병이 난 마부 역할의 배우를 대신해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는 배우로 데뷔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연극을 공부하며 틈틈이 희곡을 썼다.

그의 작품 중 <베니스의 상인>의 성공으로 유명한 극단의 간부 단원이 되었다. 또한 극단을 위해 작품을 쓰는 전속 작가로 활동하며 가끔 단역을 맡아 배우로서 활약하기도 했다. 희극과 비극, 사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 보자. 1564년 출생에 1616년 사망이니까 52년을 살았다. 결혼 후 런던에서 극단 생활을 시작한 1580년 이니 대략 1590년이 전성기라 가정해 보자. 이때 대략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했고, 조선에서는 선조가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다. 1592년엔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영국에서는 1559년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해 영국 국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했으며,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다. 어떤가?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

문학은 주로 상류층의 오락이나 읽을거리였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셰익스피어, 그렇기에 희극보다는 비극이 많았고, 권력자들의 추악한 모습과 권력을 향한 암약들이 주를 이룬다. 아마도 그는 소설 속에서 상류층을 비난하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화려한 문체와 아름다운 문구가 오늘날에도 뇌리에 남는다. 과연 어떤 문구들이 있을까?


사랑은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며,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며,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며, 병들게도 하고 건강하게도 하고, 잠들어 있기도 하고 깨어 있기도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에 빠진 사람과 미친 사람은 들끓는 두뇌를 가지고 있어.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상상으로 형상화하지. <한여름 밤의 꿈>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비웃음을 신음으로 사고, 무심한 표정을 가슴 아픈 한숨으로 사고, 짧은 순간의 기쁨을 스무 번의 긴 지루한 밤과 맞바꾸는 것이야. <베로나의 두 신사>


인간사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고, 밀물이 들어올 때 잡으면 행운으로 이끄는 법이오. 이를 놓치면 평생의 항해는 얕은 물과 고난 속에 갇히고 말지. <율리우스 카이사르>


셰익스피어, 인간 심리 속 문장의 기억 책을 통해 다양한 작품과 그 속에 숨어 있는 명 문장도 만나보자. 처음엔 모르다가 다시 읽어보면 이런 명 대사를 그 옛날 사람이 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역시 기록의 힘은 대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 결국은 부동산 - 20인의 멘토가 알려주는 부동산 인사이트 결국은 부동산
올라잇 칼럼니스트 20인 지음 / 원앤원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4년 11월 한국은행이 2번 연속 기준금리를 낮췄다. 또한 2025년 예상 GDP 성장률을 1.8%로 낮췄다. 11월 수출이 감소하며 전년 동월 대비 성장률이 감소했다. 2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캐나다, 중국, 멕시코에 100% 관세 부과에 이어, BRICS 체제에도 달러 패권에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관세 폭탄을 날렸다. 12얼 3일 신문엔 한국에서 생산되는 HBM 및 반도체 장비에 대해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국내 5대 기업에 들어가는 롯데가 자금 부족으로 인한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예상된다는 소식에 시장이 출렁인다. 국내의 대기업들도 현금 확보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또 스트레스 DSR 2단계에서 2025년엔 3단계 시행을 앞두고 부동산 투자에 먹구름이 드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2025결국은부동산 책을 통해 내년의 부동산 기상도를 예측해 보자.


서울을 포함한 전국적으로 공급 물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26년에 급격한 금리 인상만 없다면 상당한 전세가 상승이 예상된다. 서울에서는 강남, 강서, 양천, 마포, 도봉, 노원, 송파, 은평구가 과소공급 지역이며, 경기도는 일산 서구, 김포, 남양주, 시흥, 안산 상록구, 용인 기흥구, 하남시 등이 전세 거래량 대비 과소공급 지역으로 분류된다.

만약 전월세 시장에 수요가 몰리면서 전세가격이 다시 오른다면, 주택 공급 부족과 맞물려 부동산 시장이 활력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방 투자는 조금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방의 공급 물량 부족뿐만 아니라 지방 건설사들의 경영 악화에 따른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곧 나오리라 본다. 이때를 기다렸다가 지방의 광역시부터 투자를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25 결국은 부동산 책에서는 조심스럽게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가 기대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신축 아파트만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투자법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재개발 재건축의 경우 공사비 증가에 따른 추가 부담금이 과다해질 것을 우려해 투자 여력이 없다면 신중할 것을 조언한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2025년 이후 공급 물량이 부족해지는 것과 정부의 가계 대출 억제 정책이 어떻게 시장에 작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2025년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원앤원북스 #믹스커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병, 전쟁, 위기의 세계사 - 위기는 어떻게 역사에 변혁을 가져왔는가
차용구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현대 인류는 역병의 무서움을 모른 채 살았다. 역사에서 페스트나 흑사병 관련하여 인구의 1/3이 줄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역병이 현대 인류에게 다시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사적으로 질병은 전쟁이나 기후 위기 속에서 발생했지만 코로나19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다행히 현대 인류는 2년여 만에 이 질병의 확산을 막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역병에 대한 두려움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역병전쟁위기의세계사 #믹스커피


