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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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사소한 것들을

단편소설로 엮어냈다.

처음엔 소설들끼리 연결되었나 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개별적인 내용이다.


이 소설들에서 인상적인 점은

(그런 것만 생각나서인지 몰라도) 

남자들이 영 주도적이지 못하고 의존적이라는 거다.

또한 아기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가 많은 부부들 사이에서

중대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중에

우리의 삶에서 거쳐가는 사소한 것들을 

그것도 사라지는 것들을

일상적이면서도 섬세하게 잘 짚어줬다.

읽으면서 더불어

'아... 그러네..'

'이런 게 내 삶에서 없어지고 있었지.'

'이런 사람이 내 삶에서 벗어났었지' 생각을 한다.


육아와 일상에 지치는 하루하루, 

생뚱맞은 이웃과 맺어지는 우리 부부, 

교수직 일이 잘 안되는 친구에게 느껴지는 열등감, 

촉망받던 첼리스트 아내가 그의 재능을 병으로 잃어가는 모습,,,, 


우리 주변에 일어날 만한 일들이지만 

그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아쉬움, 후회와 아픔들을 

앤드루 포터만의 글로 표현한다.

분명 무덤덤한데 왜 이렇게 아리고, 슬프고, 공감되는 거지? 

그런 일들을 다루고 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이어 15년간의 공백을 깨치고 나온 2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곱씹어 읽어볼 책이다. 

음... 사담이지만 작가님 사진 보고 심쿵 했음.

(궁금하면 찾아보세요~~>_<)


"아빠는 뭐 하고 있었어?" 이언은 말했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자기가 물에 빠진 순간, 혹은 그전 오 분이나 십 분 동안. 자신이 튜브나 다른 구명 장비 하나 없이 에어매트 위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육아 블로그를 드나들며 헛소리나 지껄이는 나. 육아 지침과 육아 조언 칼럼을 집착적으로 읽는 나. 그 순간 나는 미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일 말고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나는 식음료 테이블 앞에 있었지만 내 정신은 어디에 있었나? 대체 무엇에 집착하고 있었기에 바로 그 특정한 순간에 부모로서 단 하나의 주요한 책임, 내 아이를 살린다는 책임을 잊어버렸나? 그때를 돌아보려 했지만.- 바로 그 순간에 내 정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떠올리려 해봤지만- 솔직히 기억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물 위의 햇빛, 순간적인 번뜩임, 밝은 섬광뿐,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p.158


그때 누군가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그 물건들을 전부 돌려줄 거라고, 잠시 내가 보관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또 어떤 때는 폴이 내게 한 짓에 대한 응징이라고 되뇌기도 했다. 내겐 그 행동을 스스로에게 정당화할 방법들이 있었고 에이미도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고 믿었지만-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내 침대 아래에 있는 판지 상자를 진정으로 변명할, 혹은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가끔 밤에 어둠 속에 누워 삶의 이런저런 불안 때문에 뒤척일 때면 내 바로 밑에 있는 그 상자를 생각했다. 폴과 일레인의 삶을 이루던,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서 빼앗은 그 작은 조각들, 그 하찮은 상징물들, 그 기묘하게 개인적인 장신구와 증표들, 시기나 분노 때문에, 혹은 두 가지가 뒤섞인 감정으로 말미암아 무단으로 취해 내 것으로 만든 그 사소한 기념품과 정표를 생각했다. 그 상자를 떠올리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 내가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얼마 후 눈을 감고 잊어버리곤 했다. 다른 생각에 빠졌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때로는 일주일 가까이 지나서야- 다시 그 상자를 생각하기도 했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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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3 - 박경리 대하소설, 4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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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은 귀향을 했지만, 자신의 아들 영호가 재학 중에 일제 경찰에 끌려가는 일이 생깁니다. 마을에선 한때 살인자의 아들이었던 한복을 언짢게도 여겼던 모습이 있지만, 이제는 독립운동가라고 치켜세웁니다. 오서방과 우 서방은 원래도 좋지 않은 사이였는데, 사소한 일로 싸움을 나서 우 서방이 죽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서방이 귀신이 쓰였던 거라며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감싸죠. 우 서방의 아내가 만만찮게 손을 쓰기에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김제생이 환국을 찾아와 환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죠. 환국은 쌍계사로 안내하지만, (서희의 지시를 받은) 연학은 도솔함으로 옮길 것을 환국에게 제안합니다. 서희는 이상현 본가에 6 볏섬을 수레에 실어 보내며 인사를 건넵니다. 그 와중에 환국도 윤국도 자신의 주장이 강해질 만큼 성장한지라 더 이상 그녀의 품에 있지 않아요. 남편인 길상도 그렇고 아들들도 자신들에게 떨어져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데 있어 홀로된 듯한 서희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윤국은 가출해 여기저기 배회하며 이일 저일 하며 다니다가 결국 돌아와 영산댁의 숙이와 만나는데요. 숙이와 어떠한 인연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옥과 명희가 선혜네 집에서 만나게 됩니다. 둘은 따로 역까지 가서 대화를 좀 더 이어가다 헤어지는데요. 그때 명희는 조용하의 동생 조찬하를 역에서 마주치죠. 같이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조용하는 분노합니다. 이후 명희는 조용하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몇 차례 집을 나간 끝에 자살까지 이르렀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납니다. 그리고 여수에 있는 여옥에게 찾아가죠. 그리고 용하와 있던 일을 다 이야기합니다. 너는 너의 일을 하라고 여옥은 명희에게 조언하는데요. 살아갈 이유도, 갈 곳도 없어서 자살만을 생각한 명희가 새 삶을 찾아갈지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이상현이 맡긴 봉순이의 딸을 제대로 맡아서 키우지 않을까도 싶네요.


