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티핑 더 벨벳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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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로맨스를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니다. 초딩때 캔디캔디에서 이미 읽기가 어려웠었다.

이런 책들 중에 재미있게 읽은 건 샬레인 해리스의 수키 시리즈(Sookie Stackhouse)다. 남주 여주가 워낙 사기캐라 괴리감 느껴지지만 여기선 끊임없이 흥미진진한 다른 사건이 있으면서도 아무도 분위기 못 읽고 눈치 없는 빌런으로 나오지 않는다. 성애묘사가 찐하게 있어도, 그것도 흡혈귀가 나오는데도, 대체로 합의하에 이루어지니까 … 합의 없는 건 범죄다. 이 시리즈에선. 물론 남친이 다 아는 사람 안에서 이 사람 사귀었다 저사람 사귀었다 하는 게 좀 짜증나지만 그게 또 바람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런게 중요하게 읽히지도 않고. 왜냐면 바로 옆에서 마구마구 사람이 죽어나간다. 그게 어떤 수퍼내추럴 짓인지 수키는 남의 마음 다 알 수 있는 무적의 텔레패스고. 근데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이후로는 대체로 로맨스물은 아예 안 읽게 되는 거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책도 남성 독자는 별로 없을 거 같다. 드라마 트루블러드는 굉장한 19금이고 스카스가드는 엄청 멋있다 들었는데(그나저나 이이는 올해 우리나라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 소설이 당선된 걸 알려나), 소설은 상상하는 만큼만 야하고(따라서 상상력이 부족하고 속도감을 즐긴다면 그렇게 야하지 않음 ㅋㅋㅋ 자체적으로 상상 안하면 됨) 그 외에는 다 착한 수퍼내추럴과 악한 수퍼내추럴 끼리 싸움에 서로 혹은 인간들까지 희생당하는 스팩터클한 살인/살육 사건들과 누가 누굴 좋아하고 오해하고 헤어지고 다시 사랑하고 뭐 그런 인간관계 이야기이고. 그런(?) 장면은 싫으면 제끼면 된다. 그리고 10권 이상인데 그런(?) 장면은 한 작가가 써서 다 비슷비슷해서 그냥 제끼면 됨. ㅋㅋㅋ 단점은 그런(?) 묘사(이해)력이 는다는 거랑 일반적인 용어가 아닌 수퍼네추럴과 무속신앙 쪽 표현과 용어를 알게 된다는 점이고 그런 거 빼고는 페이지 터너라 비교적 읽기 쉬운 영어 원서다. 또 단점은 트와일라잇 재미없어서 못 읽게 됨;;;;; 또 시리즈라 작가님 문체에 익숙해져서는 얇고 속도도 빠르고 아주 금방금방 완독할 수 있는 서숙희 씨리즈. 근데 왜 이 이야길 여기서 했지?


그러니까 아무튼, 퀴어문학이라고 하면 누군가는 GL, BL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그런 걸 안 좋아하는 편이라 주류에서 말하는 퀴어 문학을 보통 읽었다. 그걸 쓴 작가도 퀴어가 아닐 때도 있고.
내가 말하는 퀴어는 에드워드 포스터의 ‘모리스’나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같은 거였다. 박민정이나 황정은, 김지연의 일부 글에 보이는 퀴어코드 같은 거. 감정과 연대의 모습이 부각돼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글들. 일단 어차피 퀴어든 아니든 연인과 부부의 결혼과 이혼 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다 로맨스는 아니잖아.


