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험이 어쩌면 올해 제일 중요한 시험이었다. 나는 인천이나 서울을 벗어날 생각이 별로 없어서 지방직을 제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고. 물론 인천은 섬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그건 좀 걱정되기는 했다. 계리직을 친다면 그래서 서울로 치려는 생각이 있었다. 왜냐면 서울에서 멀리 가봤자 인천공항 국제 우편 담당하는 쪽인데 거기야말로 내가 가고 싶은 곳이어서 ㅋㅋㅋ 근데 오늘 친 건 교육청 지방직. 까딱하면 연고지 없고 방 구하기도 어려운 섬 학교로 갈 수도 있나 괜히 상상하면서도, 될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지원했고 주거지 근처로 일하게 된다면 진짜 더 바랄거 없는 게 교육청이나 학교인 거 같았다. 학교에 충성도가 높은 삶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좋아하기는 한다.

작년 7월에 공부해야지 마음을 정하고 진짜 정신 차린 건 4월에나 되서였기는 하지만, 저번 국가직 때보다 내가 발전 된 거 같아서 스스로 최선을 다하면…? 이라고 기대를 걸기도 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문제를 읽었더니 한시간 40분, 100분간 백문제 풀고 마킹하는 시험에서, 어라? 왜 시간이 남지?
그때부터 망스멜이긴 했다. ㅋㅋㅋㅋ
아직 시험지 체점은 안했지만 국가직 때보단 낫지만 여전히 턱도 없는 걸 안다.


너무 신기한게 여태 시험 치면서 울어본 적이 없는데 집에 와서 계속 눈물이 났다. 최대한 눈에 바르고 간다고 공부하다가 잠이 부족해서 집에 와서 졸았는데 11:40 시험 종료 후 11:50분에 시험장을 나와 1:24분에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이후 4:30까지 밥도 안 먹고 졸다가 울다가 졸다가 울다가 했다.

어허허하헣헉 흑흑 하고 운 게 아니고 그냥 눈물이 줄줄줄 나왔다. 에너지를 안 써도.
처음엔 진짜 나이 먹었나. 기력이 딸려서 시험공부도 힘든 건가. 그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이윽고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문득 훗, 하는 마음이 올라 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훗, 나 쫌 했나보네? 이런 걸로 울고? 오올~~
그때부터 울적하고 더러운 기분이 싹 사라짐.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고 너무 기특해해서 우울할 틈이 없다.
나새끼 공부 안한다 안한다 하다가 한 건데 오늘 좀 제대로 먹어줘야지, 싶어져서 일하느라 바쁜 동생에게 쿠우쿠우 가자고 해서 잔뜩 초밥이랑 육회 먹고 왔다.
그랬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름 초밥, 케이크, 과일 등 당류는 많이 참았고 육회를 정말 많이 먹었다. 육회랑 좋아하지 않는 훈제 연어 연어랑 좀 좋아하는 참치 위주로. 그래서 혈당이 오르는 것도 뷔페 폭식할 때 오르는 힘든 당이 아니고 가마솥밥 먹은 느낌 정도로 올랐고. 그리고 좀 걸었다. 날 밝을 때 걷는 거 만큼 울적한 기분에 짱인 건 없는데 날이 넘 눅눅하긴 함…


시험 끝나고 집에 올 때 시험장에서 걸어서 지하철을 오랜만에 탔다. 1호선이고. 나는 빈집만 지나면 쭈뼛쭈뼛하는데 왜이리 빈집이 많은지 쓸쓸했다. 같이 탄 여자애가 있었다. 나보단 어려도 걔도 서른 넘은 거 같은데. 츄리닝에 커다란 검은 배낭을 메고,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와 안경. 축 처진 어깨. 가방에 달린 마이멜로디 인형과 흰머리가 너무나 슬펐다. 나는 인형 대신 이케아 동전지갑을 달고 다니지만 작년 여름부터 확 늘어버린 흰머리로 스트레스인데.

사실 근사한 식사를 역 근처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그 여학생을 보고 밥먹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게 갈아탈 때도 보고 급기야 내가 내린 역에 그 여학생도 내렸다. 내내 걷는 동선조차 그 흰머리 마이멜로디랑 겹쳤다. 그러다 갈렸는데. 어릴 때 다니던 동네의 빌라와 연립주택 많은 길로 가는 거다. 내내 점심시간이 지나가는데도 근처 군것질 거리에는 눈길도 안 주고. 그 길은 도서관 가는 길이기도 했다.

저 친구는 채점하러 가는 걸 수도 있고 집밥 먹으러 가는 걸 수도 있지만 언젠가 꼭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니 저 여학생은 이번에 잘 될 수도 있고. 근데 그냥 달랑거리는 명랑한 인형에 비해 온통 까만 복장에 머리는 하얀 그 친구를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난 왜 이렇게 공시생의 흰머리가 슬프지? 수능 십년 준비하느라 대학을 못 가고 결국 그냥 공무원이 됐던 오빠 흰머리도 슬펐는데.


아무튼 그건 그렇고 쿠우쿠우 다녀오니 아무런 욕심이 없어진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태도 그냥 행복으로 치고 싶다.


이북앱에 이 책도 있길래 조금 읽었다. 어릴 때부터 한 직업을 쭉 가진 작가님도 대단한 거 같다. 나는 어린 나이에 다른 회사 가보지 않고 그냥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퇴사하지 않고 꾸준히 다니는 거가 일단 그냥 엄청 대단한 거 같다. 아무래도 내가 자꾸 관두는, 혹은 그만둠을 당하는 쪽이었으니까. 정말 멋진 거 같다.
한 직장에서 오래오래 다니는 걸 난 참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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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6-20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만두는 것도 그만두지 않는 것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것이 없는 것도 없는.. 참으로 어려운 우리네 인생사 입니다... 고생했어요. 토닥토닥~ 그래도 맛난 거 먹고 햇빛보고 걸었다니까 제가 다 뿌듯합니다.

Persona 2022-06-20 21: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