평사리 사람들 같은 현실적인 대화는 너무 공감이 가고 감정이 몰입되는데요. 서울 및 지식층 사람들의 대화는 도무지 공감이 안 됩니다. 뜬구름 잡는 이상적인 이야기만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것 같아서 전 답답하게만 읽히더라고요. 일제와 맞서 싸우는 이들은 실제로 힘없고 나라만을 사랑해서 행동하는 이들입니다. 오히려 친일이든 중도파든 어느 정도 사는 사람은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모습에요. 정말 보기 좋지 않습니다. 저라도 행동하는 누군가와 같은 인물이 됐을 거란 자신은 없긴 하지만요. 몸으로 때우는 이들과 입으로 때우는 이들이 따로 있는 것 같아 영 씁쓸하기만 합니다. 


어찌됐든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내는 이들이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책 속 상황도 일제치하라 힘든데 저는 자꾸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인물들에게 독립이 온다고 끝이 아닌데... 6.25전쟁이 그들 앞에 있는데...ㅠㅠ' 

그럼에도 그들은 부르짖습니다!

'나는 여기 살 기다!' 한복의 부르짖음이지만 전 이게 한복이의 개인적인 부르짖음이 아닌 한 민족의 설움와 더불어 짓밟혀도 살아내나는 생명력과 끈기를 나타내는 한 마디 같았어요.


조용하는 원래도 그런 인물인 줄 알았지만, 이번 편에선 제대로 사이코 패스 면모를 보입니다. 아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갖고 살아온 이에게 왜 풍족하고 넉넉한 마음이 아닌 누군가를 못 괴롭혀서 난리인 모습이 도드라지는 걸까요? 그와 반대로 명희란 인물도 꽤나 복잡다단한 인물입니다. 사랑을 해도, 사랑을 받아도 그들과 는 인연이 있는 게 없는 명희입니다. 신식 문물과 교육을 받은 여인이지만 주체적이기 보다 수동적이고 고뇌가 많은 인물입니다. 굉장히 안쓰럽죠. 부디 명희가 자신이 살아가야 할 목적과 삶의 기쁨을 찾아내길 바랍니다.


갈수록 이렇게나 다양한 분야가 거론되고, 다양한 인물의 심리가 얽히고설킨 대하소설을 집필하신 박경리 작가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인물들은 만나보신 걸까? 간도는 가보신 걸까? 경제신문과 지식은 어디서 주로 얻으셨을까? 그 시대상의 모습들은 어디서 시작해 상상으로 펼쳐 내셨을까? 한 사람에게서 이런 엄청난 분량의 서사가 나왔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일본인 왈, 조선인은 게으르다, 조선에는 웬 거지가 이리 많으냐, 그 실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총독부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 항상 족하지 못했지만 마을마다 대개 객사라는 것이 있었고 여염집에서도 한두 끼의 끼니, 잠자리를 거절하는 풍속이 아니었기에 나그네는 있었으나 거지는 흔치 아니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삼천리 강산, 남의 땅으로 쫓겨간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이 불운한 강산 거리거리에 거지들이 떼 지어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일인들 왈 조선에는 웬 거지가 이리 많으냐, 총독부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땅을 약탈하여 배가 불러 터지게 된 동척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조선인은 게으르다. 어째 게으른가 그것 역시 총독부, 동척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 p.12