아무튼 이책은 내가 평소에 읽는 책들과 다르게 일단 성애묘사가 많아서 당황했고, 빅토리아 시대의 성과 관련된 고전적인 은어를 번역하신 분이 또 고유어로 풀어놔서 좀 당황스러웠다. 어휘력 짱짱맨.
솔직히 제목도 예전에 봤던 ‘벨벳 애무하기’…
이거 제목 때문에 안 읽은 거였는데 이게 바로 그 책이었다. 이 말을 영문학 중 퀴어문학 배울 때 안 배운 게 아닌데도, 한글로 적힌 거 영어로 전환 같은 거 전혀 안되니깐, 퀴어가 뭐지? 하는 느낌으로 골랐다가 머리가 얼얼할 정도다. 로버트 브라우닝을 왜 자꾸 호명하는 건가. ;;; 내 이름이 어디선가 성행위의 한 행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면 그런 식으로 이름 남기고 싶지가 않다. 그런가 하면 또 밴대질이란 순 우리말이 자꾸 나와가지고 당황하고. ㅋㅋㅋ 아무튼 이쪽 어휘력 짱짱맨.

그리고 낸시야 왜 자꾸 겨드랑이 냄새 이야기 하냐? 자꾸 너무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나는 그런 거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는 부분이라 잘 말 안하는 부분이긴 한데;; 그래도. 오늘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어제 목욕을 했음에도 하루종일 더운데 앉아서 공부하니까 등이 축축해지고 거기서 땀냄새가 났다. 옷에 땀냄새 나는게 버스타고 오는 내내 너무 스트레스고 내가 싫었는데 다른 사람 냄새까지 굳이 소설에서 느껴야 하는 걸까? (라며 나도 냄새이야기 잔뜩 풀어버림) 아 내일 그냥 가지 말까. 비오고 더우면 힘들 거 같다. 근데 집은 더 더울 텐데. 이번주 시험인데 이 책만 읽은 거 같고.

그건 그렇고 나는 번역가님이 남성인 거 잘 모르겠더라. 낮춤말이나 비속어는 원서에도 그렇게 적힌 거고. 예전 번역본은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나는 꼼꼼하게 하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황하고 거북한 부분이 있었어도, 그래도 도중에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충분히 읽을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근데 그게 뭘까?

일단 어린 애가 성에 눈뜨는 과정을 보고 처음부터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런 식으로 숨겨진 애인이 되는 것은 좀 그랬다. 애가 어떤 꼴을 당하게 만드려고 작가는 이 어린 주인공을 몰아칠까. 내가 그냥 지나치면 왠지 안될 거 같고.
그런데 동성 애인이 주인공을 배신하고, 방황하니까 그때부터 더 대환장이었다. 남장을 하고 여성스러운 남창을 찾는 남자들에게서 남창짓으로 돈을 벌고, 그러다 남장 여자인 걸 안 귀부인의 눈에 띄어 1-2년간 그 귀부인의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시키는대로 노예나 다름없는 첩 노릇을 하고. 가운데 이 부분 읽는 게 제일 고통스럽고 짜증났다.

그러다 결말에선 갑자기 웬;; 당대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바랄 너무 이상적인 상태로 돼가지고 사회주의자로 끝난다. 랭골렌의 두 여인으로 끝나는 느낌? 랠프는 정말 괜찮은 거야? 당시에 예민한데, 주인공의 성향을 알게 되면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주고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았을까? 빌리나 토니같은 남자가 있을까. 당시 레즈비언이나 게이를 볼 때 그런 사람이 열명중 한 명만 있어도 그닥 나쁘지 않은 세상이었을 거 같은데 낸시는 복도 많다.

<보트를 탄 소년>이라는 ‘톰’들이 모인 레즈비언 바의 존재도 너무 충격적이었고 그 이전에 다이애나가 벌이는 파티도 충격적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정치인들과 연예인들의 마약파티 괴담 같은 것이 떠올라서. 더이상 쇼를 위해 멀쩡한 아이를 납치하는 일이야 낸시의 시대엔 없었겠지만 그 시절에도 여전히 프릭쇼가 있었을 것이고. 낸시를 트로피 애인이나 배우자처럼, 아니 신기한 물건처럼 데리고 다녔던 다이애나가 너무 끔찍했고 제나를 보는 관점도 진짜 너무 착취적이고 소모적이어서, 얼씨구, 를 연발했다.

그런가 하면 이야기가 긴데 긴 거에 비해서 너무 해피엔딩에, 다이애나가 끝에 나온 거 보고 좀 어처구니 없고 뭐가 좀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런 이야기 구성은 아쉬웠다.

