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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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부분도 있고, 그래서 여성서사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처음엔 느꼈다. 친가는 연합군 프랑스 부대 소속 카츄사로 참전했고 외가는 피난민이었다. 할아버지는 이 책에서 나오는 ‘남자들의’전쟁을 늘 들려주셨고 그것도 가끔은 한국군의 관점이라기보단 연합군, 외국인 입장처럼도 들렸다. ‘도와주었다’, ‘-측에 지원했다’같은 표현을 많이 쓰셨기 때문이다. 강하나 골짜기 하나 두고 총질했다시면서….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어떤 어리둥절함 때문인지 연합군으로 참여하셔서 그런 건지 할아버지는 늘 전쟁과 거리를 두고 말씀하셨다. 감정적인 것을 언뜻 말씀하시게 되면 대화가 금방 끊겼다. 할아버지는 자기에게 불리하게 느껴지는 것은 늘 숨기고 말 안하시는 타입이셨다. 가장으로서 권위가 하늘같기를 바랐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한번도 불어로 말씀해주신 적이 없다. 그렇게 ‘불어해주세요’했는데. 더 오래 사셔서 동생이 불어하는 거 보면 좋아하셨을텐데.
반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늘 여기서 나오는 ‘여자들의’전쟁을 말씀해주셨다. 늘 모두가 엉엉 울었다. 그중 제일 인상적인 외할아버지 말씀은 피난을 가든 징용을 가든 늘 사람은 옷을 품위있게 입어야 한다고 하셨다. 비싼 옷이 아니고 품위있는 옷. 그래서인지 어릴 때 엄마는 늘 나를 정장을 입혔다. 외할아버지는 티는 잘 안 내셨지만 내가 거지처럼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느쪽이야기를 듣건 늘 눈물이 났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워드 진의 관점이랑 상통하는 부분도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권력을 가지지 않은 자들의 서술. 아무래도 그게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잘 드러나기야 할 테니까 여성들의 이야기 위주로 모은 건 확실히 의미가 있다.
여하튼 확실한 건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훨씬 잔인하거나 아름답거나 하다는 것. 그리고 여기 기록된 구 소련의 소녀병사들의 서사는 승전의 기록이라기 보단 패전의 기록처럼 보이는 점도 있다는 것. 독일군은 일본군 만큼이나 참 잔인했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는데, 물론 반대 쪽에서도 반칙적인 사람들은 있긴 했을 것이다. 반칙적인 사람들은 어디나 있으니까. 근데 독일군, 일본군이 자행한 것들, 야비하고 반칙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은 거 같아서 그렇게 싸잡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얘들은 다 왜 이래? 하고. 그렇다고 내가 네오나치나 우익 책을 참고 읽긴 아마 평생 못할 거고 영원히 상대가 일본이나 독일에 어땠는지는 안 듣게 될 거 같긴 하다. 피해국가가 가하는 폭력을 주장한다해도 거기엔 관대하겠지. 누가 침략하래? 하면서.
점령지마다 빨치산에게 우호적이었다고 해서 (독일군이) 죽이는 것, 적군의 소녀병사들을 죽여 잔인하게 전시해놓은 것 그런 건 정말 토할 거 같았다. 그러나 정말 가슴이 아프도록 눈물이 났던 것은 (파시스트의) 포로가 된 후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 이미 고문당하고 부상당한 그들이 빨치산과 국가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참전을 쉬쉬해야 했다는 것.
그리고 83년 이전의 이 구술기록들 속에서도 스탈린에 대해 속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스탈린은 자기 아들조차 포로로 생포됐다 돌아왔어도 쳐다도 안봤다고 하는데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가혹했다. 계속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리고 소녀병사로 자원한 어린 여성들. 그것도 신기하면서도 대체 이념이 뭐길래, 싶었다. 여자니까 안전한데 있으라는데 그걸 거부하고 최전방으로 보내달라고 시위하는 모습들이 아프고 눈물났다. 피보다 진한 이념이라니. 역시 나라면 어땠을까?