 ... 이곳에서 뜨고 싶은 생각을 안 해봤느냐고 홍이 한복에게 물어본 것은 어쩌면 동병상련, 그런 것인지 모른다. 칠성이 아낙이었던 임이네는 홍의 생모, 그 수치스런 비극의 한 모퉁이와 관련된다. 실상 칠성은 음모에는 가담했으나 살인사건과는 무관이다. 그러나 오명은 지워지지 않은 채 홍의 의식 한구석에 남아 있었고 또한 평사리 마을 사람들 의식 한구석에도 남아 있어서 희미하나마 때론 적의로, 때론 모멸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 p.102


'나는 여기 살 기다.'

한복의 그 말이 새삼스레 놀라움을 안고 되살아난다. 홍이는 자신의 만주행을 도망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어떤 면에선 고향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복의 경우는 분명히 도망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그는 도망가지 않았고 수없이 갈아대는 칼날 밑에 수더분한 본래 그 모습대로 숫돌이 되어 살아온 것이다. p.103


"안 좋아요. 사방팔방 온통 벽이니까요.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빡이 부딪치고 좀 더 움직이면 골통이 박살날 겁니다. 도대체 사람은 열쇠를 몇 개나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p.159


"그건 나도 누구한테였을까? 귀동냥을 한 건데 말이야. 어떤 목사님한테 들었는지, 사람은 절망의 구렁창에 빠지면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는 거야. 그 하나는 먹는 것 입는 것 다 잊어버리는 상태 그리하여 짚불 잦아지듯 사라지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주렁주렁 단다는 거야. 허기 든 사람같이 뭣이든 계속해서 먹고, 전에 안 하던 화장을 하고 반지나 장신구 같은 것은 있는 대로 끼고 달고 옷은 화려하게, 절망의 시간을 빨리 먹어치우자는 잠재의식의 소행이라는 거야. 아이크! 이거 차 놓치겠다." p.188


... 늙으믄 봄이 좋은기라. 사방에 실안개가 서리서 나무마다 물이 오르고 찔레나무를 보아. 땅에서 생멩수를 뽑아 올리니라고, 저 빨간 줄기를 보라고." p.307


  명희는 창조의 능력이란 말에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좁은 뜻에서의 예술을 두고 그 말을 뇌었던 것은 아니었다. 명희에게 그것은 엄청나게 큰, 우주와 개미까지 합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우주와 미물이 모두 창조에 동참하고 있다는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그 깨달음은 희망이기보다 더욱더 큰 절망, 절망이 어떤 것인가를 뚜렷하게 명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p.519


"너에게야 그런 일 아무려면 어때. 농촌지도자가 되겠니? 나같이 전도부인이 될 것도 아닐 거고, ,넌 너 갈 길을 가면 돼. 아무튼 난 지금은 주님께 감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p.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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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6-21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지 13권 ... 대단하십니다! 완독의 길 잘 걸으시길 기원합니다 ㅎㅎ 6월 마저 잘 보내시길요~

렛잇고 2024-06-21 11: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날이 엄청 덥네요 서곡님도 6월 덥지만 책과 함께 시원한 하루하루 되시길요!!^^
 
컬러의 세계 - 우리가 사랑한 영화 속 컬러 팔레트
찰스 브라메스코 지음, 최윤영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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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엔 그랬다. 카메라로 한 컷 한 컷 찍어 사진으로 인화해서 잘 나온 사진을 간직했다. 인물이 잘 나온 사진, 풍경이 멋진 사진이면 잘 나온 사진이라 여길 만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DSLR, 디지털카메라에 이어 핸드폰 카메라가 사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도 없는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보고, 저장하고, 누군가에게 SNS 같은 데에 공유한다. 그러기 위해선 거치는 것도 있다. 일명 편집인데, 이를 위해 필터를 쓴다. 필터에 따라 사진을 밝게 혹은 감성적이게, 차분하게, 냉랭하게, 여러 느낌을 줄 수 있다. 같은 사진 다른 느낌이다. 색을 바꾼 게 아니라 살짝 밝게 혹은 어둡게 한 한 끗 차이일 뿐인데, 그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그러니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려는 매체(영화, TV, 패션 등)에서 '색'이란 매개체를 그냥 둘리가 없다. 이 책에서 말하듯 "모든 색에는 의도가 있다!"


