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앞부분 읽는 중.
조금 놀랐다.

나는 딱히 성에 관한 이야길 피하는 편은 아닌데 내 인상이 그런 이야기랑 멀어보이는 건지 굳이 이야기할 기회는 잘 없다. 콘돔을 한박스 샀다는 이야기나 성인용품점의 기구 이야기는 자주 듣는 편인데, 음담패설과 성희롱에도 익숙해서 불쾌해 하지도 않고 그냥 지나갈 때도 참 많았는데, 정작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여서 그런지 낙태 이야기를 자주 듣진 못했다. 정작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아픈 일은 항상 혼자서 하는 거 같다. 다만 하혈이 심한 사람을 이따금 볼 뿐이다. 물론 그건 생리 때문 일수도, 유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낙태에 대한 윤리적인 이야기, 산모의 안전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그런 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막상 낙태 수술의 과정이라든가 주의할 점 요령 같은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거 같다. 책임은 여성만 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경우, 같이 책임져줄 남성이 책임 질 수 없고 자신도 엄마 될 준비가 안 된 경우라면 피임 실패의 연장선상에서 낙태를 보는 편이기는 하다. 그러니까 태아에겐 안됐지만, 살해로 보기 이전에 산모의 생명활동도 고려돼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태아의 뇌가 완전히 발달 되기 이전에 한해서. 예컨대 고등학생이 미혼모가 되는 결정을 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지만 낙태를 선택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면 더더욱.물론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한데, 그래도 낙태가 나쁜 거 다 알아도 낙태가 현실인 어린 여성이 분명히 있을 거라서 어렵게 낙태가 결정된 이후의 이야기. 감정.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걸 그려낸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던 거 같다.
분명 누군가 유통기한 이내에 콘돔 한 박스를 다 쓸 동안 다른 쪽에선 완벽히 피임 되지 않아서 책임질 사람이 없는 아이가 생기는 수가 있을텐데. 정말 정말 최악의 상황이지만. 죄고 아니고를 떠나서 스무살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게. 사실 스무살이 아니고 서른 마흔이라도 그렇다. 몸에 무리도 가고, 아기 지운다는 게 마음으로도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낙태 경험이 있다면 속으로 죄인된 마음으로 살 것 같다.

소설에서 낙태를 결정한 이후의 상황을 만나는 게 몹시 기이하기도 하지만 또 필요한 일이었던 거 같아서, 상황이 기쁜 건 물론 아닌데 슬프고 힘든 건데 근데 또 이 책을 어릴 때 만났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결혼하지 않았고 임신 계획도 없지만, 당장 인슐린 네번 맞고 시험관 시술 세번 복부 주사 맞을 거 생각하면 매일 7번씩 어떻게 주사를 맞지 싶어진다. 그냥 앞으로도 아기랑은 인연이 없을 듯. 그래서 정작 임신한 사람들은 모두 축복하고 싶은데, 이렇게 낙태를 하는 걸 보면 무척 마음이 아프긴 하다. 이해도 가지만, 낙태를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낙태를 좋은 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니깐.

참 그냥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정말 확실하다.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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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9-21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내용이 담겨 있군요!! 아니 에르노는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주로 담는 편인가봐요. 여성들에게 성에 관한한 쉬운게 없는 듯 해요. 월경부터 임신, 낙태,강간. 성폭행의 두려움, 폐경😭

Persona 2021-09-21 14:13   좋아요 1 | URL
조금 놀랐지만 계속 읽어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