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어쩌다 보니까.
다행히도 나는 나로 사는 게 싫지 않아서, 자기애가 좀 있어서 저 말로 대체로는 버텨지지만 버텨지지 않을 때도 있다.
자기애는 공대 다닐 때 오빠들에게 배웠다. 화장실 조명 아래에서 나는 나를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다들 화장실 조명 아래서는 자기가 정말 잘생겨 보인다더란다. 그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나정도면 잘 생겼지, 하는 변별력 없는 말도 하도 듣다 보니까 진짜 잘 생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에다가 세상에, 나는 내 꼬라지가 백발에 산발이어도 전혀 싫지가 않아졌다. 여대 나온 내 동생은 그런 나를 가끔 깔깔거리며 본다. 그런데도 솔직히, 나는 내가 만족스러워. 오늘 뚱뚱하다는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도 내가 전혀 안 뚱뚱해보여 ㅋㅋㅋㅋ 그닥… 내 똥배 정도면 아주머니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인덕과 덕망(동의어로만 생각나네 ㅋㅋ)의 복부 아니냐고. 자기긍정과 자기애는 진짜 공대에서 배웠다. 공대 나오길 잘했어. 정말.
아무튼 주로 욕을 섞어가며 스스로에게 저 말을 한다. 그런데 아무때나 사랑 남발이 아니고, 그 말을 할 때는 꽤나 절실할 때다.

저놈의 협박같은 자기확언의 존나 사랑한다! 가 안통할 때는 불닭볶음면이나 요즘은 길바닥에서 없어진 눈물맛 닭꼬치나 신전 떡볶이 같은 매운 맛이 첫번째로 효과가 있고.

두번째로 누군가 애도할 존재를 그린다. 허수경이나 진이정이나 박서원이나 기형도 같은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그 시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즙을 짜내거나, 시인이나 철학자의 애도글을 읽는 것. 바르트의 애도일기 같은 것 말이다.

이 책은 그 두번째 방법의 책 중에서도 더욱 먹먹해 주변이 고요해진다. 잘 샀다! 낮에 보도블럭 공사하고 시끄러울 때 이거 읽다 자다 하면 딱이겠다 싶다. 그런데 나는 내일부터 다시 공부하러 갈거긴 함.

오늘 병원 갔다가 홍익문고 갔는데 지하와 일층 공간을 핫트랙스입점을 해서 꾸며놓았더라. 작년에 받은 문상으로 수첩과 볼펜심과 시집을 샀다. 문상으로 사서 좀 죄송하지만 공무원 교재가 아닌 시집을 사서 나에게도 좀 미안하지만 어떻게 보면 나에게 다행한 일인 것 같다. 릿터를 사려고 했는데 어차피 꾸준히 안 읽은지 오래되었고 다시 읽기 시작하기가 꺼려져서, 그러니까 내가 다음에도 계속 이어서 살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 옆의 시집으로 눈을 돌렸다. 이 책이 얼마전에 읽고 싶어 그런지 눈에 두번째로 들어왔다. 허수경 시인의 내가 가지지 않은 시집도 사고 싶었지만….

조금 살아질 것 같이 막히던 숨이 트였다.

무척 그림이 그리고 싶다. 오죽하면 남의 그림도 보러가고 싶냐 ㅋㅋㅋㅋ

어떻게 슬픈 이야기들로 이렇게 묵직하고 두꺼운 시집을 묶어냈을까. 얼마나 아프게 써내려간 것들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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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21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 시집 반가워요. 냉큼 담아갑니다.
지지난주인가 e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김소연 시인이 김혜순 시인의 시 엄마란 무엇인가를 들고나와 소개했거든요. 운전하면서 듣다가 헉 했잖아요. 이 시집이었군요.
그나저나 저토록 두꺼운 다이어리^^
나도 공대 나올걸요 ㅎㅎ

Persona 2022-06-22 00:18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시 듣고 샀어요. 그런데 매 시 뭔가 철렁하게 하고 울컥하게 하네요. 정말 멋진 시집이에요! ㅎㅎㅎ
뭐든지 뚱뚱한 게 좋더라고요. ㅋㅋㅋ

scott 2022-06-21 2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르소나님 그림을 기대하며 마지막 포스팅 스크롤까지 쭈욱! 담번 포스팅에 스케치 사진이라도 올려주세요 ^ㅅ^

Persona 2022-06-22 00:19   좋아요 1 | URL
요즘 그림을 못 그리겠더라고요. ㅠㅠ 도전하면 그림 그리는대로 여기에 제일 먼저 자랑할게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mini74 2022-06-22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아랫배를 보면 까꿍 ! 해줍니다 ㅎㅎ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남의 그림 보러가고 싶단 말이 확 와닿아요. 오죽 내 이야기가 하고 싶으면 남의 책을 그리 열심히 읽나로 감정이입이 됩니다. 좀 식상한 노래지만 페르소나님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ㅎㅎ 입니다. ㅎㅎ

Persona 2022-06-22 00: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너무 좋아요. ㅋㅋㅋ 좋아서 미촤버리겠고 환장하겠네요 ㅋㅋㅋㅋㅋ
정말 그런 거 같아요. 내가 내 손으로 내 입으로 표현하기 힘들 때 다른 사람의 그림과 언어를 구경하는 것이 은근 좋더라고요. ㅎㅎㅎ 일단 위안도 되고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닌 거 같아서 든든해지고. 그런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