저자는 색의 스펙트럼과 활용도 면에서 50편의 영화를 골라 책에 담았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을 뽑아서 그 영화에 사용된 색상을 사각형 모양과 크기로 배열하였다. 어떤 색이 영화에 사용되어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정확한 색상명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용된 색들이 영화 속에서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조화로운지 한눈에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글자 크기는 비록 작지만, 영화와 사용된 색이 더 주목을 받아서 영화에 끼친 '색'의 영향력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무심코 봤던 영화들이기도 하고, 모르는 영화일 수도 있다. 그 50편에서 저자는 영화들에 담긴 색에 숨은 잠재력을 발견했다.(p.14) 배우가 입은 옷, 뒤의 배경, 비치는 빛. 영화에서는 하나하나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어 보인다. 저자가 미국인이어서 설마 했는데, 한국 영화도 있어 놀랍고 반가웠다. 다만 더 많은 (한국) 영화들이 이 50편에 들어가는 걸 못한 점은 아쉽기도 했다. 저자 또한 자신이 미국인으로 할리우드 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가 많다는 한계를 인정했다.(이런 인정하는 부분도 개인적으론 괜찮았다) 




아쉬움은 뒤로하고 다른 49편의 영화들과 색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또 잊히는데, 이는 다른 영화에서 새로움과 색의 의도를 아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담긴 색들에 이런 의도가 담겨있다니!!! 이런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다니! 왜 그렇게 어떤 영화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는지, 또 어떤 영화에선 이런 감정이 색을 통해 이와 같이 전해졌는지 알면 알수록 빠져든다. '이런 영화도 있었구나!'싶어 새롭고, 영화 속에 숨겨진 감독의 의도로 그 영화가 궁금해져서 수도 없이 검색창에 영화명과 배우들의 이름을 넣어보아 찾곤 했다. 이런 점들은 필자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바(p.15 참고)를 제대로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가 시대를 따라 여러 영화 요소에 변동이 일어나 듯, 영화 속 '색'에서도 피할 수 없었음을 이 책은 4가지 파트로 영화를 순차적으로 배열해 보여준다. 흑백에서 컬러 영상으로 흐름이 변하면서 '색'이 주는 표현의 강도가 더했을 텐데, 이는 점차 세부적으로는 필름과 카메라, 컴퓨터라는 도구들이 색의 흐름의 변동에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잠깐 다룬 '코닥과 후지필름의 알력'에 대한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여기서 다룬 영화 중 내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들 몇 가지를 본다면 이렇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화려한 스테이지에 쏟아지는 간판 같은 전구 불빛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중 일부 색상은 너무 밝아 현실에선 찾을 수 없어 직접 제작했다는 뒷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프렌치 러브레터>의 색은 또렷하면서도 따뜻하고 차분한 느낌이 든다. 흰 눈을 배경으로 한 재회 장면은 애틋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준다. 사진 한 장, 색상이 주는 느낌 하나만으로도 영화에 이렇게나 강렬한 인상을 준다니! <중경 상림>에서는 두 인물이 만나면 발산하는 색채와 아련한 만남으로 잔잔한 슬픔으로 표현된 색감은 다르다. 왕가위 감독이 이렇게나 색채를 잘 다루는 사람이었던가 보다. 그래서인지 '페이'가 입고 있는 강렬한 노란색 티와 커다랗고 동그랗게 눈을 뜬 모습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멜리에>에서도 인물과 배경의 색은 강렬하여 겉의 화려함을 보여주지만, 인물 내면에 그가 받은 상처와 상실의 감정이 대조되어 있음을 색이 더욱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으로 영화 속 색이 주는 감동과 여러 감정을 헤아리다 보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간 주변의 색들의 향연을 여러 가지 곱씹어 보게도 된다.


어려울 수 있는 용어들은 번호를 달아 뒤편에 달았다. 인물, 단체 및 영화의 색인도 달았으니 고루 찾아 읽어볼 만하다.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이 보아도 좋겠지만,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분들이 보면 더없이 좋겠다 싶었다. 하나만 말하자면, 저자에게 바람이 있다. 이처럼 색과 관련하여 더 많은 영화들을 소개한 책을 추가로 출간해 주었으면 한다. 특히 한국 영화를 더욱 많이 넣어주시길!!^^ (<설국열차>, <기생충>, <친절한 금자 씨> 이런 영화요!!)


