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장기 기증 거부 국가 대장에 이름을 등록하지 않은 경우 동의 추정 원칙을 채택하게 되어 있다는 법을 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기증자가 사망했는데, 정확하게는 기증자가 더는 말을 할 수 없고 더는 동의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데 어떻게 동의 추정이 원칙이 될 수 있는지 자문하게 되는 일을 겪게 하지는 않겠다. 생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예라고 말한 것과 같다는, 즉 수상쩍은 격언의 또 다른 버전인 〈말하지 않은 자는 동의한 것〉이라는 단언을 듣는 일을 겪게 하지는 않겠다). 그렇다. 지금껏 나눴던 대화의 의미를 그토록 허망하게 날려 버릴 그 법조문들은 끝끝내 들먹이지 않을 테다. 법이 다른 결론을, 그러니까 상호성과 교환에 입각한 보다 복잡한 개념을 이끌어 낸다면, 즉 개개인이 잠재적으로 수혜자로 추정될 수 있기 때문에 사망할 경우 개개인을 기증자로 추정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라면, 그 순간 그 면담은 단순한 절차나 위선적 관례로 변해 버릴 것이다. 지금은 그는 기증에 대한 질문을 받아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길을 트기 위해서만, 혹은 난간이 손을 떠받치듯 법이 그들을 떠받친다며 기증 행위를 하는 가족들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만 법적인 내용을 거론한다.
106/248
여기서 토마가 갑자기 싫지 않아졌다.
젊은 시신의 장기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지만, 그걸 얻기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법을 언급하여 협박하지는 않겠다는.
살아 있을 때, 그게 겨우 10대여도 장기 기증 의사를 분명히 해두거나 장기 기증 안 한다는 말을 분명히 해둬야겠군.
프랑스는 법이 저렇구나. 디폴트가 장기기증이구나. 좋은 것 같기도. 장기는 얻기 어려우니까.
여기는… 장기 밀매 때문에 납치도 가능한 나라인데.
또 다시 적었다가 지웠다가 지웠다. 내 트라우마 중 하나. 무엇보다 간절하게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소모되는 방식에 나조차 너무 익숙하니까. 스스로 카더라가 되고 싶지 않아 꼭꼭 숨겨놓는다.
심장, 신장, 폐, 간.
이중에 내가 죽어도 쓸 수 있는 건 신장 뿐이네. 신장도 망가지지 않게 주의하며 살아야겠다. 사실 온전한 모습으로 죽고 싶긴 하다. 아직 장기기증은 생각하기가 두렵다. 죽고 난 뒤 이야기인데도. 장례때도 사흘간 영안실이 아니라 병풍 뒤에 있고 싶은데 그러면 냄새가 너무 나겠지.
제목은 여기에서 따왔나보다. 살아있는 자들은 고쳐야지.
다독이고 보살피고 치료하는 의미에서의 고친다는 말이려나:
남아 있는 사람들 생각도 해야지(그의 사무실에 가면, 문 뒤쪽에 「플라토노프」의 한 페이지를 복사해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플라토노프」라는 희곡을 그는 본 적도 없고 읽은 적도 없지만, 무인 빨래방에서 굴러다니던 신문에서 건져 올린 보이니체프와 트릴레츠키 사이에서 오간 대화의 한 토막은 포켓몬 카드 더미에서 리자몽을, 초콜릿 상자 안에서 황금 티켓을, 보물을 발견한 사내아이가 그러하듯 그를 전율에 떨게 만들었더랬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니콜라이? 죽은 자들은 땅에 묻고 살아 있는 자들은 고쳐야지).