그정도로 내가 나보다 최고로 치는 이념이 있었던가? 파시스트와 공산당이 각자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무엇을 호소했기에 각자가 우리가 이긴다고 확신을 해왔던 걸까? 나는 당장 보수주의와 민주주의에도 이렇게 환멸인데. 내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한다. 한마디로 나랑 다른 놈은 뚜드려 패도 된다, 바로 전쟁이다, 이 말 때문에 안 만나는 친구도 있는데 대체 나는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가. 나겠지. 내가 가진 최고의 신념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겠지…. 에휴.
근데 조국을 위해 자원하는 그 마음이 꼭 사랑처럼도 느껴지더라. 그 마음으로 기꺼이 사랑(어감이 좀 이상한데 조국을 사랑하듯이)할 수 있고 어떤 희생을 할 수 있는 게 나는 이제 조국이 아니라 아이돌이나 아직 희망이 있는 아이들(내 새끼 아니어도)인 거 같아서 진짜 격차를 느꼈다. 뭘 반성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내가 뭔가 엄청 미안한 정신상태를 지닌 거 같아서 내내 찔렸다.
돌아와서 뒤늦게 나라에서 훈장받는 여성들 이야기를 보고, 쉬쉬해야 했던 이유가 혹시 위안부처럼 보여서는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예 좀 직위가 높은 남자 상관의 숙소로 자기 숙소를 옮겨다니는 여성들도 있었다. 소녀병사가 여럿이 모여있는 간호사관, 의사 이런 의무대가 아니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념이 대체 뭐길래. 신념 지키다가 마을로 돌아와선 환영도 못 받고 그러는 걸까 싶은 구석이 한둘 이 아니다. 어떻게 애한테 지령전달을 시키고 어떻게 애를 매개로 일들을 계획한단말인가 싶고. 페니키아의 몰록에게 아이를 바치는 것이 늘 끔찍한 악습 제 1위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도 떠오르면서, 아, 이런 식으로 굳게 믿는 것이 있으면 가족이란 건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래서 대체 뭐냔 말이다. 전쟁을 생각하고 발명한 사람들은 정말 대체 누구고, 순진무구한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은 누굴까? 폭탄을 쥐여주는 사람은 누굴까! 소녀병사를 총알받이, 가미카제로 만드는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무기가 없어서 그냥 적진에 내보낸다고? 죽은 사람 무기를 빼내어 쓰고 그랬다고??? 그래, 당신은 수장이라 살아야 합니까? 그런 게 어딨어. 다음 사람 뽑아놓고 대표로 적진으로 가지 그러냐고. 자기가 하지 왜 어리고 창창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희생하게 할까. 왜 파시스트에게 죽임을 당하느니 목숨을 끊겠다고 하고 자기 아이를 자기 손으로 죽일까. 대체 왜?
성한 곳도 없고 전후에도 지원도 없고, 편견에 둘러싸여, 지독하게 살아오면서도 그때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모습들이 너무 아프다.
토할 거 같고 아프고 편두통도 심해지는데 꾸역꾸역 읽었다. 나같은 겁쟁이는 전쟁이 나도 이 사람들 처럼 전장에 자원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가도 후방에 있으려고 발악이었뎄지 싶어서, 그걸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간에 덮는 건 정말 하면 안 될 거 같았다. 겁쟁이라도 최소한 예의는 갖출 줄 알아야지 싶어서. 이들 속에도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모습이 들어있어서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 이런 걸 겪고 늙지 않을 수가 없지. 요즘 전반적으로 어려보이는 것이 수명연장 때문만은 아닌 거 같고 이런게 없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설폰계열 당뇨약 부작용(‘side’ effect)이 노화방지라는데도 취업 스트레스 받으니까 급 흰머리들이 미친듯이 생기더라. ;;

아 하루 묵히면 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서평 이걸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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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09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괜찮은 정도가 훌륭한 글입니다! 덕분에 책장 수색해서 이 책 찾아 냈어요!ㅎ 따뜻한 주말되십시요!

Persona 2021-01-09 14: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