이 책을 읽으면 평소에 '색'이 더 눈에 띌 거라 기대했다. 그러면 더 다채로운 세상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나 이 책을 보고 나니 영화까지 안 가고도 사람들의 옷과 액세서리 등 색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걸 의도로, 어떤 마음으로 저 옷을 저 액세서리를 선택했을까 궁금해졌다. 알면 보인다고, 앞으론 영화를 봐도 영화에 사용된 배경과 인물의 색의 의도와 의미를 궁금해하고 찾으려 애써볼 것 같다. 참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색'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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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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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한다고 도서관에 있는 아이 옆에서 기다리며 읽었다.

워낙 요즘 대세인 작가라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었다.

일단 책을 보고 놀랐다.

생각보다 너무 얇아서!

그리고 또 놀랐다.

너무 술술 읽혀서!

다음이 어찌될지 궁금해서!!


아빠는 나(화자)를 킨셀라 아주머니와 아저씨 집으로 데려간다.

부족함 없지만, 나이든 부부 킨셀라 부부, 그들의 돌봄으로 나는 잘 적응하며 지낸다.

비밀이 없는 집으로 나를 안심시키고, 예절과 해야 할 바들을 부모처럼 가르쳐주는 부부는 나를 딸처럼 다정히 대해준다. 그러다 이 부부가 가야할 장례식장에도 갔다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듣게 되는데...

킨셀라 부부는 군더더기 없는 말만으로 아이를 정성껏 대한다.

'나'도 이곳에서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주변을 둘러보며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데, 이 과정을 부부는 바라봐주고 기다려준다. 나를 어여쁘게도 안쓰럽게도 여기며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내가 침대에 실수를 해도 이를 꾸짖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책망한다.

내용은 다르긴 하지만, 내(화자)가 맡겨지는 시점부터 나는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다.

현란한 말과 표현이나 행동이 아닌, 상대를 순수하게 사랑해주고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는 모습이 <빨간머리앤>의 매슈아저씨와 마릴라 아줌마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게 나를 놓고 가버리는 아빠,

돌아온 나를 질책하는 아빠...

'나' 말고도 언니들, 동생도 있는데다 이번에 태어나 추가된 동생까지 많은 자식으로 버거운 엄마

차라리 이런 환경에서 키울 거라면, '나'를 킨셀라 부부가 키워주면 안 될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를 바래다 주면서도 묵묵히 서둘러 떠나는 킨셀라 부부의 모습은 울컥할 정도로 안쓰러웠고,

내가 달려가는 모습은 뭉클했다.


뭔가 자세히 말하지 않는데도 책 내용이 궁금해 자꾸 궁금하고 더 알고 싶어만 진다.

중편소설이라 너무 빨리 끝나는 점이 아쉽기도 하고 말이다.

그의 다른 소설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클레어 키건' 의 첫 작품이었다.

왜들 주목하는지는 읽으면 알게 될 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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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5년, 미래경제를 말한다
유신익 지음 / 메이트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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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서 #다가올5년미래경제를말한다



서점 경제경영서 코너뿐 아니라 가까이 TV와 유튜브만 봐도 현재 경제경영에서 주목하고 있는 이슈와 주제들이 보인다. 수두룩하게 돌렸던 TV 채널, 그리고 내게 추천으로 떴던 유튜브의 주제들을 떠올리자면 요즘은 코인, 부동산, 그리고 주식이 주목하는 경제 주제로 보인다.

코인을 보면 코인에 손도 대지 않은 나는 뭐 했나 싶고, 부동산을 보면 그 많은 땅들이 언제 올랐나 지금에야 닭 쫓다가 지붕만 쳐다보는 개 신세로 있는 걸까 싶다. 주식을 보면, 오랫동안 묵혀뒀다가 이미 떨어져서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파란불과 "요즘엔 ㅇㅇ이 뜨던데!? 몰랐어?"라고 말하는 옆집 언니의 말이 다시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이렇게 나 혼자 동떨어진 섬에 살듯 살면 안 되겠다 싶을 때, 뭐라도 하나 끌리거나 많이 들어본 주제로 다가가기엔 너무 방대해선지 나한테는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바로 '우리를 지배하던 경제 리더들의 정책은 허상이었다!'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모두가 경제에 전문가가 아닌 이상 유명하다는 전문가들의 말, 그리고 글, 방송을 의존하며 경제를 이해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나오는 그들의 예상과 분석은 우리의 무지함을 딛고 강하게 의지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경제'바이블'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경제의 신은 죽었고, 경제리더들의 정책은 허상이었단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디지털에 이어 AI 시대에 도래하는 지금 정말 전문가들의 말은 허상일까?