110/248
수중기가 뭐지? 프랑스 소설이라 그런지 아프리카가 배경이긴 했지만 잠시 아랍어로만 의사소통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순간 놀랐다. 한때 중국 유학생들하고 식당에 가서, 중국어로만 대화하던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전부 다 엿 같은 얘기요. 너그러움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너그럽다거나 여행을 다닌다는 게 어떤 점에서 그 아이가 자기 장기를 기증하기를 바랐을 거라는 결론을 내려도 된다고 병원 측에 허용하는 건지 난 잘 모르겠군. 그건 너무 편한 생각 아닌가. 그럼 내가 걔가, 시몽이 이기적이었다고 말하면 이 면담은 끝내는 거요? 갑자기 그가 토마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중얼거린다. 우리가 아니라고 답할 수 있는 건지만 말해 보라고. 자, 어서. 105/248
삶은 빨래처럼 낯빛이 허옇게 질린 채 미동도 않던 토마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시몽의 육체는 마음대로 약탈해도 되는 장기 저장고가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고인의 의사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해본 뒤 거부로 결론 나면 절차는 중단됩니다. 105/248
예를 들어, 장기 기증 거부 국가 대장에 이름을 등록하지 않은 경우 동의 추정 원칙을 채택하게 되어 있다는 법을 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기증자가 사망했는데, 정확하게는 기증자가 더는 말을 할 수 없고 더는 동의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데 어떻게 동의 추정이 원칙이 될 수 있는지 자문하게 되는 일을 겪게 하지는 않겠다. 생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예라고 말한 것과 같다는, 즉 수상쩍은 격언의 또 다른 버전인 〈말하지 않은 자는 동의한 것〉이라는 단언을 듣는 일을 겪게 하지는 않겠다). 그렇다. 지금껏 나눴던 대화의 의미를 그토록 허망하게 날려 버릴 그 법조문들은 끝끝내 들먹이지 않을 테다. 법이 다른 결론을, 그러니까 상호성과 교환에 입각한 보다 복잡한 개념을 이끌어 낸다면, 즉 개개인이 잠재적으로 수혜자로 추정될 수 있기 때문에 사망할 경우 개개인을 기증자로 추정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라면, 그 순간 그 면담은 단순한 절차나 위선적 관례로 변해 버릴 것이다. 지금은 그는 기증에 대한 질문을 받아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길을 트기 위해서만, 혹은 난간이 손을 떠받치듯 법이 그들을 떠받친다며 기증 행위를 하는 가족들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만 법적인 내용을 거론한다. 106/248
심장, 신장, 폐, 간을 적출하게 될 겁니다. 절차에 동의하시고 나면 전 과정에 대한 정보를 드릴 거고요. 그리고 아드님의 육체는 복원이 될 겁니다(그는 늘 회피의 모호성보다 건조한 정확성을 선호하는 성향대로 물러서지 않고 장기들을 나열했다). 108/248
남아 있는 사람들 생각도 해야지(그의 사무실에 가면, 문 뒤쪽에 「플라토노프」의 한 페이지를 복사해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플라토노프」라는 희곡을 그는 본 적도 없고 읽은 적도 없지만, 무인 빨래방에서 굴러다니던 신문에서 건져 올린 보이니체프와 트릴레츠키 사이에서 오간 대화의 한 토막은 포켓몬 카드 더미에서 리자몽을, 초콜릿 상자 안에서 황금 티켓을, 보물을 발견한 사내아이가 그러하듯 그를 전율에 떨게 만들었더랬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니콜라이? 죽은 자들은 땅에 묻고 살아 있는 자들은 고쳐야지). 110/248
토마가 방울새를 구입했던 날, 수중기의 구름 속에 짓눌린 알제[25]는 더위에 잡아먹힐 듯했다. 호신은 인디고 색깔의 덧문을 내린 아파트 안에서 맨 다리에 줄무늬 젤라바[26]만 걸치고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계단이 있는 곳의 벽은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소두구[27]와 시멘트 냄새가 풍겼다. 우스만과 토마는 어스름에 잠겨 있는 계단을 따라 세 층을 올라갔다. 흔들리는 노르스름한 빛이 지붕에 있는 무광택의 유리판을 통과하여 1층까지 겨우 가 닿았다. 사촌들의 재회로(힘찬 포옹. 그러더니 이로 피스타치오를 깨물어 먹으며 오도독거리는 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빠르게 진행되는 아랍어 대화) 토마는 한 옆에 밀려나 있다. 우스만의 얼굴은 모국어를 말하기 시작하자 다르게 바뀌어서 토마가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다(오그라드는 턱. 드러나는 잇몸. 굴러가는 눈알. 목구멍 저 깊숙이에서, 목젖 저 뒤쪽의 복잡한 부위에서 나오는 음들. 눌렸다가 입천장에 부딪히는 새로운 모음들). 그건 거의 누군가 다른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거의 낯선 사람. 그래서 토마는 혼란스럽다.
133/2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