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조기 각성 증상이었다니.
난 내가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자고 또 금방 깨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덜 아플 때에도 여전히 잠을 못 자서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그 반대였구나.

근데 난 좀 그렇다.

내과 의사나 외과 의사들에겐 이게 얼마나 아픈데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선생님은 몰라요. 안 이러면서 정신건강의학쪽에서만 유독 환자들이 필요이상의 라포를 요구하는 거 같다. 물론 친밀감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놈의 전이 때문에(의사쪽이 어니라 환자 쪽의) 이분도 결국 돌아가셨지 않나. 내가 아프다고 해서 의사까지 아파보고 힘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상담사도 마찬가지고.

나도 저 말 듣기 싫다. 우울증 한번 안 겪는 사람 얼마나 된다고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꼭 저런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하다가 나까지 나락으로 다시 빠지기 싫어 공감하기 싫다. 괴로운 거 안다. 얼마나 괴로운지. 거기다 그 우울증이 선천적으로 뇌에 문제가 있어 생길 때는 조현병만큼 고치기 어려운 것. 극심한 거라는 것도 잘 안다. 내가 아는 동갑내기도 10대때부터 지금까지 삼십년 정도 병원에 있다. 걔도 전이현상으로 의사와 사랑에 빠졌다 착각하고 의사 부인을 보고 감정이 격해져 흉기를 휘두르고 자해를 해서 폐쇄병동으로 갔다. 음. 우울증 당사자보다 그 주변 가족이 얼마나 고생일지를 더 잘 이해한다고 해야하나? 암튼. 에고. 때로는 이게 집에 파킨슨씨 병이나 치매로 고생하는 사람 가족인 거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ㅠㅠ

내 고통은 내 거지만 니 고통은 니 거다. 물론 주변에 내가 이런 상황이라고 말할 필요는 있지만 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 상대에게 던져주면 그 사람도 금방 뱉고 튕겨낼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런 사람 만나는 게 일인 의사야…….
대부분 내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의사도 못 고쳐준다.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비합리적인 생각부터 들여다봐야한다. 생각의 굴레에 갇혀 챗바퀴 돌다가(반추사고) 더 갇히고 답없는 결론에 도달하는 거가 제일 위험하다.
우울증 아닌 사람이 보면 늘 우울증인 사람에게 니가 문제야.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 이 말 많이 해서 상처받는데, 근데 내가 빠져나와 보면 그렇다. 진짜 비합리적인 생각 고치는데에는 일기만한 게 없다. 일단 내 감정 내 상황을 다 적는다. 나는 눈물도 쏟는다. 그리고 내 안의 분석가를 소환해서 하나하나 비합리적인 생각이나 과장 축소 왜곡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이게 왜 이런 생각으로 뛰었는지, 합리적인 생각이 뭔지 적는다. 첨삭하듯이. 이게 스스로 안 되면 믿을 수 있는 남에게 뭐가 비합리적인지 냉정하게 표시해달라고 한다.
응. 생각도 논술고사 공부하듯이 첨삭받아서 고쳐야 한다. 내 병이 잘못된 생각에 괴롭고 우울한 거니까. 이건 아론 벡의 우울증 치료 배울 때 나오는 일기쓰기인데, 난독증이나 이상하게 대가리와 사지만 남기고 깎아버린 푸들처럼 부종이 생기고 통증이 심해 우울증에 빠졌을 때, 노력해서 안 된걸 노력없이 잘되는 남을 보면서 어렴풋이 권력없는 엄마아빠 밑에서 자라 내 주제에 좋은 학교 다닌 거 때문에 우울하다가 뉴스보고 회복불능이 됐을 때에도 했다. 손을 자른다고 못 쓰게 될 땐 입으로 녹음하기도 하고 그랬다. 유서처럼 쓰고 표현하고 울고 혹은 기력이 없어서 울지도 못했다. 아무튼 나는 그걸로 버텨온 거 같다.
그리고 약은 늘 상담받고 처방받으며 조절. 부작용 때문에 멋대로 단약하면 안된다. 부작용이 왜 부작용인가. 그 병이 나으려면 감수해야하는 거다. 잃는 거 없이 얻는 게 없다. 이 세상은.
또 당신이 사고 안 당하고 무사한 건 운이 좋아서도 선인이어서도 아니다. 그냥 오늘은 무사한 거지. 반대로 사고 당하고 아프고 일찍 죽는 것도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누구의 잘못도 전생의 업도 아니고 종교가 이상해서도 아니다. 천사를 일찍 데려간 것도 아니고(그런 모지리 신을 믿냐고) 또 밤에 죽는 게 호상이 아니다. 가족이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다 편안히 죽는 게 절대 아닌데 장례식 가면 아직도 호상이래. 아니 사고사가 낫다니까? 몸에 갇혀서 위험에 빠졌는데 구조요청도 못하고 죽었는데 고인에 대해 니가 뭐라고 왈가왈부십니까. 너가 못알아차려서 니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걸 수도 있는데 알아차렸으면 안 돌아가셨을수도 있고. 호상이면 네 맘이 편한 거지. 얼마나 밤에 저혈당 빠지면 무서운데. 진심 저승길이 보이는 경험을 해요. 정신은 명료한 거 같은데 아무도 내 상태를 알아차려주지 않아. 옆에 잠든 가족도 너무나 평온하다고. 나만 이제 빠이빠이구나 싶은 감정인데 온몸의 장기들이 작동을 강제로 멈추려고 해서 더 공포야. 정신은 더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강제 셧다운. 그래서 나는 뇌사를 심장사보다 더 진짜 죽은 상태라고 믿고 있고 뇌가 먼저 죽길 바라고 있다. ㅠ 내 죽음은 절대 심장사 자연사가 아니기를. 사고사 급사 객사이기를. 차라리 교통사고로 몇미터 날아가서 며칠 혼수상태 빠져서 정신 못차리고 정신 나자마자 상황 파악 안 될 때 수술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진짜. 진심. 겪어보시든가.
물론 내가 뭘 안다고 이런 글을 찌끄리는지 모르지만;; 아우 나도 너무 듣기 싫다. 내 주치의가 내 병에 대해 주관적인 감정 끌고 들어오면 난 병원을 바꿀 것이다.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
 
나는 그제야 환자들이 했던 이 말의 의미를 뼛속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우울증의 ‘조기 각성 증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불면증과 함께 이유 없이 평소보다 최소 한두 시간 정도 일찍 깨어 버리는 조기 각성 증상을 경험하곤 한다. 나는 이 증상이 어떠한 것이며,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원치 않게 일찍 깨어난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오늘 자고 나면 내일은 통증이 덜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오지 않는 잠을 힘들게 청했지만,
깨고 나면 통증은 변함없이 나를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데도 불구하고
통증은 더 심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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