예측하고 예상하던 그들의 말은 우리에게 의미 없는 것일까?

일단 이 책에서 다루는 것들이 궁금하다면 차례를 참고하면 되겠다.



이 책은 일본의 내수 정체 등으로 '일본 붕괴론', 재정적자와 부채 증가로 '미국의 붕괴론' 등 같이 극단적으로 추측하고 예상했던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시작한다. 나도 남들처럼 뉴스에서 보고 일본 경제 상황으로 일본 붕괴론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것이 왜 섣부른 판단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경제는 그 환경도 풀어가는 방식도 매우 복잡한 분야다. 그러면서 전과 같이 전통 경제학 파인 신 고전학파, 케인스학파, 좌파 경제학 등의 이론에만 의지해선 현재 세계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현대 화폐이론'이다.(물론 이 이론도 절대적이진 않다고 하긴 했다)


전 세계 경제가 큰 틀을 유지할 수 없다는 한계의 사실과 함께 사회적으로 커지는 두 갈래의 목소리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현대 화폐이론이 부각되었다.(p.49) 이 이론에서는 화폐를 지속적으로 지키고, 조정해야 하는 사회적 약속으로 보았다. 화폐의 신뢰가 잘 구축되고 유지되면 경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p.51) 즉, 돈을 필요한 곳에 잘 쓰고 거둬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미국의 상황을 보면 (이 이론을 근거로) 적극적으로 돈은 풀었지만, 달러 유동성 회수에서는 현재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다.


그래서 이렇게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달러 가치를 컨트롤할 능력이 저하되고 달러 가치의 균형 범위 이탈하게 될 위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대비해 경제 강국 지키기, 투자 정책 강요, 관세를 통한 달러 균형 컨트롤, 외교력으로 타국의 기업세율 조정하기 등 하게 될 것이다.

세계 여러 국가들이 왜 통화 패권에 집중하는지, 유로화는 왜 달러를 대체할 수 없는지, 달러 패권 시대에 왜 신흥국들은 어려움을 겪는지를 현실적으로 살펴본다. 영국이 금본위제 시기를 지나 스털링 블록(파운드화 사용)으로 기반을 다졌지만, 파운드 가치 하락으로 파운드 화가 몰락한 상황에 이어 달러가 통화 패권 1위가 되는 상황, EU 내 국가 간 경제 불균형 같은 내용은 처음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유익하고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책은 단순히 국가 간의 교류와 경쟁, 생산적으로 성장하는 경제가 아닌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경제 사건들을 통해 화폐가 어떤 영향력을 갖고 경제가 성장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2023년 은행 위기, 미중 전쟁 위기, 코로나 위기 등의 여러 위기를 맞았던 미국이 어떻게 이 시기를 지나쳐왔고(통화 패권, 화폐의 유동성),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디지털 달러), 미국에겐 이대로 가면 안 되는 어떤 위험성(인플레이션, 부채, 의회의 갈등 등)을 안고 있는지를 미국 경제를 통해 세계적인 경제 흐름을 소개한다. 읽다 보면 통화가 가진 신용적인 가치가 경제에 있어서, 특히 세계 경제에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중요한지 체감이 될만하다.


이 책이 사실 경제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엔 다소 어려운 면이 있기는 했다. 경제에 대한 지식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는 경제에 대해 유연한 사과와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경제를 모른다고 또 못 읽을 책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통화 패권, 스털링 블록 등 경제 개념을 알게 되고(*를 사용하여 친절하게 부연 설명이 되어 있음), 단순한 경제 개념이 아닌 세계의 지정학적, 역사적으로 경제 흐름을 이해를 돕는 설명이 흥미롭고 유익했다. 이론과 패턴에 의한 경제성장이 아닌 '통화'라는 세계경제 강자가 되는 강력한 요인으로 떠오르는 현실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한국 경제에도 전략적으로 적용해 볼 만한 대안을 제시했는데, 전반적인 경제 시각과 더불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 경제에 대비할 수 있어서 보다 현실적이라 볼 수 있다.


다가올 5년, 경제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싶다면 이 책 꼭 한 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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