우크라이나 문제의 기원

우크라이나는 선사시대부터 동서 교통로의 중심이었다. 게르만족, 훈족, 아바르족 모두 이곳을 거점으로 유라시아의 초원 지대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중심축'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중요성 때문에 이곳에 정착한 어떤 정치 세력도 오랫동안 통일 국가를 유지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Ukraine)는 동슬라브어의 u(인근)와 kraina(변경)의 합성어로 '변경• 접경 지대'(borderlands)라는 의미다. 12세기에 등장한 이 명칭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세워진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국명으로 채택되었다. '변경'을 의미하는 일반명사였던 '우크라이나'가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때 '우크라이나가 국가로서 지도상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이다.

국명에서부터 지정학적 특징이 드러나듯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독립된 국가 형태를 길게 유지한 적이 별로 없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주변의 강력한 세력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으면서 국제 정세에 따라 이리저리 귀속되었다.

19세기에는 합스부르크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동부와 서부를 각각 분할 점령했다. 그나마 1917년에 세워진 신생 독립국인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도 불과 몇 년 만에 소멸했고 결국 1922년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련 영토가 되었다. 서유럽과 러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는 동부와 서유럽의 영향권에 있는 서부로 나뉜 채 전개되었다. 이렇듯 수백 년 동안 계속된 종족적·문화적·종교적 이질감은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동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민족 국가를 형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1991년 소련 해체와 더불어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최대 문제점이자 과제는 여전히 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의 대립과 갈등이 심하다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동과 서가 번갈아 권력을 잡으면서 정치권에서 동과 서의 힘의 균형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사실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이 동부 우크라이나와 통일되어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모습을 갖춘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크라이나는 이처럼 두 개의 상이한 문화로 나뉜 단절국이다. 수도 키이우를 가로질러 흑해로 흐르는 드네프르강을 경계로, 서구 문명과 정교 문명의 단층선이 몇 세기째 우크라이나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다.

강대국 사이에 '끼인 국가'인 지정학적 중추국 우크라이나는 자국 문제를 해결하고자 외세(유럽연합과 나토)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또 다른 외세(러시아)가 개입하는 빌미를 준 것이다.

러시아가 이 지역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곳이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경 지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접 국가인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논의를 본격화하자 러시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을 원하는 이유에는 경제적인 면도 있다. 돈바스는 석탄 탄광과 철강 공장 등이 밀집해 있는 중공업 지역이기 때문이다. 돈바스라는 지명도 이곳을 흐르는 도네츠강과 석탄 분지라는 단어들이 축약된 혼성어다.

전략적으로도 이곳은 2014년에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랜드브리지(land bridge)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서구 공포증'(Zapadophobia)이라는 역사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큰 강이나 산과 같은 자연 방벽이 없어서 유럽과 평원지대로 연결된 러시아는 19세기와 20세기에 각각 프랑스와 독일의 침략을 받아 '지리적 저주'를 경험했다. 그래서 취약한 지정학적 위치가 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안보 강박증'에 시달리고, 결국 국가와 안보 이익을 위해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정책을 택했다. 푸틴은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서구의 팽창에 무력으로 대항한 넵스키에게서 역사적 교훈을 얻고자 한 것이다.

푸틴식 역사 만들기와 기념비 제작 프로젝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한 이후 모스크바의 크렘린 바로 옆 광장에서 또 다른 동상의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높이가 17.5m나 되는 동상의 주인공은 키예프 공국의 통치자였던 블라디미르 대공인데, 현재의 우크라이나가 바로 키예프 공국이었다. 그는 988년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선포해 오늘날 그리스 정교가 러시아·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핵심 종교이자 문화적 기반이 되도록 이끈 지도자다.

푸틴은 동상 제막식 축하 연설에서 블라디미르가 강력한 통일국가를 건설하고 그 위에 동슬라브 민족의 공통된 정신적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키예프 공국을 러시아 역사로 끌어들임으로써 새로 병합한 크림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2021년 7월 크렘린 홈페이지에 자신이 직접 쓴 우크라이나 역사 관련 글을 올리면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키예프 루스에서 기원했으며 역사적 뿌리가 같은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식의 논리 뒤에는 우크라이나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부인하려는 은밀한 속셈이 숨어 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일체성을 강조하면서 분단된 역사를 통일하려는 거라는 선전 작업이 선행되었다.