키티가 초반의 그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를 유지하지 못하고 후반에 너무 밋밋해져서 책받침처럼 사라질 때에도 좀 아쉬웠다. 낸시야 다행이다. 잘 돼서. 그만하면. 근데 키티는 뭔 죄야 또, 싶었다. 물론 낸시를 배신한 건 키티지만 낸시가 방황하며 한 행동은 안 할 수도 있었던 거 아닌가 해서;; 바람을 피운 건 잘못이지만, 사전에 아무도 예방하지 않았다. 또 평생 어차피 한 사람의 그늘로만 살 순 없었던 거였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빅토리아 시대였다면 정말 꽁꽁 숨겼을 이야기와 문화를 가상으로라도, 좀 오바같아도 끄집어내 놓은 느낌이 좀 들었고 그게 대단하다 싶었다. 물론 설마 이렇게까지 했겠나 싶긴 한데;; 근데 당시에도 이태원 게이바나 호스트바 같은 곳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성소수자들끼리 모여 있어서 서로 상대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좀 신기하다.
나로서는 낸시가 거리를 어슬렁 거릴 때마다 내가 중고등학생이었을 시절 원조교제 하러 마로니에 공원에 나온 애들과 어른들을, 긴자 거리에서 드레스를 입고 에스코트 받거나 남자랑 가던 여자들을, 오후 8~10시만 되면 주안역이나 지금은 타임스퀘어가 된 영등포 홍등가의 정육점 같은 조명을, 투명 텐트와 개 추운날 헐벗은 언니들을 떠올리며 깜짝깜짝 놀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낸시의 감정 묘사가 잘 돼있어서 진짜 낸시란 사람 공감도 안 가고 이해도 안 갈 캐릭터인데 그 묘사 때문에 친밀감 느껴지고 이해가 가고 그런다. 이게 진짜 이 책에서 가장 멋진 면 같다.

그때랑 지금이랑 많이 안 다른 거 같기도 하고.


이상하게 뭔가 쓰려고 했는데 기운이 쭈욱 빠지면서 쓰기가 좀 그렇다.

다른 건 모르겠고 경제력을 갖고있지 않으면 사랑이 끝나고 개고생이구나~ 이게 가장 크게 느껴졌다. 남자나 여자나 결국 자기 돈, 자기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거 쫓겨날 땐 돈을 챙겨야 한다는 게 나는 가장 심각하게 느껴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퀴어소설은 패니 플래그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다. 그런 연대의 느낌을 좋아하는 거 같다. 이거 근데 퀴어 아닌가? 퀴어가 아니라면 아닌 걸로 하고. 이런 스타일을 뭐라 부르지? 루스랑 잇지의 사이를. 물론 우정이라고 하면 더 좋긴 하다.

3부작 중 끌림이 더 내가 궁금한 내용이라 계속 읽을 생각이다. 쉽게 말하면 감방과 거기 갇힌 무당과 봉사활동 나간 부자 여인 이야기라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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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14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넘 좋아해요. 경제력없음 개고생에 겨드랑이 이야기에 빵 터지고 갑니다 ㅎㅎ

Persona 2022-06-14 23:01   좋아요 1 | URL
Towanda! ^^ 좋은 이야기만 있는 책은 아니었는데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ㅎㅎㅎ 웃으셨다니 좋습니다. ㅋㅋㅋ^^

얄라알라 2022-06-14 2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 제목으로만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배워야, 알아야 ㅎㅎ persona님 페이퍼 덕분에 이 영화 장르까지 알고 갑니다.

Persona 2022-06-14 23:48   좋아요 2 | URL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요? 이거 근데 퀴어는 아주 넓게 봤을 때 이것도 퀴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 의혹에 가깝고요. 인종차별과 여성문제, 가정폭력, 부부갈등 문제 같은 거가 좀더 전면에 있고요. 시대를 오가며 생각보다 풍부하게 이야기가 구성돼 있어서요. 진짜 매력적인 이야기예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