푸틴은 역사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되는 중에도 푸틴이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장면들은 그가 전쟁을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몰고 가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러시아는 현재의 우크라이나 정권을 네오나치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서구 세력과 충돌하는 걸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러시아가 마주한 상황은 1941년 나치군이 소련의 국경과 안보를 위협했던 때와 다를 바 없다는 논리다.

푸틴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군사작전처럼 정교하게 기획되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이후인 2016년 러시아에서 이반 4세의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그의 조각상은 이때 처음으로 세워졌는데 이후 모스크바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반 4세의 동상 이 세워졌다. 그동안 학계에선 제정 러시아의 첫 공식 차르인 이반 4세를 공포 정치의 극단을 보여준 폭군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푸틴은 이반 4세에 대해 다른 역사적 평가를 한다. 이반 4세를 일련의 개혁 정책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와 전쟁을 벌여 영토를 넓히고 근대 러시아의 기초를 다진 강력한 지도자로 재평가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반 4세의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분열되고 나약했던 러시아를 유럽의 강국으로 만들었다고 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이반 4세의 권력 지향적 정책에서 '러시아에는 강한 국가권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판단에 따라 정적과 배신자를 제거한 푸틴이 연상된다.

표트르 대제는 푸틴의 또 다른 롤 모델로 그의 집무실에는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한다. 그는 발트해의 제해권을 놓고 스웨덴과 벌인 대북방 전쟁에서 승리하고, 부국강병은 물론 영토 팽창을 통해 낙후되어 있던 러시아의 부흥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푸틴 자신도 2022년 열린 표트르 대제 탄생 350주년 기념행사에 서 표트르 대제에 대해 "21년 동안 스웨덴과 전쟁을 벌였다. 러시아의 영토를 되찾겠다는 역사적 가치야말로 우리 러시아인의 존재 이유"라고 밝혔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도 이곳이 본래 러시아 영토였기에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자국 영토 회복'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인식한다. 푸틴에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잃어버린 옛 영토를 되찾는 것과 다름없다.

푸틴은 정부 기념행사를 할 때나 중대한 고비 때마다 러시아 역사를 끄집어내 자신을 러시아 제국의 차르와 동일시했다. 제국에 대한 향수에 젖어 '강력한 대통령, 강력한 러시아'를 기치로 내걸고 현대 판 차르가 되려는 모양새다. 그만큼 그는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강대국 콤플렉스'를 지닌 듯하다.

물론 통치자가 나름의 역사 인식을 갖추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교묘한 논리는 궤변으로만 들린다. 강대국으로서 위용을 복원하려는 통치자의 역사관이 '전쟁의 기억'을 소환할 때 더욱 그렇다.


2022년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3년 가까이 지났다. 1991년 구소련의 해체 등으로 냉전체제가 종말을 고한 이후 30여 년간 이어진 나토의 동진으로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불신과 안보 불안이 커졌다.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을 비롯한 공산 세력의 군사적 팽창을 막고자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결성한 군사동맹이다. 1991년 이후 30여 년 동안 나토는 전선을 동쪽으로 1천 ㎞ 이상 전진시켜 이제는 러시아 국경과 맞닿게 되었다. 나토가 모스크바 코 앞까지 세력을 뻗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데 이어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기에 이른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과 달리 장기화하면서 원치 않게 다른 나라의 문제에 말려드는 '연루의 공포'가 나토 동맹 내부에 확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나토는 지난 70년간 '동맹이 공격받으면 함께 싸운다'라는 집단방위 체제를 유지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논의되던 2008년에 미국은 이를 지지했으나 프랑스와 독일이 반대하면서 동맹국 간 내부 분열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조지아·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으로 러시아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022년 전면전으로 확대되자 나토는 군사적으로 다양한 지원을 했으나 전투기와 미사일 지원에선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지상군 파견 가능성' 발언을 다른 나토 동맹국들이 부정하면서 동맹 내 균열도 감지되었다.

이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 밖으로 장기전 양상을 띠자 나토 동맹국 간의 분열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을 보고 있노라면 조정 능력의 부족과 위기관리의 실패로 세력 충돌이 발생하면서 전 세계가 전쟁의 블랙홀에 휘말린 100여 년 전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낮 영토 분쟁이 아닌 세계대전으로 가는 불씨가 아닐까 생각된다. 최근엔 북한의 전투병 파병에 이어, 한국의 무기 제공이 또 다른 불씨가 되어 확전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